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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재수 없는 고양이

 <창작 동화>

재수 없는 고양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1)


“쳇, 재수가 없다고?”

난 계속 투덜거렸습니다.

“이래봬도 우리 조상님은 태국 왕비의 사랑을 받던 분인데, 이런 좋은 혈통을 몰라보고 재수가 없다면, 재수가 좋은 건 도대체 뭐야?”

누구에게랄 것 없이 투덜거리며 불평을 했지만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 날 보고 재수가 없다고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긴 뭐 나를 못 살게 구는 이 도시가 나도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골 영희네 집에 살 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 도시와는 달리 공기가 맑고, 흙 냄새와 풀 냄새가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질이곤 했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놀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지곤 했습니다.

지난 봄 어느 날, 영수 엄마가 친정에 다니러 왔습니다. 영수 엄마는 영희 고모입니다.

“어머나, 오빠. 이렇게 예쁜 고양이들이 다 있네요. 어쩜 이렇게 까만 털이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돌까.”

영수 엄마는 우리 형제들을 보더니 나를 번쩍 들어 안고 목을 쓰다듬었습니다. 난 기분이 좋을 때 늘 하는 습관대로 목울대를 가르륵거리며 영수 엄마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습니다.

“그렇게 귀여우면 갈 때 가지고 가렴. 혈통 좋은 샴 고양이야.”

“정말 오빠, 한 마리 주시는 거유? 그럼, 나 이 고양이 가지고 갈래요. 영수가 무척 좋아할 거예요.”

이렇게 해서 난 영수네 고양이가 되어 바구니에 담겨서 부푼 가슴으로 도시로 왔습니다.

도시로 오는 버스를 탈 때까지만 해도 내 부푼 가슴은 아직도 그대로였습니다.

처음 버스를 탄다는 기분에 난 영수 엄마의 손에 들린 바구니 안에서 “야옹” 하고 소리쳤습니다.

“아줌마, 그게 뭐예요?”

안내양 아가씨가 다가와 별로 곱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 아냐. 아무 것도 아냐.”

영수 엄마가 얼른 바구니 덮개를 누르며 나를 감추려 했습니다.

“그거 고양이 아녜요? 어디 봐요.”

안내양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며 바구니를 빼앗다시피 하여 덮개를 열었습니다.

“아줌마, 당장 내리든지 고양이를 버리든지 하세요.”

“안돼. 이게 어떤 고양인 줄 알고 그래?”

영수 엄마가 안내양의 손에서 바구니를 빼앗아 등뒤로 감추었습니다.

“차에 고양이를 태우면 재수가 없단 말예요. 이건 특히 검은 고양이잖아요.”

안내양이 핏대를 올리며 삿대질을 했습니다.

“아가씨, 좀 봐 줘요. 응.”

영수 엄마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습니다.

“이 차가 고양이 땜에 사고가 나면 아줌마가 책임 질 수 있어요?”

안내양의 목소리는 수그러들 줄 몰랐습니다.

난 화가 나서 “야옹!”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내가 타면 재수가 없다니, 내겐 무척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습니다.

“차에 고양이를 태우면 재수가 없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우. 자 자, 그러지 말고 고양이 운임을 따로 낼 테니 좀 봐 줘요.”

영수 엄마는 얼른 핸드백을 열고 천 원 한 장을 안내양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어이, 김양. 좀 봐 줘. 내가 차를 조심조심 몰면 될 거야.”

운전기사의 말에 안내양의 높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습니다.

“아저씨, 그래도 고양이를 태우면 재수가 없다구요. 아줌마, 우리 기사님 말씀이 계셔서 봐 주는데요,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제발 고양이가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알았어요. 아가씨, 고마워.”

안내양은 뒤로 돌아서면서 또 내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에이, 재수 없는 고양이 같으니.”

나는 약이 올라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야아옹!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영수 엄마는 주위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불안한 얼굴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재수 없다는 말도 잊고 난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도시에서의 새 생활을 꿈꾸며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도 난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나를 실망시켰습니다. 딱딱한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은 발바닥에 거북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붕붕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귀를 아프게 하고, 숨 쉴 때마다 코를 자극하는 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영수네 집 마당은 신나게 뒹굴 수 있는 푹신한 잔디밭 대신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흙이라고는 화초가 심겨진 화분 외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영수네 집에서의 처음 며칠 동안은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끼니때마다 주는 음식이 시골 영희네 집에서는 가끔씩 밖에 맛볼 수 없었던 맛있는 것들뿐이었습니다. 잠자리는 푹신했습니다.

