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동화 >
시인의 크리스마스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 메리 꾸리쑤마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
도시의 번화가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리의 가게들이 환한 큰 불을 달고 오색 작은 등을 반짝이며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고, 빨간 털모자와 하얀 솜수염을 단 산타 할아버지도 빨간 코에 웃을 담고 아이들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거리가 온통 크리스마스 잔치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인은 혼자 쓸쓸히 불빛들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습니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시인은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시인의 머리는 온통 헝클어져 있었고, 며칠을 깍지 않았는지 시커먼 수염이 얼굴을 가득히 덮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입고 있는 옷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남루한 차림이었습니다. 시인의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있는 이 거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게 아닌데.”
시인은 또 중얼거렸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즐거운 꾸리쑤마쑤라구. 이봐 젊은 양반, 즐거운 꾸리쑤마쑤를 축하하는 뜻에서 한잔 합세 그려.”
술에 잔뜩 취한 주정꾼 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시인에게 다가와 종이컵을 내밀었습니다.
시인은 말없이 종이컵을 내미는 주정꾼을 바라보았습니다. 주정꾼은 시인이 말없이 자기를 바라보기만 하자 멋적었는지 손을 거둬들여 혼자서 술을 따라 쭈욱 마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꾸리쑤마쑤에 술을 아니 마시고 되겠소? 자, 젊은 양반, 내 잔 한 번 받으시오.”
주정꾼이 다시 종이컵을 내밀자 시인은 이번에는 종이컵을 받아 들었습니다. 주정꾼은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도 술을 쏟지 않고 따랐습니다.
“자, 쭈욱 드시오. 우리 집 강아지 메리 꾸리쑤마쑤.”
“메리 크리스마스.”
주정꾼의 메리 꾸리쑤마쑤 선창에 시인도 메리 크리스마스로 대답하며 쭈욱 술을 마셨습니다.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거 강시인 아니시오.”
구경꾼들 중에서 빵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다가오더니 반가운 듯 시인의 손을 잡았습니다.
“누구……신지?”
“나요, 나. 허화백이오. 전에 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만났던.”
“아, 허화백님.”
시인은 그제야 자기를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게로군. 자, 그럼 난 갈 테니 두 분이서 메리 꾸리쑤마쑤 하시오.”
주정꾼은 다시 다리를 흔들, 팔을 흔들, 술병을 흔들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도 메리 크리스마스 하세요.”
시인도 주정꾼의 뒤에다 대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습니다.
“아는 사람인가?”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던 사람일뿐이지요.”
“그런데 강시인이 여기는 웬 일인가? 이 도시가 강시인의 고향은 아니지 않은가?”
“네. 그저 제 발이 이곳으로 향하길래 발을 따라 여기로 왔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허화백님의 고향이군요.”
“자, 가세 어디 가서 조용히 앉아 이야기하세.”
허 화백은 시인의 팔을 잡고 근처에 있는 포장 마차로 갔습니다.
“강시인. 발을 따라 여기까지 온 까닭이 뭔가?”
소주병을 들고 잔에 술을 따르며 허 화백은 궁금한 듯 물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다니고 있지요.”
“아름다운 것?”
허 화백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허화백님께서는 아름다운 것을 보셨습니까?”
“글쎄. 아름다운 것이야 많지. 강 시인의 시도 아름답지 않은가?”
허 화백의 말에 시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돈 많은 부자집 마나님네야 커다란 보석이 아름답다고 하겠지요.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에겐 달콤한 사랑이 가장 아름답겠지요. 전에는 제 시도 아름다운 시였지요. 그러나 이제 제 시는 아름다운 시가 아닙니다. 그저 아름다운 낱말들을 긁어모아 맞추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지요. 저는 이제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시인입니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면 시인의 생명은 끝이지요. 시인으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다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강시인이 찾아다니는 아름다움은 도대체 뭐길래 여기까지 찾아다니나?”
