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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올레길 8코스 중 하얏트호텔 앞에서 대평포구까지 걷기

  아내와 함께 학수바위에 갔다 와서 점심 후에 다시 카메라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공항버스를 타고 중문관광단지의 하얏트호텔 앞에 내려 지난 번에 걷다가 중단한 올레길 8코스를 마저 걷기 시작했다.
하얏트호텔 정원을 지나 존모살 해변으로 내려가 모래밭길을 걸어 객깍 쪽으로 갔다.
  [존모살]은 모래 알갱이의 크기가 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잔”+“모래”의 제주말 “존”+“모살”의 합성명사다.


존모살 모래밭길을 지나노라면 모래밭 옆으로 높이 솟아 있는 절벽이 웅장한 모습으로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절벽에 붙어 보랏빛으로 피어있는 해국과 쑥부쟁이들이 추운 겨울에도 꽃이 피는 제주의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절벽이 내려다보는 존모살 모래밭길을 지나면 곧 이어지는 길은 갯깍의 해병대길이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제주해역사사령부의 해병들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준 길이어서 해병대길이라고 부른다. 이런 해병대 길이 올레길마다 여기저기 있어서 제주해역사사령부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몇 년 전에 예래초등학교에 근무할 적에 담임하고 있던 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예래동쪽에서부터 갯깍을 지나고 존모살 해변을 지나 중문해수욕장까지 가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이 곳이 길이 만들어져 있지 않고 그냥 울퉁붙퉁한 바닷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해병대의 도움으로 길이 만들어져서 다니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아 좋았다. 또 그 때와 비교해 보아도 자연의 파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갯깍 해병대길의 중간 쯤에 절벽 중간으로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다람쥐굴]라고 부르는 굴이다.
  안내판에 쓰여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색달동 다람쥐굴은 색달동 해안가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길이 21m, 너비 3.5m, 입구높이 3.7m의 굴로서, 지역에서는 ‘다람쥐굴’이라고 부른다. 이 유적은 1985년 지역주민인 강창용에 의하여 깊이 1m로 파낸 피트에서, 입이 넓은 ‘광구와반구연(廣口外反口緣) 항아리의 토기편 등 10점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공개되었다. 조사 결과 토기편은 '곽지리패총5지구’에서 발견된 적갈색 토기와 같은 시대의 유물로 확인되었다. 이 동굴유적은 탐라국 시대(서기 1~500년)에 선주민(先住民)들의 주거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향토기념물 문화유산이다.」

  즉 이 동굴 유적은 약 2,000년 전의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으로, 다른 말로 말하면 [바위그늘집자리]인 것이다.


  다람쥐굴을 지나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절벽에 뚫려 있는 큰 동굴을 만나게 된다. 그냥 절벽 바깥쪽으로 걸어가도 되지만 동굴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서 반대편으로 나오는 것도 운치가 있어서 좋다.




  동굴을 나와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해병대길이 끝나면서 서귀포시서부위생사업소(색달동 하수종말처리장)이 나오고, 그 옆의 시내를 만나게 된다.
  이 시내의 하류 지역은 한국반딧불이연구회에서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제1호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덧붙여 이곳이 위치한 서귀포시 예래동은 마을단위로 환경연구회를 조직하여 운영하며 지역의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며, 아이들에게 환경교육을 하는 대표적인 환경마을이다.


  반딧불이 보호지역을 지나 계속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 어느덧 논짓물로 길이 이어진다. 용천수가 바닷가에서 흘러나와 그냥 바다로 흘러들어가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 이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한 끝에 아래 사진과 같이 해수와 담수가 합쳐지는 해수+담수욕장을 만들어 여름 피서객들이 놀러와서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다.
  8월이 되면 이곳에서는 [논짓물축제]도 열어 한바탕 흥겨운 여름을 만들곤 한다.


  논짓물 주변의 해안도로 길에는 큰 돌담이 계속 이어져 있다. 모르고 지나가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인데, 이 돌담은 [환해장성]의 일부이다.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주 해안으로는 왜구들의 침입이 많아서 관에서는 지역민들을 동원하여 제주도의 해안을 빙 둘러가며 이러한 돌담을 쌓고 돌담의 안쪽에서 바다쪽을 보면서 해안으로 들어오는 왜구를 감시하고 방어하도록 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 이러한 환해장성이다.
  옛 역사의 흔적들이 올래길의 곳곳에 많이 남아 있는데, 이런 작은 흔적들을 잘 보존하는 것이 나와 같은 제주 사람들의 숙제이리다.


