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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나무야, 나의 친구 나무야

 < 창작 동화 >

나무야, 나의 친구 나무야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습니다. 누가 하늘을 막대기로 톡 치기만 해도 금세 비가 주르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날씨였습니다.

경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검은 구름을 낮게 덮어서 경하의 머리 위 가까이 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총총걸음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하는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느릿느릿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얘, 곧 비가 올 것 같으니까 빨리 가거라.”

낯모르는 아주머니가 경하 옆을 스쳐가며 말했습니다. 경하는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걸음이 빨라지지 않았습니다.

경하의 가슴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잔뜩 흐려 있는 하늘과 같았습니다. 흐려있는 정도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곧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처럼 경하의 눈에서도 금세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손가락이 아픈 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수지와 있었던 일 때문에 울고 싶었습니다.

경하가 집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다행히 비는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회사 사람들과 송별 모임을 갖는다고 오늘은 늦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없을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텅 빈집을 보니 오늘따라 작은 집이 무척 크게 보였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집에 계셨다면 경하는 엄마나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어버렸을 것입니다.

경하는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서 비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하늘 아래에서 마당을 반쯤 덮고 있는 커다란 팽나무가 경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 경하야, 네 얼굴에 비구름보다 더 짙은 구름이 끼어 있구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경하는 말없이 팽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나뭇가지들이 잎을 살랑살랑 흔들며 경하를 반겨주었습니다. 경하는 나무 등걸을 팔로 감싸 안고 얼굴을 묻었습니다.

- 왜 그러니? 나와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까 그런 거야?

경하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래.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나무야, 나 어쩌면 좋아?”

- 정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내게 다 말해 보렴. 넌 아기였을 때부터 무슨 이야기든 내게 하면 가슴이 맑아지곤 했었잖니. 난 네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으로 너를 기다려 왔었고.

정말 그랬습니다. 경하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기였을 때부터 마당 한 옆에서 커다란 그늘을 만들며 서 있는 팽나무와 말을 하고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일,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엄마에게 야단맞았던 일. 모든 일을 나무에게 이야기하곤 하였습니다. 경하가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나무는 가지를 살랑살랑 저으며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보내주곤 하였습니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나무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눈에서 눈물이 씻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나무 밑에 와서 앉으면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경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시끄럽게 놀기보다는 팽나무 밑에서 혼자 나무를 벗삼아 소꿉장난을 하면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쟨 우리 딸이긴 해도 참 이상한 아이예요. 왜 나무에게 이야기하곤 할까요?”

엄마는 나무와 이야기하는 경하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이상한 아이가 아니오. 우리 경하는 나무처럼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런 거요.”

아빠는 그런 경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서 한 학년 두 학년 올라가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책을 읽고 나서 경하는 자기를 닮은 아이가 책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 학년 네 학년 올라감에 따라 학교에서 오는 시간도 늦어지고 학원도 다니게 되면서 경하는 나무 밑에서 노는 시간이 점점 적어지고, 나무와 이야기하는 것도 뜸해졌습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얼굴을 하고 집에 돌아온 오늘, 아무도 없는 집에서 슬픔에 젖어 오랜만에 바라보는 팽나무였습니다. 팽나무는 변함없이 경하에게 맑은 미소를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나무야, 나 오늘 학교에서…….”

경하는 나무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께 아침, 경하가 교실에 들어가 보니 친구들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그게 뭐니?”

경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응, 수지가 보낸 생일 초대장이야. 아침에 와 보니 이게 사물함마다 들어있지 뭐니.”

“경하야, 아마 네 사물함 속에도 있을 거야.”

친구들은 수지의 생일에 무슨 선물을 할까 이야기하며 재잘거렸습니다.

경하도 얼른 사물함으로 가서 교과서를 정리해 놓으며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경하의 사물함 속에도 초대장이 담긴 예쁜 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경하는 초대장을 꺼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예쁜 종이에 컴퓨터로 쓴 초대장 속에서 수지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지의 초대장을 들여다보던 경하의 얼굴은 다른 친구들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수지의 생일 파티에 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하는 누구보다도 수지와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수지의 생일 초대를 받으면 꼭 가서 축하해 주곤 했었습니다. 이번 수지의 생일 파티에도 가서 축하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지의 생일만큼은 가지 못할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얘들아, 안녕?”

수지가 환한 얼굴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수지야, 안녕?”

“수지야, 이건 언제 우리 사물함 속에 갖다 놨니?”

친구들이 초대장을 들고 수지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응, 어제 청소 끝나고 너희들이 다 돌아간 뒤에…….”

