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설날 등 해마다 두 번의 명절연휴가 되면 대구에 사는 친구가 고향을 찾곤 한다. 이 친구는 나와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어릴 때부터 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낸 친구다. 시간만 나면 둘이 붙어서 다니고, 우리 집에서 잤다가 그 친구네 집에서 잤다가 하면서 공부도 같이 하곤 했던 친구다.(사실 공부보다는 노는 게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놀면서도 공부는 좀 했나보다. 그 친구는 지금 대구에서 잘 알려진 유명 사립고등학교 교감선생으로 있고, 나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교감으로 둘 다 교직에 있으니 말이다.
친구는 명절이면 고향에 찾아서 나이 드신 어머니를 뵙고 나와 몇몇 친구들과 꼭 같이 지내곤 한다.
2012년 금년 추석에도 어김없이 친구 부부가 고향으로 왔다.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는 추석 다음날인 연휴날 넷이서 우도로 가서 제주올레 1-1코스를 걷기로 하였다.
연휴날 아침 일찍 넷이서 차를 함께 타고 성산포 항구로 향했다. 날씨가 맑고 쾌청하고 바람도 가볍게 솔솔 불어서 기분이 상쾌하였다.
성산포 항구에는 우도로 가는 도항선을 타기 위해 대합실 가득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표를 끊고 10시 쯤에 우도사랑호를 타고 우도로 향했다. 점점 다가오는 우도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우도에는 도항선이 다니는 항구가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두 항구가 있는데, 우리들이 탄 우도사랑호는 성산포항과 하우목동항 사이를 다니는 배였다.
천진항부터 우도 한 바퀴를 도는 올레코스는 1-1 A코스이고, 하우목동항에서부터 우도 한 바퀴의 코스는 1-1 B코스라고 한다.
하우목동항에 내린 우리는 간세와 올레표시 화살표, 올레리본이 가리키는 대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짙푸른 바다와 연푸른 하늘빛이 서로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섬 안쪽의 들판으로 이어진 길로 가도록 표시되고 있었다. 들판 길로 향해서 가는데 어느 곳에서부턴가 올레 표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다른 올레길을 여러 번 걸어본 경험에 의해서, 또, 우도의 지형과 길을 대충 알기에 가다가 해안도로 방향으로 다시 꺾어들어 가면 올레길 표시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기에 내처 그냥 걸어가기로 하였다.
들판길을 가다가 어느 작은 동네 안길을 걷게 되었다. 그 동네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국경일이 아닌데도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동네에는 항상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 같았다. 나라사랑, 태극기 사랑을 온 동네가 다 함께 실천하는 동네인 것 같았다.
동네를 벗어나 올레길 표시를 찾아 다시 해안도로로 향하는 길에서 길가의 돌담들이 정겹게 보였다. 제주섬에서는 흔한 것이 돌담이지만 이곳 우도에서 보는 돌담이 더 정겹게 보이는 까닭이 뭘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도가 하늘과 흙과 바람과 물 등 자연이 더 깨끗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쑥부쟁이가 가득 피어난 들길을 따라 다시 해안도로로 나와 올레표시 리본을 찾아 올레길을 걸었다.
해안도로변의 산물통이라고 하는 곳쯤에 작은 동네가 있고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과부아들 송중이의 슬픈 사연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주흥동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올레길. 해안도로에 소라 모양을 시설물이 색색의 칠을 하고 놓여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근처에는 “고넹이(고양이) 이야기”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던 당이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되는 올레길에 모진 바닷바람을 맞고도 곱게 피어난 쑥부쟁이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큰 태풍도 이겨내고 바닷바람이 소금기 많은 포말을 끼얹어도 꿋꿋이 이겨냈기에 꽃이 오히려 더 곱게 필 수 있었을 것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던 올레길이 어디 쯤에서 섬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표시하고 있었다.
밭담길을 따라 농로를 걸었다. 우도의 명물 중의 하나인 땅콩 농사를 짓고 있는 밭들이 더러는 수확을 하고, 더러는 수확을 앞둔 채로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는 정겨운 풍경이 이어졌다.
우도리조트 앞을 지나서 꼬불꼬불한 농로를 따라 파평윤씨 공원 앞에 이르니 정자가 세워져 있었고, 올레길을 걷던 한 가족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고 사과를 깎아 먹으며 거기서 잠시 쉬었다.
정자에서 다시 출발하여 파평윤씨 공원 앞의 농로를 따라가던 올레길은 어드덧 농로를 벗어나 하고수동 해수욕장 근처 해안도로로 다시 나왔다. 넓은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하늘빛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는지, 바다빛이 하늘로 올라갔는지 모를 정도로 하늘과 바다가 모두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조각배마냥 가볍게 떠다니고 있었다.
