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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축구 못하는 아이

 <창작동화>

축구 못하는 아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아이들이 번호를 붙이면서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중에 눈에 띄는 아이가 하나 보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눈에 띄는 아이. 그보다는 운동장을 뛰는 아이들이 모두 여자아이들인데 키 큰 그 아이 혼자만 남자아이여서 더 눈에 띄었다.

운동장을 두 바퀴 뛴 아이들이 선생님 앞으로 모였다.

“오늘은 우리 학교 선수들이 우승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축구를 하기로 해요.”

“와!”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좋아하였다.

“선생님, 편을 어떻게 나눠요?”

“음, 전에 나누었던 대로 호랑이팀과 사자팀으로 하도록 하자.”

“네, 좋아요.”

“선생님, 그런데 진성이는 어느 편이에요”

선생님의 눈과 아이들의 눈이 모두 키 큰 남자아이에게 향했다.

“사자팀이 한 명 적으니까 사자팀이 되면 되겠네.”

“에이, 선생님, 진성이는 원래 호랑이팀이잖아요.”

사자팀 아이들의 불만이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도 너희 팀이 호랑이팀보다 한 명 적잖니. 그리고 너희들이 수가 적으면 호랑이팀에게 질텐데.”

“그래도 우린 이길 수 있어요. 진성이를 원래대로 호랑이팀으로 해서 해요.”

이번에는 호랑이팀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에요. 양쪽의 수를 똑같이 해서 해요. 진성이를 사자팀으로 넣어요.”

잠시 생각해 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양팀 주장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편이 하자는 대로 하자.”

“좋아요.”

양팀에서 주장을 한 사람씩 정하여 선생님 앞으로 와서 등을 대고 섰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호랑이팀 주장 지애와 사자팀 주장 현정이의 손으로 집중되었다.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아이는 진성이 뿐이었다. 진성이는 교문 앞 커다란 녹나무 꼭대기에 걸릴 듯이 지나가는 흰 구름만 쳐다보고 있었다.

“가위바위보!”

선생님의 신호에 두 아이의 손이 위로 번쩍 올라갔다. 사자팀 주장 현정이의 가위가 호랑이팀 주장 지애의 보자기를 이겼다.

“와!”

“에이~~.”

사자팀 아이들의 함성이 호랑이팀 아이들의 실망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팀을 정한 아이들은 넓은 운동장의 양 쪽으로 갈라서서 축구 경기 시작할 준비를 하였다.

호랑이팀 아이들은 9명, 사자팀 아이들은 7명인 숫자가 맞지 않은 축구경기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진성아, 넌 골대 앞에 서 있다가 공이 오면 잘 막아.”

“어. 여기 서 있으면 되니?”

“아니, 거기 말고 조금 더 왼쪽에. 그래, 거기에 서 있어.”

호랑이팀 주장 지애가 얘기하는 데 따라 진성이는 자기 편 골대 앞 가까이 가서 섰다.

진성이의 뒤에서 골키퍼를 맡은 명신이의 입이 툭 튀어나왔다.

“진성아, 잘 해야 돼. 나도 골키퍼 잘 못하는 데 네가 잘 막아줘야 한단 말이야. 에이, 어떻게 남자가 축구를 못할까?”

명신이의 불만 섞인 말에도 진성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시합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진성이네 반 남자아이들은 진성이만 남기고 모두 새별기 축구대회에 참가하였다. 진성이네 학교인 희망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 뿐인 작은 학교이다. 이 작은 학교에도 축구부가 있고, 6학년 7명 중 6명이 모두 학교 대표 축구선수들이다. 그나마 6학년의 수로는 선수가 모자라서 5학년 남자아이들도 모두 선수가 되어서 대회에 나가고 4학년과 심지어 3학년 아이들까지 후보로 넣어서 축구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새별기 축구대회는 도내 초등학교 아이들이 겨루는 축구대회 중에서 가장 많은 학교가 참가하는 큰 대회인데, 학급 수가 많은 학교끼리 겨루는 부문과 진성이네 학교처럼 작은 학교끼리 겨루는 부문으로 나누어서 경기를 하는데, 이번에는 작은 학교끼리 겨루는 부문에도 열여덟 학교가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6학년과 5학년 남자아이들은 진성이만 남기고 모두 축구대회에 참가하고, 오늘 5․6학년이 함께 하는 합동체육시간에는 진성이가 남자아이로서는 유일하게 여자아이들과 축구를 하게 된 것이다.

삐익-!

선생님의 호루라기 신호에 따라 아홉 명과 일곱 명의 미니 축구가 시작되었다.

