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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민

<창작동화> 햇살에 눈이 녹듯이 햇살에 눈이 녹듯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상담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하영아, 하영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 뒤를 따라 나오다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난 쿵광거리면서 복도를 뛰어갔다. 거칠게 복도를 뛰어가는 나의 발소리만이 내 뒤를 따라 달려왔다. 운동장 서쪽 편에 있는 수돗가까지 한숨에 뛰어온 나는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고 쏟아지는 물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차가운 물줄기가 머리카락을 적시고 얼굴로 흘러내리고 목을 타고 가슴으로 기어들어 가려는 듯 했다. 그제야 조금 시원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야?’ 하영이는 조금 전 상담실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선생님이 뭔데……. 아무 것도 모르면서.’ - 하영아, 어제 윤경이 엄마가 선생.. 더보기
<창작동화> 일어서는 들꽃 일어서는 들꽃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은 바다 위로 불어오면서 혼자만 설쳐대기에 심술이 났는지 바다를 들깨워 파도를 일으켜 놓고 눈보라까지 몰아왔다. 털보 아저씨가 언제부터 이 곳에 서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저씨는 바닷가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날엔 한 달음이면 갈 수 있을 것 같던 비양도가 오늘은 파도가 만들어 공중으로 흩뿌려대는 거품 방울들과 눈보라 때문에 멀리 있는 것 같이만 보였다. 비양도 쪽에서부터 일어나 육지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던 파도는 금릉리 해안도로 시멘트벽에 부딪혀서는 콰아─ 소리를 지르며 아스팔트 길바닥으로 허연 거품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러나 아저씨가 서 있는 쪽으로는 두두룩이 올라와 있는.. 더보기
<창작동화> 오름 아저씨 오름 아저씨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우리는 그 아저씨를 오름 아저씨라고 불렀다. 아저씨의 이름이 강달수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그냥 오름 아저씨라고 불렀었는데, 이름을 알고 난 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달수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우리 둥굴패(넷이서 늘 함께 뒹굴어 다니는 왈가닥들이고 가끔은 짓궂지만 모나지 않게 둥굴둥굴하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들은 그 후로도 달수 아저씨보다는 그냥 오름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사실 아저씨는 노총각이어서 아저씨라고 부르면 듣기 싫어했지만 우리 아빠하고도 친구이기 때문에 아저씨라고 불러도 이상할 건 없었다. 우리들이 달수 아저씨를 오름 아저씨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아저씨는 마을 환경단체에서 운영하는 환경학교에서 오름현장학습을 갈 때면 언.. 더보기
<창작동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아이들이 다 돌아간 교실에는 아직도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책상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남아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만치 교문 가까이 재잘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얼굴로 공부해서 그런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날이라면 일주일 후에 봄소풍을 간다는 발표가 있었던 날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봄소풍을 간다는 말을 들은 것말고도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침 시간.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섰을 때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모든 .. 더보기
<창작동화> 병아리 똘순이, 똘철이 병아리 똘순이, 똘철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 아빠는 집안에서 들리는 엄마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여보, 나 지금 왔어요.” “어서 오세요.” 엄마는 피아노 앞에 앉은 채 뒤를 돌아다보며 인사하고는 건반 위의 손가락의 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빠도 엄마의 손가락 춤을 멈추려 하지 않고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뒤에 살그머니 서서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내 집 뿐이리. ♪ 이중창의 화음이 건반 위를 달리는 손가락에 감겼다가 오색실이 되어 온 집안을 알록달록 수놓았습니다. ‘삐악 삐악 삐악 삐악…….’ 아빠는 문득 노래를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 더보기
