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황근과 등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황근이 수영이와 처음 알게 된 것은 황근이 노란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하던 지난 7월 말, 그러니까 수영이네 학교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려던 무렵이었습니다.
크고 검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바닷가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몰려왔습니다.
“와, 시원한 바다다!”
“이 멋진 등대 봐. 얘들아, 여기서 사진 찍자.”
“그래. 그래. 호호호.”
바닷가로 몰려든 아이들은 수다스럽게 재잘대며 바다와 등대 풍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여기 왜 왔니?”
“청소하러요…….”
아이들은 심드렁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그러면 먼저 청소하고 나서 사진도 찍고 놀고 그러렴.”
“예. 예.”
선생님은 아이들을 황근이 피어있는 쪽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얘들아, 이 꽃 보이지?”
선생님의 가리킴에 그제야 아이들은 황근꽃을 보았는지 눈을 똥그랗게 떴습니다.
“어머. 여기에 이렇게 예쁜 꽃이 피어있네.”
“까만 바위와 노란 꽃이 참 멋있게 어울리네.”
황근꽃을 보자마자 몇몇 아이들은 감탄의 소리를 절로 내었습니다.
“여러분 이 꽃 이름이 뭔지 알겠어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눈을 멀뚱하게 뜨고 선생님만 쳐다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때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황근이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향했습니다.
“어, 수영이. 어떻게 이름을 알았지?”
놀라워하는 선생님의 물음에 수영이라고 이름 불린 아이는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가락으로 안내판을 가리켰습니다.
“에이, 선생님. 여기 안내판에 황근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하하, 그렇구나. 역시 수영이는 눈썰미가 뛰어나구나.”
선생님의 칭찬에 수영이는 잠깐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자, 가마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예!”
모두의 눈이 선생님의 얼굴로 향했습니다.
“황근은 아욱과의 식물로 무궁화와 사촌인 나무예요. 다른 말로는 노랑 무궁화라고도 불러요. 그런데 이 황근은 우리나라 남해안 바닷가와 제주도의 바닷가에서만 자라는 나무인데요. 멸종 위기 2급으로 분류되어 보호되고 있는 식물이랍니다. 여기 우리 마을인 가마리 바닷가에서도 몇 그루의 황근이 자라고 있어요. 그리고 이곳은 올레꾼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고, 이 등대는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에요. 오늘 우리들은 등대와 황근나무 주변을 깨끗이 청소해서 우리 동네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겠지요?”
“예~~.”
“자, 그럼 청소 시작!”
아이들과 선생님은 황근나무들과 검은 바위 사이사이, 하얀 등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을 찾아 비닐봉지와 마대에 담기 시작하였습니다.
길가에서 볼 때는 많아 보이지 않던 쓰레기들이 구석구석에는 정말 많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손길 덕분에 등대와 황근나무 주변 바닷가가 점점 깨끗해지고 있었습니다.
비닐봉지와 마대가 금세 쓰레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청소가 끝나자 아이들은 등대 앞에서 한 번, 황근나무 앞에서 한 번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자, 그럼 청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갑시다.”
열심히 청소한 아이들은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지만 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씻어 내리며 학교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아, 뭐 하니? 얼른 가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학교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수영이는 황근나무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잠깐만요, 선생님. 황근꽃 좀 더 보고요.”
“하하, 수영이가 황근꽃에 반한 듯하구나.”
수영이는 그러고도 한 동안 황근꽃을 보다가 아쉬운 듯 천천히 발길을 돌렸습니다.
“황근아, 다음에 또 찾아올게.”
황근꽃도 수영이를 향해 노란 미소를 피워 올려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청소를 마치고 돌아간 바닷가, 황근나무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고, 검은 바위 사이로 하얀 등대가 우뚝 서 있는 너머로 파란 바다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올레길을 걷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멈춰 서서 멋진 풍경에 감탄하며 등대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검은 바위틈에서 자라나 노란 꽃을 피워낸 황근을 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곤 하였습니다.
노란 황근과 하얀 등대는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더욱 고운 꽃을 피워내고 햇살에 몸체를 더 하얗게 빛내곤 하였습니다.
