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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창작동화>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으려고요!

 < 창작 동화 >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으려고요.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1)


“민규 아버지는 직업이 무엇이지?”

“예, 회사에 다닙니다.”

“창훈이 아버지는?”

“시장에서 장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부모의 직업을 물어보시면서 기록장에 적고 있었다.

동석이는 자기 차례가 돌아올수록 점점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은 부모의 직업을 척척 대답을 하는데 동석이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사업, 상업, 회사원, 공무원, 교사, 의사, 약사, 운전기사 …….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어느 것이 아버지의 직업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동석이 아버지는 직업이 무엇이지?”

드디어 선생님이 동석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동석이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

“김동석, 아버지 직업이 뭐지요?”

“잘 모르겠어요.”

머뭇거리다 목에서 겨우 기어나오는 소리로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의 직업을 모르겠다니. 정말 모르겠니?”

“모르겠어요.”

“그럼 집에 그냥 계시니?”

“아니요. 일하러 나가긴 나가요.”

“그런데도 직업을 모르겠다? 오늘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내일 대답하도록.”

“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아버지의 직업을 말하는데 유독 동석이만이 아버지의 직업을 말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는 집에 와 계셨다.

“아버지.”

아버지는 동석이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신문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계셨다.

동석이는 살금살금 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서 신문을 들여다 보았다.

한자를 읽지 못하는 동석이의 눈에 얼른 띄는 커다란 글씨는,

「대낮 빈집털이, ○○만 털어가」

라고 씌어져 있었다.

동석이는 살짝 아버지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후닥닥 신문을 덮고 뒤돌아 보았다.

“휴 -. 동석이구나. 학교 갔다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불렀는데도 못 들으시잖요.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세요?”

“응,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신문을 보고 있었을 뿐이야.”

매우 당황해 하는 모습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

“응.”

“아버지의 직업은 뭐예요?”

“그런 건 알아서 뭘 하니?”

갑자기 아버지가 화를 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아버지 직업을 알아오라고 하셨어요. 다른 애들은 다 대답했는데 나 혼자만 대답을 못 했어요.”

“그래? 음……. 그럼 사업이라고 대답해.”

“사업이요? 무슨 사업인데요?”

“아, 사업이라고 대답만 하면 되지 왜 꼬치꼬치 묻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알았어요. 그렇게 대답할께요.”

높아지는 아버지의 목소리 때문에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른 날과는 달랐다. 다른 날은 동석이의 말에 화를 내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 일인지 화를 내고, 표정도 그리 밝지 못했다.



              ( 2 )


“니네 아빠 무슨 사업을 하니?”

교문을 나서며 민규가 물어보았다.

“으, 으응, 뭐라고?”

동석이는 민규의 물음에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업었다. 아까부터 혼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얘, 동석아.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니?”

“우리 아버지 직업.”

“아까 그걸 물어보았어. 정말 니네 아빠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모르니?”

“응.”

“참 이상하다. 아들이 아빠의 직업도 모르고 있다니…….”

“더 이상 말하지 마. 말씀을 안해 주시니까 모르는 거잖아.”

“그래, 알았어.”

갈림길에서 민규와 헤어진 동석이는 집으로 돌아오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의 사업이 도대체 뭘까? 회사? 아니야. 부동산 소개소? 아니야. 그럼 뭘까?’

동석이는 직업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아버지의 직업을 짐작해보려 했지만 마땅하게 생각되는 것이 없었다.

선생님은 동석이가 말하는 대로 기록장에 사업이라고 써 넣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었다. 동석이는 선생님의 갸우뚱거리던 고갯짓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 아버지의 직업은 대체 뭐예요? 하나 뿐인 아들에게 조차 말해주지 않는 사업이라는게 대체 뭐예요?’

바람이 휘익 불어 길가의 먼지를 날렸다. 동석이는 먼지를 피하며 몸을 움추렸다.


              ( 3 )


다음 날 동석이는 결석을 했다.

