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수일 아저씨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내려온 제주도였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손가락을 꼽으며 지나간 해를 세어보았다.
제주도에서 두 해 정도를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가을 무렵에 서울로 올라갔으니까, 음-, 지금의 내 나이 마흔 살, 그러니까 30년 만에 내려온 제주도였다.
같이 데리고 온 아들 녀석이 3학년이니까, 내가 제주도를 떠난 것이 지금의 아들 녀석 나이 때쯤이다.
아들과 함께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제주항 쪽으로 오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제주도는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제주도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변하지 않은 건 막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우뚝 솟은 한라산과, 바다의 파아란 물빛뿐이었다.
30년 전 그 때는 제주시내에 어느 호텔 건물만이 홀로 우뚝 서 있었고, 다른 건물들은 도토리 키 재기 마냥 올망졸망 했었는데, 지금은 큰 빌딩들이 곳곳에 우뚝우뚝 서 있는 것이 여느 도시처럼 큰 도시가 되어 있었다.
며칠간의 휴가를 내고 아들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온 것은 어릴 적 잠시 살았던 제주도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어릴 적 살았던 화북 마을로 제주올레길 18코스가 지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올레길을 걷다가 화북 마을에서 옛 추억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나는 아들 산하와 함께 제주시 동문로터리에서부터 올레길을 따라서 제주항과 사라봉, 바다의 풍광들을 보면서 걸어갔다.
올레길은 제주항 앞을 지나 사라봉을 서쪽에서 올라가고, 다시 동쪽으로 내려간 다음 별도봉으로 이어졌다.
느릿하게 경사진 등반로를 따라 별도봉 정상으로 올라서서 동쪽으로 내려다보니 화북 마을이 눈 아래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들, 저기 보이는 마을이 아빠가 말했던 화북 마을이야.”
산하는 나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향하여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와, 그러면 아빠가 어렸을 때 2년 정도 살았다고 하는 마을이 저기예요? 큰 마을이네요.”
“그러게. 30년 전에는 이렇게 큰 마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마을은 정말 커져 있었다.
30년 전에는 바닷가에서부터 일주도로 큰 길까지만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던 마을이 지금은 일주도로를 넘어 남쪽으로까지 큰 마을이 만들어져 있었고, 아파트와 빌딩들도 많이 서 있었다.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도 내려다 보였는데, 그 때보다 학교가 커진 듯하게 보였다.
나는 어릴 적 잠시 살았던 집을 찾아보려고 눈을 크게 뜨고 이리 저리 둘러보았지만 크게 변한 마을의 모습 때문에 어디쯤인지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내 기억으로는 포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이었던 것으로만 짐작되었다.
“아들, 어서 가 보자.”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들떠서 내려가는 길을 재촉하였다.
별도봉을 내려가서 물이 말라버린 시내를 건너니 비석거리였다. 비석거리에 세워진 비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이 얼굴에 검버섯이 숭숭 박힌 할아버지들처럼 옹기종기 서서 마을 입구를 지켜주고 있었다.
비석거리를 지나 바닷가를 따라 걸어가서 화북포구에 도착하였다.
나는 옛날에 이곳에서 놀던 추억을 찾아보려고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예전의 작은 포구의 모습은 한 구석에 조금 남아있을 뿐, 옛 포구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방파제가 크게 뻗어나가 있었고, 포구의 크기도 상당히 커져 있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속담이 생각났다. 30년이 지나고 강산이 세 번 변한 세월이었으니 화북 마을과 포구가 세 번이 아니라 열 번도 더 변한 느낌이 들었다.
포구를 따라 걷는 길에 돌들을 쌓아 올려 만든 작은 성곽이 있었다. 안내판에는 ‘화북진성’이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아빠, 여기 아빠 이름……. ㅋㅋㅋ.”
아들은 진성이라는 내 이름과 화북진성의 이름이 같다면서 쿡쿡 웃었다.
나는 진성을 따라 걸으며 이곳에서 놀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래, 아빠 이름과 같은 이 진성에서 어릴 때 놀았던 기억이 나는구나.”
진성 앞 포구 길을 걸어서 포구를 막 벗어나니 바닷가를 따라 길게 쌓아놓은 성이 나타났다. 옛날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하는 환해장성이었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환해장성이 거의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말끔하고 반듯하게 쌓아 올려져 있었다.
환해장성이 늘어서 있는 근처에는 돌을 네모나게 쌓아올려서 만들어 놓은 연대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아들과 함께 연대 위로 올라가서 시원한 바다 경치를 구경하였다.
