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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사자왕이 보낸 작은 불

 < 창작 동화 >

사자왕이 보낸 작은 불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사자왕이 다스리는 숲 속의 동물 나라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하늘산을 비잉 둘러서 울창하게 솟은 빽빽한 나무 숲에 온갖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늘산의 북쪽 멀리로는 숲을 넘어서면 얼음으로 가득 덮인 얼음 나라가 있었고, 남쪽으로 숲을 벗어나면 모래 언덕이 계속 이어지는 모래 나라가 있었습니다. 얼음 나라를 다스리는 백곰왕은 찬바람을 몰고 와서 숲속 나라에 차가운 눈을 뿌리려 들었고, 모래 나라의 전갈왕은 뜨거운 모래 바람으로 숲속 나라를 자꾸만 침략하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이 살고 있는 하늘산 기슭까지는 눈보라나 모래 바람이 몰아치지 않았기 때문에 숲속 나라의 동물 백성들은 아늑한 숲 속에서 평화스럽게 살았습니다.

숲속 나라를 다스리는 사자왕은 하늘산 꼭대기의 큰 동굴 속에 살면서 동물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은빛 갈기와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사자왕은 동물 백성들에게 서로 돕고 아끼며 다른 동물들을 해치지 말고 살아가도록 가르쳤습니다. 동물들은 사자왕의 가르침대로 서로 사랑하며 평화스럽게 살아갔습니다.

사자왕의 커다란 소리는 동물들에게는 커다란 천둥 소리와 같았고,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동물들을 바라보면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찬란한 은빛 갈기는 동물들에게는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동물들은 사자왕의 외침 소리와 번쩍이는 눈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사자왕은 동물들 앞에 직접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늙은 회색곰을 동물들의 지도자로 임명하여 동물들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모든 일을 맡기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가르침을 내릴 때에는 회색곰을 하늘산 꼭대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사자왕은 동물들에게 숲속 나라를 떠나 멀리 가지 말라는 가르침을 내렸습니다. 만약 숲을 떠나 멀리 북쪽으로 가면 무서운 백곰이 눈보라를 몰고와서 몸을 꽁꽁 얼리고, 남쪽으로 숲을 벗어나면 뜨거운 모래 바람과 전갈의 독이 가득한 모래 언덕만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말을 듣고 숲속 나라에서만 살면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리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꾀가 많은 붉은 여우는 사자왕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사자왕이 동물들을 다른 데로 가지 못하게 하여 한 마리씩 잡아먹으려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숲 저쪽에는 더 좋은 세계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붉은 여우는 회색곰의 눈을 피해서 하늘산 기슭을 떠났습니다. 숲의 북쪽으로 먼저 가 보려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길을 달렸습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잎이 뾰족한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지만 커다란 나무들이 찬바람을 막아주어 눈보라가 불어닥치지는 않았습니다.

드디어 뾰족 잎 나무 숲을 벗어나자 하얀 얼음 나라의 차가운 눈보라가 붉은 여우의 몸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달려들었습니다.

“ 아하하하, 겁없는 여우야. 어서 오너라. 네 몸을 얼려 얼음 여우 동상으로 만들어 주마. ”

하얀 몸의 백곰왕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몸이 오싹해진 붉은 여우는 얼른 돌아서서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백곰왕은 발톱을 세워 으르렁대면서도 숲 속까지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 어흥. 어서 이리로 나오너라, 붉은 여우야. 네 붉은 몸을 눈처럼 하얗게 만들어 주마. ”

백곰왕은 커다란 입을 벌려 차가운 눈보라를 숲 속을 향해 후욱 후욱 뱉어내었습니다.

“ 싫어. 난 추운 건 싫어. 눈여우가 되기는 더욱 싫어 ! ”

붉은 여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음 나라를 등지고 남쪽을 향해 계속 달아났습니다. 빽빽한 나무 숲이 뒤에서 몰아쳐 오는 눈보라를 막아주었습니다.

