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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

자연 화장실 자연 화장실 꿈꾸는 아이 한천민 그래선 안 되는데 정말 그래선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을 때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자연 화장실에 앉아본 일이 있는가? 얼굴 붉어질 일이지만 난 그래 봤다. 숲길을 걷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 아무도 없는 곳에 임의로 정한 자연 화장실 거기 앉으면 찾아오는 희열 바닥에 깔린 낙엽과 보드라운 이끼들의 내음 거기에 내 몸의 노폐물 내음이 섞여 묘한 향을 풍긴다. 코 속으로 들어오는 걸 거부할 수 없다. 바위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을 소리와 산새 지저귐이 들려온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뭇가지 흔들림이 노래되어 들려온다. 인공적인 건 머리 위 먼 하늘에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뿐이다. 산사의 해우소보다 자연 화장실이 더 내 근심을 풀어준다. 더보기
황근과 등대 황근과 등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황근이 수영이와 처음 알게 된 것은 황근이 노란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하던 지난 7월 말, 그러니까 수영이네 학교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려던 무렵이었습니다. 크고 검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바닷가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몰려왔습니다. “와, 시원한 바다다!” “이 멋진 등대 봐. 얘들아, 여기서 사진 찍자.” “그래. 그래. 호호호.” 바닷가로 몰려든 아이들은 수다스럽게 재잘대며 바다와 등대 풍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여기 왜 왔니?” “청소하러요…….” 아이들은 심드렁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그러면 먼저 청소하고 나서 사진도 찍고 놀고 그러렴.” “예. 예.” 선생님은.. 더보기
바람이 사는 집 바람이 사는 집 꿈꾸는 아이 한천민 봄바람이 강을 건너고 들판을 지나 천천히 달려왔습니다. 봄바람이 달려오는 들판에는 바람의 발 아래로 광대나물이 보랏빛 작은 꽃을 피우고 있었고, 냉이도 겨우내 땅바닥에 납작하게 눕혀 놓았던 잎을 세워가며 하얀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낮은 언덕배기로 올라가서 소나무 가지 사이를 맴돌다 언덕 아래 작은 집을 기웃거렸습니다. 작은 집 창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본 바람은 얼른 그 틈으로 들어가 작은 거실을 감돌았습니다. “솔이야, 봄바람이 이제 제법 따뜻해졌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열린 창틈으로 들어온 바람을 느끼고 솔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솔이의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거실에 들어온 바람을 손으로 잡으려는 .. 더보기
우리 집 새 식구 [꾸리]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 새 식구가 하나 생겼다. 벌써 보름 쯤 되었다. 새 봄이 시작되고 꽃샘추위가 한 번 지나고 나서 조금 따뜻해진 어느 날, 새벽기도를 가려고 캄캄한 새벽에 현관문을 나서는데 문 아래 타일 바닥에 뭔가 작은 물체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아내는 그게 바람에 쓸려 날아온 낙엽인가보다 하고 주워서 버리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그것은 낙엽이 아니라 새똥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웬 새똥? 제비가 벌써 와서 집을 짓기 시작했나?’하고 위를 쳐다보니 시커멓고 커다란 물체가 현관문 위 난간 위에 있는 게 아닌가! 얼른 불을 켜고 살펴보았더니 손바닥만한 크기의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조용히 있는 모습이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불을 끄고 새벽기도를 갔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갔다.. 더보기