“저도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야기하자면 길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아름다움을 찾는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시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술을 한 잔 쭈욱 마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 꿈을 꾸는 아이
여울이는 호숫가 풀밭에 앉아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풀밭을 살랑 흔든 초록 바람이 잔잔한 호수 위로 불어 가면 호수의 물빛이 초록빛으로 잔잔하게 일렁이고, 하얀 구름을 띄워 보내던 하얀 바람이 호수 위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면 호수의 물은 하얗게 구름빛 비늘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 호수 물빛을 바라보는 여울이의 눈빛도 초록빛이 되었다가 하양 빛이 되고, 다음에는 또 파랑 하늘빛을 닮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따뜻한 작은 손이 여울이의 눈을 가리웠습니다.
“내가 누구게?”
여울이의 눈을 가린 손의 임자는 목소리를 굵게 하여 어른 목소리를 흉내내고 있지만, 여울이는 눈을 가린 작은 손이 누구의 손인지 곧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고 따스한 손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울이는 모르는 척 되물었습니다.
“으응, 누굴까? 모르겠는데.”
“하하하, 바아보. 그것도 몰라? 나야, 나.”
따스한 손 마냥 따스한 목소리가 대답하며 여울이의 눈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새봄이구나.”
여울이의 눈앞에 새봄이의 활짝 웃는 얼굴이 다가와 앉았습니다.
“오빠, 뭘 하고 있었어? 내가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어.”
“호수를?”
“응. 저 호수의 물빛을 바라봐.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빛깔이 변하고 있잖니.”
“어떻게?”
“초록빛 바람이 불어오면 물빛도 초록빛이 되고, 하양 바람이 불어오면 하양 빛으로 반짝인단다. 그리고 파랑 바람이 불어오면 호수의 물빛도 파아랗게 되거든.”
“그래? 여울이 오빠 눈엔 바람이 초록빛, 하양빛, 파랑빛으로도 보여?”
“그럼. 풀밭에서 놀다 온 바람은 초록 바람이고, 맑은 하늘에서 구름을 띄우던 바람은 하양 바람이야. 그리고 저 높은 하늘에까지 올라갔다 온 바람은 파랑 바람이야. 아마 꽃밭에서는 빨강, 노랑, 분홍 바람들이 손잡고 불어 올 거야.”
여울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새봄이의 눈이 호수 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새봄아, 난 시인이 될 거야.”
“시인이 뭐야?”
“시를 쓰는 사람이야.”
“시가 뭔데?”
“으응,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생각이나 감동을 노래하듯이 글로 쓰는 것이야. 난 저 반짝이는 맑은 호수나 푸른 들판을 바라보면 가슴속에서 노래가 나올 것만 같단다. 새봄이, 네 얼굴을 볼 때도 내 가슴속에서 노래가 흐르는 것 같아.”
새봄이의 두 뺨이 복숭아꽃처럼 붉게 물들었습니다.
“새봄아, 내가 저 호수를 바라보며 지은 시를 들려줄까?”
“응, 그래.”
새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여울이를 보았습니다.
“그럼, 눈을 살짝 감고 들어 봐.”
새봄이는 붉으레 물든 볼 위의 두 눈을 살짝 감았습니다.
호수 물빛같이 맑은 여울이의 목소리가 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호수에 부는 바람
고요한 호수 위로
바람이 분다.
풀밭에서 놀다 온
초록 바람 불어오면
호수는
초록빛으로 일렁이고
하얀 구름 띄우던
하양 바람 불어오면
하얗게 반짝이는
은물결
파란 하늘 그리던
파랑 바람 내려와
살며시 어루만지면
호수는 다시
파아랗게 잠이 든다.
짝짝짝짝.
“와, 너무 아름다운 시다.”
새봄이의 목소리가 붉어진 뺨만큼이나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난 커서 꼭 시인이 될 테야.”
여울이도 붉어진 새봄이의 뺨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여울이 오빠는 마음이 아름답고 늘 아름다운 생각을 하니까 꼭 시인이 될 거야.”
서로 바라보는 여울이와 새봄이의 눈빛 속에 조그맣고 아름다운 사랑이 싹이 트고 있었습니다.
둘은 손을 잡고 봄이 피어나고 있는 호숫가 들판을 달렸습니다.
◉ 가슴에 안은 꽃다발
“지금부터 OO예술상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시인이 된 여울이는 가슴에 커다란 꽃을 달고 예술상 시상식장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울이의 가슴은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시상식 순서가 진행이 되면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습니다.
