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통 속의 다리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준식아, 학교 가자.”
사립문 밖에서 영목이가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금방 나갈게.”
준식이는 아침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가방을 메고 우산을 집어들었습니다.
“원, 저 녀석 성질도 급하기는. 아, 먹던 밥은 다 먹고 가야지.”
“벌써 배가 불렀어요. 그리고 영목이가 밖에서 기다리잖아요.”
“그래, 알았다. 냇물을 건널 때 조심하고, 혼자서 건너지 말도록 해라.”
“알았어요. 선생님들께서도 나와 계실 거예요.”
준식이는 장화를 신고 우산을 받쳐들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학교 다녀올게요.”
“오냐. 조심해서 갔다 오너라.”
준식이와 영목이는 우산을 나란히 받쳐들고 학교를 향해 걸었습니다. 학교까지는 약 30분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후드득후드득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요란했습니다. 5분도 안 걸었는데도 벌써 무릎 아래는 다 젖었습니다.
준식이에게는 비가 오는 날이 제일 싫은 날이었습니다. 준식이 뿐만이 아니라 마섬골 아이들 모두가 비가 오는 날을 싫어했습니다. 비가 오면 냇물이 불어 학교에 가는 길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섬골에서 20분 정도를 학교 쪽으로 걸어가면 조그만 내가 길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바짝 말라서 사람들도 건너 다니고, 영동에서 용화골로 가는 버스도 건너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조금만 오면 냇물이 흘러 길이 끊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버스도 다니지 못하여 학교가 있는 범화골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준식이와 같이 큰 아이들은 무릎 위에까지 걷어붙이고는 길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놓은 줄을 잡고 조심조심 건너곤 하지만, 1, 2학년 꼬마들은 줄을 잡고 건너가기도 무척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남자 선생님들께서는 모두 이 곳에 나와 있다가 도덕골과 마섬골에서 오는 40여 명의 아이들을 업어 건네주곤 했습니다. 학교 공부가 끝난 뒤에도 도덕골과 마섬골 아이들은 한데 모여서 선생님과 함께 이 곳까지 와서 업어 건네 주어야만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영목아, 저기에 다리가 놓였으면 좋겠지?”
냇물이 멀리 보이는 곳까지 오자 준식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먼저 말을 꺼내긴 했지만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장 친한 두 친구가 같이 학교에 가며 늘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 우리 마섬골 아이들에겐 남북 통일 다음으로 그게 가장 큰 소원 아니니? 그런데 어른들은 우리가 저기를 건너 다니는 게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다리 놓을 생각은 하지도 않아. 나라에서 다리 놓아주기만을 바라고 있기만 하고 말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내 힘으로 저기에 다리를 놓고 말겠어.”
“준식이 니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엄청난 일을 하니?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마을 어른들도 감히 엄두조차 못내는 일인데…….”
“그렇지만 난 해내고 말 거야. 벌써부터 난 다리 놓는 일을 위해서 돼지 저금통에 저축하기 시작했어.”
“준식이 너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니? 돼지 저금통에 돈을 모아서 언제 다리를 놓니? 그래, 지금까지 얼마를 모았니?”
“응, 13500원.”
“애개개, 겨우 13500원이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잖아.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저축 할거야. 어른이 된 담에는 제일 먼저 다리 놓는 일부터 할 거야. 영목이 너도 같이 하지 않을래?”
“너나 잘 해봐라. 난 그저 구경이나 하고 있을게.”
영목이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준식이는 주먹을 꼬옥 그러쥐었습니다.
냇물이 흐르고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남자 선생님 세 분이 아이들을 업어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준식이, 영목이, 어서 오너라.”
준식이네 반 김 선생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준식이와 영목이는 바지를 걷어올리고는 냇물로 들어섰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로 물이 많이 불어 무릎 위까지 물이 차올라왔습니다. 준식이와 영목이는 줄을 잡고 조심조심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흘러 내려오는 물이 다리에 부딪혀 네 갈래로 갈라지며 세차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촤- 촤- 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도덕골과 마섬골 아이들은 모두 함께 모여서 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40여 명의 아이들이 세 분 선생님과 함께 냇물이 흐르고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아침부터 내리고 있는 비는 준식이네가 공부하는 동안도 계속 내리더니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시간까지도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습니다.
냇물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준식이네가 이 길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 이렇게 물이 많이 불어 흐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한 명씩 한 명씩 업어 건네주는 선생님들께서도 이번에는 매우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40 여명의 아이들을 전부 업어 건네 주시고 난 선생님들의 얼굴에는 빗물보다 더 많은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준식이와 영목이를 업어 건네 줄 차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은 줄을 잡고 건너갈게요.”
영목이가 제법 어른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때보다 물이 많이 불어서 위험해.”
“저희들은 6학년이에요. 줄을 단단히 잡고 조심조심 건너면 될 거예요.”
준식이도 영목이의 말을 따라 줄을 잡고 건너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 힘으로 건너봐라. 선생님들이 앞뒤에서 지켜 줄게.”
