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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영실이의 봄

 <창작동화>

영실이의 봄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영실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예쁘다구요? 그럼요. 저도 제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해요.

제 이름을 보니까 여자 어린이냐구요. 아닙니다. 저는 남자입니다. 더욱이 어린이는 아니랍니다. 제 나이는 지금 다섯 살인데, 그러면 유치원에 다닐 나이라구요? 그런데도 저는 어린이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이 아니라 진돗개랍니다.

제 이름 영실이는 우리 주인 아저씨가 지어주신 것이랍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 중에서도 경치 좋기로 이름난 “영실” 근처이거든요. 그래서 주인 아저씨가 제 이름을 영실이라고 지었다고 해요.

제주도에 오면 1100도로라고 하는 길이 한라산 서쪽 허리를 스치며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해 주고 있어요. 그 길 중간쯤에서 한라산 쪽으로 뻗은 길을 한참 따라가면 등산로 입구 매표소와 주차장이 나오지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그 매표소 근처에 있는 버섯 재배장이랍니다.

매표소를 지나 다시 꼬불꼬불한 찻길을 따라가면 뾰족뾰족 서있는 오백장군 바위 아래에 영실 등산로가 시작된답니다.

아, 벌써 어디인지 알겠다구요? 그럼요. 잘 알려진 유명한 곳이니까요.

저는 지금 기분이 무척 좋답니다.

내일 신문에 제 사진과 제가 활약한 일이 기사로 나온다고 하거든요. 우리 주인 아저씨도 덩달아 저와 함께 사진을 찍고는 기분이 좋으신 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많이 주셨어요.

조금 전에 신문사 기자 아저씨가 제가 사는 버섯 재배장까지 찾아와서 우리 주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 갔어요.

“자, 영실아. 여기 봐라. 영실이 폼이 아주 멋진데.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사진기의 눈이 깜박이면서 플래시가 팍 터졌어요.

“다시 한 번 찍겠습니다. 이번에는 사장님께서 영실이의 목을 쓰다듬는 것처럼 하고 찍도록 하지요. 영실아, 다시 한 번 여기 봐라.”

저는 기자님의 말씀에 따라 사진기를 바라보며 의젓하게 폼을 잡았답니다. 주인 아저씨는 제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사진기를 바라보았어요.

“예, 됐습니다. 옳지. 영실아, 그대로 있어요. 하나, 둘, 셋! 좋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기자님은 사진기를 거두고 다가왔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 사회면 기사로 나갈 것입니다. 영실아. 폼이 멋졌어. 영실이의 사진이 신문에 멋있게 나올 거야.”

기자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저는 기분이 좋아서 목청을 가다듬고 “컹!”하고 한 번 소리를 질렀지요. 그러자 근처 오름이 저를 따라 “컹-”하고 작은 소리를 질렀지요.


제가 이곳 영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버섯 재배장으로 와서 살게 된 것은 제가 아기였을 때부터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진도라고 하는 섬이랍니다. 저의 친척들은 모두 그곳이 고향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와 우리 친척들을 진돗개라고 부른답니다.

벌써 다섯 해 전이라서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지금도 가끔 엄마 냄새가 고향집의 냄새와 함께 코끝에 걸리곤 한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북쪽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크어-엉, 커-엉” 짖어보기도 하고 숲 속을 마구 뛰어다니다 돌아오곤 합니다.

저는 엄마 흰둥이의 네 쌍둥이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아유, 우리 귀여운 아가들. 젖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엄마는 우리 형제들을 핥아주며 맛있는 젖을 먹여주곤 하였답니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엄마 젖을 빨아먹을 때 난 엄마 냄새를 실컷 맡곤 하였어요. 그 때마다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엄마 젖이고, 가장 좋은 냄새는 엄마 냄새라고 생각하였답니다. 그런데 다섯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아무리 좋은 냄새를 맡아도 엄마 젖보다, 엄마 냄새보다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엄마는 특히 나를 더 귀여워해 주셨던 것 같아요.

“우리 막내 정말 귀엽지요? 어쩌면 나를 쏙 빼닮았을까?”

우리 형제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해 주러 온 친척 진돗개들에게 엄마는 나를 보이며 자랑스러워 하셨답니다.

“막내야, 젖 많이 먹고 어서 어서 예쁘게 자라거라. 어떤 분이 우리 막내를 데려다가 귀여워해 주실까?”