“이 OO예술상은 문학과 예술 부문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을 쓰거나, 가장 뛰어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입니다. 먼저, 문학 부문 수상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여울이를 가리키며 소개하였습니다.
“문학 부문 수상자는 강여울 시인!”
여울이는 일어나서 모인 사람들을 향해 크게 허리를 숙였습니다.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강여울 시인은 ☆☆일보 신춘 문예와 ♧♧신문 신춘 문예 등 두 번의 신춘 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여, 아름다운 시로 사람들의 가슴에 촉촉한 단비와 같은 기쁨과 뜨거운 감동을 심어 주었고, ……………….”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자 다시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꽃다발을 한가득 가슴에 안은 새봄이가 봄빛같은 기쁨을 얼굴에 담고 맨 뒤에 앉아서 여울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울이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시상대로 올라갔습니다.
“상패, 제 123 호, 문학 부문 강여울, 귀하는……. 19××년 ×월 ×일 OO예술상 선정 위원회 위원장 박○○.”
커다란 상패가 여울이의 가슴에 안겨졌습니다. 여울이의 가슴이 가슴에 안긴 상패만큼 커다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음은 미술 부문 시상을 하겠습니다. 수상자는 허기림 화백.”
시상식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많은 축하와 부러움의 눈길이 여울이와 다른 수상자들의 몸에 쏟아졌습니다. 여울이는 그들의 눈길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어깨가 우쭐해짐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예술상을 받는다는 것은 모든 예술인들과 문학가들에게는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여울이처럼 젊은 나이에 이러한 큰 상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에 여울이에게는 정말로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강시인,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아름다운 시를 쓰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후 허기림 화백이 손을 내밀어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허화백님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 훌륭한 그림을 그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허허, 그러고 보니 우린 공통점이 있군요.”
“그렇네요.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것이지요.”
“시인은 아름다움을 글로써 나타내고, 화가는 색으로 나타낸다는 것이 다를 뿐이군요. 강시인, 우리 앞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에 더욱 더 힘을 씁시다.”
여울이와 허 화백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았습니다.
“여울이 오빠, 축하해요.”
새봄이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꽃다발을 내밀었습니다.
“고마워, 새봄이.”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눈 속으로 호수의 물빛 같은 미소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여울이의 가슴에 안은 꽃다발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 구족 화가의 집
“그 후로 전 허화백님과 약속한 대로 더욱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죠. 그러나 저의 명성이 높아져 가고 제 시집이 제 명성만큼이나 많이 팔리게 되자, 저는 점점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가난하던 제게 많은 돈이 생기게 되면서, 저는 시심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나온 일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말을 들으며 허 화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정말 부끄럽게도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을 위해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명성을 돈을 위해서 팔고, 원고료를 위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들곤 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펜을 놓고 아름다움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은 저를 깨우쳐 준 새봄이 때문입니다.”
“새봄이 때문에?”
“어느 날, 새봄이는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여울이 오빤 이제 시인이 아니야. 오빠의 시에는 이젠 아름다움이 없어. 요즘 오빠의 시에서는 돈 냄새가 나. 오빠의 시는 낱말 맞추기일 뿐이야.’ 전 새봄이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리고 이젠 시인이 아닌 글자 노름꾼인 자신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전 다시 참된 시인이 되기 위해서, 또한 옛날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 길을 나섰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는 참된 아름다움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 화백이 갑자기 시인의 손을 덥석 붙잡았습니다. 그러는 허 화백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강시인, 강시인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네. 강시인이 시인이 아니라면 나도 화가가 아니야. 나도 유명해지면서 내 그림을 돈으로 따지게 되었거든. 그림을 그리면서 이 그림은 얼마짜리가 될 것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돈만 많이 주면 아무에게나 그림을 팔곤 했네. 난 그걸 느끼면서도 강시인처럼 괴로워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네. 돈을 생각하면서 그린 내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색채 놀음일 뿐이었었네.”
“허화백님, 우린 항상 공통점을 가지고 있군요. 예술상 시상식에서는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사람으로서 만나더니, 지금은 글자 노름꾼과 색채 노름꾼으로서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허허허허.”
