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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호박꽃도 꽃이다.

 <창작동화>

호박꽃도 꽃이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늘 아침 버스에서 만난 그대, 날 보고 호박꽃이래.
    주먹코에 딸기코에 못생긴 얼굴, 넌 뭐가 잘 났니, 흥.
    호박꽃도 꽃이라고, 날 보고 놀리는데,
    난 그만 참을 수 없어, 멸치도 생선이냐, 예예예예.
    오늘 아침 버스에서 만난 그대, 날 보고 호박꽃이래.
    주먹코에 딸기코에 못생긴 얼굴, 넌 뭐가 잘 났니, 흥!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입에서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봄 체육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체육복을 산뜻하게 입고 노래 부르며 학교로 가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한 뼘쯤 솟아 오른 해님 마냥 화안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걸어가는 뒤쪽에 한 참 떨어져 혼자 걸어가고 있는 순아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순아야, 이 기집애.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니?”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순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뒤에는 웃는 듯 화난 듯 이상한 얼굴을 하고 지희가 서 있었습니다.

“으응, 지희구나. 날 불렀니?”

“그래, 같이 가려고 저어기서부터 부르며 뛰어 와도 못 들은 척 하더라.”

“아냐, 못 들은 게 아니고 정말 네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

“알았어. 다음엔 네 귀에 스피커를 갖다 대고 부를께.…… 그런데 순아, 너 무슨 걱정이 있구나. 즐거운 체육회 날인데 얼굴이 왜 그러니?”

지희는 순아의 얼굴에 덮여 있는 먹구름을 보았습니다.

“아니야, 아무 것도 아냐.”

“너 또 저 노래 때문에 속상해 하고 있구나. 아무튼 못 말리는 애들이야. 순아만 보면 꼭 저 노래를 부른단 말이야. 오늘은 혼을 내 주고 말 테야.”

지희는 씩씩거리며 사내애들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가려고 했습니다. 순아는 황급히 지희를 막아섰습니다.

“그런 게 아냐, 지희야.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그래.”

씩씩거리던 지희의 얼굴에 금세 걱정스런 빛이 어렸습니다.

“많이 편찮으시니?”

“응. 밤새도록 끙끙 앓으셨는데도 또 꽃을 팔러 나가셨어.”

“쉬시도록 말씀드리잖구.”

“말씀드렸는데도 괜찮다고 하시며 나가시는 거야.”

순아의 눈에서 어느새 굵은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힘을 내, 순아야.”

순아의 어깨를 감싸고 두드려 주는 지희의 눈에도 작은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앞에 가던 남자아이들의 입에서 또 노래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오늘 아침 버스에서 만난 그대

날 보고 호박꽃이래 …….~

아이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는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때부턴가 운동회만 되면 응원가처럼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순아의 별명이 호박꽃이기 때문에 봄체육회가 열리는 오늘은 순아를 보면서 더 놀리는 듯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들 자꾸 그 노래 부를래? 나한테 혼나 볼 테야?”

지희가 또 씩씩거리며 노래부르는 아이들을 향해서 뛰어갔습니다.

“야, 왈가닥 지희다! 달아나자.”

남자아이들은 헤헤거리며 저만치 달아나 버렸습니다.

“지희야, 그만 둬. 난 아무렇지도 않아.”

“으이구, 넌 화도 안 나니? 그래 순아, 넌 천사다, 천사.”

지희의 이야기에 순아는 큰 눈으로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둘이는 손을 잡고 봄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운동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눈이 큰 순아는 할머니하고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순아가 세 살 때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순아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보면서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부모 없이 자라는 순아를 키우기 위해 늙으신 몸인데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란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순아네는 늘 살림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셔서 힘든 일을 못하시게 된 할머니께서는 지금은 시장 입구에서 꽃을 놓고 팔았습니다. 순아는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께로 가서 할머니와 함께 꽃을 팔곤 하였습니다. 이젠 제법 순아의 꽃 파는 솜씨가 늘어서 할머니 혼자 꽃을 파실 때보다 더 많이 팔리곤 하였습니다.

“순아, 숙제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을 텐데 그만 들어가거라.”

“아니에요, 괜찮아요. 집에 오자마자 숙제까지 벌써 마치고 온 걸요.”

할머니는 그런 순이가 안쓰러우신지 집으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였지만, 순아는 시장이 파할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꽃을 팔았습니다.