그러나 난 왠지 모르게 점점 시골 영희네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수네 식구들의 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식어져 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를 데리고 온 영수 엄마는 늘 화사하게 차려 입고 밖으로만 나가고, 영수 아빠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술에 취해 한밤중에야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 학년 짜리 영수마저 학교로 가고 나면 집에는 가정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가정부는 끼니때마다 잊지 않고 음식을 주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하고 놀기는 했지만, 내 목에 끈을 묶어 끌어당기거나, 발로 배를 툭툭 차곤 했기 때문에 영수와 노는 것이 오히려 괴로웠습니다.

며칠 전 나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영희네 집에서 살 때는 응아를 하고 싶으면 발로 땅을 파고 일을 본 다음 다시 흙을 덮어 묻어버리곤 하던 습관 때문에, 영수네 집에서는 상자에 담긴 모래를 파고 그 속에다 응아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날은 응아를 하려고 했지만 모래 상자가 늘 있던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얼른 눈에 띈 것이 화분이었습니다. 난 체면 불구하고 화분의 흙을 파헤친 다음 그 속에 응아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볼 일을 다 보고 흙을 다시 덮으려는 순간 발을 헛디디면서 그만 화분을 쓰러뜨려 깨고 말았습니다.

저녁에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이 놈의 고양이. 내가 가장 아끼는 화분을 깨뜨렸구나.”

그날 따라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온 영수 아빠가 노발대발하면서 나를 걷어찼습니다.

야아옹!

난 걷어채인 아픔보다는 그까짓 일로 걷어차는 영수 아빠의 행동에 화가 나서 발톱을 세우며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아니, 이 놈의 고양이가 어디다 발톱을 세워! 재수 없는 검은 고양이 같으니라구. 당장 나가!”

난 갑자기 서글퍼졌습니다.

하찮은 화분 한 개를 깨뜨린 일 때문에 꾸중을 듣고 발로 걷어채이는 것은 잘못한 일이니까 참을 수 있다고 하지만, 혈통 있는 샴 고양이인 나를 재수 없게 여기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영수네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둠이 완전히 깃들자 난 살며시 영수네 집 대문을 빠져나왔습니다.


        (2)


‘다시는 안 돌아갈 테야.’

정말 다시 영수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영수네 집을 나와서 사흘 동안 이 도시를 헤매며 다니는 동안 이 도시가 정말 싫어졌습니다.

처음 영수네 집을 나올 때는 영희네 집을 찾아가리라고 마음먹었지만 곧 그 생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영희네 집이 있는 시골로 갈 수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는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 같은 고양이를 무척 슬프게 하는 도시였습니다.

시골에서는 흔한 쥐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긴 뭐 내 위엄 있는 목소리만 듣고도 모두 숨어버리기 때문에 찾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배가 고파 몰래 들어갔던 푸주간에서는 삶은 돼지 내장을 훔쳐먹으려다 주인에게 들켜서 혼쭐날 뻔했습니다. 내 발이 빨랐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은 거추장스러운 목걸이를 목에 걸고 끈에 묶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훌륭한 가문의 후손인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배고픈 것 때문에 체면도 헌신짝처럼 던져버렸습니다. 이틀을 굶은 나는 결국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져서 생선 가시나 주워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가 축축이 내리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바가지로 퍼붓듯 좍좍 쏟아지던 비가 점점 가늘어지면서 지금은 가느다란 빗줄기가 되어 내리고 있지만 내게는 도시 싫은 비입니다.

밤이 깊었지만 아직 잠 잘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틀 밤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등을 웅크리고 잤지만 오늘은 그나마도 하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마른 처마 밑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몸을 자꾸자꾸 흔들어 빗물을 떨어내면서 생각나는 것은 시골 영희네 집뿐이었습니다. 영희의 이불 속에 들어가 함께 잠을 자던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문득 발을 멈추었습니다.

눈앞에 나무 울타리 집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영희네 집이 아닌가 눈을 의심했지만 여긴 시골이 아니라 도시였습니다. 그렇지만 영희네 집같이 사철나무를 울타리 대신 비잉 둘러 심은 집이었습니다. 딱딱한 시멘트로 만들어서 유리 조각을 박은 울타리들만 있는 주변의 집들과는 달리, 이런 도시에도 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삼은 집이 있다니 참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얼른 나무 울타리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대문도 무거운 쇠대문이 아니라 아이들 키 만큼하게 통나무를 박아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시골 영희네 집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나는 얼른 열려진 대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현관문도 잠겨져 있지 않아 쉽게 열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현관으로 들어간 나는 피곤이 갑자기 몰려왔습니다. 몸을 흔들어 빗물을 떨어낸 다음 발판 깔개 헝겊 위에 웅크려 누웠습니다.

