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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화장실 자연 화장실 꿈꾸는 아이 한천민 그래선 안 되는데 정말 그래선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을 때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자연 화장실에 앉아본 일이 있는가? 얼굴 붉어질 일이지만 난 그래 봤다. 숲길을 걷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 아무도 없는 곳에 임의로 정한 자연 화장실 거기 앉으면 찾아오는 희열 바닥에 깔린 낙엽과 보드라운 이끼들의 내음 거기에 내 몸의 노폐물 내음이 섞여 묘한 향을 풍긴다. 코 속으로 들어오는 걸 거부할 수 없다. 바위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을 소리와 산새 지저귐이 들려온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뭇가지 흔들림이 노래되어 들려온다. 인공적인 건 머리 위 먼 하늘에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뿐이다. 산사의 해우소보다 자연 화장실이 더 내 근심을 풀어준다. 더보기
꽃향유 속의 가을, 그리고 좌보미오름 꽃향유 속의 가을, 그리고 좌보미오름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누가 가을을 오고 간다고 하던가? 가을은 아무데서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꽃향유 씨앗 속에 웅크려있던 가을이 꽃망울들이 하나둘 피어날 때 그제야 꽃 속에서 피어난다. 좌보미오름의 가을은 꽃향유 속에 들어있었다. 지천으로 피어난 자줏빛 향기 그 가운데 드러누우면 파란 하늘이 오름 위로 내려앉는다. 두 눈에 하늘이 가득 담긴다. 다섯 봉우리 그 안에 들어앉아 있는 오름을 닮은 묘, 묘, 묘 큰 봉우리 작은 봉우리 모두 자줏빛 가을을 꿈꾸고 있다. 더보기
민들레 두 송이 민들레 두 송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인적 드문 산길 길섶 풀밭 위 민들레 한 송이 지난 겨울 추위 속 움츠려두었던 봉오리 봄의 입맞춤으로 깨어나 로제트 잎 위로 밀어 올리는 미소 한 송이는 외로워 노란 얼굴을 돌리면 저기 풀잎 위로 얼굴 내미는 또 한 송이 봄비 방울마다 산꽃들 피어나고 산새 지저귐에 삘기 익어가면 민들레 두 송이 바람에 솜털 씨앗을 함께 날린다. 더보기
2010년 詩로 봄을 여는 서귀포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귀포다. 서귀포에서부터 시작된 봄의 따뜻한 바람은 유채꽃,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의 고운 빛깔과 향기를 싣고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로, 그리고 다시 제주해협을 넘어 육지로 봄소식을 전해주곤 한다. 서귀포문인협회에서는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인 2월 말에 남쪽 바다에서부터 바다를 건너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詩로 봄을 여는 서귀포] 행사를 갖는다. 2010년 올해는 이 행사가 벌써 11년째를 맞이하였다. 2월 27일 토요일. 詩로 봄을 여는 서귀포 행사가 있는 그날은 마침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서귀포문인협회 회원들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西歸浦七十里詩公園]에 모여 바다를 건너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서귀포항구로.. 더보기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늦가을 실안개 옅게 낀 날 군뫼를 오른다. 눈과 발을 붙잡는 것이 어찌 많은지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같이 가자 따라오는 가을바람의 속삭임과 산담을 덮고 자란 줄사철나무 벌어진 열매 시든 무릇 꽃줄기 속에 숨은 작은 씨앗까지도 까만 눈망울 똘망이며 눈을 붙들어 매니 원. 어느 곳에선 뒤에서 들리는 사자의 포효에 돌아서서 그 소리를 한동안 들어야 했다. 누가 나를 부르고 있다. 열리마을 위로 피어오르는 실안개 속에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귤빛 미소로 환히 웃는 아이들과 찰찰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맘을 지닌 남정네들, 논짓물 바닷가에 핀 들국화를 닮은 여인네의 얼굴이다. 군뫼에 오르면 나를 따라온 이들이 저마다의 얘기를 들려준다. 바람의 이야기와 .. 더보기
