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태풍과 어머니

 <창작동화>

태풍과 어머니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언제 태풍이 불었는가 싶게 아침엔 고요가 찾아왔다.

소년은 밤 새 무서움에 떨며 잠을 자지 못한 눈을 뜨고 조심조심 문을 열었다. 밤새도록 덜컹거리던 대청문이 삐꺽 소리를 낼 때, 소년은 가슴을 떨었다.

마당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마당에 가득 깔아 놓았던 보릿짚은 갈가리 찢어 내버린 헝겊처럼 한 구석에 날려가 쌓여 있었고, 더러는 돌담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큰갯물 동산의 소나무 잎들이 날려와 빗물에 잔뜩 젖은 대청문과 툇마루에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소년은 고무신을 찾았다. 댓돌 위에 벗어 두었던 고무신은 한 짝은 빗물을 담은 채 댓돌 옆에 떨어져 있었고, 다른 한 짝은 보릿짚 더미 속에 처박혀 있었다.

소년은 고무신에 고여 있는 빗물을 쏟아 버리고 댓돌에 탁탁 털어 신고 마당으로 나섰다.

아직 하늘은 다 개이지 않고 먹구름이 북쪽으로 흘러가는 사이사이로 언듯 언듯 푸르름이 비칠 뿐이었다.

아침의 적막 사이로 파도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제 밤엔 너무 무서웠다. 아버지는 외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고운내 외가에 가시고, 어머니는 육지로 물질 가신 채 아직 돌아오시지 않아 혼자 집에 남아 밤을 새워야 했다.

지난 봄에 여수로 물질 가면서 외할아버지 제사 때는 꼭 오마 하며 가신 어머니를 소년은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오시는 날이라고 기뻐했던 어제 낮께부터 바람이 세어지고 파도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뉴스를 들으시고 제주 목포간 여객선이 오후 늦게 제주항에 도착했다고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외가로 가셨다.

아버지께서 가신 후 태풍이 갑자기 심해졌다. 시속 35km의 속도로 중심부가 서귀포를 지나가는 태풍이라고 했다.

소년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문을 꼭꼭 걸어 잠갔지만 비바람이 창문을 때릴 때마다 누가 덜컹거리는 문을 열고 휙 들어올 것만 같았다.

부엌 문 앞에 놓아두었던 알루미늄 세숫대야가 바람에 날려 이리 저리 굴러다니며 내는 소리는 소년을 더욱 잠 못 들게 했지만, 캄캄한 밖에 나가서 세숫대야를 부엌 안으로 들여놓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창 밖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야 소년은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소년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께서 외가에 가시며 준비해 둔 밥을 차려서 먹으려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전에도 혼자 식사할 때가 많았지만, 오늘은 왠지 아침을 먹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①올레로 나왔다. 올레 돌담이 더러 무너져 있었다.

“준아, 혼자 무서웠겠구나. 원 이렇게 큰 태풍은 나도 처음 보는구나. 너희 집은 피해가 없니?”

뒷집 욱이 어머니가 담 너머로 내다보고 있었다.

“예, 이 담이 무너진 것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 참 다행이구나. 우리 집은 담이 무너지는 바람에 장독 두 개가 깨져 버렸지 뭐냐. 그나저나 이 센 바람에 그만하길 다행이지, 저 쪽 동네 철이네 집은 지붕이 다 날아가 버렸다고 하더구나. 그 집 게을러서 지붕을 잘 안 매놓더니 기어코 이 바람에 일을 당하고 말았어. 아참, 어머니는 오셨니?”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태풍에 배가 뜨긴 했겠니? 그저께만큼이라도 왔으면 벌써 왔겠다마는.”

“어제 태풍이 불어닥치기 전에 배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어머닌 안 오셨어요.”

“큰바람이 불기 전에 들어온 배가 있었구나. 아마 그 배로 왔다면 너의 어머닌 외가로 바로 가셨을 거야.”

소년은 대답 없이 올레로 몇 걸음 걸어 나왔다.

“조반 안 먹었으면 조금 있다 우리 집으로 건너오너라. 반찬이 시원치 않지만 같이 먹자.”

