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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

잊어버렸던 길 잊어버렸던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시내에서 십 리 쯤에 고향 마을이 있습니다. 고향 마을 가는 길은 꼬불꼬불 정겨운 길이었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포장도 안 된 돌짝길을 시내 중학교까지 친구들과 재잘재잘 오고가던 그 길에는 아침이면 풀잎들이 새벽빛을 받아 반짝였고, 저녁이면 등 뒤로 노을이 고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늘타리 하얀 꽃은 삼나무 가지에 걸리고, 돌담 위로 줄기 뻗은 인동꽃이 달콤한 향기를 뿜어 벌들을 불러모으곤 했습니다. 코 밑에 검은 수염 숭숭 돋을 무렵 그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차들이 많아지더니, 십여 년 전엔 아예 그 길을 버리고 생작으로 곧고 넓은 새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곧고 넓은 길이 빨라서, 시원하게 차를 달릴 수 있는 길이 그저 좋아서, 고향에 갈 때마다 넓은 새 .. 더보기
절굿대, 그리고 나 절굿대, 그리고 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간절히 보기를 원했다. 절굿대, 그 동그란 가시꽃 오름 위로 내려앉은 하늘 한 조각 꿰어 담고 피어난 작은 꽃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빛을 닮아간다. 풀숲에 누워 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 조각들이 내려온다. 내 눈 속으로 하늘 조각들이 담긴다. 내 가슴이 하늘빛으로 물들어간다. 절굿대, 그리고 나 오름 위 풀숲에 풍경 하나로 그려진다. 더보기
베릿내 달맞이꽃 베릿내 달맞이꽃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달 뜨는 밤에만 피는 줄 알았다, 너는. 낮에도 피어있는 걸 보았다, 네가. 베릿내 오르는 나무계단길 거기에 오롯이 피어 있었다. 네가 손짓해 부른 낮달이 컨벤션센터 위에 머무는 한 동안 바다와 하늘이 수평선에서 손 잡고 빙글빙글 춤을 추어 서로 바꿔 앉았다. 바뀌는 것이 어디 그 뿐이랴? 달맞이꽃에 입 맞추고 나도 숲속의 한 나무가 된다. 소나무 가지 새로 불어오는 바람이 낮달을 흘려보낸다. 이젠 달이 없어도 달맞이꽃, 너를 바라보는 얼굴이 있어 노란 미소를 피워 올리고 있다. ※ 베릿내 : 서귀포시 중문동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북서쪽에 있는 오름 더보기
반딧불이 반딧불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반딧불이를 찾아 걸어가는 숲길 어둠이 내려앉은 숲은 조용히 숨을 쉰다 풀벌레 소리 가까이 들리는 개구리 울음에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어머, 어머. 저기 한 마리!” 너의 목소리에 기쁨이 듬뿍 묻어난다 하얀 손이 가리키는 곳 거기 까만 어둠 속에 날아다니는 별 작은 반짝거림에 설레는 가슴 너의 손을 잡고 시내 바위에 앉는다 잠든 숲 위에 부는 작은 바람과 콜콜콜 흐르는 시냇물 소리 위로 별빛이 내려앉는다 아, 여기에도 반딧불이 있었다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네 눈이 반딧불이가 되고 네 눈빛을 보며 내 눈도 반딧불이가 된다. 더보기
가을에 드리는 감사의 노래 가을에 드리는 감사의 노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 위에 올라 두 팔을 벌려 누우면 하늘 저 푸르름 위에 하나님 계심을 봅니다. 바람 날개를 흔들어 맑은 공기 주시고 구름 차양으로 뜨거운 햇볕 가려 주시는 하나님 사랑이 다가오심을 봅니다. 산 위에 올라 두 팔을 벌리면 넓은 대지와 푸른 대양 가운데 하나님 계심을 봅니다. 그 속에서 온갖 생물들이 자라고 숨쉬며 축복의 삶을 누리게 하심을 봅니다. 여름내 푸르던 산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다도 고요한 수면을 드러내어 창조주를 찬양합니다. 이 가을에, 이 감사의 계절에 조용히 눈을 감고 감사한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지켜주심에 사랑하는 가족 주심에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용할 물질 주심에 직장과 일터에 아름다운 .. 더보기
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웃는다 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웃는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에 피는 꽃은 산이슬을 먹고 산새 소리를 듣고 산바람을 맞아야 고운 꽃을 피운다. 들에서 자라는 꽃은 햇살을 담뿍 머금고 풀벌레 노래를 들으며 너른 지평선을 바라보아야 예쁜 꽃을 피운다. 온실에서 자라는 꽃이 고와지는 건 그 꽃들도 산과 들, 저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피기 때문이다. 꽃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곱게 웃는다. 더보기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느 릿 느 릿 소걸음으로 오는 봄 봄은 아직 저 멀리에 있다. 묵은 낙엽 위에 잔설이 남아있고 그 위를 칼바람이 쓸고 있는 2월 한 줄기 봄바람이 그 틈을 비집고 땅을 어루만지면 작은 꽃들이 피어난다. 변. 산. 바. 람. 꽃.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꽃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 다른 꽃보다 먼저 피어난다고 성급한 꽃이 아니다. 기다림이 하도 간절하여 추위에 얼굴 내밀어 봄을 기다리느라 보랏빛 꽃술로 피어나는 것이다. 칼바람을 향해 하얀 미소를 보내면 날 선 바람이 무디어지고 겨울잠 자는 나무를 향해 미소를 날리면 높은 가지 잎눈들이 그제야 움찔거린다. 더보기
도시락 도시락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아내는 내게 오름에 미쳤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배낭에 도시락을 챙겨 넣어준다. 바람 시원한 오름 위에 앉아 도시락을 펼친다. 온기가 아직 남아 있다. 아내의 손을 잡은 듯 따스하다. 펼친 도시락 안으로 산바람이 들어온다. 나는 산바람에 버물린 밥 위에 들꽃 향기를 얹어 먹는다. 입 안에 퍼지는 풋풋한 향기 들꽃 도시락을 먹는다. 아내의 사랑을 먹는다. 더보기
눈 위를 걷는다 눈 위를 걷는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한밤 내 쉼 없이 내린 눈이 산과 들과 길을 온통 덮었다. 이른 아침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를 걷는다. 내가 걸어온 눈 위의 발자국을 밟으며 누군가 따라 걸어오고 있다. 내 발자국이 새 길이 되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더 조심스레 앞을 보며 걷는다. 새 길을 만드는 기쁨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다시 걸어가는 눈 위에 누군가의 먼저 간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걸어간다. 나를 위해 앞서 걸으며 길을 만들어 준 누군가에게 고마움이 퐁퐁 솟는다. 더보기
야고 야 고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슬프지 않다. 누가 찾아주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 억새풀, 띠풀 사이로 한 조각 햇살만 비쳐들어도 기쁨으로 물든다. 줄기도 없이 잎도 없이 작은 꽃대 하나 살며시 밀어 올려 피워낸 보랏빛 향기 가을 오름 한 자락 풀숲에 숨어 풀잎 새로 올려 보는 비취빛 하늘 거기 흘러가는 조각구름을 향해 수줍게 향기를 날려 보낸다. 풀잎을 스쳐가는 바람이 싱그럽다. 바람 따라 오름을 오르는 나그네의 눈길이 거기 머문다. 서로 마주치는 눈길. 나그네의 눈맞춤에 더욱 붉어지는 야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