학교 간다고 인사하고 집을 나온 동석이는 놀이터에 책가방을 숨겨두고 몰래 숨어서 아버지가 나오길 기다렸다. 동석이는 주머니를 툭툭 두드려보았다. 주머니 속엔 저금통을 뜯어 꺼낸 돈이 두둑이 들어 있었다.

‘오늘은 아버지의 직업을 꼭 알아야지.’

이윽고 아버지가 집에서 나왔다. 말쑥한 옷을 입고 손에는 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다.

동석이는 저만치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갔다. 아버지는 버스 정류소에 서 있다가 처음 오는 버스를 탔다.

마침 택시가 와서 손님을 내려놓고 떠나려 했다. 동석이는 얼른 택시에 뛰어들었다.

“아저씨, 얼른 저 버스를 따라가 주세요.”

“저 버스를 놓쳤구나. 다음 정류소에서 세울테니까 금방 따라갈 거야.”

“아니, 그런게 아니예요. 저 버스 뒤만 따라가다가 제가 세워달라고 할 때 세워 주세요.”

마음씨 좋게 생긴 운전기사의 의아한 얼굴이 백미러에 보였다.

“제 아버지가요, 삼촌이 어디로 가는지 몰래 따라가 보고 오래요. 저 버스에 삼촌이 탔거든요.”

얼른 거짓말로 둘러대긴 했지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운전기사에게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백밀러로 보이는 운전기사의 얼굴은 다시 밝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참 재미있는 탐정 놀이가 되겠구나.”

“예, 그래요. 제가 탐정이예요.”

운전기사의 말을 듣고나니 동석이는 마치 자기가 탐정이나 된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난 꼬마 탐정이다. 정의의 사나이 꼬마 탐정 김동석. 저 버스 안에 탄 악당을 쫓아가는 거야. 악당은 누구냐? 에잇, 그럼 아버지가 악당이 되는거 아냐? 후훗, 참 우습다.’

아버지가 탄 버스는 빌딩 숲을 헤치고 달려가다가 이윽고 양옥집들이 많이 서 있는 동네에서 아버지를 내려놓았다.

“아저씨, 여기 세워 주세요.”

동석이는 급히 외치며 주머니에서 택시비를 꺼냈다.

“그래, 탐정 놀이 재미있게 해라.”

“고맙습니다, 아저씨.”

택시에서 내린 동석이는 다시 멀찍이 뒤에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아버지는 골목골목을 다니며 두리번 두리번 이 집 저 집을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데 이런 곳에 와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릴까? 월부책을 팔러다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동석이는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조심 숨어서 뒤따라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월부책 외판원 같지가 않았다. 월부책을 팔려면 이 집 저 집 대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고 할텐데도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기웃거리지도 않고 바쁜듯이 걸어가는 척했다.

‘정말 이상하다. 도대체 뭘 하려고 여기까지 왔을까? 여긴 회사나 공장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동네인데.’

이윽고 아버지는 어느 이층 양옥집 앞에서 잠시 기웃거리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동석이는 얼른 전봇대 뒤로 숨었다. 호옥 하고 가슴을 쓸며 안으로 숨을 몰아 쉬었다. 하마터면 아버지에게 들킬 뻔하였기 때문이다. 전봇대가 굵은 게 참 다행이었다. 전봇대는 동석이의 조그만 몸을 다 숨겨주었다. 동석이는 전봇대에 숨은 채 눈과 코만 빼꼼 내밀고 아버지의 행동을 훔쳐봤다.

아버지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듯이 양옥집 대문으로 다가가서는 이상한 쇠조각을 꺼내어 대문 열쇠 구멍에 끼우고 이리 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전봇대 뒤에 숨어있는 동석이는 가슴을 누가 큰 주먹으로 때리는 듯 쿵쾅거리는 소리를 멍한 귀로 듣고 있었다.

덜컹!

아버지의 손에 잡은 쇠조각에서 대문이 맥없이 열렸다.

