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비둘기 둥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경민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3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경민이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가끔 두 팔을 휘휘 저으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흉내 내며 달려가기도 하였다.
“야, 이경민! 너 왜 그러니?”
“이리 와. 우리랑 같이 가게.”
같은 동네에서 학교 다니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함께 모여 재잘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런 경민이를 보고 불러 세웠지만 경민이는 아이들의 부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달려가다가는 가끔 길가 돌담 위에 앉아 학교 쪽을 바라보며 히죽거리곤 하였다.
“쟤. 왜 저러니?”
“몰라. 그냥 놔둬. 쟤는 원래 저런 아이잖아. 이거야, 이거.”
6학년인 수철이가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뱅뱅 돌리면서 말했다.
수철이의 말처럼 경민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하는 행동이나 말이 조금 달랐다. 3학년인데도 글도 잘 읽지 못하고 말도 더듬거리고 코를 흘리기도 하였다. 경민이 할머니 말로는 어릴 때 홍역을 심하게 앓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래도 이젠 아프는 일이 없이 몸이 튼튼했다.
경민이는 할머니와 둘이서만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경민이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경민이가 1학년에 입학하던 해 돈을 벌러 나간다고 하며 어디론가 가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전화조차도 없었다.
경민이가 엄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할머니는 화를 내며 엄마 이야기를 못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경민이는 자꾸 엄마를 부르며 울곤 하였다. 이젠 3학년이 되어 울지는 않았지만 경민이의 가슴 속에는 엄마 생각이 하루도 떠날 날이 없었다.
경민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왔다. 공부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이 국어 공부, 수학 공부 하는 동안 선생님이 그리라고 하는 그림을 재미있게 그리곤 하였다.
며칠 전 경민이는 학교에 갔다가 신나는 일을 보았다.
중간 놀이 시간이었다. 경민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푸른동산으로 가서 놀았다.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놀았지만 경민이는 축구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축구경기에는 붙여주지 않았다. 그런 경민이가 늘 혼자 가는 곳은 푸른동산이었다.
경민이네 학교에는 운동장 동쪽에 숲이 우거진 작은 동산이 있었다. 그 동산을 “푸른동산”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에는 키가 큰 소나무 가지 위에 바람이 놀러 와서 앉았다 가곤 하였기 때문에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이곳에만 오면 에어컨 앞에 있는 것보다도 시원하였다. 또 푸른동산에는 팽나무, 참식나무, 구실잣밤나무, 사스레피나무, 유동, 때죽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경치도 좋았다. 푸른동산에는 바람만 놀러오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새들도 놀러 와서 지저귀며 합창을 하곤 하였다.
그날도 경민이는 점심을 먹고 푸른동산으로 올라갔다. 푸른동산 위에는 야외교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경민이는 야외교실에 앉아 가지고 간 도화지에 축구하는 친구들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국어 공부 시간, 수학 공부 시간에도 그림을 계속 그리곤 하는 경민이었기 때문에 경민이의 그림 솜씨는 제법이었다. 축구하는 아이들 그림 속에는 경민이도 있었다. 경민이가 골대 앞에서 공을 멋지게 차서 골인이 되는 장면이 그림 속에 나타나 있었다. 축구를 못하는 경민이었기 때문에 그림 속에서나마 선수가 되어서 멋지게 골인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경민이는 그림을 그리며 혼자 히죽거렸다.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경민이의 머리 위에서 퍼드득 새가 날개 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민이는 소리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비둘기만한 새 한 마리가 경민이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구실잣밤나무 위에 앉았다가 날아가고 있었다.
다시 그림으로 눈을 돌리려던 경민이의 눈에 새가 앉아 있던 구실잣밤나무 위에서 이상한 것이 보였다. 경민이 키보다 허리만큼 더 올라간 곳쯤에서 굵은 가지가 팔을 벌리듯 갈라진 곳에 뭉쳐놓은 듯한 지푸라기 뭉치가 보였다.
경민이는 전에도 그런 지푸라기 뭉치를 본 일이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한동안 나무 위를 쳐다보던 경민이는 손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나무 둥치를 안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낑낑거리며 올라 갈라진 가지를 붙들고 눈을 가지 위로 올렸을 때 경민이는 눈이 둥그렇게 커지고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새집이었다.
아! 경민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것은 새집 안에 가만히 놓여 있는 보오얗고 조그만 새알들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경민이는 눈으로 새알을 세어 보았다. 수학을 잘 못하는 경민이었지만 그 정도는 눈으로도 셀 수가 있었다.