마파람 다솜이 마파람 다솜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흰 구름이 솜뭉치처럼 모여 조용히 흐르는 파란 하늘 아래 바다는 하늘빛보다 더 짙은 감청색으로 물들어 잔물결을 가만히 일렁이며 흔들리고 있어요. 사방이 끝없는 망망 바다 가운데 작은 점 하나. 이어도해양과학기지. 깊은 바다 속에서 파란 하늘 향해 솟아오르고 싶어 물 위로 솟아오르다 멈춘 물 속 큰 바위 위에 기둥뿌리 세우고 떠 있는 인공 섬 이어도해양과학기지. 늘 외롭던 인공 섬이 오늘은 외롭지 않았어요. 지난겨울 추위에 밀려 멀리 남쪽으로 갔던 마파람 식구들이 오늘은 인공 섬 위에 모여들었어요. 인공 섬 헬기장 가운데 자리 잡아 앉은 마파람 아빠가 말했어요. “얘들아, 여기서부터는 한국 땅이다. 이제부터 우린 북쪽으로 올라가며 하늬바람 때문에 꽁꽁 얼려있는 땅에 따.. 더보기
우도 둘러보기, 그리고 등대박물관 6월 12일 토요일, 내가 소속되어 있는 어느 단체에서 오전에는 성산포에서 세미나를 하고, 오후에는 우도에 갔다. 버스로 한 바퀴 우도를 돌면서 쇠머리오름(우도봉)에 오르기도 하고, 검멀레 해안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해안 경치를 구경하기도 하고, 섬 서쪽 편의 산호모래 해수욕장인 서빈백사를 구경하기도 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우도를 돌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보았지만 전에 몇 번 와서 여기저기를 자세히 둘러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이만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여기 올려 본다. 아래 사진들은 쇠머리오름을 오르는 길에 설치해 놓은 세계 유명 등대들의 모형이다. 등대 모형들을 하나하나 보며 쇠머리오름을 오르는 길에 시간이 부족하여 더 자세히 볼 수는 없었.. 더보기
섶섬 기슭엔 전설이 살고 있다. 2010년 6월 11일 열린 제 11회 보목 자리돔축제 개막식에서 직접 지어 낭송한 축시를 소개한다. ※ 1. 아래 사진은 자리돔으로 만든 물회와 강회의 모습이다. 2. 축시에 쓴 [섶섬]은 자리돔 축제가 열리는 마을인 서귀포시 보목동 앞의 섬이름이다. 섭섬, 삼도라고도 불린다. 3. 볼래낭개는 보목 마을의 옛 지명으로 "보리수나무(볼래낭)가 많은 포구"란 뜻이다. 지금도 옛 이름인 볼래낭개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섶섬 기슭엔 전설이 살고 있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남쪽바다 푸른 빛 감돌아 흐르는 섶섬 기슭 볼래낭개 마을에 잔치가 열린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거친 바다밭을 일구며 자리가시같이 억척스럽게 살아온 볼래낭개 사람들 한여름 땡볕 아래 검질 매다가 자리 테우 들어오는 소리 들리면 모여드는 사.. 더보기
민들레 두 송이 민들레 두 송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인적 드문 산길 길섶 풀밭 위 민들레 한 송이 지난 겨울 추위 속 움츠려두었던 봉오리 봄의 입맞춤으로 깨어나 로제트 잎 위로 밀어 올리는 미소 한 송이는 외로워 노란 얼굴을 돌리면 저기 풀잎 위로 얼굴 내미는 또 한 송이 봄비 방울마다 산꽃들 피어나고 산새 지저귐에 삘기 익어가면 민들레 두 송이 바람에 솜털 씨앗을 함께 날린다. 더보기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늦가을 실안개 옅게 낀 날 군뫼를 오른다. 눈과 발을 붙잡는 것이 어찌 많은지 군뫼는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같이 가자 따라오는 가을바람의 속삭임과 산담을 덮고 자란 줄사철나무 벌어진 열매 시든 무릇 꽃줄기 속에 숨은 작은 씨앗까지도 까만 눈망울 똘망이며 눈을 붙들어 매니 원. 어느 곳에선 뒤에서 들리는 사자의 포효에 돌아서서 그 소리를 한동안 들어야 했다. 누가 나를 부르고 있다. 열리마을 위로 피어오르는 실안개 속에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귤빛 미소로 환히 웃는 아이들과 찰찰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맘을 지닌 남정네들, 논짓물 바닷가에 핀 들국화를 닮은 여인네의 얼굴이다. 군뫼에 오르면 나를 따라온 이들이 저마다의 얘기를 들려준다. 바람의 이야기와 .. 더보기
잊어버렸던 길 잊어버렸던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시내에서 십 리 쯤에 고향 마을이 있습니다. 고향 마을 가는 길은 꼬불꼬불 정겨운 길이었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포장도 안 된 돌짝길을 시내 중학교까지 친구들과 재잘재잘 오고가던 그 길에는 아침이면 풀잎들이 새벽빛을 받아 반짝였고, 저녁이면 등 뒤로 노을이 고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늘타리 하얀 꽃은 삼나무 가지에 걸리고, 돌담 위로 줄기 뻗은 인동꽃이 달콤한 향기를 뿜어 벌들을 불러모으곤 했습니다. 코 밑에 검은 수염 숭숭 돋을 무렵 그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차들이 많아지더니, 십여 년 전엔 아예 그 길을 버리고 생작으로 곧고 넓은 새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곧고 넓은 길이 빨라서, 시원하게 차를 달릴 수 있는 길이 그저 좋아서, 고향에 갈 때마다 넓은 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