  예래동 해안도로를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보고 걷노라니, 




  어느덧 [동난드르 포구]다.
  [난드르]는 “넓은 들”이라는 뜻의 제주말인데, 동쪽에 있는 하예하동 마을을 동난드르라고 하고, 서쪽에 있는 대평리 마을을 서난드르라고 부른다.


  동난드르 포구 앞 언덕 위에 올래꾼을 위해 찻집을 겹하는 펜션 [바다풍경올레]가 있어서 포구를 내려다보며 서 있어서 지친 발을 잠시 쉴 겸 차를 한 잔 마시고 가려고 들어갔다.
  그냥 평범한 찻집이겠거니 하고 들어갔더니,
  이런!
  나 같은 글쟁이들의 마음을 쏙 사로잡는 그런 찻집이었다.


   펜션을 소개하는 글귀들이 멋진 싯귀로 쓰여져 있었고, 안내 팸플릿에도 <제주길 올레>라는 시가 소개되어 있었다.
  찻집을 운영하는 분에게 누가 쓴 시냐고 물어봤더니, 고등학교 국어 선생인 자기 동생이 쓴 시란다.
  시가 너무 좋아서, 여러 번 읽어 보았다.
  여러 행으로 쓰여 있는 시어서 여기에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몇 구절을 여기에 옮겨본다.

  …….
  모두 변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아 좋은 돌맹이 하나.
  돌틈 사이로 하늘 구름도 잘 보이고
  새들은 암팡진 울대로 왜자긴다.

  사람이 다르다. 제주길 올레에는
  죽어서도 거먹빛 갈대꽃이
  하얗게 손 흔들며 웃고 있었다.

  시가 있는 멋진 찻집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동난드르 포구를 지나 서쪽으로 가니 서난드르 해안으로 들어서게 되고, 바닷가로 웅장하게 솟아있는 절벽 [박수기정]이 보인다. 그 너머에는 화순화력발전소의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 바람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대평포구 길에는 모자이크로 꾸며놓아 꿈꾸는 듯한 풍경을 연출해 놓고 있었다. 길에 만이 아니라, 포구 안쪽의 방파제에도 그림을 그려놓고 사진을 모자이크처럼 붙여 놓아 작은 어촌 포구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시멘트로만 회색빛으로 우중충하게 만들어 놓았던 곳이 이렇게 꾸미고 나니 자꾸만 다시 되돌아보게 하고 다시 오고 싶게 만들고 있어서 이 마을 사람들의 발전적인 생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드디어 8코스의 끝에 다달았다.
  여기서부터 화순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9코스가 시작된다.
  9코스로의 걸음은 다음에 하겠다고 마음 먹으며 이날의 올레꾼 꿈꾸는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대평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대평초등학교가 있었던 배움의 옛터에 들렀다.
  이곳은 학교가 문을 닫고 이제는 청소년수련센터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다. 난 교대를 졸업하고 아직 교사로서 정식 발령을 받기 전에 이 학교에 한 해 동안 강사로 있으면서 이 마을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 정이 든 학교이다.
  마을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었는데, 30년이 지나다보니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아무리 봐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리움에 학교터를 지나 정류장으로 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바로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나니 오래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20분 쯤이나 기다렸나, 택시가 한 대 오길래 잡아 탔다. 택시를 타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듯한 올래꾼 두 분이 있어서 버스가 많이 다니는 길까지 같이 차시라고 해서 동승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서울에서 오신 분들인데, 숙소가 표선 근처에 있단다. 그 먼 길을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기에 월드컵경기장 근처 버스터미널까지 동행하여 내려드렸다.
  블로그를 알려주면서 블로그를 보고 꼭 덧글을 남겨달라고 했더니, 이 글을 올리기 전에 벌써 안부게시판에 글을 올려놓았었다.
  즐거운 제주 여행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