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아저씨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우리는 그 아저씨를 오름 아저씨라고 불렀다. 아저씨의 이름이 강달수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그냥 오름 아저씨라고 불렀었는데, 이름을 알고 난 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달수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우리 둥굴패(넷이서 늘 함께 뒹굴어 다니는 왈가닥들이고 가끔은 짓궂지만 모나지 않게 둥굴둥굴하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들은 그 후로도 달수 아저씨보다는 그냥 오름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사실 아저씨는 노총각이어서 아저씨라고 부르면 듣기 싫어했지만 우리 아빠하고도 친구이기 때문에 아저씨라고 불러도 이상할 건 없었다.
우리들이 달수 아저씨를 오름 아저씨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아저씨는 마을 환경단체에서 운영하는 환경학교에서 오름현장학습을 갈 때면 언제나 앞장서서 데리고 다니면서 안내를 해주고 오름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는 오름 박사님이시다.
그보다 오름아저씨라고 불리게 된 더 큰 이유는 아저씨의 생김새가 오름을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오름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먼저 설명해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제주도 아이들은 오름이 뭔지 다 알지만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뭐 그런 도시들이 있는 육지에 사는 아이들은 오름이 뭔지 모를 테니까 말이다.
오름은 옛날 한라산이 연기를 펑펑 뿜으면서 화산활동을 할 때 제주도의 여기에서 불쑥, 저기에서 우당탕거리면서 작은 화산이 폭발하였거나, 움찔움찔 솟아오른 기생화산들을 말한다. 그런 것이 제주도에는 368개나 된다고 하는데, 섬 하나에 기생화산들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은 제주도가 으뜸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오름 아저씨에게서 들은 말이지만.
아저씨는 언제나 똥빛보다 더 누리끼리한 갈모자를 쓰고 다니곤 하였다. 오름 안내를 할 때는 둘레에 둥그런 챙이 달린 갈모자를 쓰고 다니고, 가게 일을 볼 때는 앞쪽에 넓은 챙이 달린 갈모자를 쓰고 있곤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아저씨가 왜 언제나 모자를 쓰고 다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언제나 새로운 소식을 물어와서 수다스럽게 알려주는 원희가 알아온 소식이었다.
“얘, 얘. 있지이. 그 아저씨 말야. 오호호호.”
원희는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웃음부터 터뜨렸다.
우리 둥굴패들은 궁금해서 원희의 입을 바라보았다.
“뭔데 그러니? 어느 아저씨 말이야?”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수정이가 원희를 재촉했다.
“왜 그 오름에 데리고 다니시는 아저씨 말이다. 그 아저씨 머리가 글세……”
“그 아저씨의 머리가 어떻다는 말이니?”
우리는 더욱 궁금해져서 원희의 말을 기다렸다.
“그 아저씨가 늘 모자를 쓰고 다니시잖니? 그런데 그 아저씨의 머리가……, 반대머리란다.”
“뭐어?”
“그렇다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응, 좀 전에 아저씨네 가게에 엄마 심부름을 갔었거든. 그런데 아저씨가 안 보이는 거야. 가게문은 열려 있고 말야.”
“그래서?”
“‘아저씨!’ 하고 부르니까 안쪽에서 아저씨가 대답하는 거야. ‘두부 사러 왔어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잠깐 기다려. 머리 감는 중이야.’ 그러시거든. 조금 기다리는데 아저씨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오셨어. 그런데 아저씨 머리가…….”
뜸을 들이는 원희를 보며 우리들은 원희에게 더 다가갔다.
“큭큭. 아저씨의 머리가 글세 꼭지가 홀랑 벗겨진, 큭큭. 반 대머리인 거야.”
“우하하하.”
“히히히히.”
우리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아저씨의 머리를 쳐다보았더니 아저씨도 창피하신 지 얼른 모자를 쓰더라니깐. 꼭 지난번에 현장학습 갔었던 오름 같더라고.”
나는 지난 주에 현장학습으로 갔었던 오름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 오름은 아래쪽에서부터 꼭대기 가까이까지 나무들이 빼곡이 울창한 숲을 이루다가 꼭대기에는 나무들이 없어서 오름 위에 올라가면 시원하게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저씨의 머리가 원희의 말처럼 생겼다면 정말 웃기는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되어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것처럼 깔깔 웃어 제쳤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가 쓰고 다니는 모자도 오름처럼 생겼네. 모자 꼭대기에 분화구가 움푹 패였고 말야.”
은진이의 말에 우리들은 또 배꼽을 잡았다.
그 날 저녁 동네에서 짓궂기로 소문난 우리들은 아저씨네 구멍가게로 몰려갔다.
마침 아저씨는 가게문을 닫고 외출할 준비를 하고 계셨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우리들은 살 물건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닌데 물건들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 아저씨의 머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우리들이 왜 쳐다보는지 알고는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흠흠 헛기침만 하셨다.
