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올레길

싱그러운 초겨울에 제주올레 7-1코스 걷기

  지금까지 다른 올레길들은 거의 걸었으면서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올레길은 아직도 처음부터 끝까지 걸은 적이 없었다. 가까운 곳이니까 아무 때나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12월의 중순 어느 토요일.

  이날은 집 근처의 올레길인 7-1코스를 걷겠다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5분 밖에 되지 않는 제주월드컵경기장까지 걸어간 다음 본격적으로 올레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7-1코스는 신서귀포에 위치한 제주월드컵경기장 광장에서부터 출발하여 월산봉 서녘을 거쳐 엉또폭포, 고근산을 거쳐 서호-호근 마을을 지나 하논 분화구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 삼매봉 서쪽 도로를 따라 삼매봉 공원에 도착하는 것이 코스로 되어 있다.

 

 

 

 

 

  제주월드컵경기장 앞 광장. 7-1코스를 가리키고 있는 간세를 따라 걸으면 먼저 2002년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월드컵경기장을 마주 대하게 된다. 10년 전 그 당시에는 나도 이곳에서 열리는 4 경기를 모두 관람하며 함성을 지르곤 했었는데, 그 때의 함성과 붉은 물결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광장도 지금은 한산하여 산책 나온 몇몇 사람들의 모습만이 눈에 띈다.

 

 

 

 

  경기장 북쪽 광장에서 시작하는 올레길은 경기장 관중석 펜스 바깥쪽으로 돌아 경기장의 기둥과 넓은 지붕이 파란 하늘 아래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쪽 정문으로 나갔다.

 

 

 

 

  경기장 서쪽의 넓은 길을 따라 고근산을 바라보며 올라가다가 다시 좁은 길을 따라 법환교회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고근산 위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고 그 위의 초겨울의 하늘이 푸르러서 길을 걷는 나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법환교회 앞을 지나 작은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다시 큰 도로로 나오고, 길을 건너 신서귀포 시가지 서쪽 길로 대신중학교 올라가는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신서귀포 시가지 서쪽에는 새로운 주거단지가 크게 조성되고 있어서 공사장의 공사로 인한 방음, 방진 펜스를 길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신중학교 근처까지 와서 학교 서쪽 울타리 가를 따라 걸노라니 학교 울타리에 작은 타일 조각으로 나무 모양을 만들어 붙인 것이 눈에 띈다.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의 특성상 옹벽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옹벽을 그냥 밋밋하게 내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무엇인가 만들어 붙여 놓으니 생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올레길은 대신중학교 서문 앞에서부터 농로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도록 표시하고 있었다.

  가는 길의 주변은 전부 귤나무 과수원들이다. 주황색으로 붉게 잘 익은 귤들이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과수원들도 있고, 이미 수확을 끝내서 초록색 잎들만 무성한 과수원들도 있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숲길도 있어서 상쾌함을 더해주었다.

  어느 과수원 앞을 지나는데 귤을 따고 있는 농부들이 있었다. 귤이 탐스럽게 잘 열려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까 길을 걸으면서 먹으라고 귤을 몇 개 준다. 아마도 내가 서귀포 사람이 아니라 육지에서 온 사람인 줄로 생각했나 보다. 아무튼 고맙게 귤을 받아 먹으면서 길을 걸었다. 풍성한 제주도 인심을 보여 주는 농부들이었다.

 

 

 

 

 

  월산봉 아래 농로를 지나 중산간도로로 나왔다. 길은 다시 중산간도로를 횡단하여 엉또폭포 입구로 들어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엉또폭포로 가는 길에 있는 악근천 상류가 건천이 되어 거의 말라 있었지만 드문드문 물이 고여 얼마 전 비가 와서 내가 흘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올레길은 엉또폭포 입구에서 폭포로 올라갔다가 거기를 구경하고 다시 돌아 나오도록 안내되어 있었다. 엉또폭포로 올라가는 길은 데크 시설을 해 놓아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데크 주변이 한쪽은 과수원으로, 한쪽은 시냇가의 짙푸른 나무로 녹음이 우거져서 여름이건 겨울이건 언제나 멋진 풍광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폭포 근처의 과수원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였다.