욱이 어머니가 뒤에서 소년에게 말했다.

“예, 알았어요.”

소년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올레를 나왔다.

소년의 발은 저절로 큰갯물 동산으로 향했다.

큰갯물 동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여름엔 동네 머슴애들이 모두 몰려들어 병정 놀이를 하며 바위 뒤에 숨고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②큰갯물 포구로 내려가 멱을 감고 다시 올라와서 나뭇잎 모자를 만들며 놀곤 하는 곳이다.

소년은 슬플 때나 외로울 때면 혼자 큰갯물 동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큰갯물 동산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동산 밑의 소년의 집과 동네가 모두 다 보였고, 동산 남쪽 절벽 밑으로는 바다가 환히 열려 있었다.

“준아, 준아.”

욱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집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뒤에 숨어 지켜보았다.

“준아, 우리 엄마가 조반 같이 먹자고 너 오라고 그런다.”

욱이가 소년의 집 마당에서 외치다가 방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나와서 이리 저리 찾는 모습이 보였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발길을 돌려 동산 꼭대기 망바위 위로 올라가 앉았다.

망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아직도 울부짖고 있었다. 태풍이 서귀포를 지나가고 바람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지만, 바다는 아직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었다.

파도가 ※③섶섬의 뿌리를 흔들어 뽑아 버릴 듯 하얀 물회오리를 일으키며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섶섬은 끄떡하지 않았다.

섶섬 동쪽 허리의 문필봉에 뿌옇게 안개가 끼어 있었다. 커다란 바위의 모습이 뾰족한 붓끝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바위의 이름이 문필봉이다.

언젠가는 문필봉이 바라다 보이는 이 마을에 문장의 대가가 태어날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어 왔지만 아직 문장의 대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은 동산에 올라 ※④문필봉을 바라볼 때마다 주먹을 꼭 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문필봉에서 제일 가까운 집에서 태어난 자기가 문장의 대가가 되겠다고.

썰물 때라 물결은 포구에서 멀리 밀려났지만, 포구 입구의 새우바위를 때리며 하얀 물거품을 만들어 날리고 있었다.

소년은 문득 2학년 때의 여름을 떠올렸다.

그 때도 오늘처럼 태풍이 휘몰아치고 간 다음 날이었다. 아직 파도가 잔잔해지지는 않았지만 햇빛이 비치고 조금 더웠기 때문에 아이들은 큰갯물 포구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직 개헤엄밖에 칠 줄 몰랐던 소년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포구 안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점점 약해져가는 파도가 방파제 밖에서 아직도 용을 쓰고 있었지만, 방파제 안쪽은 잔잔하여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좋았다. 가끔 큰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곤 했지만, 큰 아이들은 오히려 그 파도를 즐기곤 했다.

소년은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잔잔해지던 파도가 마지막 안간힘을 내어 커다란 덩어리로 몰려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큰 파도는 방파제를 거침없이 넘어와 소년을 휘감고 방파제 끝을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소년은 갑자기 들이닥친 파도에 정신을 반쯤 빼앗긴 채로 허우적거리며 포구 안으로 헤엄쳐 들어오려 했지만, 파도의 힘 앞에서 소년의 힘은 너무나 약했다.

소년은 정신없이 허우적거렸다. 물 속으로 곤두박질 칠 때마다 코와 입으로 짠 바닷물이 왈칵왈칵 밀려 들어왔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중에서도 바다에 뛰어들어 자기에게 헤엄쳐 오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5학년 짜리 사촌 형 찬이었다.

“준아! 준아!”

찬이 형은 준이를 부르며 파도를 헤치고 다가왔다. 소년은 찬이 형의 등에 매달려 어깨를 꽉 껴안았다.

“어깨를 붙들지 마. 둘 다 죽는단 말야!”

헤엄치기조차 힘들도록 어깨에 매달린 소년의 팔을 떼어내려고 하며 찬이 형이 외쳤지만, 헤엄칠 줄 모르는 소년은 찬이 형의 어깨를 절대 놓지 않았다.

