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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제주 올레길 1코스 걷기

오랜만에 시간이 난 어느 날. 아니, 일부러 시간을 만든 날이다.
  그동안 집에서 가까운 제주올레길 7코스와 8코스를 걸었었기 때문에 다른 코스들은 다음에 가 보기로 하고, 이날은 1코스를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1코스의 시작점인 성산읍 시흥리로 갔다.

 

 

  시흥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흥초등학교 입구 근처의 1코스의 시작점으로 갔다.
  올레길이 시작되는 곳에 <서귀포의 시작, 그리고 제주올레의 첫마을 시흥리(始興里) 마을 이야기>라는 마을 소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써 있었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 제주도는 제주, 정의, 대정 등 세 개의 행정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시흥리가 속한 당시 정의군의 ‘채수강’ 군수가 ‘맨 처음 마을’이란 뜻으로 ‘시흥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주에 부임한 목사가 맨 처음 제주를 둘러볼 때면 시흥리에서 시작해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다고 한다. 시흥리의 설촌은 약 500년 전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두산봉(말미오름)을 중심으로 여러 성씨들이 살다가 해안가 쪽으로 내려와서 살았으며, 이 마을의 옛 이름은 힘센 사람이 많아 ‘심돌(力乭)’마을이라고 했다. 시흥리에서는 453세대, 1,195명(’09. 11월말 기준)이 거주하고 있다.」

 

 

제주올레길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을 뒤로 하고 올레길 1코스의 첫 걸음을 시작하였다.

시흥리 마을에서 멀미오름 서쪽편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걸어가노라니 돌담으로 둘러싸인 올망졸망한 밭들이 펼쳐져 있다. 거의 모든 밭마다 당근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당근을 수확한 후에 드문드문 뒹굴고 있는 빨간 당근들을 볼 수 있었다.

  정낭 하나가 턱 하니 걸쳐져 있는 당근밭 너머로 멀미오름(두산봉)이 병풍 같은 바위를 세운 채 서 있었다.

 

 

멀미오름 서쪽편에 이르러 보니 올레길은 멀미오름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오름 입구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는 파고라 시설이 되어 있어서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과 오름을 찾는 등반객들의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계단길을 올라 이리 저리 꼬부라지기를 몇 번, 멀미오름에 올라 능선 위를 따라 걸어갔다. 오름 아래로 당근밭들과 시흥리 마을, 더 멀리로는 식산봉과 일출봉이, 그리고 우도가 조망된다.

 

 

멀미오름은 가운데 원추형의 멀미오름이 솟아있고, 그 서쪽에 복합형 알오름이 굼부리를 둘러싸며 길다랗게 놓여있는 형태의 두 오름이 함께 있는 형태이다.
  멀미오름과 알오름 사이의 굼부리에는 밭들이 만들어져 있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멀미알오름 능선을 따라 돌던 올레길은 굼부리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멀미오름 북쪽편으로 나온 뒤 멀미오름 정상 쪽으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멀미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은 올레길이 만들어진 뒤에 사람들이 하도 많이 오르고 내린 탓인지 풀들이 자라고 있어야 할 곳에 맨땅이 들어나서 보기에 안쓰러웠다. 폐타이어 매트라도 깔아서 더 이상의 훼손이 없도록 해야 할 텐데…….

 

 

멀미오름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조망이 시원하다. 마침 이 날은 실안개가 끼어 뚜렷한 조망을 할 수는 없었지만, 처음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여기에 올라서서 사방을 바라보고 멋진 경치에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몸을 움츠러들게 하여 얼른 옷깃을 여미며 바람을 피해 정상 주변에 있는 나무 아래로 가서 바람을 피했다.
  역시 바람을 피하며 간식을 먹는 올레꾼 부부가 있어서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모르는 이들끼리도 서로 인사를 나누며 금세 정이 들곤 한다.
  이분들과 걸어가는 방향이 같아 멀미오름에서 내려 종달리 쪽으로 걸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라는데 그 중에 부인 되는 분이 초등학교 교사란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분이라 반가웠다. 아마 이분들이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여 이 글을 보게 되면 역시 반가워 덧글을 남기리라.

