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의 노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숲 속 마을에 봄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직 추위가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봄소식은 찬바람의 틈새를 비집고 나뭇가지에도 전해지고, 땅 속에서 지루한 겨울을 견디며 움트기를 기다리는 풀잎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홍매화는 벌써 분홍 꽃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급한 목련은 물을 빨아 올려 가지를 연둣빛으로 바꾸면서 꽃눈을 부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설맞이로 분주한 날, 숲 속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우렁찬 폭포수가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큰 웅덩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가는 곳, 거기 작은 시내 주변에 있는 작은 숲 속 마을은 새들이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그 숲 속 마을 가운데의 커다란 동백나무로 동박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동박새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동백나무 둘레에 울창하게 자란 담팔수, 먼나무, 벗나무, 녹나무들의 가지 위로 휘파람새, 굴뚝새, 찍박구리, 재비둘기, 참새, 그리고 까치들도 여러 마리가 날아 모여 와서 제각기 자기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모든 새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노래를 멈추었습니다.
연둣빛 털 사이로 잿빛 털들이 듬성듬성 난 할아버지 동박새가 잿빛 부리를 열었습니다.
“여러 새 가족 여러분, 오늘 나 늙은 동박새에게는 너무나 기쁜 날입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숲 속 새 마을 모든 새들에게 기쁜 날입니다. 우리들의 소리로 마음껏 우리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이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새 가족 여러분, 우리들의 소리로 이 기쁜 날을 마음껏 노래합시다.”
동박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든 새들이 힘찬 소리로 마음껏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가족들의 기쁜 노래를 듣는 동박새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동박새 할아버지는 봄바람이 불어오는 동백나무 가지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하얀 물보라를 뿌리며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를 바라보았습니다.
눈물 그득히 고인 동박새 할아버지의 눈에 흩어지는 물보라가 더욱 뽀얗게 보였습니다.
그 폭포수 물보라를 타고 동박새들이 하늘 가득히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폭포수 아래의 숲 속 마을은 새들이 모여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이었습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이 곳 숲 속 마을의 나무들은 싱싱한 푸른 잎을 떨구지 않고 그대로 달고 있어서 많은 새들이 모여들어 둥지를 지었습니다.
마을 주변에는 새들의 먹이도 풍성했습니다. 나무들은 네 계절을 번갈아 가며 꽃을 피워 달콤한 꿀을 주었습니다. 폭포수 물줄기가 흘러가는 작은 시내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많았고, 갈대밭에는 벌레들이 가득했습니다.
숲 속 마을 새들은 무성한 가지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키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숲 속 마을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새, 아빠 새들이 둥지를 잠깐 비운 사이에 알들이 하나씩, 둘 씩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바위 언덕 밑에 둥지를 튼 굴뚝새의 알들이 없어지더니, 나뭇가지 높은 곳에 만든 동박새와 휘파람새 둥지의 알들까지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얘들이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벌써 부화를 해서 날아갔나?”
“아니우. 부화를 했으면 알 껍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껍질조차 없잖우.”
“그러게 말이오. 부화를 했어도 우리 새들은 날개 털이 돋아나 날아가려면 며칠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러면 얘들이 어딜 갔을까? 아가, 아가, 어디 있니?”
새들은 포롱포롱 날며 이리 저리 알들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숲 속 마을은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숲 속 마을 모든 새들이 잃어버린 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나무 위에도 땅 위에도 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몇 새들은 혹시 물 속에 있나 해서 시냇물 위를 날아다니며 물 속을 들여다보았지만 거기에도 알들은 없었습니다.
마을이 슬픔에 잠긴 가운데서도 엄마 새들은 알을 낳고 품어 부화를 시켰습니다.
갓 결혼한 노랑부리 동박새네도 뽀오얀 알 5개를 낳았습니다. 알들은 보면 볼수록 귀여웠습니다. 고 작은 알에서 부화할 새끼들이 동백나무 어린 잎 같은 연둣빛 날개를 펼쳐서 숲 속 마을을 포롱포롱 날아다닐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노랑부리네 부부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기네 알들도 다른 새들의 알들처럼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노랑부리 아빠, 엄마는 둥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알을 품고 있는 엄마 동박새의 먹이까지 아빠 동박새가 물어다 주곤 했습니다.