잊어버렸던 길 잊어버렸던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시내에서 십 리 쯤에 고향 마을이 있습니다. 고향 마을 가는 길은 꼬불꼬불 정겨운 길이었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포장도 안 된 돌짝길을 시내 중학교까지 친구들과 재잘재잘 오고가던 그 길에는 아침이면 풀잎들이 새벽빛을 받아 반짝였고, 저녁이면 등 뒤로 노을이 고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늘타리 하얀 꽃은 삼나무 가지에 걸리고, 돌담 위로 줄기 뻗은 인동꽃이 달콤한 향기를 뿜어 벌들을 불러모으곤 했습니다. 코 밑에 검은 수염 숭숭 돋을 무렵 그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차들이 많아지더니, 십여 년 전엔 아예 그 길을 버리고 생작으로 곧고 넓은 새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곧고 넓은 길이 빨라서, 시원하게 차를 달릴 수 있는 길이 그저 좋아서, 고향에 갈 때마다 넓은 새 .. 더보기
절굿대, 그리고 나 절굿대, 그리고 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간절히 보기를 원했다. 절굿대, 그 동그란 가시꽃 오름 위로 내려앉은 하늘 한 조각 꿰어 담고 피어난 작은 꽃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빛을 닮아간다. 풀숲에 누워 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 조각들이 내려온다. 내 눈 속으로 하늘 조각들이 담긴다. 내 가슴이 하늘빛으로 물들어간다. 절굿대, 그리고 나 오름 위 풀숲에 풍경 하나로 그려진다. 더보기
베릿내 달맞이꽃 베릿내 달맞이꽃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달 뜨는 밤에만 피는 줄 알았다, 너는. 낮에도 피어있는 걸 보았다, 네가. 베릿내 오르는 나무계단길 거기에 오롯이 피어 있었다. 네가 손짓해 부른 낮달이 컨벤션센터 위에 머무는 한 동안 바다와 하늘이 수평선에서 손 잡고 빙글빙글 춤을 추어 서로 바꿔 앉았다. 바뀌는 것이 어디 그 뿐이랴? 달맞이꽃에 입 맞추고 나도 숲속의 한 나무가 된다. 소나무 가지 새로 불어오는 바람이 낮달을 흘려보낸다. 이젠 달이 없어도 달맞이꽃, 너를 바라보는 얼굴이 있어 노란 미소를 피워 올리고 있다. ※ 베릿내 : 서귀포시 중문동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북서쪽에 있는 오름 더보기
반딧불이 반딧불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반딧불이를 찾아 걸어가는 숲길 어둠이 내려앉은 숲은 조용히 숨을 쉰다 풀벌레 소리 가까이 들리는 개구리 울음에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어머, 어머. 저기 한 마리!” 너의 목소리에 기쁨이 듬뿍 묻어난다 하얀 손이 가리키는 곳 거기 까만 어둠 속에 날아다니는 별 작은 반짝거림에 설레는 가슴 너의 손을 잡고 시내 바위에 앉는다 잠든 숲 위에 부는 작은 바람과 콜콜콜 흐르는 시냇물 소리 위로 별빛이 내려앉는다 아, 여기에도 반딧불이 있었다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네 눈이 반딧불이가 되고 네 눈빛을 보며 내 눈도 반딧불이가 된다. 더보기
가을에 드리는 감사의 노래 가을에 드리는 감사의 노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 위에 올라 두 팔을 벌려 누우면 하늘 저 푸르름 위에 하나님 계심을 봅니다. 바람 날개를 흔들어 맑은 공기 주시고 구름 차양으로 뜨거운 햇볕 가려 주시는 하나님 사랑이 다가오심을 봅니다. 산 위에 올라 두 팔을 벌리면 넓은 대지와 푸른 대양 가운데 하나님 계심을 봅니다. 그 속에서 온갖 생물들이 자라고 숨쉬며 축복의 삶을 누리게 하심을 봅니다. 여름내 푸르던 산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다도 고요한 수면을 드러내어 창조주를 찬양합니다. 이 가을에, 이 감사의 계절에 조용히 눈을 감고 감사한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지켜주심에 사랑하는 가족 주심에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용할 물질 주심에 직장과 일터에 아름다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