 

 

종달리까지 함께 걸은 이분들은 서울로 가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공항으로 가야 해서 헤어지고, 나는 계속 올레길을 걸었다.


  종달리 마을로 들어서서 종달초등학교 뒷길을 지나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종달리 마을을 벗어나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사방 천지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들이 있었다. 갈대 사이에 드문드문 핫도그 모양의 부들이 꼿꼿하게 서서 갈대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갈대밭 위로 지미봉의 풍경이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며 나의 입에서는 저절로 노래 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

 

 

‘숨어우는 바람소리’를 부르며 갈대밭 사잇길을 지나 바닷가의 작은 저수지에 이르렀다. 저수지에는 여러 마리의 철새들이 차가운 물 위에 둥둥 떠서 헤엄치다가 자맥질하여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었다. 갈대 사이에 숨어서 카메라를 망원렌즈로 갈아 끼고 그 중에 몇 마리를 찍었는데, 여기 올린 철새 사진 중에 한 마리는 청둥오리인 것을 알겠는데, 주둥이가 하얗고 몸의 털빛이 온통 까만 새는 무엇인지 글쎄…….
  혹시 이 글을 읽다가 이 새의 이름을 아는 분은 알려주시기를…….

 


종달리 저수지를 지나면 올레길은 바닷가를 따라 다시 시흥리 바다가로 이어지고, 계속 성산읍 오조리 쪽으로 이어진다. 걸어가고 있는 주변 바닷가는 넓은 갯벌과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넓은 모래밭 위를 거닐고 있는 사람의 모습과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모두 한 폭의 풍경이었다. 

 

 

시흥리와 오조리 마을 중간쯤의 바닷가 도로변에 조가비박물관이 있었다. 벽면이 모두 진주조개를 양식하던 전복 껍데기로 장식되어 있었다. 들어가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올레길을 따라 발길을 돌렸다. 조가비박물관에 가서 본 내용들은 별도로 써서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오조리 마을 입구에 연대가 세워져 있었다. 오소포연대에 올라서니 우도와 일출봉이 훤히 보이고 그 앞의 바다가 온통 한눈에 들어와 옛날 바다로 들어오는 왜적을 감시하기에 아주 적격인 곳이었다. 

 


  올레길을 걸어감에 따라 일출봉이 점점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조리와 성산포를 잇는 갑문 위의 길을 지나서 성산포 마을로 들어서고, 다시 성산포 항구 근처로 간 다음 올레길은 일출봉이 바라보이는 해변의 절벽 위로 이어졌다. 잔잔한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일출봉의 위용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온다.

 


 

일출봉으로 가는 길목에 성산포 시공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성산포에 살면서 성산포를 노래한 시인 이생진님의 시를 중심으로 여러 편의 시들이 까만 돌 위에 하얀 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옆에는 성산포에 와서 성산포를 노래한 시를 써서 넣을 수 있는 통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렇게 쓴 시를 모아서 심사를 거친 아름다운 시들은 성산포에서 개최하는 축제에서 낭송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했다.

 

 

시공원을 지나 일출봉으로 향하는데 마침 성산포 출신의 시인 김석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일 때문에 전화를 건 것이었지만 마침 자기네 고향 일출봉 근처를 걷고 있다는 말에 반가워한다. 어떤 내용의 원고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는데, 쓰기가 좀 껄끄러운 내용이라 몇 번 거절하다가 쓰겠다고 대답했다. 자기에 고향길을 걸으며 고향에 대한 멋진 작품을 써 달라고 부탁하며 김시인이 전화를 끊었다.
  일출봉에 올라갔다오고 싶었지만 저물어가는 날 때문에 시간을 만들 수 없어 그냥 지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전에도 여러 번 올랐던 곳인데다가 다음에도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일출봉을 지나 모래밭 길을 걸어가는데 저물어가는 해 그림자가 광치기 해변 모래밭으로 점점 드리워지며, 일출봉이 저녁 햇살을 받아 은은히 색이 옅어지고 있었다.

 

 

  저녁 햇살을 가슴으로 안으며 부지런히 걸어 드디어 1코스의 종착지인 광치기 해변에 다다랐다.
  어느 새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