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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제주올레길 17코스, 시냇가 숲길, 해안도로, 도심 속의 유적을 만나는 길

   모처럼의 공휴일 어린이날.

  하루를 올레길 걷기를 하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이날은 차를 운전하지 않고 서귀포에서 평화를 거쳐 제주시로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그리고 평화로변에 있는 제주관광대학 근처에서 버스를 내려 걸어서 광령1리사무소 앞으로 갔다.

  제주올레 17코스는 애월읍 광령1리사무소 앞에서부터 출발하여 무수천 길을 따라 외도까지 내려간 다음 해안선을 따라 용두암까지 가고, 옛 제주읍성이 있었던 무근성을 거쳐 오현단과 제주동문시장을 거쳐 종점인 제주시 동문로터리까지 가는 코스다.

  총 거리 17.8km로, 노정을 기록하면 아래와 같다.

 

  광령1리사무소 → 무수천 숲길 → 창오교 → 외도 월대 → 알작지 해안 → 이호 테우해변 → 도두 추억애(愛)거리 → 도두 구름다리(오래물) → 도두봉 정상 → 농로 → 사수동 약수물 → 어영소공원 → 수근연대 → 용두암 → 동한두기(강마수) → 무근성 → 제주목관아지 → 남문로터리 → 동문시장 → 동문로터리 산지천마당 

 

 

 

 

  광령1리사무소 앞을 출발하여 무수천을 향해 걸었다. 무수천은 제주시 해안동과 애월읍 광령리 사이를 흐르는 시내로, 제주 - 서귀포(모슬포)간 평화로가 이 시내 위의 다리를 가로질러 달리고 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무수천은 깊은 계곡이었다. 계곡에는 물이 고인 넓은 웅덩이가 있었는데,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물 색깔이 맑지는 않았다. 이제 장마철이 되고 비가 많이 와서 시내에 물이 흐르게 되면 이곳의 물도 맑아지리라. 

 

 

  무수천 숲길을 따라 외도동 쪽을 향해 걸었다. 숲길은 자동차 한 대가 달릴 만큼 좁은 시멘트 길로 무수천 동쪽 기슭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져서 그늘이 진 숲길은 시원하고 상쾌하였다. 평화로가 지나는 다리 아래의 웅덩이 물은 혼탁하여 더러워져 있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내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고, 깨끗한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소(웅덩이)도 곳곳에 눈에 띄어 상쾌함을 더해주었다.

  어느 곳에는 보리밭에서 이삭이 패기 시작한 보리가 밭에 연둣빛 쿠션을 깔아놓은 듯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길은 창오교에 이르러서는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다리 반대편 길 위로 올라가서 유턴하여 시내 서쪽 농로를 따라 외도 마을로 꺾어 들어가고 있었다. 

 

 

 

  푸른 보리밭 너머로 외도 아파트 단지 건물들이 보였다. 언 듯 생각하기에는 네모 상자와 같은 아파트 건물들과 보리밭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도 자연의 풍경과 딱딱한 건축물이 참 조화롭게 어울려 보였다. 그래서 아무리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도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보다. 

 

 

  외도 마을로 내려왔을 때 시내는 물이 점점 많이 흐르고 있었고, 냇가에는 수양버들이 멋들어진 가지를 척척 늘어뜨려 가벼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냇가 둔덕에는 정자도 만들어 놓고 우거진 나무 아래 쉼터도 많이 만들어 놓아 여름철 시원한 물놀이 장소와 놀이 장소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외도 월대이다.

  이런 멋들어진 풍경이면 옛날에는 풍류객들이 모여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한 잔 하던 곳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월대를 지나 외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간세는 해변 쪽으로 꺾어 내려가도록 가리키고 있었다.

  외도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부터 내도동 바닷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해안선에는 크고 작은 둥근 자갈들이 가득한 해변이었다. 그래서 이 해변을 <알작지해변>이라고 부른다. “알작지”라는 말은 ‘작다, 조류의 알'을 뜻하며 ‘작지’는 ‘자갈’의 제주말이다.