진성이네 반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 축구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연습하는 것을 늘 보아서도 그렇고,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많이 해 보기도 해서 그런지 제법 공을 차고 패스를 하곤 하였다.

처음 시작은 호랑이팀이 사자팀보다 두 명이나 많아서 그런지 사자팀 진영에서 공을 많이 몰고 다녔다. 사자팀 골대 앞까지 공을 몰고 가서 슈팅 찬스까지 되기도 하였지만 사자팀의 수비도 만만치 않았다. 사자팀의 공격 선수들과 수비 선수들이 모두 골대 앞에 버티고 서서 혼전을 벌이며 호랑이팀의 공격을 번번이 막아내곤 하였다.

그러다가 축구공이 누군가의 발에 걸려 튀어 올라 한 군데에 엉겨있는 아이들의 머리 위를 지나 호랑이팀 진영으로 넘어갔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사자팀의 주장인 현정이가 공을 쫓아 호랑이팀 진영으로 달려들었다. 호랑이팀 아이들은 진성이와 골키퍼 명신이만 남겨두고 모두 사자팀 진영으로 넘어가서 공격을 하고 있었던 터라 공을 몰고 들어오는 현정이 앞에는 진성이와 명신이 밖에 없었다.

호랑이팀 아이들이 뒤늦게 현정이를 쫓아왔지만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현정이를 쫓아오지 못했다.

“진성아, 막아!”

지애의 외침 때문만이 아이었다.

진성이는 갑자기 달려 들어오는 현정이를 보고 당황하였다.

현정이는 진성이의 앞으로 바로 공을 몰고 들어왔다. 진성이는 앞으로 나가서 현정이를 막으려고 하였지만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갑자기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진성이가 눈을 질끈 감고 겨우 다리를 움직여 공을 막으려고 하는 순간 현정이는 공을 옆으로 살짝 비켜 차며 진성이를 지나쳤다.

이제 현정이는 골키퍼와 일대 일로 마주보게 되었다.

“어, 어.”

뒤쪽에서 아이들의 작은 외침이 들리는 순간 현정이가 찬 공이 골키퍼 명신이의 옆을 지나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와!‘

사자팀 아이들의 함성이 터졌다. 현정이는 두 손을 번쩍 쳐들며 자기 팀 아이들을 향하여 달려갔다.

호랑이팀 아이들은 풀이 죽어서 진성이를 노려보았다. 진성이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좋을지 몰라 파란 하늘이 걸려있는 녹나무 꼭대기만 쳐다보았다.

경기가 계속 진행되었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에는 호랑이팀이 4대1로 지고 있었다. 그나마 호랑이팀 주장인 지애가 페널티킥을 차서 골을 성공시킨 덕분이 얻은 1점이 호랑이팀이 얻은 점수의 전부였다. 그러나 사자팀이 넣은 점수 4점은 모두 진성이가 막지 못하여 빼앗긴 점수였다.

후반전에서도 진성이의 실수는 계속되었다.

한 번은 공을 막는다는 것이 손으로 막아 사자팀에게 프리킥을 주어 한 점을 빼앗겼고, 한 번은 중앙선 쪽 멀리서 굴러온 공을 진성이가 골키퍼에게 전해준다는 것이 그만 자살골을 넣고 말았다.

경기가 끝났을 때는 점수 차이가 많이 났다. 9대 2.

호랑이팀 아이들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붉히며 진성이를 쏘아보았다.

“으이구, 진성이가 들어간 팀은 되는 게 없단 말이야.”

“아무리 축구를 못해도 그렇지, 자살골이 뭐야?”

“여자들보다도 축구를 못하니, 나 원 참…….”

호랑이팀 아이들은 대놓고 진성이를 나무랐다.

진성이는 아무 말 없이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교실로 따라 들어온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해서 목이 마른지 주전자 있는 데로 몰려갔다.

“어, 물이 없네.”

“물 당번인 아이들이 축구대회에 나가버리니까 물을 떠다놓은 사람이 없어서 그렇구나.”

“진성아, 물 떠와!”

지애가 축구에 진 것을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주전자를 불쑥 진성이에게 내밀었다.

“아, 알았어.”

진성이도 역시 자기 때문에 자기 팀이 졌다는 생각이 들어 풀이 죽은 채로 주전자를 받아들고 급식실로 향하였다.


세 번째 시간과 네 번째 시간은 미술시간이었다.

“오늘은 자유롭게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도록 하겠어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웅성거렸다.

“뭘 그리지?”

“선생님이 그릴 것을 정해 주면 그리기 좋은데, 아무 거나 그리라고 하면 더 생각이 안 난단 말이야.”

“나도 그래.”

“나현아, 넌 뭐 그릴 거니?”

“아직 생각 못 했어.”