“아유, 기집애. 얘, 그런데 초대장 이쁘게 만들었다얘.”

“너희들 내 생일 파티에 꼭 올 거지?”

수지는 신이 나서 친구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래얘. 어느 공주님 생일 파티인데 안 가니?”

“남자 친구들도 초대했니?”

“그럼요. 멋쟁이 왕자님들만 초대했으니까 기대를 하고 오셔도 돼요, 아가씨.”

까르르―.

아침 교실은 온통 여자아이들의 웃음으로 들썩였습니다.

경하는 웃음소리로 둘러쳐진 울타리 밖에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때였으면 경하도 친구들의 웃음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더 큰 웃음을 만들어 낼 텐데, 생일 초대에 가지 못하게 된 안타까운 마음에 선뜻 그 속으로 들어가 같이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지가 웃음 울타리를 걷어내면서 경하에게로 왔습니다.

“경하야, 내 초대장 봤니?”

“으응.”

대답을 하는 경하의 얼굴빛은 조금 흐린 하늘 색깔이었습니다.

“꼭 올 거지? 우리 엄마가 초등학교 마지막 생일 파티를 멋지게 차려 준댔거든.”

경하는 망설이다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해. 이번 네 생일에는 가지 못하게 됐어.”

“왜?”

수지의 얼굴에 물음표가 써졌습니다.

“그, 그건 나중에 알게 돼. 아무튼 생일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해.”

환히 웃던 수지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며 눈썹이 좁게 모아졌습니다.

“흥. 그래, 경하 네가 안 와도 좋아. 친구들이 많이 온다고 했으니까 네가 안 와도 파티는 멋지게 될 거야.”

“수지야, 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수지는 옷자락을 휙 날리며 돌아섰습니다.

경하는 갑자기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생일 초대에 못 가게 된 이유를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날 내내 수지는 옆자리에 앉은 경하와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하가 자꾸 수지 쪽으로 얼굴을 돌리곤 했지만 수지는 경하가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고개조차 한 번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학교가 끝나 집으로 갈 때 경하는 수지의 생일에 가지 못하게 된 이유를 말하려고 수지를 불렀습니다.

“수지야, 저…….”

그러나 수지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경하도 교실을 나섰습니다.

저만치 앞에 수지가 친구들과 함께 교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수지는 무엇인가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뒤를 돌아다보며 경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곤 하였습니다.

경하는 수지에게 다가가 꼭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수지는 경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하고만 재잘거리며  놀았습니다. 경하도 굳이 수지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체육 시간은 홀수 번호와 짝수 번호로 팀을 나누어서 피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경하는 짝수 번호이고, 수지는 홀수 번호이기 때문에 둘은 서로 다른 팀이 되어서 피구 경기를 하였습니다.

경하는 피구를 할 때는 날아다니는 새처럼 이리 저리 공을 피하며 솔개가 먹이를 움켜쥐는 것처럼 상대방이 던지는 공을 잡아채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피구 경기를 하는데 전혀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공을 피하여 왔다갔다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웬일인지 상대편 친구들이 경하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곤 하여 경하는 경기하기가 몹시 힘이 들었습니다.

처음 경기는 수지네 홀수 팀이 이기고, 두 번째 경기는 경하네 짝수 팀이 이겨서 다시 세 번째 경기를 하였습니다. 세 번째 경기도 이제 끝나갈 무렵 거의 다 아웃이 되고 양쪽 팀에서 한 사람씩만 남았습니다. 짝수 팀에서 남은 선수는 경하였습니다.

“경하야, 힘내!”

“경하야, 끝까지 살아남아야 돼!”

“경하 파이팅!”

경하네 팀 친구들이 마지막 남은 경하를 응원했습니다.

상대방의 공이 경하를 쫓아다니며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경하는 공을 피해 이리 저리 도망 다니기만 하였습니다.

“경하야, 공을 피하지만 말고 잡아!”

공을 피하기만 하는 경하를 보고 친구들이 안타까워 소리쳤습니다.

‘그래, 피하지 말고 잡아야겠어.’

경하는 친구들의 외침을 듣고 피하기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날아오는 공을 잡아 상대편을 공격하였습니다. 상대편 친구도 날쌔게 공을 잡고 자기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몇 번 공격과 수비가 오고 갔을 때 홀수 팀의 수지에게 공이 갔습니다. 수지는 경하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습니다.

경하는 얼른 몸을 피하며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습니다.

그 순간, 경하는 손가락에 심한 아픔을 느끼고 공을 놓고 말았습니다.

“와 ―.”

상대편 친구들의 함성이 들렸습니다.