전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몰랐어요. 나를 데려간다니요? 엄마하고 언제나 함께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엄마, 나를 데려간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네?”

“응. 그건 말이야…….”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우리 형제들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어요.

“얘들아. 얼마 있으면 너희들은 엄마와 헤어져 살아야 한단다. 각각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다른 집으로 가서 살게 되는 것이 우리 개들이란다.”

“싫어. 난 엄마하고만 살 거야.”

“나도. 엄마하고 헤어지는 건 싫어.”

“나도…….”

“나도…….”

우리 형제들은 낑낑거리며 엄마 품을 더욱 파고들었어요.

“싫어도 어쩔 수 없단다. 그게 우리 개들의 운명이라는 것이야. 그리고 너희들은 혈통이 좋은 진돗개들이니까 아무 곳에 가더라도 귀여움을 받을 거야.”

난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낑낑거렸지만 금세 엄마의 이야기를 잊어먹고 형제들과 장난치며 즐거운 하루 하루를 보냈어요.

그런데 태어난 지 두 달쯤 되는 어느 날 엄마와 형제들과 헤어지는 날이 돌아왔어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 서너 명이 우리 집에 와서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어요.

엄마는 우리들을 불러모았어요.

“아가들아. 너희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구나. 어느 곳에 가더라도 너희들은 진돗개의 혈통을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바짝 말아 세워서 우리 진돗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무서운 적을 만나도 꼬리를 내리는 비겁한 개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엄마는 몇 번이고 진돗개의 자존심을 지키라는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나는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엄마 품에 파고들었어요.

“우리 막내야. 엄마도 막내와 헤어지는 것이 슬프단다. 그렇지만 우리 막내는 커서 훌륭한 진돗개가 될 거야. 자, 엄마 냄새 실컷 맡아두렴.”

나는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잘 기억해 두려고 애를 썼어요.

드디어 우리 형제들이 한 마리씩 사람들에게 팔려갔어요.

나도 우리 주인 아저씨의 먼 친척이라고 하는 시커먼 아저씨의 품에 안겨서 떠나게 되었어요.

“막내야, 우리 막내야. 엄마가 한 말 명심해야 한다. 진돗개의 자존심…….”

“엄마, 엄마!”

난 아저씨의 품에서 낑낑대며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의 목소리와 냄새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어요.


나를 데리고 온 시커먼 아저씨는 한라산 중턱에서 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자, 이제부터 네 이름은 영실이다. 이곳 이름이 영실이거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외롭겠지만 살다 보면 자연이 모두 친구가 된단다. 그리고 민구랑도 곧 친구가 될 거야.”

아저씨는 민구라는 젊은 일꾼 한 사람만 데리고 살고 있었어요. 아저씨의 식구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어요.

한 동안 난 밤마다 낑낑거리며 외로움과 씨름해야 했어요. 엄마와 형제들을 보고 싶은 생각과도 씨름해야 했어요. 낮에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기하고 들리는 새소리도 모두 신기해서 외로움이 덜 찾아왔어요.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고, 땅 위를 기어가는 벌레랑 놀기도 하고, 숲 속에 피어있는 여러 가지 꽃을 찾아 향기를 맡아보기도 하는 둥 하며 외로움을 이겨내기도 하였지만 밤이 되면 어둠과 함께 외로움이 온 몸을 감싸 돌곤 했어요.

이곳에 온지 한 해가 바뀌어 오백장군 바위 그늘에 숨어 버티던 눈도 다 녹고 땅 속에서 움츠려 봄을 기다리던 싹들이 다시 돋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었어요. 내 몸도 이젠 제법 커지고 왈왈거리던 내 작은 목소리도 어느덧 컹컹 짖는 큰 소리로 바뀌었어요.

난 한 해 동안 버섯 재배장 주변을 쏘다니며 이곳 숲 속 나무와 바위들과도 어느덧 친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나무와 바위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 내가 찾아가야만 되는 친구들이었어요. 내가 가는 곳으로 함께 다니며 뛰어 놀 친구는 아직 없었어요.

겨우내 앙상하던 철쭉나무에 작은 잎이 돋고 꽃망울이 조금씩 부풀어오르면서 벌어질 준비를 할 무렵 난 새 친구를 만났어요.

그 날도 외로움을 이기려고 소나무 숲 속을 뛰어다니다 너럭바위 위에 올라서서 혀를 내밀고 열을 식히고 있는데 내 몸을 감싸는 시원한 소리가 들렸답니다.

