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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

다랑쉬 오름에 올라 다랑쉬 오름에 올라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얼마나 험한 세월이었던가 오름에 오르는 것이 이리도 험한데 아이야, 지나간 그 세월은 어찌 견디었느냐? 그래 견디지 못해 너는 오름 기슭에 누워 쉬는구나 억새 우거진 그곳에는 네 소꿉놀이 사금파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그 위로 한가롭게 들리는 트랙터 소리 총성이 무서워 총소리만큼 큰 소리로 울고 아버지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는 눈물이 말라 가슴으로만 울던 아이야, 이젠 울지 말아라 네 아픔을 대신 아파하는 이들이 네 가슴으로 울고 있으니……. 해가 뜬다 다랑쉬 위에 걸렸던 그믐달이 일출봉 위로 해가 되어 솟는다. ※ 다랑쉬오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오름. 제주도 4․3 사건 때 이 오름 기슭 다랑쉬 마을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더보기
외로운 길 외로운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길을 걸었다. 외줄기로 뻗어있는 찾아오는 이 없는 노루 발자국도 찍히지 않는 작은 가지를 흔드는 바람도 불지 않는 그래서 외로운 길이라 이름 붙여진 길을. 둘이서 가면 외로운 길이 아니기에 홀로 산길을 걸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세참을 걸어도 억새만 하얗게 피어 있었다. 그 길에 바람도 없이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더 이상 외로운 길이 아니었다. 꽃향유, 쑥부쟁이, 미역취…… 작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있기에. 청미래덩굴이 빨간 열매를 달고 산새를 부르고 있었기에. 두 참을 더 올라간 곳에서 길은 두 줄기로 뻗어 있었다. 거기서 발길을 돌렸다. 두 줄기 길은 더 이상 외롭지 않기에. 길이 내게 말했다. “당신이 찾아와서 난 더 이상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더보기
새벽 바다 유영 새벽 바다 유영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부지런한 놀래기들만 일찍 잠이 깨어 유영하는 새벽 나도 놀래기들과 함께 새벽 유영을 한다. 서귀포 새벽 바다 방파제 끝을 돌아 흐르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살갗에 닿지만 바닷물은 따뜻이 온 몸을 감싼다. 지난 밤 늦도록 이어진 소라, 고동, 자리돔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때문이리라. 새섬 그늘 속에 감추어져 어둠에 잠겼던 새벽 바다 속으로 서서히 여명이 찾아온다. 붉은 해가 솟는다. 방파제 위로 출어 준비를 하는 어선의 마스트 위로 일제히 일어나는 바다 모자반이 흔들리고 자리돔 떼의 군무가 다시 시작되고 그 위로 바위를 감싸안는 작은 파도의 속삭임도 높아진다. 더보기
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바다, 그녀가 나를 부르면 난 거부할 수 없는 몸짓으로 이끌려 간다. 어쩌면 그녀가 날 유혹하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녀가 살짝 손짓하기만 해도 난 못이기는 척 하고 그녀의 품 속으로 안겨든다. 그녀의 유혹이 너무 강하기 때문인지 그녀의 유혹을 바라는 나의 마음이 너무 약하기 때문인지 그건 몰라도 좋아. 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수밀도 가슴속으로 한없이 파고들뿐이다. 그녀의 품 속에서 난 작은 물고기가 되지만 큰 가슴을 가진 바다 그녀는 작은 물고기를 포근히 감싸준다. 더보기