하늘산 기슭으로 돌아온 붉은 여우는 숲의 북쪽 끝까지 갔다왔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숲의 남쪽 끝 모래 나라가 있다는 곳에도 가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붉은 여우가 기다리던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자왕이 천둥 같은 목소리로 회색곰을 하늘산 꼭대기로 불러올렸습니다.

“ 옳지, 이 때다. 회색곰이 없을 때 슬쩍 모래 나라가 있다는 곳까지 가 봐야지.”

붉은 여우는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하늘산 기슭을 벗어나서 남쪽으로 달렸습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갈수록 달콤한 열매 달린 나무들이 많이 있었고, 맑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는 했지만 달콤한 열매를 따먹고, 시원한 시냇물에 풍덩 뛰어들곤 했기 때문에 더워지는 날씨가 전혀 아무렇지가 않았습니다.

“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걸 왜 사자왕은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했을까 ? 이쪽으로 모두 와 버리면 잡아먹을 동물들이 자기 근처에 없기 때문일거야.”

사자왕에 대한 불평을 하며 붉은 여우는 드디어 숲을 벗어나 숲속 나라의 남쪽 끝에 다다랐습니다.

“ 우와, 이런 곳이 다 있다니 ……. ”

붉은 여우의 눈 앞에는 소금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고, 소금 호수 너머로는 모래 언덕이 지평선 끝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붉은 여우는 소금 호수를 비잉 돌아서 모래 언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음껏 신나게 달려보았습니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에 살던 붉은 여우에게는 이곳은 가슴이 탁 트이게 시원한 곳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사자왕이 이야기한 뜨거운 모래 바람은 전혀 불지 않고 고요하고 평화스럽게만 보였습니다. 발에 밟히는 모래의 열기가 약간 뜨겁기는 했지만 뛰어다니면서 생기는 자기의 발자국을 바라보는 재미에 비하면 이 정도의 뜨거움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한참을 뛰어다니던 붉은 여우는 모래 언덕 꼭대기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습니다.

“ 그런데 여기에는 대체 누가 사는 거야 ? 아무도 보이지 않잖아. 모래 나라를 다스린다는 전갈왕은 어디에 있는 거지 ? ”

“ 누가 나를 찾는 거냐 ? ”

갑자기 모래가 사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붉은 여우는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어디야, 어디 ? 지금 이야기 한 자가 어디에 있는 거야 ? ”

“ 여기다, 여기. 바로 네 발 밑에 있다. ”

발 밑에서 소리가 들리며 붉은 여우의 발이 무엇엔가 쏘인듯 따끔 아팠습니다.

“ 앗, 따가워 ! ”

붉은 여우는 얼른 발을 움추리며 모래 위에 주저앉았습니다.

모래 위에 모래 빛깔과 비슷한 푸른 빛을 띈 조그마한 갈색 벌레가 집게발을 떠억 벌리고 꼬리를 세운 채로 붉은 여우를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 네가 내 발을 쏘았니 ? ”

“ 그렇다. 내가 바로 네가 찾고 있는 전갈왕이다. ”

“ 하하하하, 이렇게 조그마한 녀석이 무슨 왕이라고. ”

붉은 여우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 이놈, 몸집이 작다고 이 전갈왕을 무시하는군. 비록 내 몸은 작지만 너의 발을 쏜 내 독은 잠시 후에 너의 큰 몸뚱이를 쓰러뜨린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

그제야 붉은 여우는 발이 아파옴을 느꼈습니다. 가느다랗고 늘씬했던 발이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엔 발목을 따라 다리까지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가슴이 아픔으로 점점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전갈 대왕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이 붉은 여우를 살려주십시오. ”

붉은 여우는 겁이 나고 당황하여 모래 바닥에 엎드려 손을 싹싹 비볐습니다.

