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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와우산의 꿩

 <창작동화>

와우산의 꿩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1)


“이런 세상에 못된 사람들이 있담. 쯧쯧.”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가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고 계셨습니다.

“뭐예요, 아빠?”

현경이는 아버지 곁으로 가서 아버지가 보고 계시는 신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것 보아라. 여기 이 기사하고 사진 말이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에는「잃어버린 孝心(효심)」이라는 굵은 제목과 함께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늙수그레한 할머니의 사진이 나와 있었습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제주도 관광 여행을 갔던 80 대 할머니가 여관에 홀로 남겨진 채 발견되었다는구나. 경찰에서는 이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싫어서 효도 관광을 핑계로 제주도까지 모시고 가서는 버리고 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는데, 이 할머니는 정신은 온전한데도 살던 집 주소와 전화 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하고, 아들과 며느리의 이름조차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구나.”

저녁 식사 설거지를 하시던 어머니가 고무 장갑을 벗어 놓고 다가왔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어디 봐요.”

어머니는 신문을 당겨다 놓고 얼굴을 가린 할머니의 사진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할머니인데……, 어디서 봤더라?”

“당신이 어떻게 이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단 말이오?”

“아냐요. 틀림없이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에요.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어서 얼른 기억이 안 나는 걸 거예요. 이 손을 떼면……, 그렇지. 전에 우리가 살던 아파트 앞 동에 살던 할머니예요. 왜, 현경이랑 같은 반이라며 가끔 놀러왔던 애 할머니예요. 현경아 잘 봐라.”

현경이는 다시 신문의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드려다보았습니다.

“그래요. 은아 할머니가 맞아요.”

“아, 그렇군. 나도 은아 아빠를 한 번 기원에서 만나 바둑을 한 판 같이 둔 적이 있었지. 그 친구 부동산 소개업을 한다던가 하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 노모를 모시기 어려운 형편은 아닌 것 같던데. 아마 고향이 우리 시골 고향 마을과 가까운 곳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그래요. 제가 놀러 가 본 은아네 집은 가구들도 우리 집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급 외제 가구들이 많았어요.”

현경이는 얼른 일어나 방으로 가서 수첩을 찾아 뒤적거렸습니다. 강남으로 이사오기 전에 다니던 학교 같은 반 친구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놓은 수첩이었습니다. 은아의 이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수첩을 들고 거실로 나온 현경이는 전화기의 숫자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나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가끔 듣는 기계의 소리였습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이거나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현경이는 수화기를 놓고 수첩에 적힌 전화 번호를 확인하였습니다. 잘못 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숫자 하나 하나를 확인하며 버튼을 꼭꼭 눌렀습니다. 그러나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먼저 번과 똑같은 소리뿐이었습니다.

현경이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아빠, 은아네 집 전화 번호가 잘못된 것 같아요. 없는 국번이거나 결번이라는 소리만 들리곤 해요.”

“그럴 거다. 어쩌면 그 사람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는지도 모르겠구나.”

신문의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하는 어머니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스며 있었습니다.

“현경아, 너의 반이었던 은아 할머니가 맞긴 맞는 거니 ?”

아버지는 아직도 미심쩍은 표정이었습니다.

“글쎄요. 언듯 보면 아닌 것도 같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히 은아 할머니 모습이에요.”

“글쎄, 분명하다니까요. 이 할머니께서 아파트 공원 벤치에 앉아 계신 것을 여러 번 보았어요. 그 때도 쓸쓸해 보이던 표정이 지금 사진의 표정과 너무도 닮았다구요.”

아버지는 못마땅한 듯 다시 쯧쯧 혀를 찼습니다.

“그 사람 그렇게 보이지를 않더니만 이 사진의 할머니가 그 사람의 어머니라면 정말 철면피한 사람이구먼. 어떻게 자기를 낳아 주신 어머니를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

“그래요. 그래도 이 할머니는 자기를 버린 자식이지만 자식이 남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소건 전화 번호건 자식의 이름까지도 말하지 않는 걸 봐요.”

“세상 인심이 참 고약해졌군.”