보통 등대들은 배가 드나드는 항구나 포구의 방파제 끝에 세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등대가 서 있는 이곳은 포구도 아니었고 방파제 끝이 아니었습니다. 삐쭉삐쭉한 검은 바위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 바닷가 바위 무더기들의 가운데였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서쪽에 작은 포구가 있고, 그 포구의 방파제 위에도 등대가 하나 세워져 있었지만 포구도 아닌 이곳에 등대가 세워져 있는 것은 포구에서 불쑥 튀어나온 곳에 날카로운 검은 바위돌이 무더기로 있는 곳을 빙 돌아서야 배들이 포구로 들어오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기잡이 갔던 배들이 돌아올 때면 이 등대 불빛을 보고 빙 돌아서 포구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멋쟁이 신사’라는 별명을 가진 등대는 우뚝 선 몸체에 하얀 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등대가 서 있는 곳이 시커먼 바윗돌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검은 바위 위에 서있는 하얀 등대가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등대는 태양광으로 빛을 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햇빛이 환히 비치는 낮에는 머리 위 집열판으로 햇빛을 받아들여 축전지에 힘을 저장해 두었다가 밤에는 그 힘으로 환한 빛을 바다를 향해 비춰주었습니다. 그리고 흐린 날이 계속 되어서 햇빛을 오래 받지 못할 때에도 맑은 날 축전지에 저장해 두었던 전기로 빛을 비추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멋쟁이 신사 하얀 등대는 늘 행복했습니다. 올레꾼들에게 사진 배경이 되어 주고, 고기잡이 나갔던 배들에게 불을 밝혀주어 안전하게 포구로 들어오도록 도와주는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등대 앞 검은 바위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황근도 행복했습니다. 뜨거운 초여름 햇볕이 내리쬐어 활짝 벌린 잎들마다 햇빛을 머금고 온 몸에 힘을 돌게 하는 영양소를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노랗고 예쁜 꽃을 매일 매일 피워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꽃잎을 오므려 잠을 자게 했지만 앞에 서 있는 멋쟁이 신사가 꽃잎처럼 노란 불빛을 빙빙 돌리며 밤새 비쳐주었기 때문에 예쁘고 노란 꿈을 꿀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황근과 등대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지난번에 청소하러 왔던 아이들 중에 수영이가 그 후에도 거의 매일 찾아와서 황근과 입맞춤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주변의 쓰레기들도 주워주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다 가곤 하였습니다. 또 어느 날은 스케치북을 가지고 와서 노란 황근과 하얀 등대와 검은 바위와 파란 바다를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옮겨놓곤 하였습니다.
“황근 아가씨, 나는 네가 좋아. 네 노란 꽃이 너무 예뻐.”
“황근 아가씨, 예쁜 꽃을 활짝활짝 많이 피우렴.”
수영이는 황근나무를 ‘황근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쓰다듬어 주곤 하였습니다. 황근은 수영이가 찾아와 이야기 해 주고 놀아줄 때마다 더 힘이 나서 활짝활짝 노란 꽃을 피워 올리곤 하였습니다.
황근과 이야기하던 수영이는 등대에게도 와서 우뚝 솟아 있는 등대를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멋쟁이 신사, 넌 하얀 옷을 쭉 빼 입은 멋쟁이 같아. 멋쟁이 신사, 우리 아버지가 고기잡이 나갔다 올 때마다 불빛을 비춰주어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어서 고마워.”
뜨거운 여름이 다 가는 사이 황근과 등대와 수영이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수영이와 친구가 된 황근과 등대는 수영이가 없을 때는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습니다. 갈매기가 전해주는 바다 이야기, 바람이 전해주는 오름과 들판 이야기, 올레꾼들이 지나가면서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수영이가 들려주었던 학교 이야기들을…….
그리고 둘이는 낮과 밤에 번갈아 서로의 꽃과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낮에는 황근이 노란 꽃을 예쁘게 피워 등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밤이 되면 등대는 낮에 황근이 보여 주었던 노란 꽃을 닮을 밝은 불빛을 달고 바다를 비춰주고 황근에게도 비춰주곤 하였습니다.
둘이는 서로의 꽃과 빛을 보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볕이 한 동안 열기를 뿜어내던 여름의 한가운데가 지나갈 무렵 웬일인지 흐린 날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하늘엔 검은 구름이 가득 덮여서 햇빛을 가리고, 파랗던 바다도 허연 파도를 일렁이며 사나워지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큰 태풍도 한 차례 불어와서 파도가 만들어 낸 허연 거품이 바닷가 검은 바위들을 모두 덮어씌우고, 가마리 포구 방파제까지도 큰 파도가 넘으면서 덮쳐들어 오곤 하였습니다.
고기잡이를 나가던 배들도 나가지 못하고 포구에 묶여서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흐린 하늘과 일렁이는 파도만 바라보았습니다.
