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꾸는 아이의 글밭

숲에도 길이 있다 숲에도 길이 있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노루 짓는 소리만 들리는 숲에도 길이 있다 꼬부라지고 오르내리며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길 노루 짓는 소리 들리는 숲에는 암수 노루 서로 만나 걸어가는 길 나뭇가지 흔들리는 숲에는 바람이 속삭이며 지나가는 길 내가 걸어가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발자국 한 걸음마다 작은 길로 혹은 큰 길로 천천히 열리고 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낙엽을 밟으며 걷는 숲길의 저 끝은 보이지 않아도 이 길의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나는 걷는다. 더보기
5월엔 할미꽃이 진짜 늙는다 5월엔 할미꽃이 진짜 늙는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름 기슭 5월의 양지바른 무덤가에는 초록빛 바람이 불고 있다. 초록빛 바람 따라 초록빛들이 춤추고 있다. 새로 돋은 띠풀 잎새, 새 순을 단 소나무 바늘잎 거기 누구 혼자 하얀 춤을 추고 있다. 이젠 진짜 늙어버린 할미꽃의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을 맞으며 끊어질 듯 날아갈 듯 위태롭게 춤을 추고 있다. 젊어서도 허리가 구부러져 서러운 할미 소리를 들어야 했던 꽃 어버이날이 되어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꽃 5월엔 할미꽃이 늙어서 진짜 할미가 된다. 어버이날이면 찾아가는 우리네 늙은 어머니들 올 5월엔 꼬부라진 허리로 자식들 기다리지만 내년 5월도 하얀 머리 세우고 기다리려나? 5월엔 할미꽃이 진짜 늙는다. 더보기
입 안 가득 초피향 입 안 가득 초피향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울적한 날 오름 오르는 길 반가운 초피나무 두어 잎 뜯어 입안에 넣으면 혀 끝을 녹이며 알싸하게 퍼지는 향 가슴 속 울적한 기분 끌어올려 소나무 사이로 날려보낸다. 더보기
들풀도 이름이 있다 들풀도 이름이 있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길가에서 들판에서 아무 곳에서나 자라는 들풀들이지만 그들의 삶 따라 그들의 생김 따라 소중한 이름들이 있다 들풀들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는다 바람이 지나가며 잎새를 쓰다듬고 가랑비가 촉촉이 내려 작은 뿌리에 힘을 보태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 줄 안다 들풀들은 이름을 불러 주면 빙그레 웃는다 “강아지풀아.” 다정히 부르면 작은 꼬리꽃을 내밀어 살랑살랑 흔든다 “애기똥풀아.” 부르면 노란 맑은 꽃을 수줍게 피워 미소를 보낸다 이슬 맺힌 새벽 들판에 나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는 들풀들이 자라는 것을 보라 조용한 산길 천천히 걸으며 들풀들의 이름을 불러 보라 수줍게 고개 숙이며 네게 보내는 작은 웃음을 보라. 더보기
동백꽃 지는 날 동백꽃 지는 날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날이 따스해진다고 누가 슬퍼할까 동백꽃이 진다고 누가 슬퍼할까 햇살이 온 누리를 데우면 곳곳에 꽃들이 가득 피어나는 걸 동백꽃이 져도 다시 눈 속에서 피어나길 기다리면 되는 걸 그러나 동박새는 울고 있지 울음소리 점점 멀어지고 있지 꽃이 피는 것만 바라는 사람아 꽃이 지는 것도 뒤돌아보렴. 붉은 꽃잎 열어 동박새에게, 벌에게 꿀을 만들어 먹이고 이젠 삶을 다하여 기쁜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꽃이 더욱 아름다운 걸 보렴. 더보기
오름에 오르면 오름에 오르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름에 오르면 혀끝을 스치는 바람 솔향이 혀끝에 감겨온다 저기 마라도에서 달려온 봄이 오름 끝자락에 머물면 살며시 볼 붉히는 진달래 사랑하는 사람아 네 가슴 속에서도 진달래 꽃망울을 터뜨리려무나 내 가슴 속에서는 솔향을 만들어 네게 보내주마. 더보기