“ 이제야, 이 전갈왕의 위대함을 알아차린 모양이로군. ”

“ 예, 위대하신 전갈 대왕님. 가슴을 쪼개는 듯한 아픔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어서 살려 주십시오. ”

“ 나의 위대함을 알았으니 살려주어야지. 그러나 나의 말에 그대로 따라야만 살려줄테다. 내 이야기에 그대로 따르면 너도 살아나고, 오히려 숲속 나라의 왕이 되게 해 줄 수도 있지. ”

“ 예, 무슨 이야기든지 모두 그대로 따를 것이니 빨리 이 아픔을 멎게하고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

그 사이에도 붉은 여우의 다리는 점점 부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붉은 여우는 아픔보다도 이제 곧 죽게 될 거라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 내가 살려 주면 너는 숲속 나라로 되돌아가서 모든 동물들을 달콤한 열매가 많고 시원한 시냇물이 흐르는 남쪽 숲으로 데리고 오너라. 그러나 사자왕과 사자왕이 세운 지도자인 회색곰이 모르게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너를 모든 동물 위에 세워서 왕을 삼아 주리라. ”

“ 예, 대왕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제발 이 목숨 살려 주십시오. ”

이젠 숫제 붉은 여우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 저 쪽 모래 언덕을 넘어가면 오아시스가 있다. 그곳에 가서 몸을 담그고 물을 마셔라. ”

“ 고맙습니다, 전갈 대왕님. ”

붉은 여우는 허겁지겁 전갈왕이 가리켜 준 모래 언덕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온 몸이 쪼개지는 듯 아프고 곧 쓰러질 것 같았지만 살아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뛰어가고 기어가며 모래 언덕을 넘었습니다.

바로 언덕 아래에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오아시스를 향해 언덕을 기어 내려가던 붉은 여우의 몸이 모래 위를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리고는 오아시스의 물에 풍덩 빠져들었습니다.

붉은 여우는 정신없이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시원한 물이 머리 속을 맑게 하는 듯 하더니 아픔이 차차 가라앉고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완전히 나은 붉은 여우는 거기서 나와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뒤돌아 보는 모래 나라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두렵게만 여겨졌습니다. 다시는 모래 나라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갈왕의 이야기를 따르면 숲속 나라의 왕이 되게 해 주겠다는 말이 자꾸만 머리 위에서 맴돌았습니다.

하늘산 기슭으로 돌아온 붉은 여우는 동물들을 꼬여 남쪽 숲으로 데리고 갈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던 기회가 얼마 후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사자왕이 회색곰을 또 하늘산 꼭대기로 불러 올린 것입니다.

“ 너희들은 내가 사자왕에게 갔다 올 동안 사자왕께서 내려주신 가르침을 잘 따르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바란다. ”

회색곰은 동물들에게 당부하고는 늙은 몸을 이끌고 하늘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늘산으로 올라간 회색곰은 며칠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내려왔을 것인데도 이번에는 왠일인지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하늘산 꼭대기에는 회색곰이 올라간 후부터 계속 구름이 끼어 있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붉은 여우는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 토끼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 아마 회색곰은 하늘산 꼭대기에서 사자왕에게 잡아먹혔을 거야.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내려왔을 텐데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지 않니 ? ”

겁이 많은 토끼는 붉은 여우의 이야기를 듣고 큰 눈이 더욱 커지고 동그래졌습니다.

“ 설마 사자왕께서 그렬려고. ”

“ 아니야, 틀림없을 거야. 우리도 언젠가는 사자왕에게 잡혀 먹히게 될지도 몰라. ”

붉은 여우는 잔뜩 겁을 주었습니다.

토끼는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면서도 붉은 여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른 동물들에게 하였습니다.

붉은 여우는 속으로 웃으며 이번에는 너구리를 다른 동물들이 안 보는 곳으로 슬쩍 데리고 갔습니다.

“ 얘, 너굴아. 넌 이 숲속 나라를 벗어나면 뭐가 있다고 생각하니 ? ”

“ 그거야 사자왕이 가르쳐 준 대로 얼음 나라와 모래 나라가 있잖아. ”

“ 그래. 그런데 넌 그 곳에 가 보고 싶지 않니 ? ”

너구리는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습니다.