대문 열리는 조그마한 소리가 동석이의 귀에는 마치 벼락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곧 주저앉을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버티고 섰다.

떨리는 다리를 전봇대에 의지하여 버티고 서서 다시 고개를 내밀고 보았을 때는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대문 앞으로 다가가서 문 틈으로 안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동석이의 눈에는 양옥집 안에 있을 아버지의 행동이 눈에 환히 보이는 듯했다.

동석이는 갑자기 몸이 추워짐을 느꼈다. 이마와 손바닥에 땀이 맺히고 안개에 휩싸인듯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 4 )


동석이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자신도 몰랐다. 동석이의 발은 집으로 향하지 않고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뒷산 위에서는 동석이네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놀이터 앞의 동석이네 집, 아버지와 둘이서만 살고 있는 조그마한 집이 전엔 늘 정겨워 보이고 행복이 넘쳐 흐르는 듯 보였지만, 지금 동석이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매로 쓰윽 눈물을 닦고 다시 집을 내려다 보았지만 집에 고여 있는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석이는 소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울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면 닦아낼수록 울음이 자꾸 나오고 눈물이 더욱 더 흘렀다.

‘아버지, 아버지의 사업이라는 게 도둑질이었나요? 도둑질도 사업인가요? 그럼 지금까지 남의 집에 가서 훔쳐온 돈으로 내 옷을 사주고, 내 학용품을 사주었군요. 난 그런 돈은 싫어요. 남의 집에서 훔쳐온 돈으로 학교 다니는 것도 싫어요. 흐흑.’

동석이는 쏟아지는 눈물을 이젠 아예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눈물이 어린 눈으로 그저께 아버지의 등 뒤에서 보던 신문의 큰 글자들이 밀려들어와 머리 속을 뱅뱅 맴돌았다.

「대낮 빈집털이, ○○만 털어가」

그 때는 몰랐던 한자가 차차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이젠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닥닥 신문을 덮으며 깜짝 놀라 하던 아버지의 행동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멀리 빌딩 사이로 내려 앉으려 할 때에야 동석이는 뒷산에서 내려왔다. 놀이터 구석에 숨겨둔 책가방을 찾아들고 힘없이 집으로 걸어갔다.

눈물로 얼룩졌던 얼굴을 씻기는 했지만 아직도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얼굴을 다시 한 번 쓱 문질러 닦았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동석이는 일부러 크게 외치득 인사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시던 아버지가 한 번 동석이를 쳐다보고는 그대로 저녁 준비를 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좀 늦었구나. 친구네 집에서 놀다 왔니?”

“예, 그리고 그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왔어요.”

동석이는 미리 생각한대로 거짓말을 했다. 점심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지만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와 저녁상을 놓고 마주 대하여 앉기가 싫어졌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동석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집을 나와서는 학교로는 가지 않고, 반대 방향인 도시 밖으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를 타면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서 공동묘지로 갈 수가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자주 왔었기 때문에 많고 많은 무덤 중에서도 어머니의 무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옆에 누워서 만지작거리던 볼록한 젖처럼 어머니의 무덤도 볼록했다.

무덤 앞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어머니가 팔베개를 해 준 것처럼 슬픔이 사라지고, 포근한 숨결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 동석이의 마음을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따뜻한 손으로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려주면서 귀에 다정히 속삭여 줄 것 같았다.

‘동석아, 용기를 내라.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나쁜 일이지만 아버지를 미워해선 안돼요. 용기를 가지고 아버지의 마음을 깨우치도록 해야지.’

마음 속에 들려오는 어머니의 속삭임을 듣고 동석이는 위로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용기가 다 풀려 달아나고,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기가 겁이 났다.

사흘 째 결석을 하고 어머니의 무덤 앞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동석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학교 다녀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책가방을 내려 놓았지만 아버지의 표정으로 보아 결석한 것이 들통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석이 이리 와서 앉아라.”

드디어 아버지의 입에서 무서운 호령이 들렸다.

동석이는 조심스럽게 아버지 앞으로 가서 꿇어앉았다.