경하는 손을 움켜쥐고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경하야, 왜 그래? 손을 다쳤니?”

선생님이 당황하여 달려왔습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경하는 얼른 일어나 아프지 않은 것처럼 옷을 털었습니다.

“정말 괜찮니? 어디 손을 좀 보자.”

“정말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다면 다행이구나. 난 손을 삔 줄 알았지 뭐니.”

괜찮다는 경하의 말에 선생님은 안심이 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경하의 손가락은 점점 더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경하는 수지 앞에서 아픈 척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올 듯 잔뜩 낮은 구름이 끼어있는 하늘을 보며 경하는 꼭 자기의 마음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낮은 하늘을 떠받들고 우뚝 서서 자기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나무의 몸을 감싸 안았을 때 경하는 손의 아픔과 함께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씻어진 듯 하였습니다.

“나무야, 나도 수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어. 그런데 난 수지의 생일에는 뉴질랜드에 가고 여기 없을 거잖니.”

- 경하야, 이제 내게 다 이야기하고 나니까 조금은 기분이 풀렸지? 수지는 모르고 그런 것이니까 네가 이해해야지. 아마 네가 뉴질랜드로 가고 나면 그 때 수지도 네 마음을 알게 될 거야.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하는 방으로 들어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비를 맞으며 서 있는 팽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경하네 작은 집 지붕까지 온통 덮을 듯이 가지를 뻗고 서 있는 팽나무도 비를 맞으며 말없이 경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하며 놀던 팽나무와도, 학교 친구들과도 이제 헤어지게 된다는 생각을 하자 체육 시간에 삔 손가락이 다시 시큰거리며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경하는 손가락을 감싸쥐고 방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삿짐을 싸 놓은 상자들이랑 보자기들이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고, 정들었던 집안이 휑뎅그레하게 비어 있는 모습이 무척 쓸쓸하게 보였습니다. 내일은 이삿짐 센터에서 와서 이 짐들을 창에 싣고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무야, 나 이사 가기 싫어. 너랑 헤어지는 것도 싫고, 수지랑 다른 친구들과도 헤어지기 싫어.”

- 나도 경하랑 헤어지기 싫단다. 그러나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년 동안만 갔다가 다시 올 거잖니.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지면서 살아가는 거란다. 나랑 헤어져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더라도 그 곳에서 좋은 친구를 또 만나서 사귈 수 있게 된단다. 수지랑 친구들도 경하의 기억 속에 좋은 친구로 남고, 또 다른 친구들이 경하의 새로운 기억 속으로 들어오게 된단다. 그러니 헤어지는 섭섭함을 기억 속에 간직하여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면 된단다.

경하는 나무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온 것은 가로등들이 불을 달고 비오는 밤을 이겨내다가 졸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엄마, 나 뉴질랜드에 안 가면 안 돼요?”

“얘두 참.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그러는구나.”

“그것도 그렇구요.”

“아주 이민 가는 것도 아니고 아빠가 뉴질랜드 지사로 발령 받아서 가는 것이니까 몇 년만 가서 있다 오면 될 텐데. 친구들이 보고 싶으면 편지도 자주 하고, 전화도 하렴.”

“그래. 그리고 요즘은 E-메일로 편지도 쉽게 보내니까 친구들이 곁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경하의 섭섭한 마음을 이해하는지 다정한 미소를 보내 주었습니다.

“너 그러구 보니까 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만 섭섭한 게 하니라 나무 친구하고 헤어지는 것이 더 서운해서 그러는구나.”

“호호호. 그렇네요. 얘는 어릴 때부터 저 팽나무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놀았으니까요.”

“나무 친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우리가 뉴질랜드로 가 있는 동안 고모네 식구들이 와서 살게 되니까 네 사촌 동생 아라가 나무와 친구가 되어 놀아줄 거야.”

경하는 대답 대신 창 밖으로 눈을 돌려 팽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팽나무는 작은 가지를 흔들며 경하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고,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가로등이 불빛을 비추며 가는 빗줄기 그림자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경하야, 뉴질랜드로 간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했니?”

“아니요. 아직 안 했어요. 선생님께만 말씀드렸어요.”

“저런, 내일 떠나게 되는데도 아직 친구들이 모른단 말야?”

“…….”

“당신이 내일 아침 경하하고 같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떠나는 인사를 드리고, 경하도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도록 해요.”

“그럴께요.”

그날 밤 경하는 낮에 있었던 수지와의 일을 생각하며 수지에게 무슨 말을 하고 떠나야 되나 하고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경하는 꿈속에서 창 밖의 팽나무가 작은 가지를 흔들며 부르는 자장가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섭섭한 이야기를 하겠어요. 그 동안 우리들과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 경하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게 됐어요.”