“ 무슨 소리니 ? 거기 갔다가 사자왕과 회색곰이 알면 어쩌려고 ? ”

붉은 여우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너구리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습니다.

“ 사실은 말이야, 난 얼마 전에 얼음 나라와 모래 나라에 갔다 왔어. ”

“ 뭐 ? ”

너구리는 놀라서 입을 벌린 채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 놀랐을 거야. 거기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해 줄께. ”

붉은 여우는 얼음 나라와 모래 나라에 갔다 온 이야기를 신이 나서 너구리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너구리는 신기해 하면서도 겁이 나는 듯, 붉은 여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자꾸만 주위를 살펴 보곤 하였습니다.

“ 그런데 말이야, 전갈왕이 동물들을 모래 나라 가까운 남쪽 숲으로 데려와 살도록 하면 나를 숲속 나라의 왕을 시켜 준댔어. 어때, 왕관을 떠억 쓰고 높은 곳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멋있을 것 같지 않아 ? 그 땐 너구리, 네게 내 다음 자리에 앉도록 해 줄테니까 나와 함께 숲속 나라 동물들을 남쪽 숲으로 데리고 가자. ”

왕 다음 자리에 앉게 해 주겠다는 붉은 여우의 말에 너구리는 침을 꾸울꺽 삼켰습니다. 너구리는 붉은 여우가 가르쳐 준 대로 이 동물 저 동물들을 찾아다니며 회색곰이 사자왕에게 잡아 먹혔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여기 있다간 모두 사자왕에게 잡아먹힐 것이라고 겁을 잔뜩 불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쪽으로 내려가면 더 살기 좋은 숲이 있다고 하며 은근히 부추겼습니다.

그렇잖아도 토끼가 하는 말을 들은 데다가 다시 너구리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동물들은 불안하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숲속 나라 동물들이 모두 너럭 바위 앞에 모였습니다.

너구리가 너럭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사자왕의 가르침을 받아 살아 오긴 했습니다만, 우리의 지도자였던 회색곰이 사자왕에게 불려 올라가 잡아 먹힌 지금, 우리도 언제 회색곰처럼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하여 이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을 안고 여기서 이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하늘산 기슭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

“ 옳소 ! 옳소 ! ”

동물들이 모여 있는 사이 여기 저기에서 붉은 여우와 너구리가 꼬여 두었던 삵괭이, 오소리, 멧돼지들이 손뼉을 쳐 가며 들썩거렸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동물들도 덩달아 손뼉을 쳤습니다.

그 때, 커다란 뿔의 사슴이 일어났습니다.

“ 너굴아, 너는 회색곰이 사자왕에게 잡아 먹혔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 지금까지 사자왕은 숲속 나라 동물들을 잡아 먹은 일이 없지 않느냐 ? ”

사슴의 말에 너구리는 헛기침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 지금까지는 이렇게 한 달이 지나도록 회색곰이 내려 오지 않은 일이라곤 없었다. 적어도 사나흘만 있으면 내려 오곤 했었다. 그러므로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하늘산 꼭대기에서 한 달이 지나도록 내려 오지 않는 걸 보면 내 말이 틀림없다. ”

“ 옳소 ! 옳소 ! ”

다시 여기 저기에서 너구리의 말을 지지하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너구리는 더욱 어깨가 으쓱하여 손을 들어, 외치는 소리들을 잠재우고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서 모래 나라 가까이 가면 꿀과 같이 맛있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무진장으로 자라고 있고, 시원한 물이 철철 흐르는 시내가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모래 나라에는 사자왕이 이야기한 모래 바람은 전혀 불지 않고, 거기에 있는 오아시스라는 샘에 몸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시면 어떠한 병도 그 자리에서 씻은 듯이 낫는다고 합니다. ”

“ 갑시다. 남쪽 숲으로 갑시다. ”

삵괭이, 오소리, 멧돼지들이 외쳐댔습니다.