맨 앞에 이 선생님께서 서시고, 다음에 영목이, 준식이, 뒤에서는 김 선생님께서 지켜주며 냇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돌의 감촉이 미끄러웠습니다. 금세 사타구니에까지 물이 차올라왔습니다. 세찬 물살이 몸을 때리며 마구 밀어 쓰러뜨리려고 했습니다. 줄을 단단히 잡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놓칠 것만 같았습니다.
준식이는 괜히 혼자 힘으로 건너겠다고 말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렇다고 못 건너가겠다고 하며 되돌아 갈 용기는 더욱 없었습니다.
냇물 가운데에까지 왔습니다.
앞에서 조심조심 건너던 영목이가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기우뚱거렸습니다.
“앗, 위험해!”
뒤에 있던 준식이가 쓰러지려는 영목이를 보고 외치며 잡고 있던 줄을 놓고 영목이를 부축하려고 했습니다. 앞에서 가던 이 선생님께서 준식이의 비명에 놀라 돌아서며 영목이를 붙들었지만, 줄을 놓은 준식이는 영목이를 붙들지도 못하고 세찬 물살에 휩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준식아! 준식아!”
선생님들과 영목이가 다급하게 부르며 구하려고 했지만 준식이의 몸은 거센 물살에 휘말리며 떠내려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날 밤 준식이는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읍내의 병원에 누웠습니다. 김 선생님과 영목이가 준식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준식이가 두 번째로 눈을 뜬 것은 새벽이 밝아올 때쯤이었습니다.
“준식아, 정신이 드니?”
준식이 어머니가 울먹이며 준식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준식아, 넌 다리가 부러졌어. 가만히 누워서 치료를 받아야 돼. 서너 달쯤 치료하면 전보다 더 튼튼해진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참고 치료를 받도록 해요.”
김 선생님께서 준식이의 손을 잡아 주며 달래었습니다.
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준식이는 갑자기 온 몸이 쑤시는 걸 느꼈습니다.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했으나 다리에서는 아무 감각이 없고 몸의 다른 부분만이 욱신욱신 아파왔습니다.
“준식아, 용서해. 나 때문이야.”
영목이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냇물에 다리가 없기 때문이야.”
누워있는 준식이가 오히려 미소를 띠며 울먹이는 영목이를 위로했습니다.
“나도 너와 함께 다리 놓을 돈을 모을게.”
“고맙다, 영목아. 지금은 13500원 밖에 안되지만 우리 둘이 열심히 저축하면 나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거야.”
듣고 계시던 김 선생님께서도,
“너희들이 참 훌륭한 생각을 했구나. 나도 너희들의 일에 참여하고 싶은데 끼워주지 않을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도요?”
“그래.”
“고맙습니다, 선생님.”
준식이와 영목이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흘렀습니다.
묵묵히 앉아만 계시던 준식이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선상님유. 우리 자슥들이 매일 건너다니는 길인디 우리 어른들이 보고만 있었던 게 부끄러울 뿐입니다유. 지도 농사만 짓는 가난한 사램이지만서도 저 자슥이 이렇게 된 것을 보고서는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유. 지가 먼저 앞장을 서서 다리 놓는 일을 하겠습니다유.”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준식이와 영목이는 벌써 다리를 다 놓아 그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준식이가 퇴원하는 날이었습니다. 길고 지루한 다섯 달이었습니다.
준식이의 마음은 아침부터 설레이며 벌써 냇가로 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퇴원 수속을 마치고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무척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오늘의 준식이에게는 퇴원하는 일도 기쁘지만 더 기쁜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위험하기만 하던 냇길에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준공식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선생님과 준식이 아버지가 앞장을 서서 준식이와 영목이의 저금통 이야기를 하며 다리 놓는 일을 추진하여, 학교 어린이들과 여러 마을 어른들이 성금을 모았습니다.
준식이가 저축한 13500원이 새끼를 쳐서 많은 돈이 모이고, 준식이네 마을 어른들이 바쁜 일손 가운데서도 직접 다리 놓는 일을 하여 다리가 완공된 것이었습니다.
“13500원의 아주 적은 돈이 이렇게 훌륭한 다리를 놓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정부의 지원이 없이 어린 학생들과 여러 주민들의 힘으로 훌륭한 다리가 만들어지게 된 점에 대해 찬사를 보내 마지않습니다.”
군수님께서 아낌없는 치하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 선생님의 사회로 준공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준공 테이프를 끊는 순서입니다. 테이프를 끊으실 분은 교장 선생님과 군수님, 면장님, 그리고 이 곳에 다리를 놓을 결심을 하여 이런 훌륭한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한 성준식군과 손영목군입니다.”
준식이와 영목이는 교장 선생님, 군수님, 면장님과 함께 붉어진 얼굴로 가위를 잡고 오색 테이프 앞에 섰습니다.
짤깍 !
준공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다리 위를 걸어가는 준식이와 영목이의 눈에 어느 새 굵은 이슬이 맺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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