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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시와 동시

동백꽃 지는 날 동백꽃 지는 날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날이 따스해진다고 누가 슬퍼할까 동백꽃이 진다고 누가 슬퍼할까 햇살이 온 누리를 데우면 곳곳에 꽃들이 가득 피어나는 걸 동백꽃이 져도 다시 눈 속에서 피어나길 기다리면 되는 걸 그러나 동박새는 울고 있지 울음소리 점점 멀어지고 있지 꽃이 피는 것만 바라는 사람아 꽃이 지는 것도 뒤돌아보렴. 붉은 꽃잎 열어 동박새에게, 벌에게 꿀을 만들어 먹이고 이젠 삶을 다하여 기쁜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꽃이 더욱 아름다운 걸 보렴. 더보기
오름에 오르면 오름에 오르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름에 오르면 혀끝을 스치는 바람 솔향이 혀끝에 감겨온다 저기 마라도에서 달려온 봄이 오름 끝자락에 머물면 살며시 볼 붉히는 진달래 사랑하는 사람아 네 가슴 속에서도 진달래 꽃망울을 터뜨리려무나 내 가슴 속에서는 솔향을 만들어 네게 보내주마. 더보기
오름 오르는 길 오름 오르는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목표는 저 봉우리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다시 끊어지는 길 …… 길 …… 탁 트인 풀밭 길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걷다가 어느 틈엔 가시덤불 막아서는 곳을 새로운 길을 만들며 걸어가야 하는 것 산정 호수가에 머물어 거기 마음을 담고 복수초 노란 향기는 힘든 등반객의 마음에 쉼터가 되지만 다시 바위를 기어올라야 정상은 다가서는 것 정상에 올라 돌아보면 그제야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는 것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가시덤불 길을 헤치고 넓은 초원길을 걷고 바위를 기어올라야 기쁨의 삶이 다가오는 것 우리 가는 앞길 가로막힐 때 그냥 뒤돌아서면 인생의 봉우리는 다시 멀어지는 것 우리를 기다리던 인생의 기쁨은 우리를 버리는 것 친구야, 가자. 저기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네 인생의 .. 더보기
독도에 가자, 꽃섬을 만들자 독도에 가자, 꽃섬을 만들자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강원도 아이들아, 제주도 아이들아, 독도에 가자 백두산 아이들아, 너희도 가자 강원도 아이들은 설악산 흙을 제주도 아이들은 한라산 흙을 한 움큼 한 소쿠리 가지고 가서 독도에 뿌리자 그 흙에 꽃씨를 심고 꽃나무를 심자 배달겨레 혼을 담은 무궁화를 심고 노랑 저고리 같은 개나리 분홍치마를 닮은 진달래를 한가득 심자 백두산 아이들아 백두산 흙과 함께 천지 물가에 흐드러져 피어나는 들꽃 씨앗을 가지고 오렴 외로운 섬 독도 바위틈에 들꽃이 피어나고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섬을 만들자 거기 무궁화가 끊임없이 피고 지며 향기를 날리고 배달겨레 아이들의 함박웃음도 함께 피어나겠지 강원도 아이들아, 제주도 아이들아, 독도에 가자 백두산 아이들아, 너희도 .. 더보기
난 지금 봄의 소리를 듣는다 난 지금 봄의 소리를 듣는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난 지금 봄의 소리를 듣는다. 봄이 저만큼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천천히 걸어오며 고운 입으로 노래하고 있다. 찬바람이 굼부리 패인 곳으로 들이쳐 앙상한 가지 새를 훑고 지나가며 거친 숨결을 뿜어 봄의 노래를 막으려 하지만 작은 입으로 부르는 봄의 노래를 막지 못한다. 봄이 저기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나뭇가지들은 달력이 없어도 엊그제 입춘이 지난 것을 어찌 아는지 귀가 없어도 아주 멀리서 들리는 봄의 노래를 어찌 듣는지 서둘러 잎눈을 뾰족이 준비하고 있다. 성급한 진달래가 피워낸 작은 꽃은 찬바람에 오돌오돌 떨다가 어젯밤 내린 봄비 한 모금과 햇살 한 줄기가 보듬어주는 손길에 작은 웃음을 피우고 있다. 찬바람이 등을 후려친다. 옷깃을 올리고 모.. 더보기