아이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진성이도 무엇을 그릴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릴 것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진성이의 머릿속에서는 그림보다는 조금 전 축구 경기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 때문에 우리 팀이 지고 말았어.’

‘난 왜 이렇게 축구를 못 하는 거야?’

‘자살골을 넣었을 때는 얼마나 창피하고 미안하던지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어.’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진성이의 머릿속을 맴돌아 다니고 있어서 진성이는 보는 것도 없이 그냥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진성아, 넌 뭐 그릴 거니?”

누가 진성이의 어깨를 툭 쳤다. 진성이는 깜짝 놀라 눈을 깜박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앞자리에 앉은 나현이가 손가락 하나를 펴서 진성이의 눈 앞에 대고 흔들고 있었다.

“얘, 왜 그렇게 정신이 빠져 말하는 것도 알아듣지 못하니?”

“어? 뭐라고 했니?”

“넌 뭘 그릴 거냐고 물었는데도 아무 대답도 없이 멍하니 있지 뭐니. 너 지금 너 때문에 축구 경기에 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마치 머릿속에 들어와 본 듯 콕 찝어 말하는 나현이의 말에 진성이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그깟 걸 갖고 뭘 그러니? 멋진 그림 그릴 생각이나 해. 넌 축구는 못해도 그림은 잘 그리잖니.”

“그, 그래.”

나현이의 말에 진성이는 다시 뭘 그릴지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시 축구 생각으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진성이는 퍼뜩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걸 그려야겠어.’

생각이 떠오른 진성이는 도화지에 부지런히 연필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진성이의 손은 마치 마술사처럼 신나게 도화지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도화지를 여러 칸으로 나누고 칸마다 연필로 멋진 그림들이 스케치되기 시작하였다.

진성이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것은 축구 경기 하는 모습의 만화였다. 진성이네 학교 아이들이 새별기 축구대회에 나가서 멋진 골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하는 모습의 만화가 칸마다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다.

스케치를 다 한 진성이는 색연필로 만화 그림에 색칠을 하기 시작하였다.

색칠을 하면서 진성이는 마치 자기가 학교 대표 선수로 나가서 결승전 골을 성공시킨 듯이 신이 났다. 마음이 신이 난 진성이의 손도 마음을 따라 신나게 움직이며 색칠을 하고 있었다.

- 공을 몰고 상대방 골문을 향해 달려가는 희망교의 김진성 선수!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 슛! 골인! 골인입니다. 오른발로 강하게 차 넣은 공이 골키퍼의 손을 스치면서 골인이 되었습니다. 삼대 영으로 희망교가 앞서 나갑니다. 아, 경기가 끝납니다. 이번 새별기 우승은 희망초등학교입니다.

“이야, 멋진 만화다.”

“역시 진성이의 만화를 잘 그린단 말야.”

어느새 여자아이들이 진성이의 곁으로 몰려와서 진성이가 그리는 만화를 보고 있었다.

진성이는 만화에만 빠져서 아이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 시상식을 갖겠습니다. 제 8회 새별기 초등학교축구대회 우승. 희망초등학교!

- 와, 짝짝짝.

진성이의 머릿속에 우승기를 받아들고 흔드는 친구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 다음은 이번 대회 최우수 선수에 대한 시상을 하겠습니다. 최우수 선수에는 ……, 희망초등학교 김진성 선수!

- 와, 짝짝짝.

진성이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박수 속에 최우수 선수상을 받아드는 모습을 그려보며 마지막 장면의 색칠을 마쳤다.

짝짝짝짝.

그제야 진성이는 아이들이 자기 곁으로 몰려와 만화를 들여다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도 아이들의 머리 너머로 진성이의 만화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진성이는 얼굴을 붉히며 얼른 만화를 책상 서랍 속으로 넣어버렸다.

“진성아, 그 만화 이리 줘봐라.”

선생님의 말씀에 진성이는 쭈뼛거리며 만화를 내어 놓았다.

선생님은 만화를 처음부터 살펴보시더니 얼굴에 함박꽃만한 웃음을 띠었다.

“참 잘 그렸다. 우리 학교 축구부가 오늘 축구대회에 나갔는데, 이 만화처럼 우승했으면 좋겠다. 얘들아, 그렇지?”

“예, 선생님.”

진성이는 선생님의 칭찬에 더욱 얼굴이 붉어졌다.

“진성이는 비록 축구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더 축구를 잘 하고 싶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우리 학교 선수들이 우승하는 내용으로 만화를 그린 것 같애요.”

이 때 교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예? 뭐라구요? 우승했다구요?”

전화를 받으시는 선생님의 얼굴에 기쁨이 넘쳐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