봄 햇살이 제법 따갑게 내리쬐던 날 엄마 동박새가 품고 있던 알들이 톡톡 금이 가더니, 알속에서 아직 털도 돋지 않은 빨간 새끼들이 나왔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 부부는 행복했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네가 새끼를 부화할 무렵에는 여기 저기 다른 새들의 둥지에서도 알들을 깨고 나온 어린 새끼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숲 속 마을 새들은 이제 더욱 부지런히 먹이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눈도 아직 뜨지 않은 조그만 새끼들이 빨간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리면 엄마 새, 아빠 새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구해다 새끼들의 입 속에 넣어 주며 어서 어서 자라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알들이 없어지던 사건이 있고 나서 한 동안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노랑부리네 이웃에 둥지를 튼 까망눈이 동박새 부부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숲 속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놀란 새들이 까망눈이네 둥지로 날아 모였습니다.
그런데 까망눈이네 둥지에서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빨간 갈래 혀를 날름거리며 까망눈이네 둥지에 있는 새끼들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 나쁜 놈! 내 새끼들을 건드리지 마라!”
까망눈이 동박새 부부는 둥지 위를 맴돌며 새끼들을 지켜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뱀은 까망눈이 부부의 비명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 날카로운 이빨이 돋은 입을 쩌억 벌리고 낼름 동박새 새끼 한 마리를 잡아 삼켰습니다.
까망눈이 동박새 부부의 슬픈 외침이 숲 속에 메아리쳤습니다.
뱀은 또 한 마리의 새끼를 노리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몇 몇 용감한 동박새들이 퍼덕거려 날며 뱀의 몸뚱이를 쪼아 보려고 다가갔습니다.
“이 악마 같은 뱀아. 우리 새끼들을 잡아먹지 마라!”
그러나 동박새들의 외침은 무서움에 떠는 작은 외침이었습니다.
뱀은 기다란 몸뚱이를 번 쩍 쳐들어 흔들고 날카로운 눈으로 동박새들을 쓰윽 째려보았습니다.
“흐흐, 어느 놈이 이 어른이 식사하는데 끼여들어 짹짹거리느냐. 너희들도 내 밥이 되고 싶어?”
그러면서 뻘건 입을 쩌억 벌리는 바람에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몰려 왔던 새들이 날개를 허둥거리며 모두 달아나 버렸습니다.
뱀은 여유 있게 한 마리 씩 한 마리 씩 네 마리 새끼를 모두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까망눈이 동박새 부부는 슬픈 울음을 울며 빈 둥지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뱀은 불룩해진 배를 나무 줄기에 슬슬 문지르며 내려가 어느새 풀 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음 날부터 숲 속 마을에는 새들의 비명 소리와 슬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털도 아직 다 돋지 않은 새끼 새들에게 맛을 들인 뱀은 며칠에 한 번 씩 나무 위로 기어올라 와 새들의 둥지를 습격하곤 하였습니다. 어미 새가 있던 없던 상관하지 않고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와서는 무섭게 늘어나는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한 마리씩 한 마리씩 통째로 집어 삼켰습니다. 그리고는 새 둥지 곁 나뭇가지를 칭칭 감고 누워서 느긋하게 소화를 시키며 햇볕을 쪼이곤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뱀이 무서워진 새들은 정든 둥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날개 털이 돋지 않아 날지 못하는 새끼들을 키우고 있는 어미 새들은 어쩔 수 없이 남아 뱀이 자기 새끼들을 잡아먹는 걸 보면서 슬픈 비명을 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네도 새끼들이 뱀에게 모두 잡아 먹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동박새들이 노랑부리네 만이 아니었기에 혼자만 슬퍼하며 위로 받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뱀은 새끼 새들을 잡아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지에 앉아 쉬고 있는 새들의 눈앞에 소리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뻘건 입을 쩌억 벌리고 덤벼들면 새들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뱀의 입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 버리곤 하였습니다.
새들은 회의를 열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뱀에게 당한 일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는 알을 몽땅 그 놈에게 먹히고 말았어.”