이제 둘이 한 덩어리가 되어 허우적거리며 점점 먼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물 속에 가라앉았다 다시 나오고 할 때마다 포구 입구의 새우바위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가 태왁을 짚고 헤엄쳐 와서 태왁 위에 건져 올려 주었을 때는 힘이 다 빠지고 정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포구 안으로 끌어 올려져 욱이 아버지가 가슴과 배를 큰 손바닥으로 꾹꾹 누를 때, 소년은 복어처럼 볼록했던 배에서 바닷물을 울컥울컥 토해내곤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소년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방안에 누워 있었고 곁에서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소년이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자 어머니는,

“준아!”

하고 부르며 소년을 와락 껴안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소년은 볼에 떨어지는 어머니의 눈물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소년은 어머니의 가슴에 자꾸자꾸 얼굴을 파묻었다. 어머니의 가슴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푸근하기만 했다. 어머니의 심장 고동 소리가 소년의 가슴으로 밀려 들어와 소년의 가슴에서 더욱 크게 울렸다.

소년은 기억에서 깨어나 큰갯물 포구를 내려다보았다. 2학년 여름의 태풍 뒤끝처럼 포구 안은 잔잔했지만, 아직 구름이 다 걷히지 않고 햇빛이 비치지 않아, 날씨가 물놀이하기에는 추운 탓인지 포구 안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망바위에서 내려와 섶섬 앞 갯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풍이 지난 후 섶섬 앞 ※⑤동애기 갯가에는 파도에 밀려 올라온 표류물들이 많이 흩어져 있곤 했다. 태풍이 지나간 후면 소년은 욱이와 같이 동애기 갯가로 가서 신기한 표류물들을 줍곤 했다.

그물 부표나 유선형의 날씬한 오징어 등뼈는 소년에게는 좋은 놀잇감이었다.

한 번은 조그만 바다거북이 바위 틈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꺼내어 놓아준 적도 있었다. 아마도 파도에 휩쓸려 왔다가 썰물 때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바위틈에 갇혔던 것일 거다.

소년은 자갈길을 걸었다.

파도에 뜯겨진 모자반과 다시마가 파도가 밀려왔던 자리 끝에 널브러져 있었다. 파도에 의해 모자반에 감겨 뭍으로 던져진 금빛의 조그만 물고기들이 모자반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파도는 저만큼 밀려가 오각바위 근처에서 마지막 힘을 쓰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육지로 물질 나가기 전 어머니는 동네 해녀들과 같이 늘 이 동애기 바다에서 물질하곤 했다. 소년은 욱이와 같이 오각바위 위에 앉아 어머니가 바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자맥질하여 물 속에 들어갔던 어머니가 손등 같은 전복을 툭 떼어 올라와 ‘호오이-’ 한 소리 긴 숨비 소리를 내면, 바다가 온통 어머니의 가슴으로 들어가 안기는 듯 했다.

물질을 끝내고 갯가로 올라오는 어머니의 망사리가 욱이 어머니 것보다 더 커 보이면 소년은 욱이 앞에 작은 가슴을 내어 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각바위 근처에서는 파도만 거품을 날리고 있었다.

어제 오신다고 하던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어제 태풍이 닥치기 전 들어왔다고 하는 마지막 배를 어머니는 타셨을까? 욱이 어머니 말씀처럼 너무 늦어서 바로 고운내 외가로 가셨을까 ?

소년은 한 잠도 자지 못하게 휘몰아쳤던 어제 밤의 무서운 바람을 생각하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년은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원망스러운 만큼 더욱 그리워지는 어머니였다.

소년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표류물들이 흩어져 있는 자갈 위를 걸었다.

아악 !

갑자기 오른쪽 발바닥에 심한 아픔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무엇인가 날카로운 것으로 발을 찔린 것 같았다. 너무 큰 아픔으로 허억 숨이 막혔다.

소년은 발을 내려다보았다. 조그만 널빤지에 박혀 있는 못이 고무신을 꿰뚫고 발바닥에 박혀 있었다.