 

 

 

 

  엉또폭포 앞에 도착하였다.

  입구에는 안내판에 엉또폭포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있었다.

 

  [엉또폭포]

  “엉또”는 “엉”의 입구라고 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엉”은 작은 바위그늘집보다 작은 굴, “도”는 입구를 표현하는 제주어이다. 보일 듯 말 듯 숲속에 숨어 지내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때면 위용스러운 자태를 드러내는 폭포이다. 높이 50m에 이르는 이 폭포는 주변의 기암절벽과 조화를 이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폭포 주변의 계곡에는 천연난대림이 넓은 지역에 걸쳐 형성되어 있어 사시사철 상록의 풍치가 남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 관람요령 : 건천으로 평소에는 물이 없으며, 산간지역에 70mm이상 비가 온 후 웅장한 폭포를 볼 수 있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은 때라 폭포가 떨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주변의 기암절벽과 더불어 울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전에 비가 많이 왔을 때 찍었던 사진을 아래에 같이 실어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엉또폭포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과수원 속의 무인카페에 들렀다.

  어느 때 어디선가 고등학교 후배인 이봉길씨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엉또폭포 근처 과수원 속의 무인카페를 자기가 하고 있노라고 하면서 시간이 되면 한 번 들러달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카페를 찾았다. 카페는 과수원 관리사를 개조해서 만들어 놓은 곳인데, 별장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곳에서 보는 풍광이 너무나 멋이 있어서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 주인인 봉길씨가 귤 따는 작업을 하느라고 근처에 있어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나왔다.

 

 

 

 

 

  엉또폭포에서 돌아나오면 올레길은 고근산 쪽을 향해 남동쪽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고근산 아래에서는 배수지(??) 옆으로 해서 숲속으로 오솔길이 이어서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고근산 아래 주차장으로 나왔다.

  고근산은 내가 살고 있는 신서귀포 뒷산이기 때문에 운동 겸 산책을 하며 자주 올라다니는 곳이어서 익숙하고 잘 아는 오름이다. 그렇지만 이날 걷고 있는 올레 코스가 고근산으로 올라갔다가 뒤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올레길 표시를 따라 충실히 걷고 있는 것이다.

 

 

 

 

  고근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가니 어느 새 고근산 정상이다.

  고근산 정상에는 야트막하게 패인 굼부리(분화구)가 있고 굼부리 둘레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주변 풍광이 모두 보여서 참 전망이 좋은 오름이다. 북쪽으로는 한라산과 학수바위(각시바위)가 가까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신서귀포와 혁신도시, 시원한 서귀포 앞 바다와 섬들이 모두 보인다.

  올레길은 굼부리 둘레를 따라 동쪽편으로 돈 다음 북쪽으로 내려가도록 표시하고 있었다.

 

 

 

 

 

 

 

  고근산을 내려가는 길에는 주목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어서 주목 잎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싱그러웠다. 비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작은 통나무를 박아 놓아서 부드러운 느낌도 들고 왠지 정겨운 느낌마저 들었다.

  고근산을 내려가 산 북쪽의 농로를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도록 길이 이어져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스팔트로만 되어 있어서 딱딱한 길이었지만 길 가장자리로 걸으면 푹신한 풀을 밟으며 걸을 수 있었다.

  서호요양원 입구를 지나고 제남아동복지센터 입구를 지나면 다시 중산간도로를 만나고, 횡단하여 서호 마을 안길로 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로 내려온 길은 서호교회 옆의 샛길로 빠져서 나간 다음 조금 내려가다가 동쪽으로 나아갔다. 서호 마을과 호근 마을은 마을이 서로 붙어 있어서 어디가 어느 마을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마을 가운데 남북으로 쭉 뻗은 큰길을 가운데 두고 대체로 동쪽은 호근 마을, 서쪽은 서호 마을이다.

