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시계를 본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나는 지금 나의 시계를 본다.
나의 시계가 돌고 있다.
나의 시계가 언제부터 돌기 시작했는지 그건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단군 할아버지가 웅녀와 신방을 차리던 곳에도, 광활한 대륙을 치달리던 광개토대왕님이 말 등에도 나의 시계는 실려서 돌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좌에 앉던 그 해, 돛단배를 타고 풍랑 이는 제주바다를 건너던 나의 10대조 할아버지의 손목에도 나의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갈중이 입고 돚거름 밟던 할아버지의 갈중이 주머니 속에서 나의 시계는 흔들리고 있었고, 오사카 군함 제조창에서 톱질하고 대패질하던 아버지는 공습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막내아들의 시계를 숨죽이고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나의 시계는 48분에 한 바퀴씩 바늘이 돌고 있다.
내일은 또 몇 분에 한 바퀴씩 바늘이 돌까?
가끔 나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시계 바늘이 튀어나와 사정없이 찌를 것 같은 공포에
시계를 외면하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내가 외면해도
나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나의 귀속을 파고든다.
시계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나는 시계로부터 달아나려 뒷걸음친다. 그러나 나와 시계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고 더 점점 좁혀지고 있다. 뒤돌아 뛰려 해도 어느 새 시계는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난 그만 달아나기를 포기하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다.
시계도 다가오는 속도를 늦추고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
내 시계가 점점 커지고 있다. 커지는 시계는 이것저것들을 토해놓고 있다. 내 이름과 동화집과 늙어 주름진 내 사진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토해내어 나를 스쳐가게 하고 있다.
이젠 내 시계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시계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지금 나는 나의 시계를 본다.
지나간 나의 시간도, 지금의 나의 시간도, 다가올 나의 시간도 모두 한 곳 내 시계 속에 들어있다.
'꿈꾸는 아이의 글밭 > 시와 동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 지금 봄의 소리를 듣는다 (0) | 2010.03.26 |
---|---|
어점이에서 (0) | 2010.03.26 |
다랑쉬 오름에 올라 (0) | 2010.03.26 |
외로운 길 (0) | 2010.03.26 |
새벽 바다 유영 (0) | 2010.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