아픔으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못을 빼려고 했으나 손으로 못을 잡고 빼려고 할수록 아픔은 더욱 심했다.

하얀 고무신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준아, 너 거기서 뭐 하니?”

욱이가 소년을 보고 뛰어왔다. 욱이도 표류물을 주우러 온 것 같았다. 욱이의 손에는 그물 부표가 두 개 들려 있었다.

“발에, 발에 못이 박혔어.”

소년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어디 봐, 내가 빼어 줄께.”

욱이가 소년의 발을 잡고 못을 빼려고 했으나, 못이 박힌 널빤지를 조금만 건드려도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안 돼. 건드리지 마. 더 아프단 말야.”

“이걸 어떻게 하지?”

욱이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네 어머니를 불러올께.”

욱이는 동네로 달려가려고 했다.

소년은 발이 아픈 가운데서도 어머니란 말에 귀가 번쩍 트였다.

“우리 어머니가 오셨니?”

“그래, 조금 전에 오셔서 우리 준이 어디 갔느냐고 찾더라. 빨리 가서 불러올께. 조금만 참고 있어.”

욱이는 동네로 달려갔다.

소년은 아픔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눈물이 뺨을 타고 악문 입술로 줄줄 흘러내렸다. 눈물 때문에 숲섬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소년은 손등으로 눈물을 쓱 문질러 닦았다. 동네 쪽에서 어머니와 욱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욱이가 손으로 소년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준아!”

어머니가 멀리서부터 소년을 부르며 달려왔다.

“어머니!”

소년은 이를 악물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못에 찔린 발이 아파서 우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를 부르는 순간 아픔보다는 가슴속에서 큼직한 덩어리가 치밀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소년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피가 흘러 흰 고무신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못을 빼야 하니까 이를 꽉 물고 꾹 참고 있거라.”

“아야야, 아파요. 살살 하세요.”

소년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라. 못을 빼면 덜 아프니까.”

어머니가 소년을 달래며 널빤지를 쥐고 휙 잡아 빼었다.

허억.

소년은 숨을 끊었다. 못이 박힐 때보다 더 심한 아픔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큰 못이 박히다니.”

어머니는 몸을 떨며 못이 박힌 널빤지를 휙 던져버렸다.

한 순간의 아픔이 지나자 소년은 축 늘어졌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녹슨 못이 박혔었으니까 독을 빨아내야 돼.”

어머니는 소년의 고무신을 벗기고 발바닥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피를 빨아내어 뱉어버리고, 빨아내어 뱉어버리곤 했다.

어머니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뚜욱뚜욱 흘러 떨어졌다.

소년은 비로소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물질 가기 전보다 더 핼슥하고 주름이 더 늘어나 있는 것 같았다. 핏기 없는 얼굴에서 입술만이 바알갛게 고왔다.

바알갛고 고운 입술. 그건 진달래였다. 바위틈에서 고개를 조금 내밀고 보일 듯 말 듯 피어있는 붉은 진달래였다.

소년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며 물었다.

“언제 오셨어요, 어머니?”

“으응, 어제 저녁 들어온 배로 왔는데 너의 외할아버지 제사에 늦을까봐 고운내로 바로 갔단다.”

“어머니를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그래, 미안하구나. 우리 준이가 혼자 집에서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태풍이 너무 심해 오지 못하여 외가에서 자고 아침 일찍 떠나 왔단다.”

“어머니, 다신 육지로 물질 나가지 마세요.”

“그래, 다신 안 가마.”

소년은 어머니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머니의 등은 너무 따뜻했다. 몇 년 전 태풍 뒤끝에 바다에서 죽을 뻔하다 살아났을 때,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듣던 심장의 고동 소리가 다시 들렸다.    ♣


※① 올레 :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의 제주도 사투리

※② 큰갯물 : 서귀포시 보목동에 있는 작은 포구

※③ 섶섬 : 서귀포시 보목동 앞에 있는 섬

※④ 문필봉 : 숲섬 동쪽 등성이에 있는 붓끝을 세워놓은 모양의 바위

※⑤ 동애기 : 서귀포시 보목동 바닷가의 한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