연대 근처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근처의 나무 그림자가 덮여서 그늘이 져 있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의자 위에 앉아 배낭을 벗었다. 산하도 오래 걸어서 다리가 피곤한지 내 옆에 앉아 배낭을 벗어서 물을 들이켰다.
“아들, 아빠는 저 앞에 보이는 바닷가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단다.”
“네? 죽을 뻔……?”
산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저기 저 쯤이었을 거야.”
나는 손가락으로 물에 빠졌던 곳을 가리켰다.
산하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애걔걔. 별로 깊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그래, 그렇지만 그 때는 헤엄칠 줄을 몰랐거든. 수일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난…….”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곳에 수일 아저씨가 눈을 감은 채 웃고 있기라도 한 듯이 마냥 그곳만을 바라보았다.
“수일 아저씨요? 아빠, 수일 아저씨가 누구세요? 아빠 어릴 때 이야기를 해 주세요.”
산하는 동그란 눈을 뜨고 귀를 쫑긋 세운 토끼마냥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빠가 이곳으로 내려와서 살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가을 무렵이었을 거야.”
나는 머릿속에 아련히 남아있던 옛 모습들을 다시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같이 일하던 사람에게 속아서 빈털터리가 된 후에 제주도로 내려왔어. 제주도에 살던 아버지 친구가 그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기로 했다나봐.
어머니와 나도 아버지를 따라서 내려온 후에 이곳 화북 마을에 방을 얻어서 살게 되었지.
우리 가족이 세를 얻어서 살게 된 집은 화북포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골목 안의 슬레이트집 밖거리였어. 밖거리는 제주말로 바깥채라는 말이야.
안거리인 슬레이트집도 작은 집인데 밖거리는 더 작은 초가집이었어. 우리 식구 세 명이 누워 발을 뻗으면 딱 맞는 작은 방에, 그보다 더 작은 부엌이 전부인 그런 초가집이었어. 그나마 방안에 시렁이 있어서 서울서 가지고 온 얼마 안 되는 짐들과 이불은 시렁 위에 올려놓아 둘 수 있었어. 부엌과 방 사이에는 작은 문이 있어서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작은 문으로 상을 들일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이었어.
서울에서는 큰 집에 살다가 이런 작은 마을, 작은 초가집에서 살게 된 나는 정말 이 집이 싫었어. 방에 누우면 온 몸으로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것 같아서 얼마 동안은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실제로 천장에서는 쥐들이 돌아다니는 소리들이 들렸고, 벽에는 다리가 잔뜩 달린 끔찍한 벌레들이 기어다니곤 했었으니까 말이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래도 서울에서 아무 것도 없이 내려와서 이렇게 몸을 누일 곳이라도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거야.
안거리 주인댁에는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과 할머니의 아들인 아저씨 한 분이 살고 있었어.
그런데 아저씨는 눈이 안 보이는 시각 장애인이었어.
그 아저씨가 수일 아저씨야.
나중에 아저씨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인데, 아저씨가 다섯 살 때쯤에 홍역이라는 병을 심하게 앓았는데, 병은 나았지만 그 때부터 눈이 안 보이게 되었다고 해.
주인 할머니는 늘 밭에 나가서 일하시고 눈이 안 보이는 수일 아저씨는 거의 온 종일을 집 안에서 지내곤 했었어.
1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에 갔다가 일찍 집에 돌아오곤 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일하러 나가시곤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없었어.
처음에는 전학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친구가 없던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방안에만 틀어박혀 하릴없이 빈둥거리거나 집 근처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흙장난이나 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어. 요즘은 참 좋아졌지만 그 때는 컴퓨터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거든.
혼자 흙장난을 하다가 심심해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어.
“진성아, 이리 와. 나랑 놀자.”
안거리에서 수일 아저씨가 부르는 것이었어.
아저씨와 난 며칠 동안 안거리와 밖거리에 살면서도 처음 이사 왔을 때 인사를 드린 것 외에는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어.
심심하기만 했던 난 쭈뼛거리며 수일 아저씨에게 갔어.
“진성아,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지?”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다가 아저씨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얼른 작은 소리로 대답했어.
“예, 아저씨.”
“내가 진성이 심심하지 않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게.”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궁금해서 아저씨의 입을 쳐다보았어.
그 때부터 아저씨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눈은 감겨 있었지만 아저씨의 입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술술 새어나왔어.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와 흥부와 놀부 이야기, 효녀 심청이 이야기 등은 책에서 읽은 이야기지만 아저씨가 들려주니까 더 재미가 있었고, 다윗왕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저씨로부터 처음으로 들었어.
