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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안개나라로 간 아이

 <창작동화>

안개 나라로 간 아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길에는 하얀 안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연둣빛 새 잎사귀와 붉은 철쭉 사이로 안개가 흐를 때면 안개는 연둣빛과 붉은 빛으로 살짝 물이 들었다가 까만 아스팔트 길 위로 하얗게 깔려 흐르곤 하였습니다.

안개는 꼬불꼬불하게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서 위로 올라갈수록 더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제주시를 떠나 서귀포로 넘어가는 버스가 성판악을 지나 숲터널까지 왔을 때, 안개는 단풍나무 사이로, 상수리나무 위로 자장가를 부르듯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기사님, 차를 세워 주세요. 빨리요.”

갑자기 외치는 소리에 안개가 흐르듯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던 기사님은 얼른 길옆으로 버스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카세트 볼륨을 팍 줄였습니다. ‘도나우강의 잔물결’이 갑자기 흐름을 멈추었습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향이 아버지가 급히 앞으로 나왔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향이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여기는 버스를 세우는 곳이 아닌데요.”

“저기 우리 향이가 나를 부르고 있어요. 난 우리 향이에게 가야 합니다.”

향이 아버지는 숲 속을 가리키며 버스에서 내리려고 출입문으로 다가갔습니다. 버스 안의 모든 눈들이 향이 아버지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 차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풀잎을 쓰다듬고 있는 안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사님, 빨리 문을 열어 주세요. 우리 향이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잖아요.”

기사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버스 출입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버스 승객들도 기사님처럼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향이 아버지는 급히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향이 아버지가 하얀 보자기에 싼 작은 상자를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버스는 향이 아버지를 내려놓고 안개가 깔린 아스팔트를 내달아 서귀포를 향해 떠나가 버렸습니다.

향이 아버지는 안개가 감싸고 있는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향이야, 아빠가 왔다.”

향이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아빠, 어서 오세요. 안개나라로 아빠를 초대할게요.”

향이가 안개 속에서 아버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향이야.”

아버지는 향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향이의 손에 이끌려 안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나가던 차의 승객들이 안개 속에 홀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안개 속에 왜 혼자 숲 속을 헤매고 있지?”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향이의 손에 이끌려 안개가 짙어지고 있는 숲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안개가 발 밑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자욱히 깔려 몇 발자국 앞을 보기가 힘이 들었지만 아버지는 신기하게도 돌이나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향이야, 여긴 어디니?”

아버지는 안개를 향해 손짓하며 물었습니다.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향이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귀에 메아리처럼 울려왔습니다.

“아빠, 여긴 안개나라로 가는 길이에요.”

“그래? 참 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이구나. 솜털같이 폭신하고 부드러운 안개들이 폭신하게 깔려 있구나.”

“안개 나라는 여기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에요. 무지개 빛 안개들이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는 곳이에요. 그 곳에 가면 새로 사귄 제 친구들도 많이 있어요.”

“우리 향이가 자랑하는 걸 보니 어서 빨리 가보고 싶구나. 친구들도 아빠에게 소개시켜 주련?”

“예, 아빠. 어서 가요.”

아버지는 좋아라고 껑충거리는 향이를 따라 안개 나라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숲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안개가 더 짙어져 앞을 가렸지만 향이를 따라가는 아버지에게는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안개나라로 가까이 갈수록 하얗던 안개가 조금씩 여러 가지 색깔을 띠고 있었습니다. 공기는 점점 따뜻해졌고, 얼굴을 간지르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아빠, 빨리 오세요. 여기가 안개 나라예요.”

안개나라에 도착하자 아버지의 손을 놓은 향이는 깡총거리며 먼저 뛰어가 폴짝거리며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향이가 뛰어가는 곳으로 눈을 돌린 아버지의 눈앞으로 안개나라가 펼쳐졌습니다.

안개나라는 향이가 다니던 학교 운동장만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안개나라에는 오색 빛깔 안개들이 자운영 꽃밭처럼 낮게 깔려 흐르고 있었습니다.

“애개. 안개나라가 요렇게 작아?”

“그럼요. 이 안개나라는 어린 안개들만 사는 나란 걸요.”

“어린 안개들?”

“내 친구들을 보면 아시게 되요.”

아버지는 향이의 손짓에 이끌려 작은 안개나라로 들어갔습니다. 포근한 공기가 아버지의 주위를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오색 안개들이 춤을 추며 아버지의 주위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이 분이 내 아빠란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이셔.”