“악마 같은 그 놈이 내 귀여운 새끼들을 잡아먹어 버렸어. 지금도 그 놈에게 잡아먹힌 내 새끼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미칠 지경이야.”
“난 내 사랑스런 아내까지 잃어버렸단 말야. 여보! 흑흑.”
회의에 모인 새들은 뱀에게 피해를 당한 이야기들만을 하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자, 여러분. 조용히 합시다.”
노랑부리 동박새의 말에 짹짹거리던 새들이 조용해졌습니다.
“여러분, 이 자리는 우리들이 당한 피해를 이야기하며 우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숲 속 새 가족들 모두가 뱀에게 피해를 당했습니다. 아직 새끼들을 잡아먹히지 않은 새들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두 함께 피해자입니다. 이 자리는 어떻게 하면 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뱀을 물리치고 다시 평화로운 숲 속 마을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 자리입니다. 서슴없이 좋은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피를 토하듯 말하는 노랑부리 동박새의 노랗던 부리가 잿빛이 되어 있었습니다.
새들은 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조용함을 깨고 구석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새들이 모두 작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작은 굴뚝새가 촐랑촐랑 뛰어 나와서 입을 열었습니다.
“뱀의 입을 묶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를 잡아먹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 저기서 새들의 고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치워라, 치워!”
“굴뚝새 니가 뱀의 입을 묶어라! 난 그 일에 빠질란다.”
“어느 용감한 새가 뱀의 입을 묶는다더냐. 아, 용감한 새여. 그대 이름은 뱀의 먹이로다!”
창피를 당한 굴뚝새가 포로롱 날아서 돌담 구멍 속으로 숨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여기를 떠나서 다른 숲으로 이사를 갑시다.”
휘파람새의 이야기였습니다.
여기 저기서 다시 술렁거렸습니다.
“난 고향을 떠날 수 없어.”
“그래. 나도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가 있어서 이사를 가지 못 해.”
“우리 동박새들은 동백나무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어. 다른 숲으로 가서 이렇게 좋은 동백나무를 어떻게 찾지?”
숲 속에는 다시 조용함이 찾아왔습니다. 새들은 이 가지 저 가지를 폴짝폴짝 뛰어 다니며 좋은 생각을 짜내느라고 궁리를 했지만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재비둘기가 높은 가지 위에서 노랑부리 동박새 곁으로 날아 내려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가 여러 새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여러분, 재비둘기가 여러분들에게 할 얘기가 있답니다.”
새들이 노랑부리 동박새와 재비둘기 곁으로 날아와 앉았습니다.
재비둘기가 여러 새들을 한동안 바라보다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 새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랫동안 이 숲속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 뱀이란 놈 때문에 숲속의 평화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저 뱀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어렵습니다. 이사를 가더러도 이 숲보다 더 먹이가 풍부한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어려운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새들이 모두 재비둘기의 입을 바라보았습니다.
재비둘기는 얼마동안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찬성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제 생각에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표가 뱀에게 찾아가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며칠에 한 마리씩 뱀의 먹이가 될 테니까 우리 새끼들을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재비둘기의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건 안 돼. 난 뱀의 먹이가 될 수 없어.”
“그래 나도야. 난 그놈의 꼬리만 봐도 몸이 떨려.”
“재비둘기 네가 먼저 뱀의 먹이가 되어라!”
“옳소, 옳소!”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뱀이 가까이 있는 듯 놀라 날아오르는 새들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 재비둘기의 말을 끝까지 들어봅시다. 조용히 하세요.”
노랑부리 동박새의 말에 소란이 간신히 가라앉아 재비둘기의 말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여러분들이 반대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놈에게 가족 모두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놈의 먹이가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받아들여지면 제가 제일 먼저 뱀의 먹이가 되겠습니다.”
여기 저기서 작은 술렁거림이 일었습니다.
“그 뱀이란 놈의 습성은 큰 먹이를 잡아먹으면 배가 불러서 먹은 먹이를 다 소화시킬 때까지는 며칠 동안 다른 먹이를 잡아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새끼들이 한꺼번에 잡혀 먹이는 것보다 커다란 우리가 스스로 뱀의 먹이가 되어서 우리 새끼들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겨울이 되어서 뱀이 활동을 못하여 우리가 안심하고 지내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재비둘기의 이야기가 끝나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부리가 잿빛이 되어버린 노랑부리 동박새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재비둘기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하겠습니다. 저도 스스로 뱀의 먹이가 되겠습니다.”