그날부터 나는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수일 아저씨의 방으로 찾아가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곤 하였어. 아저씨도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걸 기다리곤 하였어.
아저씨는 눈이 안 보이는 데도 어쩌면 그리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지 참 신기하기만 했어. 아저씨가 마치 이야기보따리 같았어.
“아저씨는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어요?”
내가 궁금해서 묻자 아저씨는 항상 옆에 놓아두고 있던 물건 두 가지를 툭툭 건드렸어.
“내 이야기의 비결은 바로 이것들이야.”
수일 아저씨가 가리키는 것들은 라디오와 또 다른 하나는 들기에도 무거워 보일 것 같은 커다란 책이었어.
“이 책과 라디오가 내게는 친구와 같단다.”
수일 아저씨는 책을 들어 펼쳐 보였어. 그런데 펼쳐진 책 속에는 글들은 써있지 않고 작은 점들만이 수없이 찍혀 있었어.
“이 책은 나와 같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점자책이야. 이 점들 하나하나가 글자를 나타내는 것이란다.”
수일 아저씨는 책 속에 찍혀 있는 올록볼록 자잘한 점들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점자책을 읽기 시작하였어. 아저씨가 읽어 내려가는 점자책 속에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어.
참 신기했어.
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글을 읽는 것이 신기했고, 또 그 글이라는 것이 연필로 쓴 것이 아니라 작은 점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어.
나도 아저씨의 점자책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읽어보려고 했지만 손가락에서는 모두 똑같은 올록볼록한 점들만 만져질 뿐이었어. 아저씨는 어떻게 찍힌 점들이 어떤 글자가 되는지 가르쳐 주었지만 난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 이 점들이 이 글자 같고, 저 점들도 이 글자 같아서 점자를 읽는 걸 포기해 버렸어.
그래도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난 아저씨와 붙어 다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어. 아저씨는 라디오로 듣고, 점자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하였는데, 할머니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할머니 목소리로, 아가씨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가씨 목소리로,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도깨비처럼 목소리를 바꿔서 들려주니까 아저씨의 이야기는 신나고 재미있었어.
어느 날 난 아저씨를 따라 예배당에 갔어.
교실 하나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작은 예배당이었는데,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거야. 모두 해봐야 서른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어.
그런데 난 그곳에서 놀라운 일을 보게 되었어.
수일 아저씨가 풍금 앞에 앉아서 찬송가 반주를 하는 거야. 아저씨는 눈이 보이지 않는 데도 박자에 맞추어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모두 풍금으로 켜는 거야.
난 그때까지 풍금은 우리 담임선생님만 켤 수 있는 줄 알았었거든. 그런데 수일 아저씨는 어떤 찬송이든지 전도사님이 “몇 장 찬송을 부르겠습니다.”라고만 하면 곧바로 풍금으로 반주를 하는 거였어. 그뿐만이 아니라 어떤 동요든지 제목만 이야기하면 아저씨의 손끝이 풍금 건반을 누르면서 척척 노래가 되어 나오는 거야.
예배가 끝나면 수일 아저씨는 예닐곱 명 쯤 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곤 하였어.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 바다를 갈라서 건넌 이야기도, 힘 센 삼손 이야기도 모두 그 때 처음 들었어.
내가 3학년으로 올라가고 새 봄이 되자 아저씨와 난 마을 근처 들판과 바닷가로 함께 돌아다녔어. 아저씨는 앞이 보이지 않은 데다 몸이 뚱뚱하여 걷는 것이 무척 불편하였어. 불룩 튀어나온 배를 내밀고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 같았어. 그런데도 아저씨는 집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이 무척 즐거운 모습이었어.
아저씨는 늘 주머니에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녔어.
“아저씨, 왜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니세요?”
“응, 나처럼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다니다가 위험한 일이 닥칠 때가 많아. 그 때에는 호루라기를 불어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가 있거든.”
그러면서 아저씨는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호르륵, 호르르르-’ 하고 장난스럽게 불었어.
“하하하, 아저씨. 저랑 함께 다닐 때는 호루라기가 필요 없을 거예요. 제가 아저씨의 눈이 되어 드릴 텐데요.”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다니면서 아저씨의 눈이 되어 드렸어. 꽃이 곱게 핀 들꽃들이 있는 곳에 가서 꽃을 만져보게 해 드리기도 하였고, 여기는 무슨 꽃이 피었다, 저 나무에는 꽃봉오리가 맺혔다 하면서 아저씨의 눈을 대신해 드렸어.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아저씨가 꽃향기를 맡아보고 꽃을 만져보기만 해도 무슨 꽃인지 알아내는 거야. 내가 모르는 꽃 이름도 아저씨는 많이 알고 계시는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화북 포구에 놀러 갔을 때는 고깃배가 통통거리며 들어오는 소리를 듣거나 ‘부웅-’하고 울리는 뱃고동 소리만 듣고도 누구네 배인지 아시는 거야.