경민이는 커진 눈으로 새알들을 살펴보았다. 얼마 전 경민이가 사먹은 새알초콜릿 중에 제일 큰 것보다도 이 새알들은 조금 커 보였다. 우윳빛보다 조금 짙은 보오얀 색깔에 작은 검은 점들이 살짝 살짝 찍혀 있는 새알들.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새둥지 안에 가만히 놓여 있는 그 보오얀 새알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가슴의 두근거림은 눈으로 전해졌다가 다시 손으로 전해졌다.
경민이는 손을 뻗어 새알 하나를 살며시 쥐어보았다. 깨질세라 살며시 쥔 새알에서 따스한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그 온기 속에서는 작은 새의 숨소리와 날갯짓이 들리는 것 같았다.
새알 하나를 쥐고 나무에서 내려오려던 경민이는 순간 멈칫거렸다.
‘어, 엄마…….’
웬일일까?
경민이의 눈앞에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엄마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 같았지만 입술이 움직이는 것만 보일 뿐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경민이는 엄마의 슬픈 얼굴과 소리 없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손에 쥔 새알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경민이는 둥지 속에 새알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다시 고개를 든 경민이는 엄마를 찾아보았지만 어느새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안개 속에서 무엇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금세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나무에서 내려온 경민이는 푸른동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도 경민이네 반 아이들은 축구를 하며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있을 뿐 동산 위에는 경민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다시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미새가 날아와 둥지에 앉았다. 아마도 알을 품다가 배가 고파서 벌레를 잡아먹으러 갔다왔나보다.
공부 시간이 되었는지 축구하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교실로 들어가던 태수가 동산 위에 있는 경민이를 불렀다.
“경민아, 뭐 해? 공부 시간이야. 교실로 들어가자.”
“어, 그, 그래.”
경민이는 다시 한 번 나무 위의 새 둥지를 쳐다보고는 푸른 동산을 내려왔다.
교실로 향하는 경민이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시간은 미술 시간. 경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야외교실에서 그림을 그리겠어요. 모두 그림 그릴 준비를 하고 푸른 동산으로 올라가세요.”
선생님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가지고 교실 밖으로 와- 몰려나갔다.
푸른동산 야외교실로 간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어떤 아들은 푸른 동산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방금 전 축구하던 모습이 그려지는 도화지도 있었다. 그건 조금 전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동욱이의 도화지였다.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느라 아무도 머리 위에 새 둥지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경민이는 슬쩍 새 둥지를 올려다보았다. 어미새가 둥지를 덮고 앉아 불안한 눈을 뒤룩거리며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둥지가 굵은 나뭇가지의 갈라진 곳에 살짝 숨어있는 데다가 둥지의 색깔이나 어미 새의 털빛도 나뭇가지 색깔을 닮아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경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짓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경민이의 도화지에서 큰 나무가 쭉쭉 자라고 있었다. 나무에는 가지가 뻗고 가지 위에는 초록색 잎들이 입혀졌다. 그리고 큰 가지 두 개가 갈라지는 사이에 크레파스 새 둥지가 만들어졌다. 새 둥지 위에는 큰 새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둥지 위 어미 새의 품 아래에는 하얀 알도 다섯 개 들어있었다.
그림 속의 둥지는 투명한 둥지가 되었다. 둥지 밖으로 새알들이 뚜렷이 보이고, 새알들은 어미 새 품에서 포근하게 잠자고 있었다.
희희낙락, 재잘재잘.
시원한 야외교실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살펴보시다가 경민이의 등 뒤에 서서 한 참을 내려다 보셨다. 경민이는 선생님이 뒤에 서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도화지를 채워 나가고 있었다.
“경민이 그림 참 잘 그렸네.”
선생님의 말씀이 들리자 그제야 경민이는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의 칭찬에 경민이는 기분이 좋았다.
“음, 경민이는 알을 품고 있는 새둥지를 본 적이 있구나. 어디서 보았니?”
선생님의 말씀에 경민이는 씨익 웃으며 머리 위 새 둥지로 눈을 돌렸다. 선생님도 경민이의 눈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
“어머나, 여기에 새 둥지가 있었구나!”
갑자기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뭐예요, 선생님?”
“새 둥지가 있다구요?”
“어디, 어디?”
