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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

수일 아저씨 수일 아저씨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내려온 제주도였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손가락을 꼽으며 지나간 해를 세어보았다. 제주도에서 두 해 정도를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가을 무렵에 서울로 올라갔으니까, 음-, 지금의 내 나이 마흔 살, 그러니까 30년 만에 내려온 제주도였다. 같이 데리고 온 아들 녀석이 3학년이니까, 내가 제주도를 떠난 것이 지금의 아들 녀석 나이 때쯤이다. 아들과 함께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제주항 쪽으로 오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제주도는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제주도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변하지 않은 건 막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우뚝 솟은 한라산과, 바다의 파아란 물빛뿐이었다. 30년 전 그 때는 제주시내에 어느 호텔 건물만이 홀로 우뚝.. 더보기
자연 화장실 자연 화장실 꿈꾸는 아이 한천민 그래선 안 되는데 정말 그래선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을 때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자연 화장실에 앉아본 일이 있는가? 얼굴 붉어질 일이지만 난 그래 봤다. 숲길을 걷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 아무도 없는 곳에 임의로 정한 자연 화장실 거기 앉으면 찾아오는 희열 바닥에 깔린 낙엽과 보드라운 이끼들의 내음 거기에 내 몸의 노폐물 내음이 섞여 묘한 향을 풍긴다. 코 속으로 들어오는 걸 거부할 수 없다. 바위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을 소리와 산새 지저귐이 들려온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뭇가지 흔들림이 노래되어 들려온다. 인공적인 건 머리 위 먼 하늘에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뿐이다. 산사의 해우소보다 자연 화장실이 더 내 근심을 풀어준다. 더보기
황근과 등대 황근과 등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황근이 수영이와 처음 알게 된 것은 황근이 노란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하던 지난 7월 말, 그러니까 수영이네 학교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려던 무렵이었습니다. 크고 검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바닷가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몰려왔습니다. “와, 시원한 바다다!” “이 멋진 등대 봐. 얘들아, 여기서 사진 찍자.” “그래. 그래. 호호호.” 바닷가로 몰려든 아이들은 수다스럽게 재잘대며 바다와 등대 풍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여기 왜 왔니?” “청소하러요…….” 아이들은 심드렁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그러면 먼저 청소하고 나서 사진도 찍고 놀고 그러렴.” “예. 예.” 선생님은.. 더보기
바람이 사는 집 바람이 사는 집 꿈꾸는 아이 한천민 봄바람이 강을 건너고 들판을 지나 천천히 달려왔습니다. 봄바람이 달려오는 들판에는 바람의 발 아래로 광대나물이 보랏빛 작은 꽃을 피우고 있었고, 냉이도 겨우내 땅바닥에 납작하게 눕혀 놓았던 잎을 세워가며 하얀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낮은 언덕배기로 올라가서 소나무 가지 사이를 맴돌다 언덕 아래 작은 집을 기웃거렸습니다. 작은 집 창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본 바람은 얼른 그 틈으로 들어가 작은 거실을 감돌았습니다. “솔이야, 봄바람이 이제 제법 따뜻해졌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열린 창틈으로 들어온 바람을 느끼고 솔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솔이의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거실에 들어온 바람을 손으로 잡으려는 .. 더보기