“얘. 넌 누구니? 처음 보는구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내게 이야기하는 거니? 난 영실이라고 해. 버섯 재배장에 사는 진돗개야. 보이지 않는 넌 누구니? 어디 있는 거니?”

“난 바람이야. 솔바람. 사방을 둘러 봐. 내가 보일 거야.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이지? 그건 내가 나뭇가지에서 그네를 타는 거야. 네 얼굴에 시원함이 느껴지지? 그건 내가 네 얼굴을 어루만지는 거야.”

“그래? 그게 너니?”

“응.”

“그런데 넌 어디서 왔니?”

“난 바람나라에서 왔어. 바람나라 임금님께서 나를 만들어 ‘솔바람’이라고 이름 지어주셨어. 그리고 여기 영실 소나무 숲에서 살도록 해 주셨어.”

“그럼 여기 오면 널 만날 수 있는 거니?”

“응. 난 여기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솔바람이거든.”

솔바람과 난 금세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언제든지 소나무 숲에 와서 부르면 솔바람은 쏴아아 하고 소나무 잔가지를 흔들며 나를 반겨 주었어요.

바람은 소나무 숲에 머물다 가끔 더 멀리 다른 곳에 다녀오곤 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내게 보고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남쪽 작은 섬 바위 절벽에 집을 지은 물새가 알을 낳았는데 그 뽀얀 알이 너무 귀엽다느니, 동쪽 마을 근처 양식장에 날아와 겨울을 지내던 철새들 중에 청둥오리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떠났다느니, 북쪽 비행장 울타리 가에서 싹을 틔운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웠다느니 하는 것들이었어요. 그리고는 덧붙여서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내리는 소리가 엄청 시끄러운데도 풀꽃들은 큰 소리는 오히려 듣지 못하고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는 잘 듣기 때문에 그 시끄러운 곳에서도 잘 크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난 솔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와 형제들 소식이 궁금했어요.

“솔바람아, 북쪽 바다를 지나 육지까지도 가 보았니?”

“아아니. 난 아직 거기까지는 못 가. 난 아기 바람인걸. 좀 더 크면 내 힘으로 바다를 건너 육지에도 가 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건 왜 묻니?”

“……. 으응. 바다를 건너 육지 근처에 있는 진도라는 섬이 내 고향이거든. 거기 엄마도 살고 계셔.”

“그렇구나. 조금만 기다리렴. 내가 커서 바다를 건너갈 수 있게 되면 제일 먼저 네 고향으로 갔다와서 엄마 소식을 전해 줄게.”

“그래. 고마워.”

솔바람과 난 더 친한 친구가 되어 숲 속을 돌아다니곤 하였어요. 내가 뛰어가면 솔바람은 풀잎과 작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쓸며 나를 쫓아오고, 솔바람이 숲 속의 풀향기들을 사방에 뿌리고 달려가면 내가 좇아가고…….

그러다가 내가 지쳐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면 솔바람은 나의 온 몸을 만져주며 시원하게 해 주었어요.

솔바람과 즐겁게 지내던 어느 날 내게 또 하나의 친구가 생겼어요.

그 날은 솔바람이 멀리 산을 넘어 동쪽 바닷가까지 갔다온다고 하며 떠난 날이었어요. 솔바람이 떠나버리자 소나무 숲의 나뭇가지들과 풀잎들이 오랜만에 조용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주인 아저씨는 도시로 나가고 민구 아저씨도 멀리 있는 다른 재배장을 둘러본다고 가버렸어요.

“집 잘 보고 있어. 버섯 재배장에 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민구 아저씨는 따라가려는 내게 집 지키라는 명령을 하고 가버렸어요.

호- 호르르륵. 휘- 휘르르륵.

멀리서 들려오는 휘파람새 소리를 들으며 집과 버섯 재배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나는 초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른한 졸음에 하품을 하기 시작했어요. 자꾸 눈이 감겨오고 쫑긋 세웠던 귀가 축 쳐지곤 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자박. 자바박. 바스락.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에 축 쳐졌던 내 귀가 번쩍 세워졌어요. 머리를 이리 저리, 두 귀를 이리 쫑긋 저리 쫑긋. 금세 버섯 재배장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냈어요.

한 달음에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간 나는 버섯 재배장 철조망 벌어진 틈으로 뛰어들며 소리쳤어요.