해안도로 길 가운데 옛날에 쌓아놓은 방사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해안도로는 방사탑을 그대로 둔 채로 그 주위를 빙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방사탑이 비록 현대에서는 미신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옛 유물들이나 유적들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참 잘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여름이 지난 하고수동 해수욕장에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무릎을 겆고 잔잔한 바닷물에 들어간 사람들과 모래장난을 하는 사람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여름이 지난 쓸쓸함을 덜어주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하얀 모래가 펼쳐진 해수욕장 앞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잠시 발을 멈추었다.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지나서 계속되는 해안도로 올레길을 따라 비양도 쪽으로 향했다.
길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큼직한 해파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검은 바위 위에 올라와서 녹아가는 해파리들도 눈에 띄었다.
올레길은 비양도 입구 다리 앞에서 잠시 비양도로 들어갔다 오도록 안내되어 있었다.
비양도는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 날아온 섬이란 뜻이며, 위치상으로는 우도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말하자면 제주 섬 속의 섬인 우도가 있고, 우도 속에 다시 작은 섬 비양도가 있는 것이다. 우연히도 비양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제주도의 가장 동쪽 섬인 비양도이고, 또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 한림읍 협재리 앞바다에 있는 비양도이다.
비양도는 전에는 우도와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우도 본섬과의 사이에 다리가 놓여져 있어서 차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비양도에 들어서자마다 눈에 띄는 것은 비양동 돈짓당이다. 돈짓당은 마을 주민들이 바다를 다스리는 신령(용왕)을 모신 당으로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곤 하는 곳으로 요즘에도 초하루와 보름에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는 이런 유적은 유적으로서만 남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돈짓당 뒤쪽의 낮은 언덕에는 띠풀이 살랑 부는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띠풀이 흩날리는 풍경과 그 위의 구름이 떠다니는 풍경이 멋있게 조화를 이룬 것 같아 한 컷 찍어보았다.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깔면 좋을 것 같아 찍어보았는데 나중에 컴퓨터에서 보니 정말 괜찮게 찍힌 것 같았다. 블로그에 올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래 사진을 내 컴퓨터 모니터 바탕화면으로 깔아놓고 다시 한 번 감상해 보고 있다.
“흠, 아주 멋있군. 잘 찍었는데!”(자화자찬. ㅎㅎ)
비양도의 해녀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전복죽으로 먹었다. 이곳에서 먹어서 그런지 맛이 좋았다.
비양도가 동쪽 끝인줄 알았는데 그 보다 동쪽에 다시 등대섬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진 후 시멘트 길을 건너 등대섬으로 건너갔다.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져 있고 파도가 센 날이면 섬 전체를 파도가 덮어버릴 정도의 작은 섬이지만 바다가 잔잔한 이날은 검은 바위 위에 우뚝 서 있는 등대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폭의 멋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비양도에서 나와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걷던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벗어나 다시 섬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길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이번에는 올레길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해안도로를 따라 내처 걸어갔다.
영일동 포구를 지나니 섬 안쪽으로 들어갔던 올레길이 다시 해안도로로 나와서 이어지는 표시를 만났다. 곡식을 거둬들인 밭 너머로 쇠머리오름 풍경이 가깝게 보였다.
검멀레 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검멀레라는 이름은 제주말로 “검은 모래”라는 뜻이다. 이곳의 모래 색깔은 우도의 다른 해수욕장과는 달리 검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수욕장 동편 언덕과 쇠머리오름 사이로 쑥 들어온 만(灣) 형태의 해수욕장에는 멋진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쇠머리오름 앞을 돌아온 모터보트가 해수욕장 모래밭 앞에서 비-잉 돌며 바다 위의 곡예를 연출하고 있었다.
해수욕장 모래밭 서편 쇠머리오름 절벽 아래에는 동안경굴(東岸鯨窟)이라는 굴이 있다. 이 굴은 검멀레 해안에 콧구멍이라 하는 곳으로, 이중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썰물이 되어야 입구를 찾을 수 있는데 들어가는 곳은 작지만 안에 있는 굴은 별세계를 이룰 정도로 넓고 환상적이라 한다. 이름의 뜻은 “동쪽 언덕의 고래가 살만한 굴”이란 뜻으로 굴 안은 온통 이끼로 덮여 있어 예전에는 고래가 살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나는 전에 우도에 왔을 때 그곳에 들어가 본 기억이 있어서 그 안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늦을 것 같아 그곳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고 그냥 지나쳐 가기로 하였다.