아버지는 화가 나는지 신문을 탁 덮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2)


와우산은 높은 산줄기가 느릿하게 뻗어 바다로 내려가다가 야트막한 두 봉우리가 불룩하게 이어져 솟아있는 산입니다. 키 작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띠풀, 억새풀들과 어울려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와우산의 근처에는 다른 산들이 없어서 바닷가 마을 쪽에서 바라보면 제법 높직하게 보이는 두 봉우리 중 조금 높은 봉우리는 소의 머리 모양으로, 조금 낮은 봉우리는 소의 엉덩이 모양을 하고 등허리로 이어져 있어 마치 황소가 드러누워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는 것 같다 하여 산아래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와우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와우산에서 바라다보면 뒤로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고, 아래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고, 바닷가에 조그만 도시와 그 주변으로 작은 마을들이 점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소의 머리와 엉덩이 사이의 느릿하게 들어간 등허리에는 돌담을 두른 몇 개의 무덤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모두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는 무덤들은 양쪽에 두 작은 봉우리가 감싸주고 있어서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명당이었습니다.

꿩 부부인 장돌이와 까순이는 그 곳 무덤들이 누워 있는 근처 작은 상수리나무와 띠풀들이 가득 자라고 있는 곳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틀고 살았습니다.

와우산을 가득 덮었던 눈이 봄바람에 슬며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푸릇푸릇한 어린 풀잎들이 작년에 시들은 누런 풀잎들을 헤치고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상수리나무의 여린 새 잎도 어느새 여린 티를 벗어버리고 뻣뻣하게 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습니다.

고사리 장마도 끝나서 와우산까지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던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질 무렵 까순이는 알 낳을 자리를 골랐습니다.

“여보, 우리 알들을 어디에 낳을까요 ?”

까순이가 불룩한 배를 부리로 쓰다듬으며 물었습니다.

“음, 저기 두 무덤 사이에 있는 작은 상수리나무 아래가 좋을 것 같군. 띠풀도 부드럽게 길쭉하니 자라고, 햇볕도 너무 따갑지 않게 적당히 그늘이 져서 당신이 알을 품기에는 아주 좋겠는걸.”

장돌이는 말하면서도 어느새 푸르르 날아 상수리나무 아래로 갔습니다. 까순이는 띠풀을 헤치고 쭈르르 달려서 장돌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장돌이의 말대로 알을 낳아 품기에는 참 좋은 자리였습니다.

“여보, 내가 알을 품는 사이에 사람들이 와서 우리 알들을 가져가 버리지 않을까요 ?”

까순이는 알자리가 맘에 들었지만 어쩐지 불안해졌습니다.

“괜찮을 거요. 이젠 고사리 꺾으러 오던 사람들도 더 이상 오지 않으니까 염려 말아요. 또 사람들이 산소에 벌초하러 올 때쯤이면 알들이 모두 깨어 우리만큼 크게 될 테니까 염려 안해도 돼요.”

장돌이는 부리로 까순이의 목덜미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까순이는 장돌이의 보살핌 속에 알 낳을 자리를 고르고, 뽀얗고 예쁜 알을 다섯 개 낳았습니다.

장돌이와 까순이 부부는 너무 기뻤습니다. 마른 풀덤불 속에 조그맣게 모여 있는 알들은 보면 볼수록 귀여웠습니다. 장돌이는 “꿩꿩 !” 우렁찬 목소리를 울려 까순이가 알을 낳은 것을 알렸습니다. 장돌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와우산 위아래로 힘차게 퍼져나갔습니다.

와우산의 모든 꿩들이 모여 와서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아유, 어쩌면 저리도 귀여운 알들일까? 축하해요.”

“고마워요.”

“요 알락달락한 알에서는 틀림없이 아빠 꿩보다 더 멋진 목털과 길다란 꼬리털을 가진 수꿩이 깨어날 거예요.”

“요 보오얀 알에서는 엄마 꿩보다 더 토실토실하고 부지런한 암꿩이 깨어날 거야.”

다른 꿩들의 칭찬에 장돌이와 까순이는 마주 보며 행복한 웃음을 웃었습니다.

“여보, 우리도 어서 가서 알 낳을 자리를 고릅시다..”

알을 배어 배가 볼록해진 이웃 암꿩이 남편 수꿩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럽시다. 당신도 곧 귀여운 알을 낳아야지.”