어점이에서 어점이에서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깊은 숲길 따라 걸으면 가슴으로 스며드는 적막 까마귀 울음만이 적막을 깨는 돌길을 따라 어점이에 오르다 어점이에는 오르는 것이 아니다 어점이가 가슴으로 나를 맞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점이에게 안기는 것이다 한라산 중턱 작은 점 어점이에서는 바람조차 숨을 멈춘다 이곳에는 온갖 지친 것들이 다 찾아온다 지폐 한 장 필요 없고 아옹다옹 다툼 없고 취하여 비틀거림 없고 삶의 지친 찌꺼기들이 따라오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 혼자 앉으면 나 또한 작은 점인 것을 바위 위에 자라는 나무와 낙엽 틈새 돋은 이끼와 아직 흰 빛이 남은 잔설과 내가 모두 하나의 작은 점인 것을. ※ 어점이 : 서귀포시 도순동 소재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오름 더보기
나는 나의 시계를 본다. 나는 나의 시계를 본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나는 지금 나의 시계를 본다. 나의 시계가 돌고 있다. 나의 시계가 언제부터 돌기 시작했는지 그건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단군 할아버지가 웅녀와 신방을 차리던 곳에도, 광활한 대륙을 치달리던 광개토대왕님이 말 등에도 나의 시계는 실려서 돌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좌에 앉던 그 해, 돛단배를 타고 풍랑 이는 제주바다를 건너던 나의 10대조 할아버지의 손목에도 나의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갈중이 입고 돚거름 밟던 할아버지의 갈중이 주머니 속에서 나의 시계는 흔들리고 있었고, 오사카 군함 제조창에서 톱질하고 대패질하던 아버지는 공습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막내아들의 시계를 숨죽이고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나의 시계는 4.. 더보기
다랑쉬 오름에 올라 다랑쉬 오름에 올라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얼마나 험한 세월이었던가 오름에 오르는 것이 이리도 험한데 아이야, 지나간 그 세월은 어찌 견디었느냐? 그래 견디지 못해 너는 오름 기슭에 누워 쉬는구나 억새 우거진 그곳에는 네 소꿉놀이 사금파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그 위로 한가롭게 들리는 트랙터 소리 총성이 무서워 총소리만큼 큰 소리로 울고 아버지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는 눈물이 말라 가슴으로만 울던 아이야, 이젠 울지 말아라 네 아픔을 대신 아파하는 이들이 네 가슴으로 울고 있으니……. 해가 뜬다 다랑쉬 위에 걸렸던 그믐달이 일출봉 위로 해가 되어 솟는다. ※ 다랑쉬오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오름. 제주도 4․3 사건 때 이 오름 기슭 다랑쉬 마을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더보기
외로운 길 외로운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길을 걸었다. 외줄기로 뻗어있는 찾아오는 이 없는 노루 발자국도 찍히지 않는 작은 가지를 흔드는 바람도 불지 않는 그래서 외로운 길이라 이름 붙여진 길을. 둘이서 가면 외로운 길이 아니기에 홀로 산길을 걸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세참을 걸어도 억새만 하얗게 피어 있었다. 그 길에 바람도 없이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더 이상 외로운 길이 아니었다. 꽃향유, 쑥부쟁이, 미역취…… 작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있기에. 청미래덩굴이 빨간 열매를 달고 산새를 부르고 있었기에. 두 참을 더 올라간 곳에서 길은 두 줄기로 뻗어 있었다. 거기서 발길을 돌렸다. 두 줄기 길은 더 이상 외롭지 않기에. 길이 내게 말했다. “당신이 찾아와서 난 더 이상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더보기
새벽 바다 유영 새벽 바다 유영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부지런한 놀래기들만 일찍 잠이 깨어 유영하는 새벽 나도 놀래기들과 함께 새벽 유영을 한다. 서귀포 새벽 바다 방파제 끝을 돌아 흐르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살갗에 닿지만 바닷물은 따뜻이 온 몸을 감싼다. 지난 밤 늦도록 이어진 소라, 고동, 자리돔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때문이리라. 새섬 그늘 속에 감추어져 어둠에 잠겼던 새벽 바다 속으로 서서히 여명이 찾아온다. 붉은 해가 솟는다. 방파제 위로 출어 준비를 하는 어선의 마스트 위로 일제히 일어나는 바다 모자반이 흔들리고 자리돔 떼의 군무가 다시 시작되고 그 위로 바위를 감싸안는 작은 파도의 속삭임도 높아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