  그래서 이젠 호근 마을로 길이 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서호초등학교 앞을 지나 과수원 지대 농로를 따라 동쪽으로 나아갔다.

 

 

 

 

  과수원 지대를 지나던 길은 서귀포 시내에서 호근 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나온 다음 토계촌 식당 앞에서 다시 큰길을 횡단하여 서쪽으로 조금 나아가다가 소로를 따라 하논으로 내려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하논은 삼매봉 북쪽에 있는 오름으로, 면적은 서쪽 봉우리는 높고 서쪽과 북쪽은 낮으며, 남쪽은 삼매봉과 이어져 있는 오름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오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엄연히 여기도 오름이다. 또한 오름 가운데는 넓은 굼부리가 있고, 굼부리 안이 편평하고 물이 솟아나오는 곳이 있어서 벼농사를 하는 논으로 조성되어 있다. 편평한 굼부리 남쪽으로는 오름 안의 또 다른 오름인 보로미 두 봉우리가 작게 솟아있는 특이한 지형을 가진 오름이기도 하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논으로 조성되어 있는 굼부리 안이 모두 물로 채워져 있는 호수였는데, 지금은 물이 많이 줄어들어 논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이곳을 다시 호수로 복원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굼부리로 들어가기 직전 봉림사라는 절 앞의 주차장에 제주도 모양의 안내비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어떤 내용인가 하여 읽어보았더니 이곳이 4.3때의 잃어버린 마을이 있던 곳이라고 안내 되어 있었다. 그리고 4.3 때 전소되었던 봉림사가 후에 복원되었고, 서귀포 지역에 처음 지어졌었다고 하는 하논 성당 터가 남아 있다고 하였다.

 

 

 

 

  안내판을 지나 굼부리로 향하는데, 하논 성당 터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아래와 같이 안내되어 있었다.

 

  [하논 성당터]

  - 서귀포시 호근동 194번지 -

  이곳은 1900. 6. 12. 산남지역 최초의 성당인 한논본당이 설립되었던 천주교회의 유서 깊은 역사문화 사적지입니다. 한논본당은 1902. 5. 17. 서홍동 홍로본당으로 이전하였다가 1937. 8. 15. 현재 서귀포성당으로 이전 정착하였습니다.

  천주교 제주교구 서귀포성당

 

 

 

 

  하논 성당 터를 떠나 굼부리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논이 눈앞에 펼쳐졌다.

  감귤 과수원이 대부분인 서귀포 시내 근처에서 아직까지도 이곳은 유일하게 논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형과 토질의 특성상 물이 많은 습한 지역이어서 과수원을 조성하기 어려운 데다가 논농사에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어서 아직까지도 논농사 지역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굼부리를 지나 삼매봉 방향인 남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굼부리 안쪽으로 벼농사를 짓는 논이었던데 반해 굼부리 둘레의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는 과수원들로 조성되어 있었다.

  올라가면서 되돌아보니 굼부리 안의 오름인 보로미 주변으로도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더러는 별장으로 조성되어 있는 곳들도 있었다.

 

 

 

 

  하논 굼부리에서 완전히 올라오니 외돌개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삼매봉 서쪽 길을 따라 외돌개 공원으로 내려갔다.

  저녁 햇살을 받으며 내려가니 7-1코스 종점인 외돌개 공원이다.

  이곳은 7-1코스의 종점이기도 하고, 7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한 곳이다.

  종점 근처의 솔빛바다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한 코스를 다 걸으며 피곤했던 다리가 다 풀리는 듯했다.

  솔빛바다 카페 앞에서 바라보이는 문섬과 삼매봉 공원 앞의 바다가 더 푸르게 보이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