“아저씨, 모자가 참 멋있어요.”
“그 모자 저도 한 번 써보게 줘봐요.”
킥킥 웃으며 짓궂게 구는 우리들을 어쩔 수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아저씨는 우리들을 불렀다.
“얘들아, 아저씨 가게문을 닫고 외출해야 되거든. 살 것이 있으면 얼른 사서 가거라.”
“에이, 아저씨. 물건 사러 온 손님을 내쫓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아저씨, 모자 한 번 벗어봐요. 그 모자 한 번 써 보고 갈게요.”
우리들은 아저씨 주위로 몰려들며 모자를 벗기려는 듯 손을 뻗곤 하였다. 아저씨는 질겁을 하시며 펄쩍 뛰어 물러서더니 아예 우리들을 가게 밖으로 내몰아버리고 안으로 문을 잠가버렸다.
“자, 자, 아저씨 바빠서 이만 문을 닫아야겠다. 내일 와라. 내일!”
뒷문으로 나온 아저씨는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황급히 떠나버렸다.
짓궂은 우리들이지만 아저씨의 비밀을 다른 아이들에게는 얘기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게 어디 비밀이 되겠는가? 우리 넷은 서로 자기가 퍼뜨린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어느새 아저씨의 비밀이 환경학교 아이들에게 알려졌고, 그 때부터 달수 아저씨의 별명이 우리들에게는 오름 아저씨로 불려지게 되었다.
토요일이면 마을 환경단체에서 운영하는 환경학교 체험활동에도 오름 아저씨는 꼭 나와서 우리들을 지도해 주시곤 하였다.
우리 둥굴패 네 명은 모두 함께 환경학교에도 다니기 때문에 매 주마다 오름 아저씨를 만나곤 하였다. 한 번 아저씨네 가게에 가서 짓궂게 굴긴 했었지만 그 후부터는 더 이상 아저씨에게 짓궂게 굴지 않고 우리들은 계속 오름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아저씨가 가르쳐 주시는 환경 공부를 하곤 하였다.
오름 아저씨에게는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꼭 일요일이면 가게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교회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일요일이면 아침에 일찍 가게문을 열었다가 해가 떠오를 무렵이면 어김없이 문을 닫고 어디로 가곤 하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 때문에 툴툴거리곤 하였다. 가까운 동네에 가게라고는 아저씨네 가게뿐인데 토요일 오후엔 환경학교 아이들 가르치느라고 문을 닫지, 일요일에 또 어딜 외출한다고 문을 닫지, 그래서 그 날은 물건을 사려면 멀리 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 궁금증은 얼마 후에 풀렸다.
그 날은 일요일이어서 우리 둥굴패들은 부모님들과 함께 노꼬메오름 등반을 하기로 하였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이것저것 챙긴 우리들은 수정이 아빠가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노꼬메오름을 향해 출발하였다. 가끔 흰구름이 흘러가며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도 얼굴을 살살 간질이는 정도로 불어와서 오름 등반을 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다.
노꼬메오름 입구에 도착한 우리들은 차에서 내려 배낭을 챙겼다. 노꼬메오름은 목장 문을 열고 들어가서 10분쯤을 걸어가면 오름 아래에 도착하여 등반이 시작되는 곳이어서 차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가만, 저거 달수 차 아냐?”
목장 문을 열고 마악 들어서려던 우리들은 우리 아빠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낯익은 빨간 고물차 한 대가 다른 차들 사이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오름 아저씨 차였다.
“그렇군. 틀림없는 달수 차일세.”
수정이 아빠도 달수 아저씨 차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럼, 이 친구가 일요일에 가게를 닫고 오름 등반을 왔단 말이야?”
“아무튼 저게 달수 차가 맞다면 오름을 오르다보면 만날 수 있을 걸세. 자, 가보세.”
우리들은 오름 아저씨에 대한 궁금한 마음을 안고 목장 길을 걸어갔다.
노꼬메오름은 처음 등반로가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소나무, 삼나무, 참나무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이루면서 자라고 있었다. 키 큰 나무들 아래로는 허리 아래만큼 자라는 키 작은 조릿대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사각사각거리며 반가운 인사를 하는 듯하였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사이로 난 등반로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봉우리를 향해 올라갔다.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내 입에서는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크게 새어나왔다. 가도 가도 끝은 보이는 것 같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언듯 언듯 보이고 햇빛이 가끔씩 스며들어올 뿐이었다.
20여 분쯤 올라갔을까, 앞이 서서히 트이고 하늘이 훤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가리는 나무들이 없는 탁 트인 곳에 다다랐을 때 눈 아래로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 백록담 아래에서부터 이 노꼬메오름 아래까지 수림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크고 작은 오름들이 제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는 모습에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하였다.