오름 오르는 길 오름 오르는 길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목표는 저 봉우리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다시 끊어지는 길 …… 길 …… 탁 트인 풀밭 길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걷다가 어느 틈엔 가시덤불 막아서는 곳을 새로운 길을 만들며 걸어가야 하는 것 산정 호수가에 머물어 거기 마음을 담고 복수초 노란 향기는 힘든 등반객의 마음에 쉼터가 되지만 다시 바위를 기어올라야 정상은 다가서는 것 정상에 올라 돌아보면 그제야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는 것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가시덤불 길을 헤치고 넓은 초원길을 걷고 바위를 기어올라야 기쁨의 삶이 다가오는 것 우리 가는 앞길 가로막힐 때 그냥 뒤돌아서면 인생의 봉우리는 다시 멀어지는 것 우리를 기다리던 인생의 기쁨은 우리를 버리는 것 친구야, 가자. 저기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네 인생의 .. 더보기
독도에 가자, 꽃섬을 만들자 독도에 가자, 꽃섬을 만들자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강원도 아이들아, 제주도 아이들아, 독도에 가자 백두산 아이들아, 너희도 가자 강원도 아이들은 설악산 흙을 제주도 아이들은 한라산 흙을 한 움큼 한 소쿠리 가지고 가서 독도에 뿌리자 그 흙에 꽃씨를 심고 꽃나무를 심자 배달겨레 혼을 담은 무궁화를 심고 노랑 저고리 같은 개나리 분홍치마를 닮은 진달래를 한가득 심자 백두산 아이들아 백두산 흙과 함께 천지 물가에 흐드러져 피어나는 들꽃 씨앗을 가지고 오렴 외로운 섬 독도 바위틈에 들꽃이 피어나고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섬을 만들자 거기 무궁화가 끊임없이 피고 지며 향기를 날리고 배달겨레 아이들의 함박웃음도 함께 피어나겠지 강원도 아이들아, 제주도 아이들아, 독도에 가자 백두산 아이들아, 너희도 .. 더보기
난 지금 봄의 소리를 듣는다 난 지금 봄의 소리를 듣는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난 지금 봄의 소리를 듣는다. 봄이 저만큼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천천히 걸어오며 고운 입으로 노래하고 있다. 찬바람이 굼부리 패인 곳으로 들이쳐 앙상한 가지 새를 훑고 지나가며 거친 숨결을 뿜어 봄의 노래를 막으려 하지만 작은 입으로 부르는 봄의 노래를 막지 못한다. 봄이 저기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나뭇가지들은 달력이 없어도 엊그제 입춘이 지난 것을 어찌 아는지 귀가 없어도 아주 멀리서 들리는 봄의 노래를 어찌 듣는지 서둘러 잎눈을 뾰족이 준비하고 있다. 성급한 진달래가 피워낸 작은 꽃은 찬바람에 오돌오돌 떨다가 어젯밤 내린 봄비 한 모금과 햇살 한 줄기가 보듬어주는 손길에 작은 웃음을 피우고 있다. 찬바람이 등을 후려친다. 옷깃을 올리고 모.. 더보기
어점이에서 어점이에서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깊은 숲길 따라 걸으면 가슴으로 스며드는 적막 까마귀 울음만이 적막을 깨는 돌길을 따라 어점이에 오르다 어점이에는 오르는 것이 아니다 어점이가 가슴으로 나를 맞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점이에게 안기는 것이다 한라산 중턱 작은 점 어점이에서는 바람조차 숨을 멈춘다 이곳에는 온갖 지친 것들이 다 찾아온다 지폐 한 장 필요 없고 아옹다옹 다툼 없고 취하여 비틀거림 없고 삶의 지친 찌꺼기들이 따라오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 혼자 앉으면 나 또한 작은 점인 것을 바위 위에 자라는 나무와 낙엽 틈새 돋은 이끼와 아직 흰 빛이 남은 잔설과 내가 모두 하나의 작은 점인 것을. ※ 어점이 : 서귀포시 도순동 소재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오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