깔개 헝겊에서 사람 냄새가 가슴으로 포근히 밀려왔습니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3)


“어머나, 여기 고양이가 잠을 자고 있네.”

놀라 외치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깨었습니다.

‘이크, 잡히기 전에 얼른 도망쳐야지.’

나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곧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비속을 헤매 다니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배가 고픈데다, 어디가 아픈지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를 내려다보는 소녀의 눈동자를 보고는 약간 안심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리도 영희의 눈동자를 닮았을까? 영희도 저렇게 하늘처럼 맑은 눈동자였어.’

소녀가 나를 내려다보다가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엄마, 엄마, 저기 고양이가 쓰러져 있어요.”

“아니, 왜 아침부터 호들갑이냐?”

방안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좀 조용히 말해야지, 엄마가 깰라.”

“아빠, 저기 고양이가 한 마리 쓰러져 있어요. 얼른 이리 와 봐요.”

소녀가 아빠의 손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렇구나. 이게 웬 고양이일까? 쯧쯧. 몸이 다 젖고 여위었구나.”

소녀의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습니다.

“아빠, 참 불쌍한 고양이 같다. 그렇죠? 이 고양이 우리가 키우자.”

“어떤 고양이인지도 모르고 데리고 살면 안 돼. 몹시 배가 고픈 것 같으니까 음식을 먹여 보내자.”

소녀의 아빠가 나를 잡으려고 굵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큼직한 손을 보는 순간 영수 아빠의 무서운 손이 생각나서 벌떡 일어나 도망쳤습니다.

소녀의 아빠가 나를 쫓아왔습니다. 잡히면 혼이 나거나 끈에 묶여 꼼짝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쳤습니다.

소녀의 아빠는 쿵쾅거리며 내 뒤를 쫓아왔습니다. 나는 마루방을 빙빙 돌며 도망치다 쓰러졌습니다. 소녀의 아빠가 얼른 나를 붙잡았습니다.

커다란 손에 붙들린 나는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럴수록 소녀의 아빠는 나를 더욱 세게 붙들었습니다.

나는 도망치려는 생각을 그만두었습니다. 가슴이 커다랗게 방망이질 치며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아빠의 커다란 손은 의외로 따뜻했습니다. 늘 차갑게 느껴지던 영수 아빠의 손과는 달랐습니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차차 가라앉았습니다.

“옥아, 옥아.”

방안에서 가냘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녀의 이름이 옥이인가 봅니다.

“예, 엄마.”

옥이는 얼른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엄마, 깨셨어요? 아빠가 고양이를 잡았어요.”

옥이 아빠가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니, 여보. 웬 고양이에요?”

옥이 엄마가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나는 옥이 아빠의 팔에 안긴 채 옥이 엄마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옥이 엄마는 얼굴이 핼쑥하였습니다. 뺨에 살이 많이 빠지고 광대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슬픈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당신 일어났구려. 더 자지 않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그 고양이는요?”

“응, 이 고양이?”

“현관에 들어와 있길래 잡았지. 병들고 배가 고픈가 봐. 음식을 먹인 다음 건강해지면 보내야겠어.”

“이 동네에서는 고양이를 기른다는 집이 없는데 어디서 온 고양이일까요?”

“글쎄. 떠돌이 고양이인가 봐.”

옥이 아빠가 비닐 끈을 가져와서 내 목에 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두근거리던 가슴이 다 가라앉았기 때문에 끈을 묶을 때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젠 무섭지 않았습니다.

옥이 아빠가 접시에 따뜻한 우유를 담아왔습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정신 없이 우유를 핥았습니다.

옥이가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내가 우유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유를 다 먹고 한 쪽 구석으로 가서 쭈그리고 엎드렸습니다. 옥이가 다시 내 앞으로 와서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무척 맑은 눈동자였습니다. 옥이의 눈동자를 보면 볼수록 점점 옥이가 좋아졌습니다.

옥이가 손바닥으로 살짝 내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나는 옥이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볐습니다.

야옹.

옥이의 따뜻한 손바닥 감촉이 영희를 너무나 닮아 나도 모르게 기쁨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아빠, 이 고양이 우리가 데리고 살아요. 응?”