경민이와 선생님 곁으로 몰려 든 아이들은 모두 두 사람의 눈이 향하는 곳을 따라 머리 위 나무 줄기 사이를 올려다 보았다. 아이들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아, 저기, 저기 있네!”
“둥지 위에 새가 앉아 있네.”
“무슨 새일까?”
아이들의 목소리와 손가락질로 새 둥지가 있는 나무 아래는 갑자기 소란스러운 시장터처럼 되었다. 둥지 위의 새도 놀랐는지 작고 동그란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의 소리가 조금 작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소곤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여러분이 떠들면 새가 놀라서 달아나요. 저 새는 알을 품고 있기 때문에 날아가지도 못하고 긴장해 있어요. 그러니 새가 놀라지 않게 조용히 해야 되요.”
“네-.”
아이들의 목소리는 조용히 가라앉았지만 새 둥지로 향한 눈길을 거두어 들이지 않았다.
“선생님, 그런데 저 새 이름이 뭐예요?”
반장인 지연이가 물어보았다. 아이들의 눈이 이번에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궁금하다는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글세. 선생님은 새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 교감 선생님께 여쭤볼까?”
“그래요. 교감 선생님은 꽃과 새에 대해서는 잘 아시는 생물 박사님이잖아요.”
“제가 교감 선생님을 모셔 올게요.”
동욱이가 벌써 쪼르르 교무실 쪽으로 달려가며 저만치서 외치고 있었다.
잠시 후 동욱이와 함께 온 교감 선생님은 새 둥지 위를 한참 동안 이러 저리 살펴보셨다.
“음, 이 새는…….”
교감 선생님은 잠깐 뜸을 들이시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멧비둘기란다.”
“멧비둘기요?”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모아 되뇌었다.
“그래. 비둘기와 비슷한데, 마을이나 도시에서 사는 집비둘기와는 달리 산과 들에서 사는 비둘기란다.”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여러분, 이 멧비둘기는 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알이 깨어서 예쁜 새가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지요”
“네-.”
“그러려면 새가 놀라지 않게 해야 되요. 그리고 멧비둘기 둥지 위로 올라가서 보려고 하거나 알을 꺼내면 안 되요.”
“네-.”
선생님의 말씀마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경민이가 오늘 큰 발견을 했어요. 경민이는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멧비둘기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거예요. 자, 그러면 지금부터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세요.”
아이들은 다시 흩어져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날 경민이가 그린 그림은 교실 게시판 가운데에 자랑스럽게 붙여졌다.
다음 날부터 경민이는 쉬는 시간만 되면 푸른동산으로 가서 멧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는 나무를 쳐다보다가 교실로 들어가곤 하였다.
교실청소 당번인 경민이는 청소를 끝내고 느지막이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운동장을 가로질러 반장인 지연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경민아, 경민아-”
지연이는 경민이 앞에 와서 헉헉거리며 말을 하였다.
“경민아, 헉헉-. 푸른동산으로……, 헉헉-, 빨리 가봐. 동욱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새집을……, ……”
“뭐? 동욱이가?”
지연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민이는 책가방을 벗어 던지고 푸른동산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지연이는 경민이가 벗어 던진 가방을 주워들고 경민이의 뒤를 따라 뛰어갔다.
푸른동산에 도착한 경민이의 눈에 마악 나무에서 내려오는 둥욱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 아래에는 경민이네 반 아이들 서너 명이 서서 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었고, 나무 위에서는 멧비둘기가 이 가지 저 가지로 퍼덕 퍼덕 옮겨 다니며 구구거리고 있었다.
“야, 임마. 도, 동욱이-.”
그냥도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경민이의 입에서 큰 소리가 더듬거리며 나왔다.
나무에서 풀쩍 뛰어내린 동욱이는 고개를 돌려 숨을 헐떡거리며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고 있는 경민이를 보았다. 동욱이는 씨익 웃으면서 손을 뒤로 감추었다. 경민이는 동욱이가 손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 너, 너. 소, 손에 가, 감추고 있는 거. 내, 내놔.”
그제야 동욱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감추었던 손을 내밀었다.
“아, 이거?”
동욱이의 손 안에서 멧비둘기 알 하나가 보얗게 빛나고 있었다.
동욱이는 그러나 알을 살짝 보여주기만 하고 다시 손을 뒤로 감추었다.
“이 까짓 알 하나 가지고 뭘 그러니?”