아직도 오름 정상까지는 더 가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큰 나무는 없고 띠풀과 억새풀들만이 우거진 사이로 난 작은 길을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 둥굴패들은 이제 힘든 줄도 모르고 어른들을 앞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저 앞쪽에 아이를 업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재잘거리며 걸어가던 우리들은 아이를 업고 가는 사람을 앞질러 가려다가 모두들 놀란 얼굴을 하고 멈춰 섰다.
“어, 어, 아저씨…….”
“오름 아저씨!”
우리들만 놀란 게 아니었다. 아이를 업고 가던 사람도 우리들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그것은 바로 오름 아저씨였던 것이다. 더구나 오름 아저씨의 등에 업힌 사람은 아이가 아니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아가씨였다.
뒤따라오던 아빠 엄마들도 오름 아저씨를 보고 놀란 표정들이었다.
“달수, 자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빠를 보고 오름 아저씨는 그저 멋쩍은 얼굴로 서 있기만 하였다. 그러나 곧 정신이 든 듯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아저씨는 턱으로 오름 정상을 가리켰다.
“저기가 정상이야. 얼마 남지 않았네. 올라가서 얘기하자구.”
다시 아가씨를 추슬러 업고 성큼성큼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오름 아저씨의 뒤를 우리들은 말없이 따라 올라갔다.
오름 정상에 다 올라가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아가씨를 내려 앉힌 아저씨는 아가씨에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정희씨, 여기가 노꼬메오름 정상입니다.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시원한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를 정희씨 가슴에 마음껏 담으세요.”
“고-, 고마슴니- 다, 다알수씨.”
아가씨는 일그러진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리며 힘들게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일그러진 얼굴 속에 작은 기쁨을 넘어선 환희의 밝은 빛이 비치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오름 아저씨는 우리들을 불러모았다.
“아름다운 이 오름 정상에서 서로를 소개하게 되어 기쁘네. 정희씨, 제 친구들입니다. 이보게, 친구들 내 신부가 될 사람이네.”
달수 아저씨의 소개에 우리들은 모두들 입이 따악 벌어지고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 안녕 하아- 세요?”
오히려 달수 아저씨와 소개를 받은 정희라는 아가씨만이 오름에 내리는 햇빛보다 더 환한 표정을 하고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
“그래, 놀랐겠지. 뜻밖에 이런 곳에서 이렇게 소개를 받게 되니 말이야. 얘들아, 너희들도 놀랐니?”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아저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래, 자네들이 보는 대로 정희씨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분이야. 그렇지만 정희씨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고운 마음을 가진 분이야. 내겐 정희씨가 천사라네. 그래서 난 천사의 신랑이 되기로 결심하고 청혼했어.”
역시 아빠 엄마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슬그머니 돌리던 내 눈에 은진이 아빠만이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는 것이 살짝 보였다.
다음부터는 뇌성마비 천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힘들게 힘들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아무도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오름 아저씨는 3년 전부터 일요일이면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천사의 집에 찾아와 장애인의 벗이 되어 주고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정희 천사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가끔 성한 몸을 가졌으면 한라산 꼭대기에도 가보고, 오름에도 올라가 보고 싶다는 정희 천사의 말을 들어오다가 오늘 이곳 노꼬메 오름으로 정희 천사를 업고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기 직전에 오름 아저씨는 정희 천사에게 결혼을 해 달라는 청혼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정희 천사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 오름 아저씨와 아빠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오름을 내려올 때는 모두의 얼굴이 밝은 표정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정희 천사의 밝은 표정에 전염이 된 것 같았다.
한 달 뒤 마을회관에서는 오름 아저씨와 정희 천사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 한 달 동안에 오름 아저씨의 집에서는 온갖 큰 소리들이 들렸지만, 오름 아저씨의 꿋꿋한 의지 앞에 가족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결혼식장에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과 우리 둥굴패들과 환경학교 아이들이 모두 참석하여 마을회관 안을 꽉 메웠다.
결혼식 날에는 오름 아저씨의 머리에 모자가 씌워져 있지 않았다. 그 때에야 우리들은 오름 아저씨의 머리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오름 아저씨의 머리는 원희가 표현했던 것처럼 꼭대기에만 나무가 없는 오름을 닮아 있었다.
그러나 오름 아저씨는 그 날은 반대머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멋진 신랑 옷을 입고 당당하게 입장을 하였다.
이어진 신부 입장은 오름에서 보았던 정희 천사가 신부가 되어 휠체어에 앉고, 정희 천사의 아버지가 휠체어를 밀며 들어왔다. 축하해 주러 온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힘찬 박수를 보내 주었다.
오름 아저씨의 얼굴과 정희 천사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 환히 빛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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