“아저씨,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거예요?
난 너무나 궁금해서 여쭤 보았어. 그런데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시는 거야.
“난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소리나 냄새를 잘 기억하고 있단다.”
“아, 그렇군요. 그럼 손으로 만져보는 느낌도 기억하는 거예요?
“응, 기억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손으로 만져보고 느끼는 촉각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발달한 것 뿐이란다.”
“와, 정말 신기해요. 나도 눈을 감고 다니면 아저씨처럼 소리와 냄새와 손으로 만져보는 느낌을 더 잘 기억하게 될까요?”
나의 말에 대답하는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화가 담겨 있었어.
“그런 소리 하지 말아. 난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데 일부러 눈을 감고 다닌다니…….”
“죄송해요, 아저씨.”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어.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까워지자 아저씨와 난 바닷가에 자주 나갔어. 포구에 앉아서 파도 소리도 함께 듣고,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아저씨에게 말씀해 드리고, 아저씨는 포구에서 인어공주 이야기도 내게 들려 주셨어.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어느 날이었어.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일 아저씨의 어머니인 안거리 할머니와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일하러 나가셨어.
“아저씨, 우리 보말 잡으러 가요.”
나는 보말을 잡아 넣을 양동이를 가지고 아저씨의 손을 잡고 집에서 멀지 않은 연대 근처 이곳 바닷가로 나왔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이었지만 바닷가에 나오니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도 마음도 모두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어.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바닷물이 시커먼 바윗돌들을 어루만지는 갯가로 이끌었어. 바다는 파도가 없이 잔잔하기만 했어.
“난 보말을 잡을 줄 몰라. 그리고 진성이 너 헤엄칠 줄을 모르잖아.”
“헤엄칠 줄 몰라도 되요. 보말은 헤엄치면서 잡는 것이 아니구요, 그냥 바윗돌에 붙어 있는 것만 잡으면 되거든요. 발만 물에 적시면 되요.”
“그래도 위험해서 안 돼. 우리 그냥 여기 풀밭에서 놀다가 가자.”
“에이. 괜찮아요. 아저씨는 여기 계세요. 제가 보말을 잡아다가 삶아 드릴게요.”
잔잔한 바닷물이 나를 유혹하는 것만 같아서 난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바닷가 검은 바윗돌들이 깔려 있는 곳으로 내려갔어.
그곳에는 보말들이 아주 많았어. 큰 바위 아래에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작은 돌을 들어 올려도 한두 개씩은 꼭 붙어 있곤 하였어.
나는 가지고 간 양동이에 잡은 보말들을 담아 놓았어. 양동이에는 얼마 되지도 않아 꽤 많은 보말들이 담겼어.
“진성아, 그만 잡고 집으로 가자.”
아저씨는 바닷물 근처로 간 내가 걱정스러운지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어.
“아저씨, 걱정 마세요. 조금만 더 잡구요.”
보말들을 더 많이 잡을 욕심에 나는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 곳으로 조금 더 들어갔어. 물속에 있는 바위에는 바다풀들이 붙어 있어서 미끄러웠지만 조심하면 괜찮을 것 같았어.
물속에 잠긴 큰 바위 밑으로 손을 넣어 훑으니 보말들이 손에 가득 잡히는 거야.
“아저씨, 여기 보말들이 엄청 많……, 어어……, 어어어!”
보말을 가득 쥔 손을 들어 올리며 허리를 펴다가 나는 순간 물속의 바위에서 발이 미끄러지며 바닷물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어.
- 풍덩!
“아저씨, 사, 살려…….”
나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아저씨를 불렀어.
“진성아! 진성아!”
물에 빠지며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아저씨는 당황하여 내 이름을 부르며 외쳤지만 눈이 보이지 않은 아저씨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난 무엇이든지 잡아보려고 손과 발을 허우적거려 보았지만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발도 바닥에 닿지 않았어.
“아저……, 살려주…… 세요!”
허우적거리며 외치는 내 입으로 바닷물이 들어왔어. 살려달라는 말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짠 바닷물이 꿀꺽 꿀꺽 삼켜졌어.
-호르륵, 호르륵!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여기 아이가 물에 빠졌어요! 우리 진성이가 물에 빠졌어요!”
-호르륵, 호르르륵!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와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며 나는 점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어.
-호르륵, 호르르륵!