“사흘 동안이나 어디 가서 뭘 했니?”

“…….”

동석이는 입을 꼭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앉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늘 선생님께서 왔다 가셨다. 네가 사흘 동안이나 결석을 했다는구나. 학교에는 가지 않고 어디엘 갔었니?”

동석이는 고개를 푹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못할 비밀이라도 있니? 아니면 아버지에게 불만이라도 있니? 속 시원히 마음 속의 말을 털어놓아 보아라.”

동석이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구슬되어 뚝뚝 떨어졌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차츰 수그러들었다.

“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난 너를 남보다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기 위해 애를 썼단다. 그리고 네 엄마의 몫까지 남보다 곱으로 정성을 들여서 키우고,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네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는데, 네가 학교에는 가지도 않고 다른 데로 가서 놀다 오기만 하다니 무슨 일이냐? 어디 대답해 보아라.”

동석이는 입술을 더욱 꼬옥 물었다. 입술을 꼬옥 물지 않으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이 다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꼭꼭 눌러 참고 있는 말이 가슴 속에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입술을 향해서 치밀어오르려고 하였다.

‘훔친 돈으로 잘 먹고 잘 입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난 그런 것이 싫어요. 아버지가 남의 집에 숨어 들어가는 것을 몰래 뒤따라가서 다 봤단 말예요. 지금까지 훔쳐 온 돈으로 학용품을 사고 학교에 다녔다는 것을 알고는 학교 가기가 싫어졌어요. 그런 돈으로 공부해서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된단 말예요. 아버지, 제발 그런 일을 하지 마세요. 잘 못입고, 잘 못먹어도 좋아요. 하늘 나라에 가신 어머니도 아버지가 그러는 것을 싫어하실 거예요.’

소용돌이치며 올라오던 말이 꼬옥 다문 입술을 뚫지 못하고 눈으로솟구쳐 올라가 말마디 수만큼한 눈물 방울을 뚝뚝뚝 떨구었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좋다. 더 이상 말하지 않으마. 아무튼 내일은 널 학교에 보내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으니까 또 다른 데로 가버리지 말고 꼭 학교 가도록 해라.”

아버지는 말을 끝내고 돌아앉더니 담배를 피워 물고 천장을 쳐다보며 뻑뻑 연기를 뿜어댔다.

방안은 금세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 5 )


다음 날 동석이는 억지로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아버지가 학교로 가는 외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동석이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른 데로 가서 놀 생각하지 말고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거라.”

이런 말을 하고 아버지는 돌아갔다. 동석이는 발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동석이를 다른 아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빨리 앞질러 갔다.

교문 앞 뚱보 아줌마네 문방구 점에 많은 아이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동석이는 교문 안으로 들어가려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문방구점으로 쑥 들어갔다.

학용품을 사는 아이들, 군것질할 과자를 사는 아이들, 아무 것도 사지 않으면서 괜히 이것 저것 구경만 하는 아이들로 가게 안은 시끌벅적하여 작은 시장이 되어 있었다. 동석이네 반 아이들도 몇 명 보였다.

뚱보 아줌마는 정신없이 바쁘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용품 값을 물어보는 말에 일일이 대답해 주기도 하고, 돈을 받아서 거스름돈을 계산해 돌려주기도 하고,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발돋음하여 꺼내놓기도 하곤 하였다.

동석이는 밖으로 나가 길 저쪽 편에서 누가 오고 있나 살펴보았다. 아이들만 재잘거리며 오고 있었다.

동석이는 선생님들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남자 선생님 한 분이 길 모퉁이를 꺽어들어 오고 있었다.

동석이는 얼른 다시 문방구점으로 들어갔다. 뚱보 아줌마는 발돋음하여 진열장 높은 곳에 있는 학용품을 꺼내고 있었다.

동석이는 철제 금고의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스릉’ 하고 금속성이 울리며 금고 문이 휙 위로 젖혀졌다. 그 소리에 자신도 깜짝 놀라 얼른 뚱보 아줌마를 쳐다봤다. 뚱보 아줌마도 금고 열리는 소리를 듣고 놀란 눈을 하고 동석이를 보고 있었다.

