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람 다솜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흰 구름이 솜뭉치처럼 모여 조용히 흐르는
파란 하늘 아래
바다는 하늘빛보다 더 짙은 감청색으로 물들어
잔물결을 가만히 일렁이며 흔들리고 있어요.
사방이 끝없는 망망 바다 가운데 작은 점 하나.
이어도해양과학기지.
깊은 바다 속에서 파란 하늘 향해 솟아오르고 싶어
물 위로 솟아오르다 멈춘 물 속 큰 바위 위에
기둥뿌리 세우고 떠 있는 인공 섬
이어도해양과학기지.
늘 외롭던 인공 섬이
오늘은 외롭지 않았어요.
지난겨울 추위에 밀려 멀리 남쪽으로 갔던 마파람 식구들이
오늘은 인공 섬 위에 모여들었어요.
인공 섬 헬기장 가운데 자리 잡아 앉은 마파람 아빠가 말했어요.
“얘들아, 여기서부터는 한국 땅이다.
이제부터 우린 북쪽으로 올라가며
하늬바람 때문에 꽁꽁 얼려있는 땅에
따스한 공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그래서 잠자는 개구리도 깨우고,
언 땅 속에서 오들오들 떨던 씨앗들을 싹 틔워
예쁜 꽃도 피워주도록 하거라.”
"예, 아빠, 알았어요.”
마파람 식구들의 대답 소리에
기지 주변이 따뜻한 공기로 채워지고,
기지 위에 오똑 세워져 있는 풍향계가 팽그르르 기분 좋게 회전했어요.
다솜이는 기지 주위를 돌며,
바닷물을 살짝 살짝 건드려 잔물결을 일으키며 들떴어요.
다솜이는 금년에 태어난 마파람 식구의 막내예요.
마파람 식구들은
해마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한국을 찾아가서 봄을 만들어주곤 했는데
다솜이는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이 없어요.
형들에게 듣기만 한 아름다운 한국 땅이 빨리 보고 싶었어요.
“자, 이제 출발하자!”
아빠의 외침에 마파람 식구들은 일제히 날아올랐어요.
마파람 식구들이 날아가는 뒤쪽 바다 위로
양떼 같은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올랐어요.
한국 땅에 겨울을 더 만들고 싶어 하는 하늬바람이
올라오는 마파람 식구들을 막으려고 찬바람을 휙휙 불어댔지만
마파람 식구들은 모두 손을 잡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내며 힘껏 맞섰어요.
마파람과 하늬바람이 맞붙어 싸우는 아래에서
바다가 출렁출렁 흰 파도를 일으켰어요.
견디지 못한 하늬바람이
슬슬 꽁무니를 빼며 북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마파람 식구들은 달아나는 하늬바람을 쫓아가며
거칠게 뛰노는 파도를 잠재웠어요.
“꽃솜아, 넌 어디로 갈 거니?”
육지가 보이지 않은 망망 바다 위를 날아가며
다솜이는 옆에서 같이 날아가는 꽃솜이에게 물었어요.
꽃솜이도 다솜이와 함께 태어난 막내예요.
“몰라, 우리 모두 처음 가보는 곳이잖아.
형들은 우리에게는 처음 만나는 작은 섬으로 가래.”
“작은 섬? 거기가 어딜까?”
다솜이와 꽃솜이는 궁금증을 안고
앞에서 날아가는 형들을 따라 맨 뒤로 날아갔어요.
“아, 저기 육지가 보인다!”
다솜이가 육지를 발견하고 외쳤어요.
“저건 제주도라고 하는 섬이야.
한국에서 제일 큰 섬이지.”
앞에 가던 형들이 가르쳐 주었어요.
“제주도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어야지.”
“엉뚱한 생각 말아. 저긴 우리들 몫이야.
너희들은 저기 저 작은 섬들로 가.
그 섬을 봄섬으로 만들어 주고 나서 우릴 따라와.”
형들의 이야기에 다솜이와 꽃솜이는 눈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어요.
눈 아래 작은 섬이 두 개 보였어요.
“저 섬 이름이 뭐예요?”
“제일 남쪽에 있는 첫 섬은 마라도,
그 다음 섬은 가파도야.
너희들의 처음 임무니까 그 섬에 가서 열심히 봄섬을 만들어 봐.”
“알았어요. 형.”
다솜이와 꽃솜이는 뿌루퉁하게 대답하고는 작은 섬 쪽으로 내려갔어요.
“다솜아, 난 마라도로 갈 거야. 이따가 만나.”
“잉, 내가 마라도로 가고 싶었는데…….
알았어. 그럼 난 가파도로 간다.”
