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 썸네일형 리스트형 <창작동화> 태풍과 어머니 태풍과 어머니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언제 태풍이 불었는가 싶게 아침엔 고요가 찾아왔다. 소년은 밤 새 무서움에 떨며 잠을 자지 못한 눈을 뜨고 조심조심 문을 열었다. 밤새도록 덜컹거리던 대청문이 삐꺽 소리를 낼 때, 소년은 가슴을 떨었다. 마당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마당에 가득 깔아 놓았던 보릿짚은 갈가리 찢어 내버린 헝겊처럼 한 구석에 날려가 쌓여 있었고, 더러는 돌담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큰갯물 동산의 소나무 잎들이 날려와 빗물에 잔뜩 젖은 대청문과 툇마루에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소년은 고무신을 찾았다. 댓돌 위에 벗어 두었던 고무신은 한 짝은 빗물을 담은 채 댓돌 옆에 떨어져 있었고, 다른 한 짝은 보릿짚 더미 속에 처박혀 있었다. 소년은 고무신에 고여 있는 빗물을 쏟아 버리고 댓돌에 탁탁 .. 더보기 <창작동화> 작은 약속 작은 약속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길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조금씩 내리던 눈이 산길을 올라 갈수록 점점 굵은 송이로 변하여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없는 탓인지 내리는 눈은 나뭇가지 위에 살포시 앉아 눈꽃을 만들고 있어서 오히려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숲이 우거져 나뭇가지들이 길을 가득 덮고 있어서 좁은 숲길 땅 위까지는 아직 쌓인 눈이 많지 않아 별로 미끄럽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였습니다. 땅 위까지도 눈이 잔뜩 쌓였다면 산길을 올라가기가 어려워 20년 전 아이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할는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숨이 가빠진 선생님은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바위의 눈을 입으로 후후 불어내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선생님의 머리 위에, 몸 위에.. 더보기 <창작동화> 와우산의 꿩 와우산의 꿩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1) “이런 세상에 못된 사람들이 있담. 쯧쯧.”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가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고 계셨습니다. “뭐예요, 아빠?” 현경이는 아버지 곁으로 가서 아버지가 보고 계시는 신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것 보아라. 여기 이 기사하고 사진 말이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에는「잃어버린 孝心(효심)」이라는 굵은 제목과 함께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늙수그레한 할머니의 사진이 나와 있었습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제주도 관광 여행을 갔던 80 대 할머니가 여관에 홀로 남겨진 채 발견되었다는구나. 경찰에서는 이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싫어서 효도 관광을 핑계로 제주도까지 모시고 가서는 버리고 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는데.. 더보기 <창작동화> 어버이날의 까치소리 어버이날의 까치소리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아빠, 어버이날을 축하드려요.” “엄마, 어버이날을 축하드려요.” 솔이와 나리는 어제 동네 가게에 가서 사 두었던 카네이션을 아빠, 엄마의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비록 비닐로 만들어진 싸구려 카네이션이었지만,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아껴두었던 돈으로 산 꽃이기 때문에 아빠, 엄마의 가슴에 척 달아드리고 나니, 솔이와 나리의 마음은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습니다. “허허허, 나도 살다보니 우리 솔이와 나리 덕분에 가슴에 꽃을 달아보는구나. 여보, 어버이 날 가슴에 꽃 달아보기는 아마 처음이지?” 아빠는 함박꽃 같은 웃음을 띠며 싱글벙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눈에서는 또록또록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여보. 왜 우는 거요?.. 더보기 <창작동화> 안개나라로 간 아이 안개 나라로 간 아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산길에는 하얀 안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연둣빛 새 잎사귀와 붉은 철쭉 사이로 안개가 흐를 때면 안개는 연둣빛과 붉은 빛으로 살짝 물이 들었다가 까만 아스팔트 길 위로 하얗게 깔려 흐르곤 하였습니다. 안개는 꼬불꼬불하게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서 위로 올라갈수록 더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제주시를 떠나 서귀포로 넘어가는 버스가 성판악을 지나 숲터널까지 왔을 때, 안개는 단풍나무 사이로, 상수리나무 위로 자장가를 부르듯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기사님, 차를 세워 주세요. 빨리요.” 