태풍이 불고 난 다음 날 멋쟁이 신사 등대는 자기 몸이 이상해져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태풍이 몰아쳐 올 때 누군가 바다에 버렸던 페트병 쓰레기 하나가 파도에 실려 집열판 위로 날아와 집열판에 작은 금이 가게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작은 금이 간 것이었지만 그곳으로 빗물이 들어와서 그 속의 회로에 작은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햇빛을 받아 전기를 만들어내던 집열판에서 받은 햇빛을 축전지로 옮기는 힘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등대에 고장이 생기면 무인등대를 관리하는 곳에서 곧바로 알아서 수리를 하곤 하였지만 이번의 고장은 웬일인지 등대 관리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전에 햇빛을 받아 만들어서 축전지에 쌓아 두었던 전기도 점점 바닥이 나고 있었습니다.
황근 아가씨도 며칠 동안 햇빛을 받지 못해서 노란 꽃을 잘 피워내지 못했습니다.
황근과 등대는 안타까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며칠 흐린 날이 계속 되던 어느 날 드디어 햇빛이 비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하루 동안 파도의 높이가 낮아져서 잔잔했다가 내일부터는 다시 높아진다고 하였습니다.
발이 묶여 있던 고깃배들은 서둘러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파도가 잔잔해지는 오늘 하루 나가서 그 동안 고기잡이 하지 못하여 근질거리던 손을 풀고 고기를 많이 잡아 올 작정들이었습니다.
수영이 아버지도 묶어 놓았던 배를 풀고 친구 어부들과 함께 바다로 나갔습니다.
한동안 구름에 덮였던 한라산이 멀리서 우뚝 솟아 있었고, 매오름이 시원한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까만 바윗돌들이 무더기 무더기 쌓여 있는 바닷가에는 하얀 등대가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수영이 아버지가 탄 배는 큰 고기를 잡기 위해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이는 먼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날따라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주낙을 드리웠다가 다시 걷어 올리면 파닥거리며 줄줄이 낚여 올라오는 고기들. 신이 난 어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기잡이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하루 종일 낚으면 만선이 되어 고기잡이 나가지 못한 며칠 동안의 벌이를 메우고도 남을 것 같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이젠 주낙을 거두고 그만 돌아가세.”
“그러세. 다른 배들은 벌써 다들 돌아갔구만.”
수영이 아버지네 배가 제일 멀리 나오긴 했지만 멀리 보이던 다른 배들은 이미 포구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통통통통통통~~.
닻을 올린 배는 통통거리며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
“여보게들, 저기 보게. 날씨가 이상하네.”
수영이 아버지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하루 종일 맑았던 하늘에서 서쪽 하늘에서부터 짙은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에서 동쪽은 파란 하늘이 남아 있었지만 서쪽 편에서부터 검은 구름으로 덮이면서 점점 동쪽 하늘까지 옮겨가면서 덮어가고 있었습니다.
구름이 덮여옴에 따라 파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오늘 하루 종일 날씨가 좋겠다고 예보되지 않았나?”
“그랬지.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는구만.”
“예보된 것보다 더 빨리 날씨가 변하는 것 같아.”
“서두루세.”
어부들은 서둘러 포구를 향해 배를 몰았습니다.
어느새 시커먼 구름이 온 하늘을 덮어버렸습니다. 어두워지던 하늘이 밤이 되니 더 캄캄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파도도 너울거리며 배를 크게 흔들어놓고 있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 포구로 다 돌아왔는데도 수영이 아버지네 배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영이는 포구에 나가 아버지네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벌써 캄캄한 어둠이 덮이고 파도가 거칠어지고 있는데도 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영이는 방파제 위에 올라가서 멀리 밤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까만 바다에 배 불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영이는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러던 수영이는 바윗돌 무더기 위에 세워진 멋쟁이 신사 등대의 불빛이 이상해진 것을 보았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빙빙 돌면서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던 등대 불빛이 희미해지다가 깜박깜박 꺼지고, 한참을 그렇게 꺼졌다가 다시 조금 비추다가는 또 꺼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발을 구르던 수영이는 멋쟁이 신사 등대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포구에서 등대까지 걸으면 5분 정도 되는 거리였지만 등대를 향해 뛰어가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등대 앞에 다다른 수영이는 등대를 올려다보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 사이에도 여전히 등대는 작은 빛을 깜박거리다가 수영이가 다다랐을 때쯤에는 아예 불빛이 꺼져버렸습니다.
등대 불빛이 비치지 않으면 아버지 배가 돌아오다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등대가 세워져 있는 이곳은 검은 바위들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어서 등대 불빛이 비춰주지 않으면 난파의 위험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멋쟁이 신사, 왜 그러니? 불을 꺼뜨려버리면 어떡하니? 고기잡이 간 아빠네 배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야. 빨리 다시 불을 비춰줘. 응, 멋쟁이 신사야.”