향이는 오색 안개들을 향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오색 안개들이 다가와 아빠와 향이를 포근히 감쌌습니다.

“향이 아버지, 안개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색 안개들의 이야기에서는 오색 향기가 폴폴 풍겼습니다.

“아빠, 우리 친구들이 아빠를 환영하는 춤을 추겠대요.”

향이는 그 오색 안개들과 같이 춤을 추며 아버지의 둘레를 맴돌았습니다.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다가 가슴에 포근히 안기기도 하고, 아버지의 앞에서 나풀거리다가 아버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뒤로 돌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높은 나뭇가지 끝에 살짝 걸려 오색 꽃을 가지에 피우고, 때로는 바닥으로 낮게 깔려 아름다운 이불을 깔아놓은 듯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빠, 제 춤 어때요?”

향이는 아버지의 어깨에 살며시 내려앉아 귀에 대고 물었습니다.

“음, 하늘 나라에서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는 것 같구나.”

“고마워요, 아빠. 전 여기서 안개 친구들과 어울려 예쁜 춤을 추며 살아가게 됐어요.”

“우리 향이가 늘 소원하던 대로 됐구나.”

아버지는 향이와 안개 친구들의 춤을 바라보며 눈에 맺히는 굵은 눈물을 쓰윽 닦았습니다. 아버지의 눈앞에는 향이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가 좌악 펼쳐져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향이야, 우리 이쁜 공주. 룰루루루 까꿍. 우리 공주 크면 어떤 사람이 될까? 미스 코리아가 될 거야.”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애기를 놓고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세요?”

“벌써부터가 뭐야? 이만큼이나 컸는데. 조금 있으면 당신만큼 클 거야.”

“당신도 참.”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린 향이를 어르며 서로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향이의 옹알대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집안에는 온통 행복의 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향이는 아버지 어머니의 바램처럼 이쁘게 이쁘게 자랐습니다.

향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향이보다 더 설레는 가슴을 안고 향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며 색연필로 ㄱ ㄴ 글씨를 쓰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향이를 보며 아버지 어머니는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기만 하던 향이네 집에 불행이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향이 어머니가 교통 사고로 향이와 아버지의 곁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향이 엄마를 잃은 슬픔을 딛고 엄마가 있을 때보다 향이를 더 곱게 키우려고 애썼습니다.

향이는 발레리나를 꿈꾸며 무용 학원에 다녔습니다. 향이의 춤추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 백조가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른 소나무 숲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듯 했습니다.

향이는 학원에서 여는 발표회에도 나가고, 여러 무용 대회에도 나가서 큰 상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심사를 맡았던 분들은 향이의 무용 솜씨를 칭찬하며 앞으로 무용으로 한국을 빛낼 어린 백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버지는 향이가 춤추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향이가 발표회 준비를 위해서 무용 연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따르릉~.

회사에서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사무실에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부장님, 전화 받으세요.”

“네, 고마워요. 여보세요……. 뭐라고요?”

전화를 받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갑자기 급하게 떨려 나왔습니다.

“어느 병원으로 갔어요? ……. 예 예. 곧 가지요.”

전화는 무용 연습을 하던 향이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향이는 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하였습니다. 검사 결과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아버지에게는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향이의 병명은 급성백혈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불행한 일이 생기는 집에는 불행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이 향이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절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향이를 살려야만 했습니다. 살던 집을 팔고 그 돈을 향이의 치료비로 썼습니다.

약물 치료 때문에 향이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빠진 머리카락 때문에 향이는 털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병이 조금 나아져서 병원에서 퇴원한 향이는 오랜만에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향이를 위로하며 병이 빨리 나아서 같이 뛰어 놀자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격려, 그리고 아버지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향이의 병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집에 있는 날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향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주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향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 있던 향이에게 텔레비전이 러시아 발레단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아빠, 나 병이 빨리 나아서 저 발레단들처럼 세계 무대에서 공연할거야.”

“그래, 우리 향이는 꼭 큰 무대에서 춤을 추는 백조가 될 거야.”

발레단 공연 광고를 보는 향이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향이의 생명의 꽃이 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버지는 향이가 가고 싶은 곳에 다 데려가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발레 공연 입장권 두 장을 샀습니다.

입장권을 받아 든 향이는 파리한 얼굴에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 그 입장권을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잠을 잘 때에도 머리맡에 두고, 깨어서는 달력을 바라보며 공연 날을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서울로 가는 날, 버스를 타고 한라산 횡단도로를 넘어갈 때에도 오늘처럼 안개가 끼어있었습니다.

