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렸던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시내에서 십 리 쯤에 고향 마을이 있습니다.
고향 마을 가는 길은 꼬불꼬불 정겨운 길이었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포장도 안 된 돌짝길을 시내 중학교까지 친구들과 재잘재잘 오고가던 그 길에는 아침이면 풀잎들이 새벽빛을 받아 반짝였고, 저녁이면 등 뒤로 노을이 고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늘타리 하얀 꽃은 삼나무 가지에 걸리고, 돌담 위로 줄기 뻗은 인동꽃이 달콤한 향기를 뿜어 벌들을 불러모으곤 했습니다.
코 밑에 검은 수염 숭숭 돋을 무렵 그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차들이 많아지더니, 십여 년 전엔 아예 그 길을 버리고 생작으로 곧고 넓은 새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곧고 넓은 길이 빨라서, 시원하게 차를 달릴 수 있는 길이 그저 좋아서, 고향에 갈 때마다 넓은 새 길로 차를 달려가곤 했습니다.
꼬불꼬불 좁은 옛 길은 어느덧 잊어버렸습니다.
어느 가을 저녁, 문득 옛 길이 생각나 부러 그 길을 가 보았습니다.
삼나무 가지로 줄기 뻗은 하늘타리가 노을빛 열매를 매달고 있었습니다.
옛길은 나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괜한 미안함에 검푸른 열매를 남기고 잎을 떨군 인동초를 쓰다듬었습니다.
돌아서는 등 뒤로 노을이 물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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