동욱이는 일부러 경민이를 약 올리는 듯이 하며 나무 아래 벗어놓았던 책가방을 둘러메는 것이었다.
경민이는 동욱이의 앞을 막아섰다.
“돌려 줘이! 저기 새 엄마한테 돌려줘이!”
“안 돌려줘. 글구, 이게 네 거니? 네 꺼냐구우?””
“새 엄마가 울고 있단 말야. 새 엄마 울게 하지 마아.”
말을 더듬던 경민이의 입에서 더듬지도 않는 말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경민이는 동욱이의 손에서 알을 뺏을 듯이 달려들었다. 동욱이는 경민이의 손에 붙들린 팔을 빼려고 하였지만 경민이는 더욱 바짝 매달리며 알을 빼앗으려 하였다.
“어라라! 이게.”
동욱이는 다른 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휘둘렀다.
“어욱!”
동욱이의 주먹에 얼굴을 맞은 경민이는 코를 감싸 쥐고 나뒹굴었다. 얼굴을 감싸 쥔 경민이의 손가락 사이로 빠알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뒤늦게 동산에 올라온 지연이가 경민이에게 뛰어왔다.
“어떡해. 어떡해! 경민이의 얼굴에서 피가 나!”
지연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걸 보던 동욱이는 움찔 했지만 다시 가방을 고쳐 매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바보 같은 짜식이 엇다 덤비는 거야. 야, 가자.”
모여들었던 친구들이 동욱이를 따라 발을 돌렸다.
순간, 쓰러져 있던 경민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동욱이에게 달려들어 발을 잡고 쓰러뜨렸다.
“돌려 줘이!”
“아이코!”
걸음을 옮기던 동욱이는 경민이가 발을 잡아채는 바람에 그만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쓰러지면서 땅을 짚은 동욱이의 손에서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알이 깨져버린 것이었다.
“으……. 이게 뭐야? 깨져버렸잖아.”
동욱이는 쓰러진 채 깨어진 알을 보다가 손을 솔잎에 쓱쓱 문질러 닦고 일어섰다.
경민이도 멍한 눈으로 깨어진 알을 보다가 얼굴이 씰룩거렸다.
“으앙! 알이 깨져버렸어. 으앙!”
씰룩거리던 경민이의 입에서 큰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엄마새한테 돌려줘야 한단 말이야. 으앙!”
경민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깨어진 새알을 솔잎과 함께 감싸 모았다.
“에이 씨. 가자!”
머쓱해진 동욱이는 경민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함께 푸른동산을 내려가 버렸다.
울고 있는 경민이의 얼굴에서 코피와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렸다.
경민이는 깨어진 알을 내려다보다가, 둥지 위의 어미 새를 올려다보다가 하면서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어미 새도 알이 깨어진 것을 보는지 국국국국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어미 새 위로 엄마 얼굴이 겹쳐지고 있었다.
지연이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담임선생님이 달랬지만 경민이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 집에서 9시 뉴스를 보던 선생님은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경민이 할머니였다.
“선생님, 우리 경민이가 집에 안 들어왔어요.”
“예? 경민이가요?”
선생님은 얼른 차를 몰아 경민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경민이네 집에는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아이고, 선생님…….”
경민이 할머니는 선생님을 보자마다 울음부터 터뜨렸다.
“경민이 할머니, 울지 마시고 차근차근 말씀해 주세요.”
“글쎄 경민이가 오늘 친구하고 싸웠는지 코피를 흘리고 옷에 코피를 다 묻히고 울면서 들어왔어요. 달래어놓고 밭에 갔다가 들어왔는데 경민이가 없는 거예요. 어두워지면 들어오겠거니 했는데 지금까지 안 들어오는 거예요. 어이구, 선생님. 어떡하면 좋아요?”
“경민이 할머니, 걱정 마세요. 아마 조금 있으면 들어올 거예요.”
선생님은 경민이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위로하였다.
“자, 우리 이러지 말고 흩어져서 찾아봅시다.”
“그럽시다. 석이 아빠네는 웃동네 쪽을 찾아 봐요. 우린 알동네 쪽으로 가 볼게요. 그리고 동철이 엄마는 경민이 할머니랑 함께 이 근처를 찾아 보세요.”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쪽저쪽으로 흩어졌다.
“얘들아, 너희들 경민이가 갈만한 데 생각나는 데 없니?”