다른 꿩들도 까순이가 낳은 귀여운 알을 보고는 어서 우리도 알을 낳아야겠다며 모두들 서둘렀습니다.

까순이는 장돌이의 보살핌 속에서 따스한 가슴의 털로 알을 품었습니다. 품고 있는 알들이 깨어나서 아빠 꿩처럼 알록달록한 목털을 두르고, 멋진 꼬리털을 쭈욱 펴고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보송보송한 꺼병이들이 태어나서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를 찾아 맛있게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까순이가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와우산에 평안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끔 징그러운 심술꾸러기 뱀들이 알들을 노리고 덤벼들곤 하였습니다. 이웃에 알을 낳은 몇몇 까투리는 뱀들에게 알을 모두 먹히고 슬픔에 젖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까순이네 알들은 장돌이가 뱀을 쫓아내거나 다른 데로 유인해 내곤 하여 모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알에서 꺼병이들이 깨어날 것입니다.

까순이가 눈을 감고 앉아 행복한 꿈을 꾸며 알을 품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와우산 밑에 사는 꿩끼네 알이 부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해 주러 갔던 장돌이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와 급한 소리를 질러대었습니다.

“여보, 까순이. 크, 큰 일이 났오 !”

까순이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습니다. 장돌이의 목소리가 잔뜩 겁을 집어먹고 떨리고 있었습니다.

“뭐예요, 여보?”

“저기! 저기!”

장돌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산 아래를 가리켰습니다. 장돌이의 날갯짓을 따라 눈을 돌린 까순이도 깜짝 놀라 펄쩍 뛰어 날았습니다.

산 아래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띠풀, 억새풀들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습니다.

“여보, 어서 이웃들에게 알려요!”

까순이의 외침에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장돌이가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뛰어 다니며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불이야, 불!불이 났어요! 와우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어요!”

장돌이의 외침에 와우산의 모든 꿩들이 퍼덕거리며 날아올랐습니다.

“아이구, 큰일났구나. 어서 피난가야지 !”

삽시간에 와우산이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조그마하게 타오르던 불길이 어느새 커지며 와우산 위로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살랑살랑 가볍게 불던 바람도 불길이 커짐에 따라 점점 거세어지면서 불이 타오르는 쪽을 향해 불어가고 있었습니다.

와우산의 꿩들이 불이 붙어오는 반대쪽을 향해서 피난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큰 꿩들은 큰 날개를 펼쳐서 몇 번씩 날아올라 벌써 멀리 달아났고, 알에서 갓 깨어난 꺼병이들을 데리고 있는 어미 꿩들은 띠풀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며 꺼병이들을 피난시키고 있었습니다.

꿩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메뚜기들도 포르르 포르르 날아 도망치고 있었고, 뱀들도 길다란 몸뚱이로 풀숲을 헤치며 미끄러지듯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뱀들이 달아나는 길목 곳곳에 아직 부화되지 아니한 꿩알들이 있었지만 뱀들은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빨리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큰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까순이는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불길은 까순이가 있는 쪽을 향해 점점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여보, 까순이. 어서 달아납시다!”

장돌이도 몸이 달아오르는지 이리 푸드득, 저리 푸드득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까순이는 알 주위를 종종 걸음으로 서성대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였습니다.

“여보, 어떻게 해요? 귀여운 우리 알들을 버리고 갈 순 없잖아요.”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달아나지 않으면 모두 불에 타 죽는단 말이오.”

“그래도 안돼요. 우리 알들이 불에 타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요.”

“그럼 어떡하란 말이오. 알들을 부리로 물어 나를 순 없잖소. 여보 이 알들은 놔두고 불길을 피했다가 다시 더 예쁜 알들을 낳아 기릅시다.”

장돌이가 아무리 까순이를 달래보았지만 까순이의 마음은 이미 굳어 있었습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알을 깨고 나와 삐악거릴 꺼병이들을 그대로 두고 달아날 수는 도저히 없었습니다.

“여보, 당신만이라도 어서 달아나요. 난 이 알들을 지키겠어요.”

불길이 벌써 가까이 다가와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까순이는 알을 품어 앉은 채 아예 눈을 꼭 감아버렸습니다.

“좋소. 그럼 나도 당신과 함께 남아 우리 알들을 지키리다.”