사슴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 사자왕은 우리들에게 하늘산 기슭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남쪽 숲이 너구리가 말한 것처럼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 누가 그 곳에 가서 보고 오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 ”

“ 여기 계시는 붉은 여우가 얼마 전 남쪽 숲과 모래 나라까지 갔다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가겠다고 한다면 붉은 여우가 살기 좋은 땅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해 줄 것입니다. ”

너구리의 말에 모든 동물들이 놀라는 눈으로 일제히 붉은 여우를 돌아 보았습니다. 붉은 여우는 동물들의 눈길을 받으며 일어서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 손을 들어보였습니다.

한 동안 하늘산 기슭이 고요 속에 잠겼습니다.

삵괭이의 목소리가 고요를 깨뜨렸습니다.

“ 붉은 여우를 따라 살기 좋은 남쪽 숲으로 갑시다 ! ”

그러자 여기 저기에서 동물들이 일제히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 붉은 여우를 우리들의 지도자로 모십시다. ”

“ 아니오, 우리들의 왕으로 모셔야 하오. ”

“ 그렇다. 우리들의 왕이시다. 사자왕은 이제 우리에게 필요 없다. ”

“ 붉은 여우왕 만세 ! ”

“ 만세 ! 만세 !! ”

동물들이 달려들어 붉은 여우를 등에 태우고 너럭 바위 위에 올려 세웠습니다.

붉은 여우는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어가자 기분이 너무나 좋았지만 마지못한 듯 사양하는 말을 하다가, 너럭 바위 가운데에 앉아 다른 동물들의 절을 받았습니다.

이제 소란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너구리는 얼른 회색곰의 집에 들어가 지도자의 관을 가져 와서 반짝거리는 커다란 돌을 관에 달고 붉은 여우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동물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붉은 여우 대왕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소란을 떨었습니다.

한편 회색곰은 거의 사십 일 동안을 먹고 마시지도 않고 하늘산 꼭대기에 있는 사자왕의 동굴에서 사자왕으로 부터 동물들을 다스리는 데 대한 가르침을 듣고 있었습니다.

사십 일 째에 사자왕이 가르침을 멈추고 은빛 갈기를 꼿꼿이 뻣치고는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 내가 애써 네게 내려준 가르침이 필요 없게 되었다. 나의 동물 백성들이 나를 배반하고 붉은 여우로 왕을 삼고는 숲속 나라를 떠나려 한다. 저 못난 백성들을 모두 불에 태워 없이해 버리리라. ”

회색곰은 사자왕의 난데없는 말에 온 몸의 피가 멈추는 듯 놀랐습니다.

사자왕은 동굴에서 나와 까마득한 하늘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산 아래에서 개미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 까지도 훤히 볼 수 있는 사자왕의 부리부리한 눈에 붉은 여우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먹고 마시는 동물들의 모습이 낱낱이 보였습니다. 나뭇잎에 맺힌 이슬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사자왕의 날카로운 귀에 붉은 여우 대왕 만세를 외치며 미친듯 노래하는 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사자왕의 은빛 갈기가 붉게 변하며 하늘로 치솟더니 어머어마한 고함이 입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눈에서 번쩍이는 불이 나와 산 아래로 쏟아져 내려갔습니다.

먹고 마시며 춤을 추던 동물들은 갑자기 터져나온 사자왕의 고함 소리와 달려드는 불길에 혼비백산 하였습니다.

불은 맹렬한 기세로 숲을 온통 할퀴며 태웠습니다. 동물들은 불길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망가곤 했으나 많은 동물들이 타 죽었습니다.