옥이가 손바닥으로 내 등을 쓸며 말했습니다.

“안 돼. 내보내야지.”

“흐흥, 데리고 살아요오.”

옥이가 흐흥거리며 몸을 흔들었습니다.

“여보, 옥이 말대로 해요. 당신이 출근한 뒤 옥이와 나만 남아서 무척 심심해 하는데, 고양이가 있으면 옥이가 재미있게 놀 거예요. 내 몸이 성하기만 하다면야 옥이가 심심지 않게 놀아줄 텐데.”

“글쎄.”

옥이 아빠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야, 아빠. 고마워요.”

옥이가 아빠에게 매달려 뺨에 뽀뽀하고는 나를 안고 말했습니다.

“넌 이제부터 내 고양이야. 이젠 우리 집 식구가 됐어.”

야아옹.

나도 기뻐서 소리질렀습니다.

옥이 아빠와 엄마가 빙그레 미소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옥이 엄마의 눈동자는 여전히 슬픈 빛이었습니다.


        (4)


옥이네 집에서의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지치고 병들었던 내 몸은 점점 나아지고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옥이는 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내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흑진주야. 흑진주가 뭔지는 모르지만 엄마가, ‘어쩜 까만 털이 흑진주 같이 반짝일까.’ 하고 말씀하셨거든.”

나도 흑진주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새로 얻은 이름이 마냥 좋기만 했습니다.

옥이가,

“흑진주야.”

하고 부르면 나는,

“야옹.”

하고 대답하며 옥이의 손에 얼굴을 비비곤 했습니다.

나무 울타리 집에는 옥이와 아빠, 엄마, 이렇게 세 식구만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구들이 먹을 조반과 점심을 준비해 놓고는, 아침 식사 후 설거지까지 끝내고서 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저녁때는 늘 일찍 들어왔습니다.

옥이 엄마는 거의 자리에 누워서 지냈습니다. 가끔 마당에 나오기는 했지만 곧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옥이네 집에는 영수네 집과는 달리 마당에 파랗게 잔디가 깔리고 나무가 군데군데 심어져 있었습니다.

마당에서 옥이와 뛰어 놀면서 풀밭을 뒹굴면 따뜻한  햇볕이 나를 온통 감싸고, 향긋한 풀 냄새가 가슴 안으로 확 들어와 기쁨의 샘이 되어 넘쳐흐르곤 했습니다.

내가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옥이 엄마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전에는 하루에 한두 번쯤은 가끔 마당으로 나오기도 하더니,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기조차도 힘들어하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며칠씩 있다가 온 일도 있었습니다.

옥이 외할머니가 들어와 살면서 옥이 엄마의 병간호를 하고 옥이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엄마, 빨리 나아서 나하고 놀아요.”

옥이가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듯 말하면, 엄마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래, 엄마가 빨리 나아서 옥이하고 놀 테니까 마당에서 흑진주하고 놀고 있으려무나.”

그렇게 대답하는 옥이 엄마의 목소리에 슬픔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나왔습니다. 눈 주위가 거무스름해지고 얼굴이 더욱 앙상해졌습니다.

옥이 아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더 빨라졌습니다.

“여보, 나 이젠 안되겠어요.”

“여보, 용기를 가져요. 당신은 꼭 나을 거요. 우리 옥이를 생각해서라도 꼭 나아야 돼요.”

“제 병은 제가 잘 알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약을 잘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했어요.”

“저를 위로하려고 하시는 말씀은 고마워요. 그렇지만 대학병원에서도 못 고치고 돌아왔잖아요.”

조용조용 말씀하시는 옥이 아빠 엄마의 이야기가 슬픔의 강물이 되어 온 집안에 가득 흘렀습니다. 내 가슴속에도 슬픔의 강물이 밀려왔습니다.

집안에 가득 찬 슬픔을 걷어내고 싶었습니다. 나는 옥이의 고무공을 몰고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야옹거렸습니다. 앞발로 툭 치면 공이 저만치 굴러가고, 팔짝 뛰어서 공을 잡고는 뱅글뱅글 돌다가 뒹굴었습니다.

옥이 엄마는 자리에 누운 가운데서도 내가 장난하는 모습을 보고 소리 없는 웃음을 빙그레 웃었습니다.

“저 고양이가 온 뒤부터 당신이 더 아픈 것 같구려. 고양이를 내보내야겠어. 옛날부터 검은 고양이는 재수가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구려.”