<창작동화> 반디를 보았어 반디를 보았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제목 여름아, 보고 싶다 보낸날짜 2002년 08월 16일 목요일 보낸이 ♧♧♧@○○○.net 받는이 ☆☆☆@○○○.net 여름아. 너와 헤어진지도 벌써 닷새가 지났구나. 그 동안 날 보고 싶어 어쨌니? 까만 밤하늘 아래 앉아 반짝이는 별빛을 보고 있으면 너의 까만 얼굴에서 빛나는 두 별이 생각나더구나. 참 우습지? 너랑 나랑 닮은 데가 전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우린 그렇게 친하잖니. 넌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데 난 전봇대같이 키가 크고 빼빼 마른 데다가 하얗잖아. 넌 내가 키가 크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지. 그렇지만 난 오히려 너의 건강하고 까만 살결을 좋아해. 참, 닮은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우리에게도 한 가지 닮은 것이 있어. 그건 바로 우리.. 더보기
<창작동화> 달 뜨는 언덕 달 뜨는 언덕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경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문이 작은 소리로 삐꺽 울었다. 경이는 가슴이 작은 문소리처럼 콩콩 뛰어 얼른 뒤돌아보았다. 할머니는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없었다. 경이는 수야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경이의 까닥거리는 손가락을 따라서 수야가 살그머니 일어났다. “할머니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나와.” 속삭이듯 말하는 경이를 향해 수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야가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오고, 방문은 또 삐꺽 작은 소리를 냈다. 쿨룩쿨룩. 할머니의 신음 소리에 경이는 신을 신으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이는 호- 하고 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할머니가 깨시면 뭐라고 하실 지는 뻔했다. “늙은 에미도 버리고.. 더보기
<창작동화> 난 왜 엄마 아빠 얼굴을 그릴 수 없는 거야? 난 왜 엄마 아빠 얼굴을 그릴 수 없는 거야?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자, 오늘 미술 시간에는 엄마 아빠 얼굴과 꿈 그리기를 하겠어요. 도화지를 한 장씩 가져가도록 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우르르 선생님 앞으로 몰려 나와 도화지를 받아 갔다. “어제 선생님이 이야기한 대로 엄마 아빠 얼굴을 자세히 보고 왔지요?” “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재잘거리며 책상 위에 도화지를 펼쳤다. 벌써부터 슥슥 도화지에 연필을 대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제 학교 공부가 다 끝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 선생님께서는 오늘 미술 시간에 활동할 내용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 주셨다. “이제 며칠 있으면 가을 운동회가 돌아와요. 이번 가을 운동회에 우리 학교에서는 만국기를 다는 대신 도화지에 엄마 아빠 얼굴과 여러분.. 더보기
<창작동화> 나무야, 나의 친구 나무야 나무야, 나의 친구 나무야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습니다. 누가 하늘을 막대기로 톡 치기만 해도 금세 비가 주르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날씨였습니다. 경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검은 구름을 낮게 덮어서 경하의 머리 위 가까이 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총총걸음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하는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느릿느릿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얘, 곧 비가 올 것 같으니까 빨리 가거라.” 낯모르는 아주머니가 경하 옆을 스쳐가며 말했습니다. 경하는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걸음이 빨라지지 않았습니다. 경하의 가슴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잔뜩 흐려 있는 하늘.. 더보기
<창작동화> 호박꽃도 꽃이다. 호박꽃도 꽃이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늘 아침 버스에서 만난 그대, 날 보고 호박꽃이래. 주먹코에 딸기코에 못생긴 얼굴, 넌 뭐가 잘 났니, 흥. 호박꽃도 꽃이라고, 날 보고 놀리는데, 난 그만 참을 수 없어, 멸치도 생선이냐, 예예예예. 오늘 아침 버스에서 만난 그대, 날 보고 호박꽃이래. 주먹코에 딸기코에 못생긴 얼굴, 넌 뭐가 잘 났니, 흥!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입에서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봄 체육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체육복을 산뜻하게 입고 노래 부르며 학교로 가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한 뼘쯤 솟아 오른 해님 마냥 화안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걸어가는 뒤쪽에 한 참 떨어져 혼자 걸어가고 있는 순아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