갑자기 외치는 소리에 안개가 흐르듯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던 기사님은 얼른 길옆으로 버스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카세트 볼륨을 팍 줄였습니다. ‘도나우강의 잔물결’이 .. 더보기 <창작동화> 아리야, 아리야 아리야, 아리야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사스레피나무 작은 숲을 확 헤친 선정이는 온 몸이 진득거리는 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허벅소의 맑은 물이 왈칵 선정이의 가슴으로 밀려들어와서 더위를 모두 쫓아버렸다. 내 건너편 숲의 터주대감인 구실잣밤나무 고목의 가지 사이를 휘파람 불며 뛰놀던 바람도, 내를 건너 선정이에게로 불어와서 머리카락을 나풀나풀 날렸다. “아이, 시원해!” 선정이의 입에서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누나, 가막골 바람이 모두 여기에만 모여 있나 봐.” 동철이의 재미있는 말에 선정이와 선영이가 깔깔 웃었다. 허벅소의 물은 맑기도 하지만 한여름인데도 시원했다. 물 속에 몸을 담근 선영이는 후텁지근한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나, 에어컨 공기로 늘 시원한 은행보다도 허벅소.. 더보기 <창작동화> 소리 없는 합창 소리 없는 합창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마루방 구석에 대충 개켜있는 어머니의 시장 옷에서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났습니다. 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놓고 장사하러 나갈 때면 입었다가 집에 돌아오면 벗어 놓곤 하는 옷입니다. 어머니는 비린내나는 시장 옷을 입으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방 가운데 조그맣게 접혀져 놓여 있는 학예회 안내장 위에 머물렀습니다. “아니야. 생선 장사를 나가야지. 하루 장사를 놓으면 얼마나 손핸데…….” 고개를 설레설레 젖는 어머니의 눈으로 안내장이 자꾸만 날아와 박혔습니다. 프로그램이 규형이의 눈빛이 되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오늘 학예회에 꼭 나오셔야 해요.’ ‘규형아, 미안하다. 엄만 장사를 나가야 하잖니. 엄마는 눈을 감고도 규형이가 합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엄마가 .. 더보기 <창작동화> 백로마을의 전설 백로 마을의 전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내겐 시를 써서 정리해 두는 노트가 있습니다. 이제 다시 펼쳐서 읽어보면 시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시들이 쓰여 있지만 내겐 아주 소중한 노트입니다. 어느 날 문득 그 노트를 펼쳐 보다가, 한 동안 눈이 머물며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작은 천연색 사진과 같은 시가 한 편 있었습니다. 백로 마을의 전설 - 백로 마을 바우 할아범 이야기 - 허허허 허허허 빈 웃음 날리는 할아범 백로가 떠나간 나무 끝 구름을 잡는다. 곶감이 무서운 호랑이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애고, 내 딸 청아 그 이야기만큼은 참 많이 늙었지. 둥우리 이고 천년 비바람 막아 늘 푸르렀거니 백로들의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둥구나무집 분이 선머슴 바우 그 널따란 가슴에 안겨 하얀 백로를 보며 새록새.. 더보기 <창작동화> 할아버지 놀이터 할아버지 놀이터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12 층 아파트에는 창문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창문들은 모두 꼭꼭 닫혀진 채로 열리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파트 사람들은 아무리 무더운 여름에도 결코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새어나갈까봐 더욱 꼭꼭 창문을 닫곤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아파트 놀이터의 나무에서 씨암 씨암 매미 소리가 들렸지만 창문들은 닫혀진채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12 층 아파트의 꼭 가운데 있는 707 호의 창문만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 창문으로 작은 얼굴이 고개를 내밀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벌써 한 시간 동안을 작은 얼굴은 창가에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다른 얼굴은 창문에 전혀 나타나지 .. 더보기 <창작동화> 할머니의 산딸기 할머니의 산딸기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할머니, 오늘도 산딸기를 따 오시는군요.” “으응, 뱅수 에미하고 성칠이 에미구만. 이거 우리 길용이 주려고 따 왔지. 우리 길용이가 산딸기를 참 좋아 하거덩.” 팽나무집 할머니가 등에 진 바구니를 앞으로 돌리며 쭈욱 허리를 폈습니다. 할머니가 내미는 바구니 속에는 누런 인동꽃이 가득 담겨 있었고, 산딸기를 싸서 묶은 모시잎이 인동꽃 위에 곱게 놓여 있었습니다. “아휴, 할머니. 참 많이도 따셨네. 어디 봐요.” 성칠이 엄마가 시장 바구니를 내려 놓고는 모시잎을 풀어헤쳤습니다. 푸른 모시잎 속에는 토끼 눈같은 빠알간 산딸기들이 또록또록 빛나고 있었습니다. “참 잘 익었네요. 빠알갛게 빛나는 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을 것 같네요.” 병수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서 얼른..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