장돌이도 까순이의 몸 위로 날개를 펴고 덮어 앉았습니다.

“당신은 어서 달아나요. 나 혼자 이 알들을 지킬 테예요.”

그러나 장돌이는 까순이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날개를 더 활짝 펴서 까순이의 몸을 덮었습니다.

불길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확확 뜨거운 기운이 장돌이와 까순이의 몸 위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래도 장돌이와 까순이는 알을 꼬옥 품은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상수리 나뭇잎에 붙었던 뜨거운 불똥 하나가 날아와 장돌이의 날개에 떨어졌습니다.

“으악, 뜨거워!”

더 이상 뜨거워서 견딜 수 없게 된 장돌이는 엉겁결에 펄쩍 뛰어 날아올라 불을 피해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돌이의 날개에 떨어진 불똥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날개에 불이 붙은 장돌이는 불을 끄려고 몸을 굴리고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불은 삽시간에 온 몸을 휩싸고 말았습니다.

띠풀, 억새풀들을 태우던 불들이 날아 들어와 까순이의 깃털들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까순이의 몸도 어느새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까순이는 부리로 흙을 파헤쳐 머리를 흙 속에 박고 온 몸으로 알을 꼬옥 감싼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불길이 장돌이와 까순이의 깃털을 모두 태우고 살을 태우기 시작했을 때에는 더 이상 뜨거움을 느끼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장돌이와 까순이는 몸을 태우고 있는 불길 속에서 눈을 꼬옥 감고, 품고 있던 알에서 깨어난 꺼병이들과 함께 와우산 푸른 풀밭 위로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습니다.


(3)


와우산에 큰 산불이 났다고 텔레비전 뉴스에 방송이 되던 날, 기원에 갔던 아버지는 은아네 식구들의 소식을 알아왔습니다.

“여보, 오늘 그 사람을 만났지.”

아버지는 현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평소의 아버지답지 않게 부산을 떨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누구…… 말예요?”

“그 왜 있잖소. 얼마 전 제주도에 효도 관광을 갔다가 혼자 남겨졌다고 하며 신문에 났었던 할머니 말이오.”

“엄마, 전에 우리 반이었던 은아 할머니 말이에요.”

“아니, 그러면 그 할머니를 만났단 말인가요?”

“그게 아니라, 그 할머니의 아들, 은아 아버지를 만났단 말이오.”

엄마는 놀라는 얼굴이 되어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몰랐습니다.

“아빠, 어디에서 은아 아빠를 만났어요?”

아버지는 그제야 숨을 돌리고 은아 아버지를 만난 이야기를 차근차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둑을 밥먹기 보다 좋아하는 아버지는 그 날도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늘 가는 동네 기원으로 갔습니다. 기원에 가면 바둑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가 있어서 내기 바둑을 두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심심치 않게 지내다 올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기원에 들어섰을 때는 아직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곳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그 옆에서 두 사람이 바둑 두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자 출입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무심히 들어오는 사람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출입문으로 들어서던 사람도 아버지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은아 아버지였습니다.

“아니 이거 후배 아닌가?”

나이가 위인 아버지가 먼저 반가운 얼굴을 하며 일어나 손을 내밀었습니다.

“예, 선배님을 여기서 다시 뵙게 될 줄이야……. 선배님께서는 여기 웬 일이십니까?”

“전에 살던 동네에서 이 동네로 이사를 왔지. 후배는 이 곳에 웬 일로…….”

“저도 며칠 전 이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은아 아버지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아무튼 반갑네. 전에도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이젠 다시 샅은 동네에서 살게 됐군.”

“예, 그렇군요.”

아버지와 은아 아버지는 곧 함께 저녁내기 바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바둑을 두면서 아버지는 얼마 전에 보았던 신문 기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직접 물어보기는 어쩐지 좋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자당님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자당님께서는 안녕하신가?”

“예, ……. 덕분에…….”

은아 아버지는 대답을 하면서도 얼굴에 나타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은아 아버지의 그런 표정을 보고도 못 본 척 바둑판에만 눈을 둔 채로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언제 자당님께 인사도 드릴 겸 자네 집을 방문하겠네.”

아버지의 말에 은아 아버지는 난처한 얼굴이 되며 안절부절못하였습니다.