“하하하하.”
시인과 화백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빈 동굴을 울리고 빠져나오는 바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울고 있었습니다.
“자, 그만 일어나지.”
포장마차에서 나오자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고 가게들은 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시인과 화백은 어디라고 정하지도 않고 발이 가는 대로 말없이 거리를 걸었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희끗희끗한 눈발이 조금씩 보이더니 어느 세 두 사람의 머리와 어깨를 하얗게 덮어버렸습니다.
“첫눈이지, 아마?”
“그렇네요.”
“눈은 아름답지?”
“그래요. 아름답지요. 전 글자 노름을 하는 시인이 되느니 차라리 종이를 흰 눈처럼 그대로 놔두겠어요.”
“그래. 나도 색채 노름을 하는 화가가 되느니 이젠 차라리 종이를 흰 눈처럼 그대로 놔두겠네.”
“그것도 허화백님과 저의 공통점이 되겠군요.”
“허허허허.”
“하하하하.”
두 사람은 다시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어느덧 둘은 번화가를 벗어나 도시의 변두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커다랗게 우뚝우뚝 솟아있던 건물들은 여기서는 점점 낮아지고,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던 불빛들은 여기서는 점점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는 숨막힐 것 같던 마음이 여기서는 낮아진 건물만큼이나 숨을 크게 들이 쉴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려나?”
허 화백의 물음에 시인은 말없이 손을 들어 가리켰습니다.
허 화백의 눈은 시인의 손끝을 따라갔습니다.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 동네 꼭대기였습니다. 캄캄하게 불이 커진 산 동네를 쭈욱 따라 올라가다 산꼭대기 어름에 작은 불이 하나 켜져 있었습니다.
“어쩐지 저 불빛을 좇아 가보고 싶어지네요.”
시인과 화백은 불빛을 눈으로 좇으며 산 동네 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말이 없었습니다. 공통점을 많이 가진 두 사람은 이젠 말이 없어도 서로의 가슴속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산 동네 꼭대기를 거의 다 올라설 무렵에 있는 작은 집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길가 쪽 작은 창문에 커튼이 쳐져있고 커튼의 틈 사이로 따뜻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커튼의 틈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아!
아!
시인과 화백의 얼굴에 놀라움의 말과 놀라움의 색깔이 그려졌습니다.
불빛 속에 그려져 있는 풍경은 …….
화가 한 사람이 방바닥에 놓인 손바닥 만큼한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손이 아닌 발가락에 붓을 끼우고. 화가에게는 두 손이 모두 없었습니다.
화가의 곁에서는 화가의 아내가 뜨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보, 피곤하실 텐데 이제 그만 그리고 주무세요.”
“아니, 괜찮소. 내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고 기뻐하며 성탄의 기쁨을 서로 나눌 사람들을 생각하면 피곤하긴커녕 내 맘속에도 기쁨이 가득 넘친다오. 고단하면 당신이 먼저 자구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피곤할 텐데 말이오.”
“저도 괜찮아요. 당신이 이 옷을 입고 따뜻하게 지낼 걸 생각하면 손가락이 먼저 흥이 나서 저절로 움직이는 걸요.”
따뜻한 불빛만큼 따뜻한 구족화가 부부의 대화가 시인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발을 돌렸습니다.
허 화백이 따라오며 시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허화백님, 잃었던 것을 찾았습니다. 이 순간부터 전 다시 시인이 되렵니다. 그저 아름다움만을 쓰는 시인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함께 따뜻함을 쓰는 시인이 되렵니다.”
“그래, 나도 내가 그려야 할 그림을 저기서 보았네. 색채 놀음을 하는 화가가 아니라 가슴속을 그리는 화가로서 나도 다시 태어나려네.”
산 동네를 내려가는 시인과 화백의 앞에 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눈밭은 두 사람의 눈앞에서 하얀 종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인과 화백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얀 눈종이 위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눈물은 눈종이 위에 떨어져 아름답고 따뜻한 시가 되고 있었고, 화백의 눈물은 눈종이 위에 떨어져 두 사람의 가슴 속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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