이어도 간다 어제(2013년 8월 4일) 이어도에 갔다 왔다. 정확히 말하면 제주대학교 소속 아라호를 타고 1박 2일로 갔다가 8월 4일 아침에 이어도를 보고 왔다. 그 감격은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이어도는 우리나라의 최남단 마라도로부터 서남쪽으로 80마일(149km) 떨어져 있으며, 중국의 서산다오(余山島)로부터 동쪽으로 155마일(287km), 그리고 일본의 도리시마(鳥島)로부터 서쪽으로 149마일(276km)의 거리에 있으며, 우리나라의 EEZ(배타적경제수역) 안에 위치해 있다. 이어도는 수중암초로서 가장 얕은 곳은 해수면 아래 약 4.6m이며,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750m에 이른다.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는 1995년 착공하여 2003년 6월 11일 설립하였다. .. 더보기
꽃향유 속의 가을, 그리고 좌보미오름 꽃향유 속의 가을, 그리고 좌보미오름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누가 가을을 오고 간다고 하던가? 가을은 아무데서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꽃향유 씨앗 속에 웅크려있던 가을이 꽃망울들이 하나둘 피어날 때 그제야 꽃 속에서 피어난다. 좌보미오름의 가을은 꽃향유 속에 들어있었다. 지천으로 피어난 자줏빛 향기 그 가운데 드러누우면 파란 하늘이 오름 위로 내려앉는다. 두 눈에 하늘이 가득 담긴다. 다섯 봉우리 그 안에 들어앉아 있는 오름을 닮은 묘, 묘, 묘 큰 봉우리 작은 봉우리 모두 자줏빛 가을을 꿈꾸고 있다. 더보기
마파람 다솜이 마파람 다솜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흰 구름이 솜뭉치처럼 모여 조용히 흐르는 파란 하늘 아래 바다는 하늘빛보다 더 짙은 감청색으로 물들어 잔물결을 가만히 일렁이며 흔들리고 있어요. 사방이 끝없는 망망 바다 가운데 작은 점 하나. 이어도해양과학기지. 깊은 바다 속에서 파란 하늘 향해 솟아오르고 싶어 물 위로 솟아오르다 멈춘 물 속 큰 바위 위에 기둥뿌리 세우고 떠 있는 인공 섬 이어도해양과학기지. 늘 외롭던 인공 섬이 오늘은 외롭지 않았어요. 지난겨울 추위에 밀려 멀리 남쪽으로 갔던 마파람 식구들이 오늘은 인공 섬 위에 모여들었어요. 인공 섬 헬기장 가운데 자리 잡아 앉은 마파람 아빠가 말했어요. “얘들아, 여기서부터는 한국 땅이다. 이제부터 우린 북쪽으로 올라가며 하늬바람 때문에 꽁꽁 얼려있는 땅에 따.. 더보기
섶섬 기슭엔 전설이 살고 있다. 2010년 6월 11일 열린 제 11회 보목 자리돔축제 개막식에서 직접 지어 낭송한 축시를 소개한다. ※ 1. 아래 사진은 자리돔으로 만든 물회와 강회의 모습이다. 2. 축시에 쓴 [섶섬]은 자리돔 축제가 열리는 마을인 서귀포시 보목동 앞의 섬이름이다. 섭섬, 삼도라고도 불린다. 3. 볼래낭개는 보목 마을의 옛 지명으로 "보리수나무(볼래낭)가 많은 포구"란 뜻이다. 지금도 옛 이름인 볼래낭개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섶섬 기슭엔 전설이 살고 있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남쪽바다 푸른 빛 감돌아 흐르는 섶섬 기슭 볼래낭개 마을에 잔치가 열린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거친 바다밭을 일구며 자리가시같이 억척스럽게 살아온 볼래낭개 사람들 한여름 땡볕 아래 검질 매다가 자리 테우 들어오는 소리 들리면 모여드는 사.. 더보기
민들레 두 송이 민들레 두 송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인적 드문 산길 길섶 풀밭 위 민들레 한 송이 지난 겨울 추위 속 움츠려두었던 봉오리 봄의 입맞춤으로 깨어나 로제트 잎 위로 밀어 올리는 미소 한 송이는 외로워 노란 얼굴을 돌리면 저기 풀잎 위로 얼굴 내미는 또 한 송이 봄비 방울마다 산꽃들 피어나고 산새 지저귐에 삘기 익어가면 민들레 두 송이 바람에 솜털 씨앗을 함께 날린다. 더보기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늦가을 실안개 옅게 낀 날 군뫼를 오른다. 눈과 발을 붙잡는 것이 어찌 많은지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같이 가자 따라오는 가을바람의 속삭임과 산담을 덮고 자란 줄사철나무 벌어진 열매 시든 무릇 꽃줄기 속에 숨은 작은 씨앗까지도 까만 눈망울 똘망이며 눈을 붙들어 매니 원. 어느 곳에선 뒤에서 들리는 사자의 포효에 돌아서서 그 소리를 한동안 들어야 했다. 누가 나를 부르고 있다. 열리마을 위로 피어오르는 실안개 속에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귤빛 미소로 환히 웃는 아이들과 찰찰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맘을 지닌 남정네들, 논짓물 바닷가에 핀 들국화를 닮은 여인네의 얼굴이다. 군뫼에 오르면 나를 따라온 이들이 저마다의 얘기를 들려준다. 바람의 이야기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