“컹컹. 어떤 놈이냐?”

내가 짖는 소리에 놀란 발자국 소리의 주인이 후닥닥 뛰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소리의 주인이 뛰어가는 쪽으로 달려가서 막아섰어요.

그제야 발자국 소리의 주인이 노루인 것을 보았어요.

노루는 나를 피하여 도망갈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버섯 재배장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고 다시 부직포로 감싸고 있기 때문에 노루가 도망칠 구멍이나 낮은 철조망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여기를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으르릉. 컹컹.

난 노루를 향해 달려들 듯이 다가서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어요.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한 노루는 온 몸을 떨며 안절부절하고 있었어요. 노루의 큰 눈도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어요.

떨고있는 노루의 눈을 본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어요.

“으르르. 넌 누구니?”

조금 목소리를 낮춘 나는 노루를 향해 물었어요.

“나, 난…….”

노루는 여전히 떨면서 말을 못하고 있었어요. 난 세웠던 갈기를 내리고 한 발 물러섰어요.

“겁내지 마. 난 아무나 무는 나쁜 개가 아니야. 네게 잘못이 없다면 물지 않겠어.”

노루는 내 말과 행동에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큰 눈에서 두려움의 빛이 조금 엷어지는 것 같았어요.

“난 푸르노라고 해. 사람들은 우리 종족들을 노루라고 한단다.”

“그래? 푸르노. 참 좋은 이름이구나. 그런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니? 왜 여기 들어온 거니?”

“한 가지씩 물어봐. 한꺼번에 대답할 수가 없잖아.”

“그래. 그럼 여긴 어떻게 들어왔니?”

“가시 울타리를 뛰어넘어 왔어. 우리 종족들은 뜀뛰기를 잘 하거든. 네가 있는 쪽 가시 울타리가 한 쪽이 끊어져서 다른 쪽보다 낮았어. 그래서 거기를 뛰어넘어 온 거야.”

나는 푸르노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어요. 정말 내 뒤쪽의 철조망이 한 쪽이 끊어져 있었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왜 여기 들어온 거니?”

“사실은 버섯이 너무나 먹고 싶었어. 우리 종족들은 버섯을 무척 좋아하거든.”

“그건 안 돼. 여긴 우리 주인 아저씨의 버섯 재배장이야. 그리고 내가 여기를 지키는 일을 맡고 있거든.”

“미안해. 조금만 먹고 가려고 했었어. 그렇지만 아직 한 입도 먹지 못했어. 마침 찾아낸 버섯을 마악 먹으려고 하는데 네가 달려들어서…….”

“그것 참 안됐구나. 그렇지만 이젠 여길 나가줘야겠어.”

난 푸르노가 나갈 수 있게 저만치 비켜서 주었어요. 푸르노는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다가 끊어진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어 달려갔어요. 그러다가 뒤로 돌아서서 고개를 끄덕여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덤불숲 너머로 뛰어갔어요.

푸르노는 그 후로도 가끔 버섯 재배장 근처로 다가와 힐끔거리다가 나를 보면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어요.

동쪽 바닷가에 갔던 솔바람이 돌아오자 난 그 이야기를 솔바람에게 해 주었어요.

“이름이 분명 푸르노라고 했니? 걔도 내 친구야. 푸르노가 가끔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따먹기 위해 찾아오곤 해서 우리 친구가 되기로 했어.”

“이것 참 재미있구나. 그렇다면 너무 딱딱하게 굴지는 말아야겠는걸. 그래도 우리 주인 아저씨가 키우는 표고버섯을 따먹게 놔둘 수는 없어.”

그 후로 난 차츰 푸르노와도 가까워지게 되었어요. 솔바람과 푸르노, 그리고 내가 함께 숲 속을 뛰어다니는 날이 많아졌어요.

새 친구들이 생긴 후부터 난 엄마 생각이랑 고향 생각을 차츰 잊어가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잊어간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뛰어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름과 가을이 훌쩍 지나고 온 산이 흰 눈으로 덮인 겨울이 되었어요.

겨울 동안에는 버섯을 재배하지 않기 때문에 난 아저씨를 따라 아저씨 가족이 살고 있다는 도시로 나가 살게 되었어요. 아저씨네 가족들은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었어요. 특히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하는 아저씨의 딸 다은이는 어디 갈 때면 언제나 나를 데리고 가곤 하였어요. 나도 다은이를 따라 나들이를 하는 일이 즐거웠답니다.