불길은 사십 일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올라 숲 속의 나무들을 모조리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불이 모두 꺼졌을 때는 숲속 나라의 동물들이 절반이나 죽었습니다. 붉은 여우, 너구리, 삵괭이, 오소리, 멧돼지들도 모두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얼음 나라의 백곰왕은 눈보라를 가로막던 나무들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나니까 거리낌 없이 맹렬한 눈보라를 휘몰아쳐 하늘산 기슭에 까지 다다랐습니다. 그리고는 동물들의 몸을 얼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래 나라의 전갈왕은 모래 바람을 가로막던 나무 숲이 없어지니까 모래 바람을 휘몰아 와서 하늘산 가까이 까지 모래 언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모래 언덕 위에는 전갈왕의 부하 전갈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살아남았던 동물들이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추위를 피해 돌아서면 전갈들의 독침에 쏘여 죽어가고, 전갈들의 독침을 피해 달아나면 몸이 얼어붙는 추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자왕이시여, 저희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저희들을 구해 주세요.”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산 위에 까지 들려왔습니다. 그 때까지 하늘산 위에서 산 아래의 처참한 광경을 내려다 보고 있던 회색곰이 사자왕의 앞에 꿇어앉아 울며 빌었습니다.

“ 사자왕이시여, 저 백성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이제 그만 그들을 용서하고 살려 주십시오. 저들이 이제는 자기들의 잘못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자왕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의 얼굴을 보사 저 백성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동물 백성들을 모두 죽이시려면 차라리 저도 함께 죽게 하여 주십시오.”

사자왕도 이제는 동물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붉게 변하였던 갈기가 다시 은빛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울며 간청하는 늙은 회색곰을 보고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 너의 얼굴을 보아 나의 화를 풀겠다. 이제 너는 내가 주는 작은 불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내려가거라. 이 작은 불은 추위를 이기게 하고 전갈의 위험으로 부터 지켜줄 것이며, 땅에 새로운 힘을 주어 새싹과 나무들이 다시 땅에서 솟아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불에 가까이 오는 동물들만이 살아날 것이다. ”

사자왕은 온 힘을 모아 심장에서 피빛같은 작은 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불을 만들어 내는 사자왕의 얼굴이 아픔으로 일그러지고 있었습니다.

“ 이 작은 불은 나의 분신이다. 모든 동물 백성들은 이 불에 가까이 나아와 항상 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도록 하라. ”

사자왕은 회색곰에게 작은 불을 건네주었습니다.

작은 불은 회색곰의 손 안에서도 전혀 뜨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은 불은 또 무엇에도 붙어 타지 않고 홀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회색곰은 사자왕이 준 작은 불을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높은 장대에 작은 불을 올려놓았습니다.

“ 누구든지 사자왕이 보낸 이 작은 불로 가까이 나아오면 백곰왕의 눈보라와 전갈왕의 독으로 부터 보호를 받고, 그들의 위험으로 부터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동물들은 자기들의 지도자인 회색곰이 산 위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높이 달린 작은 불을 보고는 질겁을 하며 멀리 달아났습니다.

“ 사자왕은 불을 내려 숲을 태우고 우리를 죽이더니, 이제 또 다시 불에 죽게 하려 한다. 불로 인하여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다시 저 불에 가까이 나간단 말인가?”

불을 무서워하게된 동물들은 사자왕이 보낸 작은 불을 무서워하여 쳐다보는 것 조차도 두려워 하였습니다. 작은 불을 무서워하여 달아나던 동물들은 추위에 얼어 죽거나 전갈의 독침에 의하여 죽어갔습니다.

회색곰은 안타까웠습니다.

사자왕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는 사슴이 동물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 여러분, 우리는 사자왕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붉은 여우의 꾀에 빠져 그들의 말을 듣다가 사자왕의 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자왕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작은 불을 보내어 우리를 살려 주시려고 합니다. 사자왕을 믿고 그의 말에 따라 작은 불에 가까이 나아갑시다. ”

많은 동물들이 사슴의 말에 따라 작은 불 가까이로 모여 들었습니다. 작은 불은 가까이 모여든 동물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추위를 물리치고 전갈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땅은 작은 불의 따뜻한 기운을 받아 새싹을 피우고, 불에 타버린 나무의 뿌리에서 다시 순을 내밀어 아름다운 숲속 나라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