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할아버지의 편지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아부지, 비행기 아직 도착 안 했수과?”
“무사 경 성질도 와리니게. 꼰다분이 지둘리라. 비행기가 도착하민 저기에 도착했댕하는 표시로 빨간 불이 깜빡거릴 거여.”
승철이는 아버지의 말에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안내판으로 자꾸 눈길을 보냈다.
승철이는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서 오시는 큰할아버지의 마중을 나왔다. 큰할아버지께서 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쇠시겠다는 연락이 와서 마중나오는 아버지를 졸라 함께 공항에 온 것이다.
잠시 후 안내판에서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 하나가 깜빡거렸다. 오사카발 제주행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표시였다.
“아부지, 비행기 도착했댄 햄수다.”
“기여.”
잠시 후 출구로 많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커다란 가방과 짐을 여러 개씩 가지고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 나온 막바지에 허연 머리에 등이 꼬부라진 큰할아버지가 승무원의 도움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큰아버지, 여기우다.”
아버지께서 손을 흔들며 출구로 나오는 큰할아버지 쪽으로 마주 나갔다. 승철이도 아버지를 따라서 앞으로 나갔다.
“아이고. 조캐, 여기꼬지 마중나와서?
“큰아버지. 잘 오셨수다. 건강합주 양?”
“기여. 집안들이영 두루 펜안했주이?
“예. 승철아, 큰할아버지한티 인사드리라.”
승철이는 얼른 고개를 숙여 큰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큰할아버지, 안녕하시우꽈?”
“기여, 기여. 승철이 몇 해 못 보던 새에 하영 컸구나. 건강하고, 공부도 잘 햄시냐?”
“예, 큰할아버지.”
승철이는 아버지와 큰할아버지를 따라서 출국장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제 비가 내린 후 개어서 그런지 하늘이 파랗게 맑았다. 남쪽으로 보이는 한라산도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횡단 도로로 한라산을 넘어오는 차 속에서 큰할아버지는 고향의 내음을 맡으려는 듯 차창을 내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곤 하였다. 푸른 옷을 벗고 가을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 나무숲이 큰할아버지의 가슴으로 모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몇 년 새에 제주도에 왕 보난 하영 달라졌저.”
“예. 제주도는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고, 2002년에는 월드컵 축구 대회도 열릴 거고 허난 발전도 빨리 햄수다.”
큰할아버지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고향에 오민 영도 좋은 걸. 자주 와사 될 건디 모심처럼 경 되질 안 햄신게. 하기사 난 모심만 먹으민 아무 때나 올 수 이신디, 오고정 해도 오지 못하는 느네 셋아방을 생각하믄…….”
큰할아버지는 말을 맺지 못하고 눈으로 손을 가져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승철이네 집에는 친척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추석 준비에 한참 바빴다.
큰할아버지가 차에서 내려서자 바쁜 가운데서도 모두 마당으로 나와 반기며 환한 웃음으로 큰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성님, 오십디가?”
“큰아버지, 혼저 옵서.”
“삼춘, 편안히 오십디까?”
“기여, 기여. 두루 편안들 해시냐?”
“예. 혼저 올라 옵서.”
승철이는 큰할아버지를 부축해서 방으로 모셨다.
큰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와 앉았을 때 아버지는 책상 서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어 큰할아버지께 드렸다.
“큰아버지. 이거 봅서.”
" 이게 느네 셋아방 편지냐?“
반갑게 편지를 받아 펼치는 큰할아버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더듬더듬 편지를 읽어 가는 목소리도 손처럼 떨리고 있었다. 편지를 다 읽을 무렵엔 기어이 눈물 몇 방울을 편지지 위에 떨구고 말았다. 그러나 큰 울음을 참으려는 듯 애쓰는 모습을 보며 승철이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는 것이었다.
“허이구, 죽은 줄만 알았던 니가 살아있다니. 식게꼬지 하단 보난 촘말로 니가 살아있구나. 오래 살당 보난 이추룩 기쁜 일도 생겸고나. 느네 아방이 살아이서시믄 성님이 살아있댄 해그네 얼마나 지꺼정 허코”
큰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눈물 속에 기쁨을 가득 담고 있었다.
큰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색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 사진 속에서 까까머리 중학생이 승철이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며칠 전 셋할아버지의 편지가 배달되었을 때 승철이네 가족들과 친척들은 편지를 읽고 또 읽고 하면서 눈물 바다를 이루었었다.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셋할아버지가 6․25 전쟁이 났을 때 인민군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전사했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그 셋할아버지가 중국을 통해서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승철이네 집에서는 셋할아버지가 전사했다고 들은 날을 돌아가신 날로 하여 제사를 지내오고 있던 터였다. 그 셋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살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곧 일본에 사시는 큰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서 기쁜 소식을 알려 드렸다. 전화를 받은 큰할아버지는 연로하신 몸인데도 이번 추석은 꼭 고향에서 쇠시겠다고 하여 오시게 된 것이었다.
“큰아버지, 이젠 그만 웁서. 남북 이산가족들도 만나는 세상이 되었고 허난 곧 셋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우다. 이산가족 면회소가 설치되민 제가 큰아버지를 모시고 셋아버지를 만나뵈러 가쿠다.”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해마다 뜨는 추석달이지만 승철이네 가족들에게는 금년 추석달은 전에 뜨던 추석달과는 다른 달이었다.
큰할아버지는 마당으로 나와 오름 위로 떠오르는 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큰할아버지의 눈 속으로 추석달이 들어와 담기는 것 같았다. 추석달 속에 새겨진 셋할아버지의 모습이 달과 함께 큰할아버지의 가슴 속으로 가득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명년 추석에는 저 달을 아시영 고치 볼 수 이실건가?”
달을 보며 중얼거리는 큰할아버지의 허연 머리가 추석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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