다시 새 봄이 돌아와 산을 덮었던 하얀 눈이 개울물이 되어 흐르게 되자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다시 영실 버섯 재배장으로 돌아왔어요. 솔바람과 푸르노는 겨울 동안 보지 못하던 내가 돌아오자 무척 반가워해 주었어요.

해마다 그렇듯이 봄이 되어 온 산 구석구석 그늘진 곳에 숨어있던 눈까지 다 녹을 무렵이면 비가 자주 내리곤 하였어요. 비가 내리지 않는 날도 온 산을 안개가 감싸서 뿌옇게 보이곤 하였답니다. 민구 아저씨는 이 무렵에 내리는 비를 고사리장마라고 내게 가르쳐 주었어요.

한라산의 나무와 풀들은 고사리장마 때에 내리는 비를 참 좋아했어요. 겨우내 말랐던 땅에 고사리장마비가 촉촉하게 스며들어 하루가 다르게 새 잎과 새 가지가 쑥쑥 자란답니다. 우리 버섯 재배장도 이때부터 무척 바빠진답니다.

사람들이 망태를 매고 고사리를 뜯으러 숲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도 바로 이 무렵이랍니다.

그 날은 전날 제법 많이 내린 비로 숲 속 흙이 비를 흠뻑 머금고 버섯 재배장 서쪽 작은 개울에도 졸졸 물이 흐르는 날이었어요. 이런 날은 숲 속의 흙을 밟으면 약간 폭신폭신한 게 참 재미있답니다.

나와 푸르노는 저녁 무렵에 만나 소나무 숲과 버섯 재배장 근처 숲 속을 폭신폭신한 흙을 밟으며 뛰어다니다 헤어졌어요. 솔바람은 이젠 조금 컸다고 바다를 건너 육지까지 갔다오는 연습을 하느라고 우리들과 놀 시간이 없었어요.

낮에 많이 뛰어다녀서 그런지 무척 피곤하였어요. 저녁을 먹고 나는 민구 아저씨가 만들어준 집으로 들어와 깔려있는 부드러운 풀 위에 네 다리를 쭉 뻗고 깊이 잠이 들었어요. 우리 집과 버섯 재배장을 지켜야 한다는 내 임무도 잠시 잊고 말이에요.

얼마 동안 잤을까.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머리를 들고 귀를 쫑긋 세웠어요. 그 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어요.

밖으로 나온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살금살금 다가갔어요.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박혀서 빛나고 있었어요. 아마 깊은 한밤중이 되었을 거예요.

소리는 버섯 재배장 서쪽 편 나무와 덤불들이 가득 우거진 곳을 지난 곳에 있는 개울 쪽이었어요.

으- 으음.

그것은 분명 사람의 신음소리였어요.

나는 덤불을 헤치면서 힘껏 달려갔어요.

아, 거기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팔과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어요. 할아버지 곁에는 고사리가 잔뜩 담겨있는 망태가 뒹굴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곳은 울퉁불퉁한 돌들이 많은 개울 바닥이었지만 다행히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쪽에는 물이 없었어요. 그 위쪽은 나도 뛰어올라가기 어려울 만큼 높은 작은 낭떠러지였어요. 아마 할아버지는 이 위를 지나다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 같았어요.

나는 개울을 건너 할아버지에게 다가갔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나의 외침은 멍멍 짖는 소리가 되어 들렸지만 할아버지는 내 소리를 들었는지 희미하게 눈을 떠서 나를 보았어요.

“음. 으음. 살려줘.”

나는 할아버지의 주위를 맴돌며 짖었지만 할아버지는 많이 다쳤는지 신음소리만 낼 뿐 움직이지 못했어요.

나는 할아버지의 옷을 물고 당겨 보았어요. 그러나 내 힘으로는 할아버지를 끌고 낭떠러지를 올라가기엔 무리였어요. 더욱이 할아버지는 내가 잡아당기는 바람에 더 아프신 지 더 크게 신음을 하였어요.

“컹컹. 할아버지.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나는 다시 개울을 건너 집으로 달려갔어요.

“컹컹! 주인님, 민구 아저씨. 일어나세요!”

큰 소리로 짖는 나의 외침에 주인 아저씨와 민구 아저씨가 얼른 일어나 나왔어요.