선생님 곁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경하의 귀에 친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아주 이민을 가는 것은 아니고 경하 아빠가 회사에서 뉴질랜드 지사로 발령을 받게 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경하네 식구가 몇 년 동안 그곳에 가서 살다가 올 거예요. 헤어지는 경하와 여러분이 모두 서운한 마음을 가지겠지만, 세계가 지구촌으로 다 가까워졌기 때문에 전화나 컴퓨터 통신으로 자주 만날 수 있게 될 거예요. 이제 떠나는 경하의 인사를 듣겠어요.”

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친구들의 눈이 모두 자기에게로 모여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하야, 친구들에게 인사해야지.”

선생님의 말씀에 경하는 앞으로 나서서 친구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모든 눈동자들이 서운함을 가득 담고 자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경하는 수지에게로 눈을 돌렸습니다. 수지의 얼굴에는 다른 친구들의 얼굴보다 더 큰 서운함을 담고 경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경하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수지의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과 정답게 지냈는데 갑자기 떠나게 되어 여러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제게 늘 다정하게 대해 주던 여러분들을 생각하며……. 저는……. 저는…….”

경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준비해 왔던 인사말이 많이 있었지만 말보다 먼저 울음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경하는 올라오는 울음을 꿀꺽 삼키고 친구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뚜렷이 보이던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맺힌 이슬 때문에 점점 희미해져갔습니다.

경하는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으며 교실을 뛰쳐나가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 품속에 얼굴을 묻고 안으로 울음을 삼켰습니다.

어머니가 경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이삿짐을 실은 차가 떠나고, 경하네 식구들을 공항으로 태우고 갈 고모부 차도 문을 열어 놓은 채 어서 타기를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경하는 차를 타려다가 텅 빈 집을 다시 돌아다보았습니다. 물을 가득 빨아올려 더욱 푸르러진 팽나무가 가지를 우뚝 세워 어제 내린 비로 깨끗하게 씻겨진 파란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나무야, 나의 친구 나무야. 잘 있어. 내가 뉴질랜드에 갔다 올 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야 해.”

- 그래, 경하야. 잘 가. 네가 보고 싶으며 뉴질랜드 쪽을 향해 가지를 쭉쭉 뻗고, 네가 그리울 때면 뿌리로 힘껏 물을 빨아올리며 너를 기다릴게. 뉴질랜드에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래.

먼저 차에 탄 아버지, 어머니도 경하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경하는 자꾸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차를 향해 옮겼습니다.

경하가 마악 차에 타려고 할 때였습니다.

“경하야 ―. 경하야 ―.”

멀리서 달려오며 부르는 수지와 친구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차를 타려던 경하는 수지네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헐떡이며 달려온 친구들이 경하를 에워쌌습니다.

“경하야, 갑자기 떠나면 어쩌니?”

“떠난다는 얘기를 진작 했어야지.”

친구들이 모두 울먹이며 경하의 손을 잡았습니다.

“미안해. 미리 말하면 너희들이 더 서운해할까 봐서 말하지 않고 떠나려고 했었어.”

경하와 친구들이 손을 잡고 헤어지는 아쉬움을 나눴습니다. 수지는 친구들의 뒤쪽에서 말없이 경하와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경하는 수지에게로 다가가 수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수지야!”

“경하야!”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주 보고 있는 눈들이 입을 대신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주었습니다.

“경하야. 네가 오늘 뉴질랜드로 떠난다는 것도 모르고 내 생일에 오지 못한다는 말만 듣고 내가 오해를 했었어. 미안해.”

“아니야. 내가 미안해. 네게만은 진작 얘기를 했어야 되는데.”

“경하야, 네가 아침에 떠나는 인사를 할 때 난 속으로 울고 있었어. 네가 그냥 떠나면 어쩌나 했는데, 이렇게 마지막 웃으며 떠나게 되어 다행이야.”

“그래, 고마워. 나도 웃으며 떠나게 되어 기뻐.”

경하와 수지는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눈물을 담고 있는 웃음이었습니다.

경하와 수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친구들이 다가와 경하와 수지를 또 끌어안았습니다.

떠나는 경하에게 수지와 친구들이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경하도 친구들의 모습이 작아질 때까지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친구들의 모습이 이젠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건 하늘을 향해 뻗은 높은 가지를 흔들며 잘 가가라고 인사하는 경하의 친구 팽나무였습니다.

‘잘 있어. 나무야, 나의 친구 나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