어머님 전상서-열 번째 드리는 글 어머님 전상서 - 열 번째 드리는 글 - 다시 어버이날에 -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어머니.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이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버이날이 되면 어머니 생각이 더 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꾸부정한 허리로 신경통 때문에 다리 아파하면서도 바쁜 아들 내외 손에서 손주들을 맡아 도닥이며 키워주신 어머니. 이젠 그 손주들도 커서 장가갈 때가 되어 가는군요. 저들도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게 되면 그 때나마 할머니 생각을 하려나요? 며칠 전 어머니의 막내아들 내외 저희 부부 피아노 앞에 앉아 “어머니 마음”을 불렀습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피아노를 치던 아내의 손가락이 점점 느려지더니 눈에 이슬을 담고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어머니의 막내며느리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 더보기
어머님 전상서-아홉 번째 드리는 글 어머님 전상서 - 아홉 번째 드리는 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어머님이 제 곁을 떠나신 지 몇 해 찬장을 정리하던 어머님의 막내며느리가 생전에 막내아들 내외에게 남겨주었던 결명자를 찾아 끓였습니다. 붉으라니 색 고운 결명자 차에서 몇 해 만에 어머님 냄새를 맡았습니다. 알러지로 고생하시며 찔끔찔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곤 하시던 어머님 아들, 며느리, 손자들은 당신처럼 눈 아프지 말라고 눈 밝아지는 결명자를 남겨주신 정성에 이슬 맺혀 떨어지는 눈이 점점 밝아집니다. 어머님의 사랑이 더 환히 보입니다. 사랑은 대물림하는가 봅니다. 어머님에게 사랑을 배운 당신의 막내며느리는 결명자에 사랑을 섞어 끓여 당신의 손자들에게 준다는군요. 어머님, 결명자 차를 마시는 막내아들은 어머님의 사랑을 함께 마시며 손수건을 꺼.. 더보기
어머님 전상서-여덟 번째 드리는 글 어머님 전상서 - 여덟 번째 드리는 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어머니 가슴 그 젖무덤 속에 나 어릴 적 누우면 어머니 가슴이 제일 넓었습니다 그 가슴은 비바람도 막아주고 울음소리 달래주고 배고픔도 눅였습니다 지금은 생전의 가슴 같은 볼록한 무덤 속에 깊은 잠이 드신 어머니 당신이 보고 싶을 땐 당신의 가슴이 그리울 땐 오름에 올라갑니다 따스한 햇살 내리는 오름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저-기 낮달 속에서 날 보며 웃고 계신 어머니 당신의 가슴 마냥 봉긋 솟은 오름이 나를 포근히 감싸줍니다. 더보기
어머님 전상서-일곱 번째 드리는 글 어머님전상서 - 일곱 번째 드리는 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하늘 보세요 괴로움 없는 곳 눈물 없는 곳 늘 꽃피는 아름다운 곳 하늘 보세요 어머님 하늘엔 웃음이 있어요 하늘엔 사랑이 있어요 어머님 손잡고 하늘 꽃동산 거닐며 맘껏 웃어도 보고 이마의 주름살 세지 않아도 되게 어머님, 저 하늘 함께 가세요. 더보기
어머님 전상서-여섯 번째 드리는 글 어머님전상서 - 여섯 번째 드리는 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비가 내립니다 어머님 보리를 볶는 어머님을 봅니다 매운 연기에 눈물 흘리시며 보리를 볶는 어머님을 비 오는 날이면 봅니다 어머님이 타 주시는 개역에서는 구수한 어머님 냄새가 납니다 벌써 잊어버린 어머님의 살 내음 가슴에만 새겨 둔 어머님의 젖 내음 어머님, 비 오는 날은 어머님 냄새를 다시 찾습니다. *개역 : 미숫가루의 제주말 더보기
어머님 전상서-다섯 번째 드리는 글 어머님전상서 - 다섯 번째 드리는 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어머님, 어느 날이던가요? 학교에서 돌아와 배고파하는 저를 앉히고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곤밥 한 공기 상 차려 주시곤 부엌으로 들어가시길래 문틈으로 엿보았더니, 어머님, 아십니까? 막내놈 눈물밥 삼킨 걸 부엌에 앉으셔서 누룽지 물 부어 잡수시더이다 지금은 귤나무만 보아도 배부른 때 바다 건너 이 산골에서는 그 때의 눈물밥마저도 그리워만 집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