등대를 향해 주먹을 꼭 쥐고 외치던 수영이는 황근나무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황근 아가씨, 어떡하니? 고기잡이 간 아빠네 배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등대 불빛이 꺼져 버렸어. 어떡해. 어떡해!”
등대 앞 검은 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이지만 바위를 때리고 올라오는 파도의 물거품이 허여멀겋게 보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등대를 향해 뛰어간 수영이는 커다란 등대 몸통을 두드려대며 외쳤습니다.
“등대야, 어서 어서 다시 불을 밝혀 달란 말이야. 힘을 내 등대야.”
수영이는 끝내 등대 앞에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수영이의 울음에도 등대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힘을 내어서 불빛을 다시 비추려고 해도 힘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축전지에 모아두었던 햇빛 전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태풍 때 생긴 고장 때문에 불빛을 밝히는 전등으로 전기를 보내주기가 어려웠습니다.
“황근아, 어떡하니? 수영이를 위해서 불을 밝혀야 하는데 힘을 낼 수가 없어.”
등대도 수영이만큼 안타까워서 황근에게 말했습니다.
“등대야, 힘을 더 내 봐. 넌 할 수 있을 거야.”
황근도 등대를 격려하며 힘을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영차, 영차, 여엉~차.”
황근의 격려에 등대는 다시 힘을 내어 축전지의 전기를 전등으로 보내려고 힘을 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등으로 전기가 가다간 곧 끊어져 버리곤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황근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등대야, 그냥 힘만 쓰지 말고 이젠 내 얘기대로 해 보렴.”
“어떻게?”
“응,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조용히 눈을 감아봐.”
“그래, 눈을 감았어.”
“그 다음에는 내가 낮에 네게 보여주었던 나의 꽃을 생각해 봐. 그 노란 꽃을 네 등대 불빛으로 피워내는 꿈을 꿔봐. 네가 꿈을 꾸는 동안 나도 네게 내 꽃을 보내주는 꿈을 꿀게.”
“그래, 한 번 해 볼게.”
황근의 이야기를 들은 등대는 조용히 눈을 감고 황근이 자기 불빛으로 피어나는 꿈을 꾸려고 하였습니다.
황근도 등대를 향해 낮에 피워놓았던 꽃들을 밀어 보내주는 꿈을 꾸었습니다.
둘이서 힘을 합쳐 꿈을 꾸기를 얼마나 지났을까요.
반짝!! 반짝!!
전등에 환한 불이 밝혀지고 그 불빛이 바다를 비추며 이쪽 저쪽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등대는 있는 힘을 다 내어서 전등을 돌리며 바다를 향해 불빛을 비추었습니다. 등대 꼭대기에서 비치는 환한 불빛이 바다 멀리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주저앉아 울던 수영이는 얼른 울음을 그치고 바다를 비추는 등대 불빛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황근꽃 같은 노란 등대 불빛은 이젠 꺼지지 않고 환한 불빛을 계속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멋쟁이 신사, 고마워. 다시 빛을 비춰주어서. 이제 곧 아버지가 돌아오실 거야. 황근 아가씨, 너도 고마워. 네가 등대에게 힘을 보내준 것 같아.”
수영이는 등대 기둥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통통통통통통~~.
바다에서 고깃배 엔진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영이는 얼른 등대 난간 위로 발돋움해서 소리가 들리는 바다 쪽으로 눈을 향했습니다.
고깃배 하나가 일렁이는 파도를 헤치며 포구를 향해 힘겹게 달려가는 모습이 등대 불빛에 비쳐서 보이곤 하였습니다.
“아빠 배야. 아빠 배가 돌아왔어. 아빠, 아빠!”
수영이는 펄쩍펄쩍 뛰면서 보이지도 않을 아빠를 향해 외치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수영이의 외침을 들었는지 배는 통통거리는 소리를 더욱 힘 있게 내며 포구를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영이 아빠 배가 방파제를 지나 포구로 다 들어갔을 때 환한 빛을 비춰주던 등대 불빛이 이젠 힘을 다 썼는지 점점 희미해지더니 까만 어둠만을 검은 바위 위로 남기고 꺼져버렸습니다.
등대 불빛이 꺼져갈 때 황근도 시든 노란 꽃들을 발밑으로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조용하고 캄캄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어둠 속으로 포구를 향해 뛰어가는 수영이의 발소리만이 크게 들렸습니다.
황근과 등대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황근 아가씨와 멋쟁이 신사의 눈을 감은 얼굴에 작은 미소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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