동석이는 순간 망설임 없이 금고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잡히는 대로 돈을 움켜쥐고는 잽싸게 아이들을 헤치고 뛰쳐나왔다.

‘어, 어, 어.’ 하며 입을 딱 벌리고 놀라던 뚱보 아줌마가 동석이가 문 밖으로 뛰쳐나간 후에야,

“저놈 잡아라!”

하며 쫓아나왔다.

동석이는 교문과는 반대쪽인, 남자 선생님이 걸어오고 있는 길로 뛰었다.

뚱보 아줌마가 뒤뚱거리며 동석이의 뒤를 쫓아오면서 외치고 있었다.

“저놈 잡아라. 저놈이 돈을 훔쳐 달아났다. 선생님, 그 아이를 잡아주세요.”

부지런히 걸어오시던 선생님이 뚱보 아줌마의 외침을 듣고 달려오는 동석이를 막아섰다.

동석이는 선생님을 피해 달아나는 듯하다가 선생님 손에 붙들렸다.

뚱보 아줌마가 헉헉거리며 뛰어오더니 동석이의 손에서 돈을 홱 낚아채고는 큼직한 한 손으로는 동석이의 멱살을 잡고, 한 손으로는 돈을 흔들어대면서 삿대질을 했다.

“이놈아, 조그만 녀석이 도둑질을 해?  이 뻘건 대낮에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면 안 잡힐 것 같더냐? 이런 애는 교무실에 끌고 가서 혼을 내 주어야 한다구. 가자, 이 녀석!”

뚱보 아줌마가 우악스럽게 동석이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동석이를 붙잡았던 선생님이 씁쓸한 얼굴을 하고는 천천히 뒤따라왔다.


              ( 6 )


동석이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아버지가 학교로 왔던 것이다.

동석이는 교무실에서 뚱보 아줌마의 삿대질과 호통을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담임 선생님의 꾸중과 타이름도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면서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버지가 와서 사과했을 때에야 뚱보 아줌마는 투덜거리면서 돌아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못나서 제 자식 놈이 이런 짓을 했군요. 집에 데리고 가서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꾸중하고 타일러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입을 닫고만 있는 동석이에게 선생님께서도 어쩔 수 없었는지 집으로 돌려보냈다.

동석이는 아버지와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방안에 마주 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동석이는 마음 속으로 울고 있었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왜 남의 돈을 훔쳤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얘기해 봐라.”

고개를 푹 수그리고만 있던 동석이가 고개를 번쩍 쳐들고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석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흐르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려 흠뻑 젖은 입에서 그 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버지, 다 봤어요. 남의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가는 것을 봤다구요. 아버지가 훔쳐온 그런 돈으로 학교에 다니고, 잘 먹고 잘 입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왜 남의 돈을 훔쳤느냐고요? 이제 저도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으려고요!”

가슴 속의 말을 다 쏟아놓은 동석이는 방문을 휙 열고 뛰쳐나갔다.

“동석아!”

아버지는 뛰쳐나가는 동석이를 부르며 붙들려고 했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마치 몸이 굳어버려 석고상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귀에는 동석이의 마지막 외침이 윙윙거리며 점점 크게 들려왔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으려고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으려고요!’


              ( 7 )


어머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동석이의 뒤로 아버지가 다가와 불렀다.

“동석아.”

“…….”

동석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동석아, 나는 이 길로 경찰서로 간다. 가서 자수하고 새 사람이 되어 나올거다. 그동안 부끄러운 짓을 했던 아빠를 용서해라.”

“아버지!”

동석이의 목소리에도 울음이 섞였다.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물에 가려 희미해졌다.

싸늘한 공동묘지 위로 불어오던 바람이 어머니의 무덤에 와서는 포근히 동석이를 감싸며 지나갔다.

어머니의 무덤가로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