“……, 어머니께서는 요즘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부산에 사는 동생네에 간다고 하여 거기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런가? 그럼 다음 기회에 자당님께서 올라오셨다고 하면 방문하여 뵙기로 하겠네. 자, 자네 대마가 죽었네.”

“하하, 그렇군요. 제가 졌습니다 자, 나가시죠. 약속대로 저녁을 사겠습니다.”

아버지와 은아 아버지는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때 식당의 텔레비전에서는 와우산에 산불이 나서 산을 온통 태우고서야 불길이 잡혔다는 저녁 뉴스가 방송이 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와우산 두 봉우리 사이에는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불로 산소의 풀들이 모두 타 버리고 돌담들이 무너졌을 것 같았습니다.

“와우산에는 조부님의 산소가 있는데 당장 내려가서 산소를 살펴봐야겠는걸.”

“아, 선배님께서도 와우산에 조부님의 산소를 쓰셨군요. 저의 조부님도 그 곳에 산소를 썼지요.”

“아, 그런가? 이거 우리 두 사람이 이만저만한 인연이 아닌걸. 게다가 우리 현경이와 자네 딸이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다고 하는 것 같더군.”

아버지의 말에 은아 아버지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버지는 문득 젊은 시절 군대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훈련을 받던 중 추적 활동을 하며 산불이 났던 산을 올랐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알을 품은 채 불에 타 죽은 꿩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꿩이 알을 깰 시기가 되었으므로 어쩌면 그 때처럼 알을 품고 죽은 꿩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죽은 꿩을 은아 아버지에게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후배, 우리 이번 주말에 함께 와우산에 다녀오도록 하세.”

“아니, 와우산에는 왜요 ?”

은아 아버지는 의아스러운 얼굴을 하고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와우산에 불이 났다니까 조부님의 산소가 걱정되는군. 산소의 풀도 다 타버렸을 것이고, 돌담도 무너졌을 테니 가서 살펴보고 손질하도록 하세.”

“선배님만 다녀오도록 하시죠. 마침 저는 회사에 조그만 일이 있는 데다가 고향에 친척들이 있으니 친척들이 살펴보겠죠.”

“이 사람아,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닐세. 친척들이 돌본다고는 하지만 자손된 도리로서 이럴 때는 한 번 산소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야. 마침 우리 둘이 다 와우산에 조부님의 산소가 있으니 함께 가 보자는 거야.”

은아 아버지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주말에 함께 와우산으로 가기로 했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현경이는 아버지를 따라 와우산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아빠, 저도 함께 가요.”

“그래 함께 가자꾸나. 당신도 함께 갑시다. 은아네 집에 연락해서 은아랑 은아 엄마도 함께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선뜻 대답했습니다.

“야, 신난다!”

현경이는 주말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4)


와우산은 불에 타다 남은 시커먼 잔해들로 가득했습니다.

길다랗게 자라던 풀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아이들의 서툰 가위질로 깎은 머리처럼 이 곳 저 곳에 타다 남은 나무들이 시커멓게 그을린 가지를 앙상하게 벌리고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뻣뻣한 억새풀도 타 버리고, 얽히고 설켜 사람들의 길을 가로막던 가시나무들도 모두 타 버려서 산을 올라가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나무와 풀들이 없는 산을 스치는 바람은 더운 불씨를 그대로 품고 있는 듯 제법 후끈거렸습니다.

그러나 현경이와 은아는 그런 더위에는 아랑곳없이 신나는 강아지들 마냥 손을 잡고 껑충거리며 아버지, 어머니들보다 먼저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 반에서 공부하다 헤어져 있었는데 다시 만나게 되니 더욱 신이 났던 것입니다.

은아의 부모는 별로 내키지 않은 길을 현경이 아버지의 권유로 온 길이었고, 현경이 어머니와는 처음 만나는 것이어서 아직은 서먹서먹해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산불을 조심해야 한다느니, 와우산의 지세가 어떻다느니, 명당 자리가 어쩌느니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 버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찾는지 불타버린 곳곳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빠, 어디로 올라가야 돼요?”

저만치 앞서 올라가던 현경이가 뒤로 돌아 보며 크게 소리쳐 물었습니다.