순아는 꽃을 다 팔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갈 때면 비록 부모님은 계시지 않지만 사랑해 주시는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자기는 참 행복한 아이라고 느끼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순아의 별명을 호박꽃이라고 불렀습니다. 꽃을 판다고 붙인 별명이긴 하지만, 장미, 백합, 채송화, 맨드라미, 많은 꽃 이름이 있는데도 하필 호박꽃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박씨 성을 가진 순아의 이름 뒤에 성을 붙여 부르면 ‘순아박’이 되는데,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순호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다가, 순아가 할머니를 도와 꽃을 팔게 되면서부터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호박꽃’이라고 불리게 되어 아예 별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순아 할머니의 얼굴에는 심한 흉터가 있는데, 꽃을 팔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이 예쁜 꽃들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호박꽃과 같다고 하여, 할머니의 별명이 호박꽃이 되었다가 순아의 별명이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에 흉터가 생기게 된 것은 순아가 아직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산동네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순아네 이웃집에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피워 놓은 난로가 넘어져서 불이 났습니다. 불길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웃 여러 집을 태우며 삽시간에 번졌습니다.

늦게까지 일하다 돌아오던 할머니는 동네에 불난리가 난 것을 보고 황급히 뛰어 왔습니다. 할머니는 불타고 있을 집보다는 혼자 남아 있을 순아가 더 걱정이 되었기 산동네 힘든 길을 단숨에 뛰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도착했을 때 불은 이미 순아네 집으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아우성과 웅성거림 속에서도 방안에서 우는 순아의 울음소리가 할머니의 귀에는 크게 들리고 있었습니다.

“순아! 순아!”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순아를 부르며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순아!”

“할머니!”

불길을 피해 방구석에 웅크려서 겁에 질려 울던 순아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더 크게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이불에 물을 적셔 순아를 감아 안고 불길 속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마악 방문을 나서려고 할 때 불이 붙은 나무 하나가 할머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아악!”

얼굴을 불이 붙은 나무로 얻어맞은 할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문 밖으로 나둥그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팔에는 순아를 싸 감은 이불이 꼭 안겨 있었습니다.

순아는 할머니 덕분에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할머니의 얼굴에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흉터가 생겨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순아는 할머니의 흉터가 전혀 징그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할머니 얼굴을 보고 호박꽃이라고 부를 때마다 속이 상해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어 보기도 했었지만, 자주 듣다 보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할머니 얼굴의 흉터를 볼 때마다 할머니가 고마웠고, 할머니를 도와서 꽃을 파는 일이 즐겁기만 하였습니다.

이젠 아이들이, “호박꽃, 호박꽃.” 하며 놀릴 때면, “얘, 넌 호박도 안 먹니? 호박꽃도 꽃이다.” 하면서 웃고 넘어가곤 하였습니다.


어린이날을 기념하고 봄 체육대회를 시작하는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봄 체육대회날입니다. 체육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착한 어린이에 대한 표창을 하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사회를 보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누구의 이름이 불릴까 궁금해하며 조용히 선생님의 입을 쳐다보았습니다.

“어린이 날 착한 어린이 표창을 받을 어린이. ……. 박순아!”

순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를 부르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친구들이 나가라고 떠미는 바람에 구령대 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얼떨떨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순아에게 표창장을 주고 나서 모여 있는 어린이들 앞에 순아를 돌려세운 다음, 할머니를 도와서 꽃을 파는 순아의 효성과 착한 마음씨를 칭찬하는 이야기와, 할머니 얼굴의 흉터가 생긴 이야기 등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지만, 순아의 귀에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체육 대회가 시작되었고, 어느덧 대회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청백군 이어 달리기 경기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순아는 청군 대표로 뽑혀 나갔습니다.

탕!

신호 총 소리와 함께 첫째 번으로 달리는 선수들이 힘차게 뛰어 나갔습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힘찬 응원이 쏟아졌습니다.

첫째 번 선수와 둘째 번 선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있는 힘껏 달렸습니다. 그런데 셋째 번 선수가 달릴 때부터 청군 선수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하더니 넷째 번 선수에게 배턴을 넘겨 줄 무렵에는 열 걸음쯤 뒤쳐져 버렸습니다.

넷째 번 청군 선수는 순아였습니다. 순아는 배턴을 받자 마자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렸습니다. 앞서고 있는 백군 선수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달리고 있는 순아의 귀에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호박꽃 힘내! 호박꽃 화이팅!”

그러자 뒤를 이어서 청군 어린이들 모두의 입이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호박꽃, 호박꽃! 힘내라, 호박꽃!”

“이긴다, 청군! 호박꽃 화이팅!”

순아는 아이들의 응원을 들으며 주먹을 꼭 쥐고 발에 힘을 더 주었습니다.

‘그래, 호박꽃도 꽃이다. 장미보다, 백합보다 호박꽃이 더 예쁘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보여 줄게’

달리는 순아의 머리 속에 아픈 몸을 끌고 시장 입구에서 꽃을 팔고 계실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예쁜 꽃들 속에서 흉터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이 예쁜 호박꽃으로 활짝 피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앞에는 백군 선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결승 테이프가 다가와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