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의 까치소리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아빠, 어버이날을 축하드려요.”
“엄마, 어버이날을 축하드려요.”
솔이와 나리는 어제 동네 가게에 가서 사 두었던 카네이션을 아빠, 엄마의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비록 비닐로 만들어진 싸구려 카네이션이었지만,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아껴두었던 돈으로 산 꽃이기 때문에 아빠, 엄마의 가슴에 척 달아드리고 나니, 솔이와 나리의 마음은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습니다.
“허허허, 나도 살다보니 우리 솔이와 나리 덕분에 가슴에 꽃을 달아보는구나. 여보, 어버이 날 가슴에 꽃 달아보기는 아마 처음이지?”
아빠는 함박꽃 같은 웃음을 띠며 싱글벙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눈에서는 또록또록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여보. 왜 우는 거요? 당신은 우리 애들이 꽃 달아준 게 기쁘지 않소?”
“기뻐요. 그런데 ……. 흐흑.”
엄마는 말을 맺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울음을 삼켰습니다.
“당신 또 서울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군.”
“미안해요, 여보. 꽃을 다니까 부모님 생각이 더 나서 그래요. 꽃 달아 드릴 사람도 없고, 찾아가 뵐 수도 없고. 흑흑.”
“당신에게 내가 더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오. 부모님 뜻을 거역하고 나 같은 장애인에게 시집와서 고생만 하게 했으니 말이오. 언제 한 번 날을 잡아서 찾아 뵙도록 합시다.”
아빠가 엄마의 손을 잡고 가만히 쓰다듬었습니다.
깍 깍 깍.
솔이네 감나무에서 까치 소리가 들렸습니다. 솔이와 나리는 손을 이마에 대고 올려다보았습니다. 어미 까치가 둥지에 앉아 새끼들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는데,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보다.”
“정말이에요, 아빠?”
“그럼. 아빠와 엄마가 처음 만났던 날 아침도 바로 이 나무 위에서 까치가 울었거든. 자, 이제 아빤 공장에 나가봐야겠다.”
엄마가 아빠를 안아 들어서 휠체어에 태워드리고 무릎에 덮개를 덮어드렸습니다.
“여보, 다녀오세요.”
“아빠, 다녀오세요.”
아빠는 휠체어 바퀴를 두 손으로 돌리며 대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아빠에게는 휠체어가 발이었습니다.
아빠가 나가시자 솔이와 나리는 손잡고 동네 놀이터로 놀러 갔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한창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솔이와 나리가 놀고 있는 곳으로 까만 승용차가 먼지를 뒤로 날리며 달려왔습니다.
“와, 멋진 차다.”
“오빠, 저 차에 탄 사람이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 아닐까?”
“우리 집에 저런 멋진 차를 탄 사람이 왜 찾아오니?”
“아침에 까치가 울었으니까.”
“바보 같은 소리 말아.”
그런데 솔이와 나리의 앞에 와서 승용차가 딱 멈추고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내렸습니다.
“얘들아, 이 동네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어느 집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니? 같이 사는 여자는 서울 사람이고 말야.”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무척 부드러웠고,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복지 마을이기 땜에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 아빠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걸요.”
“우리 엄마가 고향이 서울이래요.”
나리도 할아버지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그래? 바로 찾은 것 같군.”
할아버지는 알지 못할 말을 혼자 하고는 솔이와 나리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차안에 타고 있는 할머니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얘들아, 너희 집으로 우릴 데려다 주지 않을래?”
“왜요? 할아버진 누구세요?”
“나중에 차차 알게 될게다. 너희 아빠 엄마가 내가 찾는 사람일 것 같아서 말야. 자, 여기 같이 타서 너희 집을 가르쳐 주려무나.”
솔이와 나리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영문도 모르는 채 승용차에 탔습니다.
솔이가 가리키는 대로 솔이네 집 앞에서 차가 멈추고, 솔이와 나리는 곧 차에서 내려 대문 안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엄마, 엄마. 우리 아주 멋진 차 타고 왔어요. 차에 탄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찾아 왔어요.”
“얘가 왜 이리 호들갑이니? 천천히 이야기하려무나.”
점심 식사 준비를 하던 엄마가 달려 들어오면서 이야기하는 나리를 나무라며 일어섰습니다. 그러다가 대문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고 놀란 얼굴이 되어 말을 더듬거리며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를 못했습니다.
“아, 아버, 아버지. 어, 어머니.”
“얘야!”
할머니가 달려와 엄마를 덥석 껴안았습니다.
“어머니!”
엄마는 할머니에게 매달려 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빠가 휠체어를 굴리며 대문으로 마악 들어오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자, 장인 어른.”
아빠도 역시 말을 더듬거리며 놀란 표정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 날 용서해 주게나. 우리 늙은이들의 욕심으로만 생각해서 딸이 두 다리가 없는 자네와 결혼했다고 내쫓았던 게 잘못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네. 미안하이.”
“고맙습니다, 장인 어른. 저 사람이 제 다리가 되어 준 덕분에 제가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이렇게 성공하여 조그마한 복지 공장이나마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솔이와 나리를 덥석 안았습니다.
“솔이야, 나리야, 이 분들이 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란다.”
“할아버지!할머니!”
솔이와 나리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품에 안겨 목이 메었습니다.
아빠, 엄마가 가슴에 달았던 카네이션을 떼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어버이날을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김서방.”
“고맙다. 얘야.”
모두 목이 메어 울먹이며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깍 깍 깍.
감나무 위에서 까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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