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병아리 똘순이, 똘철이

 <창작 동화>

병아리 똘순이, 똘철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

아빠는 집안에서 들리는 엄마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여보, 나 지금 왔어요.”

“어서 오세요.”

엄마는 피아노 앞에 앉은 채 뒤를 돌아다보며 인사하고는 건반 위의 손가락의 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빠도 엄마의 손가락 춤을 멈추려 하지 않고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뒤에 살그머니 서서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내 집 뿐이리. ♪

이중창의 화음이 건반 위를 달리는 손가락에 감겼다가 오색실이 되어 온 집안을 알록달록 수놓았습니다.

‘삐악 삐악 삐악 삐악…….’

아빠는 문득 노래를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호호호. 방에 들어가 보세요. 아람이가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왔다나봐요. 지금 병아리 구경하느라고 정신들이 없어요.”

“옳아, 그래서 이 녀석들이 아빠가 퇴근하고 왔는데도 나오지 않는군.”

아빠는 가방을 엄마에게 건네주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람이와 보람이는 라면 상자 속을 들여다보며 정신없이 웃고 떠드느라 아빠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녀석들, 아빠가 돌아왔는데도 모르고 뭘하고 있는 거냐?”

그제야 아람이와 보람이가 아빠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빠, 다녀오셔쩌요?”

아람이는 인사하고는 눈이 다시 병아리를 향했습니다.

“아빠, 일루 와 보세요. 형아가 병아리를 사왔저요.”

보람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병아리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

라면 상자 안에는 노오란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 두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왔다갔다하며 삐악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빠, 귀엽지요?”

아람이는 아빠는 보지도 않고 병아리만 내려다보면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참 귀엽구나.”

정말 병아리들은 너무나 귀여웠습니다. 보드라운 털이 보송보송한 게 하나도 티가 없고, 또록또록 굴리는 동그란 눈 속에 작은 하늘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아람이와 보람이의 뺨을 살며시 잡고 번갈아 가며 눈동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람이와 보람이의 눈동자 속에도 작은 하늘이 하나씩 들어 있었습니다.

아람이와 보람이는 아빠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것 같았습니다.

“아빠, 왜 그래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아니야, 너희들이 너무 귀여워서 그래.”

“정말 우리들이 귀여워요? 저는 병아리가 귀여운데요.”

“저도 병아리가 귀여워요, 아빠.”

“병아리도 귀엽지만 아빠는 너희들이 더 귀엽고 사랑스럽단다.”

아빠는 아람이, 보람이의 뺨에 한 번 씩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딩동-  딩동-.

아빠가 누른 초인종 소리가 집안으로 날아갔습니다.

“누구세요?”

아람이의 목소리가 문 밖으로 날아 넘어왔습니다.

“아빠다.”

딸깍.

아빠는 아람이가 따 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아람이, 보람이가 아빠를 반겼습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빠, 다녀오셔쩌요?”

“응, 그래. 아람이는 학교 잘 다녀왔니?”

“네, 아빠.”

“보람이는 잘 놀았니?”

“네, 아빠. 병아리하고 같이 놀았쩌요.”

“그래, 우리 보람이가 오늘은 참 재미있게 놀았겠구나.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갔니?”

아빠는 보람이를 달랑 들어 팔에 안고 방으로 들어가며 물었습니다.

“병아리 모이 사러 갔어요.”

아람이가 아빠를 따라 들어오며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형아가 병아리 이름을 지었쩌요.”

보람이가 아빠의 팔에서 빠져나와 병아리들이 들어있는 라면 상자 쪽으로 아빠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이 병아리가 똘순이구요, 이 병아리가 똘철이예요.”

보람이가 가리키는 것은 두 마리의 병아리 중 온 몸이 노랗고 분홍빛 부리를 가진 병아리가 똘순이이고, 부리 끝이 까만 병아리가 똘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이름이구나. 그런데 아람아, 똘철이는 남자 이름인데 왜 그렇게 지었니? 아직 이 병아리들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모르잖아.”