옥이 아빠의 말씀에 난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장난하던 것을 그만 두고 슬그머니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이 도시로 오는 버스에서 안내양이 재수 없다고 했을 때 난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영수 아빠가 재수 없다고 하면서 나가라고 할 때는 슬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화가 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난 재수 없는 고양이 일까?  버스 안내양도, 영수 아빠도 나를 재수 없다고 했어. 다정하게 대해 주던 옥이 아빠도 나를 재수 없다고 했어. 나 때문에 옥이 엄마가 더 아픈 것이라면 옥이네를 위해서 이 집을 나가야겠어.’


        (5)


나는 다시 떠돌이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집 쓰레기통, 내일은 저 집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 찌꺼기나 생선 가시를 주워 먹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쥐가 많은 곡식 창고를 찾아내었습니다. 이젠 배고픈 걱정은 없어졌습니다. 득실거리던 쥐들도 내가 한 번 ‘야옹!’ 하고 호령하면 꼼짝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흠흠, 이제야 귀족 고양이 체면이 서는군. 자, 어느 놈부터 잡아먹을까?”

나는 한껏 위세를 부리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쥐들을 쫓아가 한 마리 씩 잡아먹었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나선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곡식 창고로 가서 쥐를 잡아 먹곤 했습니다.

곡식 창고를 발견한 뒤 며칠 동안은 배고픈 줄 모르고 지내며 마음대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배부르게 쥐를 잡아먹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지냈지만 늘 속이 빈 것 같았습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 결코 기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럴까?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것 같지가 않고, 목에 묶인 끈이 없는데도 왜 이렇게 기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고 보니 사철나무 울타리 앞에 와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아, 내가 왜 여기로 왔을까? 그래, 난 옥이가 보고 싶었던 거야.’

나는 얼른 사철나무 울타리 틈새로 들어갔습니다.

현관 앞에 옥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야아옹, 옥아!”

옥이를 부르며 뛰어 가려다 멈칫했습니다.

‘아니야, 가면 안 돼. 난 재수 없는 검은 고양이인데 내가 가면 옥이 엄마가 더 아플 거야. 그러면 옥이가 슬퍼할 거야.’

나는 다시 울타리 틈새로 빠져 나와 곡식 창고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흑진주야, 흑진주야.”

뒤에서 옥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창고로 돌아와 쥐를 잡아먹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쥐를 호령하는 것도, 마음대로 잡아먹는 것도 다 싫어졌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옥이와 숨바꼭질하는 모습뿐이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영희의 눈을 닮은 하늘같이 맑은 옥이의 눈동자가 어른거렸습니다. 옥이 엄마의 여윈 모습과 슬픈 눈동자가 가슴속으로 밀려와 거센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옥이네 집으로 다시 갈까? 아니야, 가면 안 돼.’

재수 없다고 하며 나를 내보내자던 옥이 아빠의 얼굴이 얼른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옥이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던 그 감촉이 생각나면 가슴이 마구 뛰며 미칠 것 같았습니다.

‘재수 없는 고양이가 되어도 좋아. 난 옥이가 보고 싶어. 옥이네 집으로 돌아갈 거야.’

벌떡 일어나 옥이네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저만치 앞에 사철나무 울타리가 보였습니다.

“야아옹!”

열려진 대문으로 들어가며 옥이를 불렀습니다.

“흑진주야!”

지난번처럼 현관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옥이가 나를 부르며 달려나와 나를 번쩍 들어 안았습니다.

“흑진주야, 왜 가버렸니? 얼마나 너를 찾았는지 아니?”

옥이는 깡총거리며 나를 안고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엄마, 아빠, 흑진주가 돌아왔어요. 아이 좋아라.”

옥이는 얼굴에 기쁨을 가득 달고 방안을 돌아다녔습니다.

옥이 엄마의 몸은 내가 집을 나가기 전보다 더 수척해지고, 더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보, 흑진주는 재수 없는 고양이가 아니에요. 흑진주가 돌아오니까 옥이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 봐요.”

“그렇군. 재수 없다고 했던 내가 잘못했구려.”

“흑진주가 나가버렸을 때 옥이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 몸이 더 아픈 것 같았어요. 옥이의 저 밝은 얼굴을 위해서라도 이젠 병을 이겨야겠어요.”

“여보!”

옥이 아빠의 눈에 눈물이 괴었습니다.

나는 옥이와 함께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마당의 잔디가 황금빛으로 누렇게 물들어 있었지만 햇볕은 여전히 따스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