  알작지해변 마을길에 방사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 큰 방사탑은 아니지만 이 또한 옛 선조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방사탑 옆의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내도동 방사탑

                                                         제주시 유형문화유산 제4호

                                                         소재지 : 제주시 내도동

  내도동 방사탑은 남쪽지경에서 마을에 나쁜 「부정(不淨)」이 자주 비추어서 마을에 해를 입어 탑을 쌓고 그 위에 거욱대를 세워 액운을 막음으로서 마을사람들이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어 방사탑을 쌓았는데, 그 규모는 하단지름 396cm, 상단지름 378cm, 높이 185cm이며, 바닷가 자연석을 이용하여 층층이 높이 쌓았고 속은 잡석으로 채워져 있으며, 돌탑 위에는 높이 82.6cm, 세로 35cm의 길쭉한 현무암이 세워져 있다.」

 

 

 

 

 

  알작지해변을 지난 다음 바닷가에서 벗어나 보리밭 사이 길을 지나니 곧바로 이어지는 풍경은 이호테우해변이다. 넓은 해수욕장으로 이호동의 옛 포구와 새롭게 조성된 큰 항구 사이에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직 여름이 되지도 않았는데, 더위를 일찍 느낀 사람들이 벌써 해변에 나와 많이 놀고 있었다. 테우해변 동쪽의 새 항구에는 트로이 목마 모양을 한 빨간색과 하얀색의 등대 두 개가 세워져 푸른 바다,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호테우해변을 지나 이호 마을 가운데의 올레길을 지나서 도두 마을로 들어섰다.

  도두 마을의 도두항 서쪽편에는 추억애(愛)거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추억애거리는 도두항 서쪽 매립지 위에 옛날 아이들이 놀이를 하던 모습들의 인형들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딱지치기, 말타기 등 내가 어릴 적에 숱하게 했던 놀이의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걷고 있노라니 마치 그 인형들 속에 내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요즘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들에게 옛날에 우리들이 했던 놀이들을 되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추억에 젖어 한동안 그 놀이인형들을 바라보았다. 

 

 

 

 

 

  놀이인형들이 놀고 있는 추억애거리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도두항으로 향했다.

  도두항에는 항구의 양쪽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올레 안내에 보니 이곳을 오래물이라 한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항구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곳을 멀리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배들이 다리 아래로 드나드는 데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름다리인 것 같았다. 평범한 다리가 아닌 구름다리가 오히려 운치있고 멋있게 보였다. 

 

 

  구름다리를 지나서 도두봉으로 향했다.

  도두봉은 도두항 동쪽에 바로 인접해 있는 작은 오름으로 자연적으로 도두항의 동쪽 방파제 구실을 하기도 하는 오름이다. 가까운 근처에 오름이 없고 평지만 있는데다가 바다에 인접해 있어서 옛날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도두항 서쪽에서부터 도두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데크 시설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 길을 따라 도두봉으로 올라갔다.

  도두봉 정상에서는 북쪽의 바다는 물론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막히는 데 없이 모두 시원하게 터져 보이는 전망이었다. 특히 인접한 남동쪽의 제주국제공항은 눈 아래로 훤히 내려다 보였고, 비행기들이 활주로에서 뜨고 내리는 모습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정상에는 이곳이 조선시대 때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었음을 알려주는 표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아래와 같이 쓰여 있었다.

 

  「道圓烽燧臺터

  조선시대 위급을 알리던 도원봉수대(道圓烽燧臺)터. 고려부터 유사시에 이용되어 온 통신수단으로 1150년에 처음으로 제도화되고 1419년에 이르러 구체화되었다.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전했는데, 평상시에는 한 번, 적선이 나타나면 두 번, 해안에 접근하면 세 번, 상륙 또는 해상 접전하면 네 번, 상륙 접전하면 다섯 번 올렸다. 이곳에서는 동쪽으로 사라봉수대, 서쪽으로 수산봉수대와 교신하였다.」 

 

 

 

 

 

 

 

  도두봉에서 내려와 보리가 익어가는 농로를 지나 계속 길을 걸었다. 걸어가는 오른쪽은 제주국제공항, 왼쪽은 방금 올라갔던 도두봉이다.

  옛 동요에 ‘기찻길 옆 옥수수 밭, 옥수수는 잘도 큰다’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내 입에서 개사를 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비행장 옆 보∼리밭, 보∼리는 잘 익는다. 쌩쌩 쌩쌩쌩쌩 쌩쌩쌩쌩 쌩쌩쌩쌩 비행기 소리 요란해도 보∼리는 잘 익는다’

  불러보고 나니 좀 우습기도 하다.

 

 

  좀 더 나아가니 사수동 바닷가다.

  앙증맞게 작은 옛 포구가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다. 사수동 포구를 지나 공항 아래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길. 바닷가 바위에서 해산물을 캐는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보이고,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활주로를 향해 내려가는 비행기도 머리 위로 가깝게 내려앉고 있었다.

 

 

 

 

  걸어가는 길가 바닷가 언덕 쪽에 옛 연대가 보존되어 있었다. 바닷가 쪽 올레길을 걷다 보면 여기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연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연대도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연대 중의 하나이다.