“부리 끝이 까만 이 병아리가 자꾸 밖으로만 나오려고 하고 삐악거리는 소리가 큰 걸 보니까 아마 수컷 같아요. 사람들도 남자들이 더 활발하잖아요. 그래서 똘철이라고 지었어요.”

“그래 ? 듣고 보니 아람이 말이 그럴 듯하네.”

병아리들은 라면 상자 안을 왔다갔다하며 부리를 쳐들고 삐악거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아람이가 병아리를 사올 때 함께 가져온 모이가 다 떨어지고 없었습니다.

“아람아, 보람아, 병아리 모이 사왔다.”

엄마가 한 손에 시장 바구니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병아리 모이가 들어 있는 종이 봉지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야, 엄마 왔다.”

 아람이 보람이가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똘순이, 똘철이가 배고파서 자꾸 울어요. 얼른 모이 주세요.”

아람이가 엄마의 손에서 종이 봉지를 받아들고는 병아리에게로 가서 모이를 집어 주었습니다. 보람이도 작은 손으로 모이를 집어 주었습니다.

“당신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네요.”

“응, 오늘이 토요일이잖아.”

“정말 그렇군요. 전 집안에만 있으니 요일 가는 것도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앞으로 병아리 모이를 어떻게 감당하죠?”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시장 바구니 속의 물건들을 꺼내어 정리하며 병아리 모이 걱정을 했습니다.

“전에는 싼 게 좁쌀이었는데 이제는 좁쌀도 너무 비싸요. 저것들이 비록 두 마리뿐이지만 커갈수록 더 많이 먹어댈 텐데요.”

“당신은 먹이 때문에 걱정이군. 난 키울 장소가 없어서 그게 걱정인데 말이오.”

“듣고 보니 그것도 걱정이네요. 저것들이 똥을 자꾸만 싸서 냄새가 조금 나긴 해요. 상자 바닥의 종이를 갈아주기는 했지만요.”

엄마와 아빠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은성이 주어 버리면 안될까?”

“애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주려고 하겠어요?”

“어떡하지?”

“일단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봅시다.”

엄마, 아빠는 아람이, 보람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병아리 똘순이, 똘철이가 부지런히 모이를 쪼아먹고 있었고, 아람이와 보람이의 눈길은 병아리들의 부리 끝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똘순아, 많이 먹어라.”

“똘철아, 많이 먹어라.”

아빠는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푸른 하늘을 닮고, 작은 하늘을 하나씩 담고 있는 천진스런 눈동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조심스럽게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습니다.

“아람아, 병아리들이 그렇게도 좋으니?”

“네, 너무너무 좋아요.”

“보람이는 병아리가 얼마나 좋으니?”

“이마안큼 좋아요.”

보람이는 작은 팔을 한껏 벌려 길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아빠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병아리를 키우려니까 걱정거리들이 있단다.”

아람이, 보람이는 아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빠는 말하기가 곤란한 듯 엄마를 쳐다보았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향해 살짝 눈을 흘기고는 말했습니다.

“앞으로 병아리들이 자꾸 클텐데, 모이가 없어서 걱정이란다. 커갈수록 점점 많이 먹게 되거든.”

“자꾸 자꾸 사오면 되잖아요.”

“모이를 사올 돈이 없잖니. 모이 값이 너무 비싸거든. 지금도 비싼 좁쌀을 먹고 있는데 앞으로 커갈수록 더 많이 다른 먹이도 먹어야 되는데 먹이 값이 너무 많이 들게 될 거야.”

“아빠가 돈 많이 벌어 오잖아요.”

보람이도 이야기에 끼여들었습니다.

“아빠가 벌어오는 돈은 쌀을 사다가 우리 식구 밥도 해 먹어야 되고, 형하고 보람이 옷도 사고, 신발도 사야 되고, 보람이는 아이스크림도 사먹어야 하잖니 ? 보람이는 아이스크림도 안 사먹고 병아리 모이만 사버리면 되겠니?”

“…….”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하는 보람이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도 있단다.”

이번에는 아빠가 말했습니다.

“뭔데요?”

아람이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아빠를 쳐다보았습니다.

