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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연이의 결석

 <창작 동화>

연이의 결석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수많은 눈동자들이 숙이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숙이는 허름한 옷을 입고 성냥을 하나 들고 있었습니다.

호호 입김으로 언 손을 녹였습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아, 추워.”

숙이는 들고 있던 성냥을 열고 알을 하나 꺼내어 불을 붙였습니다.

환한 불이 성냥 알에 열렸습니다.

언 손을 가까이 대고 녹였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피었습니다.

불이 꺼졌습니다.

다시 성냥 알에 불을 붙였습니다.

자꾸, 자꾸…….

그러다 숙이는 쓰러졌습니다.

막이 내리며 요란한 박수가 터졌습니다.

“숙아, 참 잘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숙이를 칭찬했습니다.

“아휴, 떨려서 혼났어요. 이 기집앤 이런 날 안 나와서 나만 애를 먹게 한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숙이는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학예회 연극을 하기 위해서 주인공을 뽑을 때, 숙이와 연이가 경쟁을 했는데 연이가 뽑혔었습니다.

숙이는 그런 일로 그만 삐쳐서 다른 역도 맡지 않았습니다.

숙이의 마음 속엔 자기가 성냥팔이 소녀 역을 맡고 싶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부모님,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멋있는 연기를 보여 박수갈채를 받고 싶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다 허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연이와 친구들이 연극 연습을 할 때마다 숙이는 몰래 숨어서 보곤 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방문을 꼭 닫고,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하고 자기가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연습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연이가 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었습니다.

‘연이 조 계집애가 아니었으면 내가 주인공이 되는데…….’

그런데 그런 연이가 막상 학예회 날에 학교에 나오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연이네 집에는 전화도 없고, 집을 아는 친구도 없어서 왜 나오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숙이 만은 연이네 집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연이네 집을 아는 친구가 없느냐고 물었을 때에 숙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연극 순서는 점점 다가오고…….

어쩔 줄 모르던 선생님께서 숙이에게 성냥팔이 소녀 역을 하라고 했을 때 숙이는 속으로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감추고 연습도 안 해 봤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대사를 무대 뒤에는 읽어 줄 테니 해보라고 간청하다시피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못 이기는 척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연습을 몰래 숨어서 보았던 것이 참 도움이 되었습니다.

연극이 끝나자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학예회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연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연이를 미워했던 숙이의 마음은 이젠 실타래가 풀리듯 풀어지고, 연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무척 걱정이 되시는지 연이네 집을 아는 어린이가 없느냐고 다시 물어보셨습니다. 숙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학교 파한 후에 연이네 집을 찾아가 보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산 동네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란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6학년인 숙이도 한 번쯤은 쉬며 다리를 두드리고 크게 숨을 쉬어야만 했습니다. 산 동네에 있는 집들은 넓은 정원이 있는 숙이네 집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조그만 집들이었습니다.

산 동네를 거의 다 올라간 곳에 있는 시뻘건 녹물이 든 함석 지붕을 덮은 집이 연이네 집이었습니다.

함석 문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연이야, 연이야.”

숙이는 자기 집 장독대만큼 한 마당으로 들어서며 연이를 불렀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연이야, 연이야.”

다시 크게 불렀을 때에야 깨어진 창 틈으로 대답이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밖에 누가 왔나? 쿨룩쿨룩.”

기침 소리가 한참 나더니 문이 열렸습니다. 병색이 파리한 연이 엄마가 이불을 쓰고 누웠다 일어난 듯 했습니다.

“연이와 같은 반 친구 숙이예요. 연이 있어요?”

“오, 네가 바로 연이가 늘 말하던 숙이로구나. 연이는 학교에 가서 아직 안 왔는데 어쩐 일로 찾아왔니?  쿨룩쿨룩.”

“학교엘 갔어요? 아니에요. 연이는 3 일 동안 결석을 했어요. 그래서 궁금해서 찾아 왔는데요.”

“우리 연이가 결석을 해? 쿨룩쿨룩. 아침에 학교에 간다고 가방을 들고 나갔는 걸. 쿨룩쿨룩.”

연이가 결석을 했다는 말에 연이 엄마는 놀라면서 기침을 더 심하게 했습니다.

“그럼, 어쩐 일이죠?”

“쿨룩쿨룩쿨룩. 내가 몸이 아파 꼼짝을 못하니……. 얘가 학교에도 안 가고 어디 가서 속을 썩이노? 나쁜 짓이나 아니 하는지 모르겠다. 쿨룩쿨룩.”

“연이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 그런데 많이 편찮으신가 보죠?”

“아니다 크게 걱정할 병은 아니란다. 감기 몸살이 들었을 뿐이란다. 쿨룩쿨룩. 참 네 이름이 숙이라고 했지? 연이의 말은 네가 약 값을 꾸어주어서 약을 사왔다는구나.”

“전 그런 일 없어요.”

“그럼 이상한 일이구나. 쿨룩쿨룩쿨룩. 에구, 내가 몸이 성해야 나가 찾아 보고 장사도 할텐데……. 쿨룩쿨룩.”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찾아볼게요. 그럼 몸조리 잘 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고마워서 어떡하나.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오기도 힘들었을 텐데. 잘 가요. 쿨룩쿨룩.”

연이네 집을 나오던 숙이는 그 때야 문패가 연이 엄마 이름으로 달려있는 걸 보았습니다. 연이는 아버지가 안 계신가 봅니다.

산 동네를 내려오며 숙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연이는 학급에서도 공부를 제일 잘하고 행실도 얌전한 일등 모범생입니다. 일부러 결석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할 아이가 아닙니다.

학예회 전까지는 연이를 미워했었지만 학예회가 끝나고 난 지금은 오히려 연이의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마 학예회 때 연이가 성냥팔이 소녀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 받는 것을 보았었다면 지금까지도 미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중앙 시장 입구까지 왔을 때 숙이는 걸음이 멈추어졌습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한 곳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아! 거기에 연이가 있었습니다.

연이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연이는 리어카 앞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 조그만 꼬마 애들이 올망졸망 서 있었습니다.

연이는 고구마를 팔고 있었습니다.

연이를 부르며 가까이 가려고 하던 숙이는 연이를 부르지도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걸 알았습니다. 연이가 왜 성냥팔이 소녀 역을 맡고도 학예회 날에 학교에 나오지 못 했는지를. 왜 자기에게 약 값을 꾸어 약을 사 왔다고 어머니께 거짓말해야 했는지를.

내일은 선생님께 말씀드려 함께 연이를 찾아와 손을 꼬옥 잡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해가 산 동네 너머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