“그대로 주욱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저어기 두 개의 무덤이 보이지 않니? 거기가 너의 증조 할아버지 산소란다.”

두 아이는 다시 손을 잡고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아빠, 엄마, 빨리 오세요.”

현경이와 은아는 손을 모아 외쳤습니다.

“그래.”

아버지, 어머니들은 대답을 하면서도 산을 오르는 걸음이 여전히 느렸습니다.

다 올라온 아버지, 어머니들은 곧장 산소로 갔습니다.

무덤 위로 길게 자라고 있어야 할 풀들이 모두 타 버려서 시커먼 재들만이 무덤 위에 쌓여 있었고, 불에 그을린 비석도 밑동부터 거뭇거뭇 얼룩이 져 있었습니다.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도 헝클어진 곳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아버지는 무덤으로 가서 비석 위의 재를 털어 내고는 천천히 쓰다듬으며 비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현경이와 어머니와 함께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불에 타다 남은 나뭇가지들을 주워 던져 버리고 무덤 위의 재를 쓸어내었습니다. 쓰러져 있는 돌담도 다시 올려놓고 나니 거무스름하게나마 제법 무덤 주변이 깨끗해졌습니다.

장마철이 되어 비가 흠뻑 내려 불타 버린 산을 적셔 주면 질긴 생명력을 가진 풀들이 다시 뿌리에서 싹을 띄워 올려 무덤을 덮고, 조금씩 조금씩 산을 푸르게 할 것입니다.

일을 다 마친 아버지는 무덤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근처의 상수리나무들은 잎과 작은 가지들이 모두 불에 타버려서 시커먼 굵은 가지들만을 벌린 채 앙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무덤에서 은아네 식구들이 무덤 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보게. 일이 아직 멀었는가?”

“아닙니다. 이제 다 끝나갑니다.”

“빨리 끝내고 내려가세. 나무가 다 타버려 쉴 그늘이 없으니 덥기만 하네.”

“예.”

아버지는 은아 아버지와 말을 주고받으며 불타 버린 상수리나무 아래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눈이 상수리나무 아래에 머물렀습니다.

“이보게. 잠시 이리 와서 이걸 보게나. 얘들아, 너희들도 와서 보아라.”

“뭡니까?”

“땅 속에 묻어두었던 보물이라도 발견했나요?”

“뭐예요, 아빠?”

모두들 궁금해하며 상수리나무 아래로 왔습니다.

그 곳에는 꿩 두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털이 모두 타 버리고 머리와 날개까지 없어져 몸뚱이 뿐인 채로, 또 한 마리는 역시 털이 타 버리고 머리를 땅 속에 박은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이건 죽은 꿩 아닙니까?”

“불이 날 때에 달아나지 못하고 타 죽은 게로군요.”

“그게 아닐 거야. 달아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냥 남아서 불에 타 죽었을 거야.”

“그럴 리가요?”

모두의 얼굴이 더욱 이상해졌습니다.

“저 꿩을 뒤집어 보게나.”

은아 아버지가 막대를 주워 들고 얼굴을 찡그리며 죽은 꿩을 뒤집었습니다.

“아니, 이건!”

거기에는 다섯 개의 꿩알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꿩들은 불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을 텐데도 알을 지키기 위해서 품에 품은 채 불에 타 죽은 거라네.”

모두들 말이 없이 죽은 꿩과 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미 꿩이 지켜 준 보람도 없이 알들도 죽어 버리고 말았군. 어미 꿩이 죽어 버려서 더 이상 따뜻이 품어 줄 수가 없게 돼버리고 말았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가슴속에서는 작은 울림들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 낱 날짐승들도 이러는데 우리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야 오죽하겠는가?”

은아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표정이 없는 멍한 눈을 하고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 일이 다 끝났으면 내려 가세나. 난 고향에 들러 늙으신 부모님을 뵙고 가려네. 돌아가신 조상의 산소를 돌보는 것보다 살아 계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이 되네.”

아버지의 끝말은 은아 아버지, 어머니의 가슴속에 담아 주고 싶어하던 말이었습니다.

은아 아버지, 어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없는 그 눈들은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부산에 가 계시던 은아 할머니께서 서울로 올라 오셨다고 하며, 은아네 식구들이 현경이네 식구들을 초대한 것은 와우산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난 후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