검멀레 해수욕장을 지나 오름 동쪽의 등반로를 따라 쇠머리오름으로 올라갔다.
오름으로 올라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위로 쇠머리오름 정상에서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등대와 눈 아래 푸르다 못해 시퍼런 우도바다의 에메랄드빛이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면 북쪽으로 쇠머리알오름과 그 곁의 우도 저수지가 내려다보였고 서쪽편으로는 바다 건너 제주 본섬의 모습이 시원하게 보였다.
쇠머리오름 정상에는 하얀 등대 두 개가 바라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동쪽에 있는 것은 전에 있었던 등대이고, 서쪽에 있는 것은 2003년에 새로 세운 새 등대다. 새 등대 아래는 등대박물관으로 조성되어 등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곳에는 세계의 유명 등대들을 축소해 놓은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는 등대를 배경으로 서로 한 컷씩 사진을 찍어 주고 정상에서 내려왔다.(쇠머리오름과 쇠머리알오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오름을 찾아서” 카테고리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난간을 빨간색으로 칠한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니 전 사면의 거의 대부분을 망자들을 위한 안식처로 제공해 주고 있는 쇠머리오름이 망자들의 집과 같은 둥그런 모양으로 내려다보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양쪽으로는 등대모형들을 만들어 전시해 놓은 것들이 있었다.
계단을 다 내려온 곳에서 잠시 쉬며 전에 이곳에 왔을 때 지었던 「우도 등대」라는 시를 친구 부부와 내 아내에게 읊어 들려주었더니 좋다고 박수를 쳐 주었다. 그래서 여기 다시 그 시를 소개한다.
우도牛島 등대
꿈꾸는 아이 한천민
그리움의 섬
우도에 가 보라.
파도가 절벽에 부딪쳐 소 울음으로 우는 섬
그 머리 위에 서 있는 하얀 등대
우도 등대에 가면
그리운 이들의 이름이 아름다운 불빛이 되어 흩날린다.
거품을 물고 날뛰던 거센 파도들도
우도 등대 불빛이 바다를 비추면
황소울음 같은 긴 울음을 울며 달려와
하얀 포말을 절벽에 흩뿌리곤
젖 빠는 송아지마냥 얌전해진다.
우도 등대는 밤낮으로 불을 밝힌다.
밤에는 제주 바다 갈치잡이 배들과
깜박깜박 눈을 맞추고
낮에는 하얀 손을 모아 그리움의 불을 밝힌다.
바다 건너
멀리 한라산과 점점이 이어지는 오름들을 바라보다
노을 속에 그리움의 그림을 그려 보낸다.
가슴 속에 묻어둔 이름이 생각나지 않거든
그리움의 섬 우도에 가서
등대 불빛을 바라보라.
그리운 이름들이 등대 불빛이 되어
네 눈동자에 새겨지는 것을 보라.
(2006. 8. 26)
쇠머리오름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은 돌아갈 배 시간에 맞추어 부지런히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올레코스는 쇠머리알오름 곁을 지난 다음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농로로 꺾어들어 바닷가 쪽으로 간 후에 바닷가 길을 따라 천진항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지만,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빠른 길로 천진항 쪽으로 향해 걸었다. 천진항 앞에 도착한 후에도 배를 타야 할 하우목동항까지 가기 위해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올레길을 따라가지 않고, 무조건 해안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에는 사진도 찍은 것이 없었다.
천진항과 하우목동항의 사이의 해안도로를 따라 걷고 있노라니 햇살에 하얗게 반짝이는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바로 유명한 서빈백사로 산호해수욕장이다. 서빈백사의 모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산호로 이루어진 모래다. 그래서 희귀하기도 하고 보호가치가 매우 높아서 특별 관리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서빈백사를 지나 다시 부지런히 걸어 하우목동항에 도착하였다. 우도사랑호가 승객들과 자동차들을 가득 태우고 출발하려 하는 것을 보고 달려가서 타려고 했지만 바로 우리 일행 앞에서 정지시키고 태워주지 않았다. 다음 배를 타라는 것이다. 아쉬웠지만 떠나가는 배를 보고 손을 흔들고 나서 20분 쯤 기다리니 다음 배가 도착하였다.
성산포항구에 도착하여 서귀포를 향해 돌아오는 길에 차를 운전하는 정면으로는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이 넘어가기가 아쉬운 듯 마지막 힘을 내어 더 밝은 빛을 우리 일행을 향해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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