정신을 잃어가는 내 귀 속으로 호루라기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어.
깨어났을 때 난 어디에 누워있는 지도 몰랐지만 조금 더 정신이 들어서 눈을 돌려보니 우리 집 작은 방안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내가 누워있는 주위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수일 아저씨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어.
“진성아, 진성아, 깨어났구나. 진성아, 정신이 드니?”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어머니가 왈칵 나를 안으며 외쳤어. 그러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한 바가지 들어 있는 것을 보았어.
“어, 엄마…….”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아, 아빠……. 수일 아저씨.”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다시 수일 아저씨를 올려다보는 순간 귀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아, 호루라기 소리, 아저씨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래, 진성아, 호루라기 여기 있어.”
수일 아저씨는 보이지도 않은 눈을 껌벅거리며 주머니에서 얼른 호루라기를 꺼냈어.
“진성아, 수일 아저씨가 물에 빠진 널 구했어. 호루라기를 불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널 건지게 했어.”
아버지의 말에 나는 그제야 내가 물에 빠졌었다는 것이 생각났어. 그리고 수일 아저씨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상용으로 늘 주머니에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 생각났어.
난 천천히 일어나서 수일 아저씨에게 안겼어. 나를 살려 준 수일 아저씨가 너무나 고마웠지만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어. 말 대신에 그냥 작은 팔을 벌려 아저씨를 꼭 끌어안았어. 아저씨도 내 맘을 아시는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어.
아저씨의 가슴이 너무나 따뜻했어.
몇 달 후 가을이 깊어갈 무렵에 아버지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되어 우리 가족은 수일 아저씨와 헤어져 다시 서울로 돌아갔어.
난 참 바보같이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었어.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도 수일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수일 아저씨의 생각을 하지도 않고 지내왔거든.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야.
가끔은 아저씨가 뚱뚱한 몸으로 뒤뚱뒤뚱 걷는 모습과 교회당 풍금 앞에 앉아서 고개를 이리 저리 저어 박자를 맞추며 찬송가를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르곤 했지만 한 번도 아저씨께 연락을 드리지 못했어.
산하에게 수일 아저씨와의 추억을 들려주는 동안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되어 수일 아저씨와 들판으로, 바닷가로 놀러 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수일 아저씨가 뒤뚱거리며 걸어와서 호루라기를 불 것만 같았다.
“아빠…….”
산하는 아무 말도 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내 눈을 닦았다.
그러고 보니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 쑥스러워 얼른 배낭을 둘러메었다.
“산하야, 가자.”
올레길을 따라 걷는데 연대에서 멀지 않은 곳 바닷가 집 마당에서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까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잉? 누게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여쭤볼 말이 있어서요?”
“고라 보라. 무싱거 물어볼 거라?”
“할머니, 이 동네에서 오래 사셨어요?”
“오래 살았주. 열아홉에 시집 완 지금꼬지 살아시난 여기서 육십년도 더 살았주게.”
육십년을 넘게 여기에서 사셨다면 수일 아저씨의 소식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할머니에게 바싹 다가갔다.
“그러면, 혹시 이 동네에 살던 김수일이라는 분을 알고 계시겠네요?”
“김수일이? 김수일이가 누겐고?”
내 질문에 할머니는 기억이 잘 안 나는지 마늘을 까던 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포구 근처 골목 안에 사시던 분인데요, 눈이 보이지 않는 분이요.”
“아, 그 수일이? 알아지크라.”
눈이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말에 할머니는 기억이 나신 듯했다.
“경헌디 무사 수일이를 촞암신고?”
“예, 제가 어릴 때 잠시 그 집에 세 들어 살았던 적이 있어서요. 혹시 지금 김수일씨가 어디 사시는지 아시면 가르쳐 주세요.”
할머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마흔이 다 된 내 얼굴에서 어릴 때의 모습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죽어서. 것도 한 열댓 해가 더 됐주.”
돌아가셨다는 말에 난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묻지 않은 말까지도 들려 주셨다.
“그 사름 눈이 안 보이는데다가 너미나 뚱뚱해연 병으로 죽었댄 허는 말이 이성게. 수일이 어멍이 돌아가시고 난 후제 수일이는 혼자 지내지 못하난 요양원인가 복지관인가 하는 디로 보내졌댄 해영게. 거기서 살단 아판 죽었댄 소문만 들었주.”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는데 다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산하가 또 말없이 내 손에 손수건을 쥐어주었다.
화북마을을 벗어나 돌담이 구불구불 이어진 들판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새 해가 별도봉 너머로 저물어가고,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마을 쪽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호르륵, 호르르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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