“병아리들이 자꾸 똥을 싸곤 하기 때문에 냄새가 나서 키울 수가 없단다.”

“아빠,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자주 상자 바닥에 종이를 갈아줄께요.”

아람이는 자신 있다는 듯이 말했지만 아빠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지금은 병아리들이 작으니까 그렇게 해도 되겠지만, 점점 커져서 어미 닭이 되어 가면 상자 안에만 있으려고 하지는 않잖아. 저 봐라. 지금도 똘철이는 밖으로만 나오려고 하잖니. 닭들은 화장실을 정해 놓고 똥을 싸지는 않거든. 식탁 위에도 올라가서 똥을 싸 놓고, 아람이 침대 위에도 싸 놓고, 엄마 피아노, 아빠 책상 위에도 싸 놓고 하게 되면 아람이가 다 치울 수 있겠니?”

아람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람이와 보람이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습니다.

“이 병아리들을 은성이네에게 주어버리면 어떻겠니 ? 은성이네는 조그만 마당이 있으니까 거기서 키울 수 있을 거야.”

“안 돼요.”

아람이의 표정이 금방 달라지며 울상이 되어갔습니다.

“은성이가 지난번에 병아리 사다 놓고 장난하다가 다 죽여버렸잖아요. 똘순이, 똘철이가 죽으면 안돼요. 은성이한테 주지 마세요. 아앙!”

보람이가 드디어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아빠, 제발 은성이한테 주지 마세요. 지난번처럼 병아리를 꼭 잡아버리고, 벽에다 던져버리곤 할 거예요.”

아람이는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눈에 병아리 똥 같은 눈물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은성이가 너무 어려서 그랬고, 지금은 조금 컸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도 안돼요. 앙앙.”

“절대로 안돼요. 흑흑.”

울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너무나 강한 줄이 매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빠는 도저히 아람이와 보람이의 말의 줄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다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난처해진 아빠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이었지만, 엄마로서도 도움의 길을 열어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소리 없이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던 아람이가 고개를 반짝 들고 손등으로 눈물을 쓰윽 닦고 말했습니다.

“똘순이, 똘철이를 할머니네 집에서 키워요.”

“참 그렇구나. 내가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빠의 표정도 아람이의 표정도 밝아졌습니다.

“그래요. 할머니 댁에는 마당도 있고, 텃밭에서 채소도 가꾸니까 벌레도 잡아먹고, 솎아낸 채소나 밭걷이 후의 채소 찌꺼기도 뜯어먹으면서 밖에서 마음대로 키울 수 있을 거야.”

엄마도 아람이의 생각이 신통한지 아람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럼 똘순이, 똘철이를 보고 싶으면 우리가 할머니 댁에 가면 되겠네요.”

앙앙 울던 보람이도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있었습니다.

“그래, 보람이 말이 맞구나. 할머니 댁에 자주 가면 할머니께서도 기뻐하실 거야.”

엄마는 보람이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뺨에 흐른 눈물도 닦아주었습니다.

아람이와 보람이는 다시 쭈그리고 앉아 병아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언제 울었는지 모르게 밝은 얼굴들이었습니다.

“똘순아, 너를 우리 할머니 댁에 데려다 줄께. 거기서 잘 커야 한다.”

“똘철아, 너도 우리 할머니 댁에 데려다 주고 너를 보러 자주 갈께. 응.”

아람이와 보람이는 병아리들이 사람의 말을 듣는지 모르는지 상관 않고 그냥 친구를 대하듯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삐악 삐악.

삐악 삐악.

그래도 병아리들은 아람이, 보람이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병아리들의 눈과 아람이, 보람이의 눈 속에는 똑같이 작고 푸른 하늘이 담겨 있으니까요.

“여보, 참 잘 됐지요?”

“그래,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는군.”

엄마는 어느새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습니다. 엄마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도 엄마의 뒤로 다가가서 엄마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내 집 뿐이리. ♪

이중창의 화음이 일곱 음계와 어우러져 집안에 무지개를 걸어 놓았습니다.

그 무지개는 다시 아빠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서 ‘병아리 똘순이, 똘철이’라는 제목으로 동화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