다솜이 눈에는 작은 마라도가 더 이쁘게 보여서
거기로 가고 싶었지만,
꽃섬이가 먼저 찜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가파도로 내려갔어요.
가파도는 한국에서
마라도 다음으로 두 번째로 남쪽에 있는 섬이에요.
하늘에서 내려다 본 가파도는
바다 속을 헤엄쳐 가는 가오리 모양이었어요.
산도 언덕도 없이 그저 평평하기만 했어요.
섬의 남쪽에는 작은 마을과 포구가,
북쪽에는 더 작은 마을과 작은 포구가 있었어요.
섬의 가운데에는 몇 채의 집과 작은 학교가 보였어요.
가파도 들판은 온통 초록빛으로 덮여 있었어요.
‘어, 누가 벌써 가파도를 봄섬으로 만들어 놨나?’
다솜이는 초록빛으로 덮여 있는 들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어요.
섬의 주변에는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이 허연 파도를 일으키며
검은 바위를 때리고 있었어요.
꽃이 핀 나무와 풀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봄섬이 된 것 같지도 않은데
들판이 온통 초록빛으로 덮인 것이 이상하였어요.
‘어서 내려가 보자.’
다솜이는 따스한 바람꼬리를 일으키며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가파도 들판으로 내려갔어요.
작은 초록빛 풀들이 언 땅 위에 납작 엎드려 오돌오돌 떨고 있었어요.
“얘들아, 너희들은 누구니?”
다솜이의 물음에
떨고 있던 풀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다솜이를 올려다보았어요.
“아, 아기 마파람!”
“아기 마파람아, 이제야 왔구나!”
“우리들은 청보리 싹이야.”
청보리 싹들이 여기저기서 종알종알 대답했어요.
“그런데 왜 언 땅 위에 엎드려 떨고 있니?”
“우리들은 지난 늦가을에 뿌려진 씨앗에서 자라난 싹이야.”
“가을 소슬바람이 우리 싹을 틔워주었는데…….”
“……, 하늬바람이 불어와 소슬바람을 쫓아내고…….”
“……, 우리들은 한겨울동안 하늬바람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떨고 있었어.”
청보리 싹들이 여기서 한 마디 저기서 한 마디씩 이어서 대답했어요.
“아기 마파람아, 우리를 도와줘.”
“따뜻한 기운을 우리들에게 불어줘.”
청보리 싹들이 언 잎을 흔들며 부탁했어요.
“그래, 알았어.
그런데 내 이름은 다솜이야. 다솜이라고 불러줘.”
“다솜아, 부탁한다!”
청보리 싹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모았어요.
다솜이는 청보리밭 위를 날아다니며
후욱- 후욱- 따뜻한 입김을 불었어요.
청보리 뿌리를 꽁꽁 얼리고 있던 땅이 스르르 녹았어요.
다솜이가 불어주는 봄입김 맞은 청보리 잎들이
우쭐우쭐 기분 좋은 춤을 추며 쑥쑥 자라기 시작했어요.
청보리밭은 이제 봄밭이 되었어요.
다솜이는 가파도 바닷가를 비잉 돌며
바닷가 검은 바위 위로,
차가운 바닷물 위로 따뜻한 입김을 불어 주었어요.
바위에 붙어 자라는 홍합이 알이 여물어가고
검붉은 톳이 더 짙은 색으로 물 속에서 춤을 추었어요.
갯강구들이 무리지어
봄바람으로 따뜻이 데워진 검은 바위 위로 올라왔어요.
게들도 뒤룩뒤룩 눈알을 돌리며 갯강구들을 따라 올라왔어요.
“호오이---.”
바닷물 속에서 물질하는 할머니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더 길게 들려왔어요.
청보리밭과 바닷가를 빙 돌며 가파도를 봄섬으로 만들던 다솜이는
섬의 가운데 있는 학교로 날아갔어요.
교문에 써있는 학교 이름
가파초등학교.
그리고 가파초등학교병설유치원.
작은 학교인 만큼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모두 열 명이 조금 넘어요.
작은 학교 운동장은 초록빛 청보리밭과는 다르게
누런 잔디로 덮여 있었어요.
지난 가을 시든 잔디가 아직 새싹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1학년과 2학년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에 나와 있었어요.
운동장 구석 유치원 놀이기구에는
유치원 꼬마들이 놀고 있었어요.
다솜이는 아이들과 선생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따뜻한 입김으로 뺨을 살살 만져주었어요.
“1, 2학년 친구들.
오늘은 바람이 따뜻하죠?
이젠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나 봐요.
이번 즐거운생활 시간에는
따뜻한 운동장에서 기차놀이를 하겠어요.”