성판악 가기 전  숲터널을 지날 때였습니다. 차창 밖으로 안개 낀 숲을 보고 있던 향이가 아버지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빠, 나 죽으면 안개가 될 거야.”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아파도 죽음이란 말은 입밖에 꺼내 본 적이 없는 향이의 입에서 죽음이란 말이 나왔던 것입니다.

“죽긴 왜 죽는다고 그런 소리를 하니? 다시 건강해져서 아빠하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아니야, 아빠. 나 다 알고 있어. 이젠 병원에서도 내 병을 못 고쳐서 집에 돌아와 있었다는 것을.”

“그렇지 않아. 향이는 다시 건강해 질 수 있어. 그래서 세계 무대에서 백조의 춤을 보여 줘야지.”

아버지는 향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가슴속에서는 슬픔의 샘이 펑펑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난 죽으면 안개가 되어 저 숲 속에서 춤을 출 거야. 저 봐요. 안개의 춤이 얼마나 멋이 있어요?”

“얘, 그런 소리하면 못 쓴다. 힘을 내어서 다시 건강해져야지.”

옆자리에 탄 아주머니가 안타까운지 향이를 다독였습니다.

그러나 향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에요. 제 병은 제가 알고 있어요. 백혈병인 걸요. 제가 죽으면 제 하얀 피가 하늘로 올라가 안개가 될 거예요.”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향이는 이미 자기가 걸어가는 길의 끝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속에 샘솟던 슬픔의 샘은 큰 파도가 되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는 털모자를 쓴 향이와 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앉아서 러시아 발레단의 발레 공연을 보고 있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선율이 무대 위를 흐르며 하얀 옷의 날씬한 백조들이 추는 춤이 관객들의 시선을 온통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발끝을 살짝 올려 걸으며 춤을 추는 하얀 백조들의 모습을 보며 향이의 뺨이 붉으레 물들었습니다. 숨소리조차 사라진 듯한 객석에는 향이의 눈만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짝짝짝짝짝.

요란한 박수와 함께 공연이 끝났습니다. 감동의 열기가 가득한 공연장을 떠날 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향이야, 우리도 그만 가야지.”

향이를 업고 나가려던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향이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숨을 거칠게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향이야, 향이야!”

“헉헉~ 헉헉~”

아버지가 향이를 흔들었지만 향이의 숨은 더 거칠어지고만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빨리 앰뷸런스를 불러 주세요! 우리 향이가, 우리 향이가…….”

아버지는 말을 맺지 못하고 향이를 안고 달려나갔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앰뷸런스 안에서 향이의 숨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일그러졌던 향이의 얼굴은 차차 평온을 찾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막 도착했을 때 향이는 숨을 멈추고 생명의 꽃을 떨구었습니다. 이제 자기가 걸어가던 길의 끝까지 다 다다랐던 것입니다. 향이의 얼굴에는 백조의 미소가 피어 있었습니다.

향이의 눈을 감기는 아버지는 눈에서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솟아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울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나올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아 아버지는 마른 울음을 가슴으로만 울었습니다.

화장터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연기는 솟아오르자마자 곧 안개처럼 흩어져버렸습니다.

“백조 같은 우리 향이야, 잘 가거라. 너의 생명의 꽃은 오래 피지 못하고 지고 말았지만, 아빠의 가슴속에 너의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살련다. 너는 저 세상에서 안개가 되어 춤을 추겠다고 했지. 안개가 되어 떠나는 너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웃고 있단다. 이젠 아픔을 잊고 안개가 되어 맘껏 춤을 추게 된 너를 생각하며 아빠는 더 이상 울지 않으마.”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쓰윽 눈물을 훔치고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앞에서 펼쳐져 돌아가던 필름이 끝났습니다.

아버지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안고 있던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단지 속에 손을 넣은 아버지는 곱게 빻은 가루를 한 줌 꺼내어 안개 속에 뿌렸습니다.

가루는 금세 안개 속으로 흩어져 날았습니다. 가루와 함께 흩날리는 안개 속에서 향이의 얼굴이 웃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꾸 자꾸 가루를 날렸습니다.

너훌너훌.

안개 속에서 향이의 독무(혼자 추는 춤)가 시작되었습니다.

짝짝짝짝.

한참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향이의 춤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