“아닙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님은 남아서 숲속 마을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제가 맨 처음 먹이가 된 후에는 먹이가 될 새를 제비를 뽑아 결정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님은 남아서 숲속 마을의 지도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 새끼들이 자라면 그 애들을 잘 가르쳐 주십시오.”
“옳소, 옳소!”
새들은 다시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새들의 회의가 끝났습니다.
제일 먼저 재비둘기가 뱀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마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뱀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제비에 뽑힌 새가 뱀에게 잡혀 먹힐 때면 숲의 모든 새들이 슬픈 울음을 울어 작별의 노래를 하고 하였습니다.
이제 어린 새끼들이 뱀에게 잡혀 먹히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어린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날개 털이 돋아나고, 보송보송하던 솜털을 억센 깃털로 바꾸며 날아다니는 연습을 하고, 노랑부리 동박새에게 숲속 마을의 규칙을 배우곤 하였습니다.
숲속 마을엔 이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 평화는 무서운 평화였습니다. 언제 자기가 뱀에게 잡혀 먹힐 제비를 뽑게 될지 알지 못한 채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평화였습니다. 새들은 이제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나무마다 열매가 가득한 가을이 지났습니다. 숲속 마을 새들을 두려움 속에 살게 하던 뱀이 찬바람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나뭇가지에도 새들의 둥지에도 하얀 눈이 내렸지만 새들은 한겨울 동안 포근한 숨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며칠 동안 겨울 속의 따뜻한 봄이 계속되었습니다. 봄이 숲속 마을로 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는 봄이 오는 것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봄이 되면 겨울 동안 동면하던 뱀이 다시 나와 새들을 잡아먹을 것입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는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연둣빛 고운 털 사이로 듬성듬성 잿빛 털이 나왔습니다.
봄기운이 숲속 마을을 가득 채울 무렵, 숲속 마을 근처에 사는 도시 사람들이 설맞이 준비로 한창 바쁜 까치 설날, 정말 까치 한 마리가 숲속 마을로 날아왔습니다.
까치는 무슨 기쁜 소식이라도 있는 양, 날아오는 날갯짓부터 호들갑스러웠습니다.
“숲속 마을 새 여러분,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까치는 숲속 마을을 한바퀴 비잉 돌며 외치더니 숲 가운데 커다란 동백나무 높은 가지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던 뱀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동그란 눈들을 멀뚱멀뚱 뜨고 까치를 보기만 할뿐이었습니다.
“따스한 기운이 땅 속에 스며들자 봄이 온 줄로 착각한 뱀이 땅 속에서 기어 나왔어요. 배고픈 오소리가 먹이를 찾아다니다 땅 위로 나온 뱀을 잡아먹고 있어요. 저기 저 숲 끝 큰 바위 아래예요.”
“와!”
새들의 함성이 숲속을 울렸습니다.
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치가 가리킨 숲 끝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쁜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숲 끝으로 갔던 새들은 숲 마을 가운데의 동백나무로 모여들어 기쁜 노래를 불렀습니다.
새들은 이 나무 저 나무,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며 서로 기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까치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젠 까치님이 전해 주신 기쁜 소식 덕분에 걱정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진짜 평화가 숲 속 마을에 찾아왔습니다.”
까치는 이 새, 저 새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받기에 바빴습니다. 까치는 자기가 전해 준 소식으로 온 숲속이 기쁜 노래로 가득 찬 것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깍깍, 여러분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더 기쁩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저는 이 숲속 마을의 한 식구가 되어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는 새가 되겠습니다.”
“와! 까치님을 환영합니다.”
새들은 다시 즐거운 합창을 하였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는 동백나무 제일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갔습니다. 숲속이 온통 새들의 노래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며 노랑부리 동박새의 눈에서 눈물이 또로록 굴러 떨어졌습니다.
노랑부리 동박새는 이젠 잿빛이 되어버린 부리를 열고 한동안 잊었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새 가족들이 폭포수 물보라처럼 일제히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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