“와!”
네 명의 아이들이 작은 입을 모아 대답했어요.
선생님은 줄넘기 줄 두 개를 이어 줄 기차를 만들었어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인사하세요.
저기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유치원 동생들에게도 인사하고,
철봉과 미끄럼틀에게도 인사하고,
피어나는 작은 꽃들을 찾아 인사를 나눠보세요.”
아이들은 줄 기차를 타고 출발했어요.
맨 앞에서는 2학년 승미가 기관사가 되어 기차를 운전하고,
다음에는 1학년 미소, 보라, 현종이가 손님이 되어
기차를 타고 달려갔어요.
- 칙칙폭폭 기차가 달려갑니다.
- 가파도 섬에 기차가 생겼어요.
기차가 맨 처음 간 곳은 운동장 구석의 유치원 놀이터.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 너희들 기차놀이 하는구나.”
유치원 선생님이 줄 기차를 반겨주었어요.
“경현아, 안녕! 예림아, 혜림아, 윤경아, 안녕!”
기차에 탄 꼬마손님들이
병설유치원 동생들에게 인사했어요.
“형, 누나, 안녕!”
“언니, 오빠, 안녕!”
신나게 미끄럼을 타던 유치원 동생들도 함께 인사했어요.
다솜이는 아이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신이 났어요.
아이들을 태우고 달려가는 줄 기차가
봄기차가 된 듯
기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따뜻한 바람이 일어났어요.
다솜이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운동장 누런 잔디 위로 낮게 날며 따뜻한 입김을 불어주었어요.
“아기 마파람아, 고마워. 이젠 우리들도 싹을 피워 올릴게.”
뿌리줄기를 언 땅 속에 뻗고 있던 잔디들이
다솜이의 입김에 기지개를 켰어요.
어, 저기 민들레 싹 하나가
사방으로 뻗은 잎을 땅바닥에 바짝 붙이고 있어요.
다솜이는 민들에 싹 곁에 살며시 내려앉았어요.
“민들레야, 넌 왜 잎을 땅바닥에 바짝 붙이고 있니?”
“응, 겨울바람이 너무 추워서 그랬어.
잎을 땅바닥에 붙이고 있으면
겨울바람이 머리 위로 스쳐 가버리거든.”
“이젠 걱정 마.
내가 따뜻한 입김을 불어줄게.
어서 어서 자라서 노란 꽃을 피우렴.”
다솜이는 민들레 로제트 잎에 살며시 입맞춤을 해 주었어요.
“아아, 따뜻해. 아기 마파람아, 고마워.”
민들레 싹이 움찔거리며 꽃대를 올릴 준비를 했어요.
다솜이가 불어주는 봄바람 덕분에
학교 운동장에는 봄내음이 가득 찼어요.
냉이는 앙증맞은 작은 꽃을 피우며 쌉쌀한 향기를 만들어내고,
화단의 금잔화는 황금빛 꽃봉오리를 벌리기 시작했어요.
기차놀이를 마친 아이들이 잔디밭에 앉아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어요.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고
봄바람에 꿈을 띄워 보내세요.”
“저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씩씩한 현종이가 먼저 꿈을 이야기했어요.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의사가 될 거예요.”
승미, 미소, 보라가 차례대로 꿈을 이야기 했어요.
“너희들의 꿈들을 저 하늘로 날려 보내면
너희들이 자라는 것처럼 꿈들도 점점 커질 거야.
자, 모두의 꿈을 하늘로 향해 외쳐볼까!”
선생님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열었어요.
“축구선수!”
“선생님!”
“간호사!”
“의사!”
아이들의 소리친 꿈들이 하늘로 둥둥 날아올랐어요.
다솜이는 아이들의 꿈을 가슴에 꼬옥 끌어모았어요.
- 그래, 너희들의 꿈을 내가 하늘 높이 올려 보내 줄게.
다솜이는 가파도 아이들의 꿈을 싣고 높이 올라갔어요.
겨우내 차가웠던 가파도가
다솜이가 불어넣은 봄기운으로 봄섬이 되었어요.
청보리들이 쑤욱쑤욱 커가고,
학교 운동장의 잔디밭에도
뾰족뾰족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어요.
바다도 더욱 파래지며 잔물결을 일으켜 춤을 추었어요.
다솜이는 마라도로 갔던 꽃솜이를 만나
마파람 식구들이 봄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제주 섬을 향해 날아갔어요.
제주 섬 가운데 높이 솟아있는 한라산 백록담에
아직 흰눈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곧 눈이 녹고,
얼마 안 있어 진달래와 철쭉들이 피어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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