  연대는 오늘날과 같이 통신시설이 발달하기 이전에 적의 침입과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도내 각처에 빠르게 연락하는 통신망의 하나로, 제주섬에서는 각 방호소(防護所)와 수전소(水戰所)에 여러 개의 연대가 설치되어 연락을 신속하게 하였다 한다. 연대에서의 연락 방법도 봉수대에서와 같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적의 침입과 위급함을 알렸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연대를 지키던 사람이 직접 달려가서 상황을 전하였다고 한다.

 

 

  연대가 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좀 더 걸어가니 용두암이다.

  용두암은 제주도의 관광지를 소개할 때면 빠짐없이 소개되는 단골 메뉴 중의 하나로, 바다에서 육지 쪽을 향해 머리를 들고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닮은 바위라고 하여 용두암이라고 부른다. 제주 화산섬의 전형적인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로 용암이 흘러가다가 굳어져서 생긴 거대한 암석 덩어리이다.

  현대 문명 속에서도 뒤쪽 탑동의 하얀 현대식 건물들을 배경으로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검은 용은 하늘을 향해 오르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유명 관광지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구경을 하며 용두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나도 어느 새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용두암을 지나면 바로 지나가게 되는 곳은 용연 구름다리다.

  용연(龍淵)은 용이 살았던 연못이라 하며, 깎아지른 듯 양쪽 벽이 병풍을 두른 것 같고 물이 맑고 짙푸르러 취병담(翠屛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부터 여름밤의 뱃놀이로 유명하여 영주12경의 하나인 용연야범(龍淵夜泛)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구름다리를 걸으며 아래 위 좌우를 모두 둘러보니 발아래 놓인 파란 물빛과 파란 바다, 파란 하늘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용연 구름다리를 지나 무근성으로 들어섰다.

  ‘무근성’은 ‘오래 됐다’는 뜻의 제주말 ‘무근’과 성(城)의 합성어로 이곳이 옛 탐라시절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주섬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성곽이 있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이곳 올레길들을 걷고 있노라면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서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옛 관청 건물과 돌하르방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같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 이곳 무근성이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모습들이 많이 사라져버린 안타까움을 이곳을 걸으며 새삼 느껴본다.

 

 

 

  관덕정에 이르렀다. 관덕정은 조선시대 때의 제주 관아의 일부로 남아 있는 건물이다. 주변의 다른 관아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서 다 헐려버렸었는데, 근래에 들어서 발굴하여 옛 모습으로 다시 복원을 해 놓았다.

  관덕정에 이르러서 잠시 쉬며 돌하르방, 돌탑 등 주변에 남아 있는 옛 유적과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현대화의 개발에 밀려 옛것들이 무분별하게 사라져버렸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라도 잘 보존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관덕정 앞 넓은 도로를 횡단하여 다시 골목길로 들어섰다.

  얼마쯤 가니 “천선성”이라는 옛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별자리와 관련한 옛 탐라시대의 유적인 듯 하였다.

 

 

  제주시 중앙로 근처 올레길을 걸어 남문로터리를 지나고, 오현단 쪽으로 향하여 꺾어 들어갔다.

  오현단 근처 도로변 벽면에 옛날에 아이들이 여러 가지 놀이를 하는 그림과 폐품을 이용하여 조각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곳곳에 특별한 그림들과 작품들을 전시해 놓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는 모습들은 딱딱한 도시 속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올레길은 오현단을 지나도록 길 안내를 하고 있어서 오현단으로 들어섰다.

  오현단은 조선시대 때의 건물들과 탑과 성벽들이 거의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이다. 시멘트 건축물들로 빼곡한 도심 속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의 푸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오현단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로,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목사 등의 관인으로 와서 민폐 제거, 혹은 문화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으로, 오현(五賢)이라 함은 1520년(중종 15년)에 유배온 충암(沖菴) 김정(金淨) 선생, 규암(圭庵) 1534년(중종 29년)에 목사로 부임한 송인수(宋麟壽) 선생, 1601년(선조 34년)에 안무사로 온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선생, 1614년(광해군 6년)에 유배온 동계(棟溪) 정온(鄭蘊) 선생, 1689년(숙종 15년)에 유배온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 등 다섯 분을 말한다.

 

 

  오현단을 지나 동문시장을 향해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갔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흥청거리는 시장의 즐거운 번잡함 가운데를 지나니 드디어 17코스 종점인 제주시 동문로터리에 도착하였다.

  산지천 시내에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고, 시내 위를 복개한 작은 광장 난간에는 석상으로 조각한 역사(力士)들이 난간을 떠받히고 있었다.

  이날은 집에서 일찍 출발했기 때문인지 먼 길을 걸어왔는데도 아직도 해가 서쪽 하늘에 걸린 채 내려가려면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