“뭐야? 영실아. 무슨 일이야?”

이럴 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를 거예요. 난 그저 아저씨네를 향해서 컹컹 짖기만 할 뿐이었어요.

“한밤중에 왜 짖고 그래? 별 일 아니면 조용히 자거라.”

주인 아저씨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난 주인 아저씨에게 달려가서 옷을 물고 잡아끌었어요.

“얘가 왜 이러지? 전에 없던 행동을 하네.”

“사장님, 무슨 일이 있긴 있나 봐요.”

“그런 것 같네. 영실아, 이 옷 놓고 앞장서거라. 따라갈게. 민구야. 손전등 가지고 와.”

“예.”

나는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앞장서 갔어요. 주인 아저씨와 민구 아저씨는 손전등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숲을 헤치고 따라왔어요.

“컹컹. 할아버지, 우리 주인 아저씨를 모셔왔어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며 소리쳤어요.

주인 아저씨와 민구 아저씨도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얼른 달려왔어요.

“으으으. 으으으.”

할아버지느 여전히 신음 소리만 가늘게 내뱉고 있었어요.

“민구야. 얼른 가서 119에 전화해라.”

“예, 사장님.”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과 빨간 차가 와서 쓰러져 있던 할아버지를 데리고 간 것은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영실아, 너 참 훌륭한 일을 했구나. 넌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린 거야.”

주인 아저씨가 빨간 옷을 사람들과 함께 빨간 차에 할아버지를 태워 모시고 간 후에 민구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난 그게 훌륭한 일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저 할아버지가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주인 아저씨에게 알려준 것뿐인데요. 그렇지만 머리와 목을 쓰다듬어주는 민구 아저씨의 손길이 기분 좋아서 아저씨의 몸에 얼굴을 비비며 그르렁거렸어요.


“영실아, 여기 봐라. 네 사진이 나왔다.”

도시로 나갔던 주인 아저씨가 내 사진이 실려있는 신문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어요. 신문에 실려 있는 내 모습이 개울물에 비쳤던 모습보다 더 멋있게 나와 있었어요.

난 기쁜 소식을 솔바람과 푸르노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솔바람이 살고 있는 소나무 숲으로 달려갔어요.

“참 좋은 일을 했구나.”

솔바람이 내 얼굴을 간질이며 칭찬해 주었어요.

“축하한다. 영실아.”

푸르노가 긴 목을 주억거리며 축하해 주었어요.

두 친구의 칭찬에 나는 솔잎 위를 기분 좋게 뒹굴었어요.

“영실아. 나 드디어 바다를 건너갔다 왔단다.”

“정말? 축하한다.”

“고마워. 그리고 전에 약속했던 대로 네 엄마를 찾아갔었어.”

“그래? 우리 엄마 어떻게 지내시던? 아직도 우리 고향집에 살고 계시던? 나를 보고 싶다고 하시던? 건강은 어떠시던?”

엄마의 이야기에 나는 그 동안 궁금하던 것들을 한꺼번에 물어보았어요.

“아휴. 아무리 궁금하지만 한 가지씩 물어봐라.”

“미안해.”

“네 엄마는 네가 태어난 고향집에 그대로 살고 계시고 여전히 건강하셔. 네 소식을 전했더니 너를 무척 보고싶어 하시더라. 그리고 또 귀여운 아기들을 다섯 마리 낳으셨더라.”

“그러니? 그래?”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소식에 난 엄마의 냄새가 아득하게 풍겨오던 방향으로 돌아서서 코를 벌름거려 보았어요. 그러나 엄마의 냄새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어요. 푸르노도 소나무들도 모두 눈물 속에 희미하게 보였어요.

“이제부턴 내가 종종 바다를 건너다니며 네 소식과 엄마 소식을 전해 줄게.”

“솔바람아. 고마워.”

엄마 소식을 들었는데도 갑자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세차게 밀려와 온 몸을 떨리게 했어요.

이럴 때는 늘 하던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난 있는 힘껏 달리며 숲 속을 뛰어다녔어요. 솔바람과 푸르노도 내 뒤를 따라 뛰었어요.

작은 언덕 위까지 달려 올라간 나는 엄마가 있는 쪽을 향해서 힘껏 외쳤어요.

“엄마! 커엉! 커어엉! 엄마!”

오백장군 바위들이 모두 일어서서 내 소리에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커-엉! 커어-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