선생님의 물음에 1학년짜리 작은 아이가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경민이 오빠가 학교 쪽으로 가는 걸 봤어요.”
“그래? 언제?”
“저녁 때 주아랑 마을회관 앞에서 놀고 있을 때요.”
선생님은 퍼뜩 낮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 거기 갔을 거야. 그런데 이 캄캄한 밤중까지 거기에…….”
선생님은 동철이 엄마와 함께 나가는 경민이 할머니를 급히 불러 세웠다.
“경민이 할머니, 잠깐만요, 저와 함께 가 봐요.”
선생님은 경민이 할머니와 동철이 엄마를 차에 태우고 학교를 향해 달렸다.
“선생님, 우리 경민이가 어디 있대요.”
“어쩌면 학교 동산에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얘가 이 캄캄한 밤중에 학교 동산에는 왜요. 혼자서 무서울 텐디. 얼른 얼른 가요. 선생님”
할머니는 궁금해 하면서 차에 앉아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운 선생님은 경민이 할머니와 동철이 엄마와 함께 푸른동산으로 올라갔다. 동철이 엄마는 어느새 손전등을 준비하여 와서 불을 비추며 앞장섰다.
“경민아-.”
“경민아-.”
선생님과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푸른동산 나무숲 사이로 퍼져나갔다.
야외교실로 올라간 세 사람은 손전등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며 경민이를 찾았다.
“할머니-”
할머니를 부르는 작은 소리가 야외교실 옆 나무 밑에서 들렸다. 손전등 불빛이 소리가 들린 나무 밑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거기 경민이가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경민아! 경민아!”
선생님은 얼른 경민이를 껴안았다. 할머니도 함께 경민이를 껴안았다.
“아이고, 경민아, 내 강아지야!”
할머니의 아이고 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왔다.
“경민아, 선생님이야, 할머니와 선생님 왔어.”
“서, 선생님, 새, 새 둥지 제가 지, 지킬 거예요. 아, 아무도 새, 새, 새 엄마한테서 아기새 빼앗을 수 없어요.”
작은 소리로 더듬더듬 말하는 경민이의 입술이 오돌오돌 떨리고 있었다.
경민이의 이마를 짚어 본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며 팔다리를 만져보았다. 이마는 뜨끈뜨끈 불덩어리 같았고, 팔다리는 한 데 둔 차돌 같았다.
“경민이 할머니,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겠어요.”
선생님은 경민이를 들쳐 업고 주차장으로 달렸다.
“아이고, 우리 경민아-. 불쌍한 내 새끼.”
할머니는 연신 경민이를 부르며, 허둥지둥 선생님을 따라갔다. 동철이 엄마의 손전등도 그 뒤를 바짝 따라 달렸다.
병원으로 달리는 차에서 할머니 품에 안긴 경민이는 눈을 감은 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할머니, 나 어, 엄마 얼굴 바, 바, 봤어. 저 둥지 속에 비, 비둘기처럼 엄마가 나, 나를 꼬, 꼬, 꼬옥 안아주었어.”
“그래, 그래, 내 새끼.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으면……. 선생님, 더 빨리 갑시다. 에구, 이렇게 이쁜 자식을 놔두고 니 에미는 어디서 무얼 한다니.”
옆에서 동철이 엄마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경민이에게 기쁜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왔다.
멧비둘기 둥지에서 새끼들이 알을 깨어 입을 벌리고 어미가 물어다 주는 작은 벌레들을 받아먹고 있었다. 모두 네 마리였다.
전체 조회 시간에는 교장 선생님이 경민이를 조회대 위로 불러 올려 임명장을 주셨다.
“에,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모범 어린이 3학년 이경민이를 ‘푸른동산 지킴이’로 임명합니다.”
임명장을 받는 경민이의 귀에 박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임명장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날 더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민아, 네 엄마 전화 왔다. 열흘만 있으면 집으로 돌아온단다.”
“저, 저, 정말이에요, 하, 할머니?”
“그래, 욘석아, 엄마가 경민이를 보고 싶다고, 경민이를 사랑한다고 하더라.”
“얏호!”
경민이는 펄쩍펄쩍 방으로 뛰어 들어가 달력에서 오늘부터 열 번째 날을 세어 색연필로 빨간 동그라미를 크게 그렸다.
푸른동산의 멧비둘기가 경민이네 집까지 찾아온 것일까? 대문 곁 멀구슬나무 가지 위에서 멧비둘기가 구구구구 즐거운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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