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아이들이 다 돌아간 교실에는 아직도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책상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남아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만치 교문 가까이 재잘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얼굴로 공부해서 그런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날이라면 일주일 후에 봄소풍을 간다는 발표가 있었던 날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봄소풍을 간다는 말을 들은 것말고도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침 시간.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섰을 때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모든 눈들이 선생님을 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 우리 미리내 반 여러분”
선생님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선생님의 머리에 머물렀습니다. 선생님의 손이 아이들의 눈이 향하고 있는 머리를 쓰윽 쓸어 올렸습니다.
“선생님, 머리 깎으셨네요.”
무슨 일에나 항상 궁금해서 질문이 많은 경우의 말에 선생님은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아니, 머리 안 깎았어.”
경우의 작은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토요일에 길었던 머리가 지금은 짧아졌잖아요.”
“아냐. 머리를 깎지는 않고 머리카락만 깎았지. 머리를 깎아버리면 어떻게 사니?”
“에이, 선생님!”
“하하하.”
웃지도 않고 심각한 척하며 하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한바탕 웃음바다를 만들었습니다.
그제야 선생님도 웃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번져 나간 웃음이 아이들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오늘 좋은 일 있으세요?”
선생님의 표정에 계속 번지는 웃음을 보고 선영이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래? 선생님에게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니?”
“예.”
“왜 그렇게 생각하니?”
“선생님께서 계속 웃고 계시잖아요. 혹시 오늘이 선생님과 사모님의 결혼 기념일이에요?”
“글세.”
애매하게 얼버무려버리는 선생님의 대답에 아이들이 너도나도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오늘 선생님 생신이세요?”
“복권 당첨되셨어요?”
“아냐. 무슨 상을 받으셨나봐.”
제각각 떠들어대며 질문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선생님은 그저 웃기만 하였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다시 조용해지고 모두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 궁금해 못 견디겠어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역시 입이 빠른 경우가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손에 들고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아이들의 눈이 모두 선생님의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 향하였습니다. 그것은 셀로판 종이로 싸서 양쪽을 예쁜 끈으로 묶은 동그란 물건이었습니다.
“선생님, 그게 뭐예요?”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이란다.”
“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이요?”
“그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이 달걀은 훈이가 오늘 아침 내게 준거란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훈이를 보았습니다. 훈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빨개진 그 얼굴에 환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훈이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지만 선생님은 그저 웃기만 하고, 훈이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이들은 하루 종일 모두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훈이는 계속 싱글벙글하며 제일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홀로 교실에 남은 선생님은 훈이가 준 달걀을 주머니에서 꺼내었습니다.
“아직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이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이지.”
선생님은 중얼거리며 끈을 풀고 포장지에 싸여 있는 달걀을 꺼내었습니다. 달걀에는 삐뚤삐뚤한 훈이의 글씨로 - 축․부활 - 이라고 씌여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막 학교에 도착하여 교무실로 들어가려는데 훈이가 교무실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거…….”
훈이는 불쑥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습니다.
“이게 뭐니?”
“달걀이에요.”
선생님은 훈이가 주는 달걀을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훈이를 보았습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서 부활절을 지냈거든요. 달걀은 부활을 뜻하는 거라면서 글씨를 쓰고 포장을 했어요. 이건 선생님께 드리려고 제일 큰 걸로 골라서 쌌어요.”
훈이는 선생님의 얼굴에 나타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고는 얼른 교실로 뛰어가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뛰어가는 훈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작년에 선생님이 이 아이들을 담임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띤 아이가 훈이였습니다.
훈이는 공부를 잘해서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공부 시간에 제일 떠들고 산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엔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다녀서 선생님들에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툭하면 친구들과 싸우고 여학생들을 울리곤 하였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작은 아이. 머리는 늘 헝클어져 있고 옷은 꾀죄죄한 아이.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와 할머니하고만 사는 아이. 훈이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훈이를 볼 때마다 골치가 아파 오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파출소에 훈이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파출소로 뛰어갔습니다. 파출소 구석에 훈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파출소 순경의 말에 의하면 훈이가 동네 가게에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들어가서 금고 문을 열다가 들켜서 잡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나서 훈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야단도 치고 타이르기도 하였지만 그 후에도 훈이 때문에 파출소에 다시 갔다오는 일도 있었고, ‘훈이가 어쩌고, 훈이가 저쩌고.’하며 훈이가 저지른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듣곤 하였습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사람이 안 돼.’
굳게 마음먹은 선생님은 그 후부터 훈이가 조금만 잘 한 것이 있어도 크게 칭찬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훈이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 후로도 훈이로 인해 작은 말썽이 일어나곤 하였지만 큰 말썽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제 조금씩 사람이 되 가는 거야.’
훈이를 보아도 이젠 골치가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난 겨울 방학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학교 기사 아저씨가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선생님, 그 반에 훈이라는 아이 있지요?”
선생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예. 훈이가 또 무슨…….”
“큰일날 뻔했습니다. 어제 저녁 퇴근하기 전에 학교를 순찰하는데 급식실 가스를 저장해 둔 창고에서 창문 틈으로 연기가 새어나오지 않겠어요. 문은 분명히 잠겨 있는데 말입니다.”
철렁 내려앉았던 선생님의 가슴이 쿵하고 큰 소리로 울렸습니다.
“그래서 문을 따고 들어가 보았지요. 그런데 훈이하고 동네 꼬마들이 창고 바닥에 종이와 작은 나뭇가지를 놓고 불을 피우고 있지 않겠어요. 가까이에 가스통이 있는데 말입니다. 황급히 불을 끄고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 뒤 다그쳤지요. 훈이가 하는 말이 동네 꼬마들과 병정 놀이를 하다가 창고 유리창이 깨진 걸 발견하고 거기로 열고 들어가서 자기들의 본부로 삼았다나요. 그리고 날씨가 춥길래 불을 피워 몸을 녹이려 했다구요. 제가 발견해서 불을 껐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요”
선생님은 기사 아저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은 무척 화가 나서 훈이를 불렀습니다.
“훈이, 이리 나와라.”
훈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쭈뼛거리며 나왔습니다.
“어제 저녁 가스 저장 창고에서 있었던 일을 기사 아저씨께 들었다.”
훈이의 고개가 더 숙여졌습니다. 세수도 하지 않은 듯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 훈이를 내려다보던 선생님은 더 이상 큰소리로 야단을 치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선생님의 눈에서 훈이의 발끝으로 눈물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선생님의 눈물을 본 훈이가 선생님을 올려다보다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훈이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선생님과 훈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후로 훈이는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선생님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겨울방학 내내 훈이가 말썽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새 학년이 되어서 선생님은 그대로 훈이네 반을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훈이는 늘 선생님을 따르고 조금씩 공부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을 가지고 와서 선생님에게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달걀 껍질을 벗기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소금을 찍지 않고 그대로 먹었지만 달걀은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훈이가 달걀을 먹고 있는 선생님을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훈이야. 고맙다. 네가 준 이 달걀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달걀 중에 제일 맛이 있구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을 넌 내게 준 것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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