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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제주전설 동화> 힘 센 장사 막산이

  <제주전설 동화>

힘센 장사 막산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옛날 창천리 강씨 부자 댁에 막산이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구척장신의 커다란 몸에 부리부리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늘 말없이 주인이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하였습니다.

아무도 막산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알고 있는 것은 전에 의귀리 김부자 댁에서 종살이하다 왔다는 것과, 성이 마씨이기 때문에 막산이라고 부른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강부자는 감산리 안골에 있는 밭을 논으로 만들기 위해서 막산이를 불렀습니다. 안골 밭은 밭 가운데 동산이 떡 버티고 있어서 논이 못 되고 있었습니다.

“막산아, 어디 가서 일꾼을 한 서른만 구해 오너라.”

“서른 명 씩이나요? 무엇을 할 일꾼들입니까?”

“저 안골에 있는 밭 가운데 동산을 파 없애서 논으로 만들려고 한다.”

“예, 그러면 제가 일꾼들을 빌어 놓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막산이는 삽과 괭이 서른 개를 짊어지고 강부자에게 말했습니다.

“일꾼들에게 안골 밭으로 오라고 했으니 밭으로 갑니다. 점심이나 한 서른 사람 분 차려주십시오.”

“오냐, 가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거라.”

막산이가 밭으로 나간 뒤 집 안에서는 점심을 준비하느라고 야단이었습니다. 흙일을 하는 일꾼들이라 많이 먹을 것이라 하고는 쉰 사람이 먹을 만큼이나 되는 밥을 준비하고, 돼지를 한 마리 잡고 술을 여섯 통이나 준비했습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강부자는 소 여섯 마리와 여자 종들에게 점심을 지우고는 일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일꾼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막산이만 혼자서 동산 위에 누워 낮잠을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강부자는 화가 나서 막산이를 깨웠습니다.

“이놈아, 일은 어떻게 하고 잠만 자는 거냐? 일꾼들은 어디 있느냐?”

부시시 눈을 비비고 일어난 막산이는 헤벌쭉하게 웃었습니다.

“아, 일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아직 아무도 안 왔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오겠다고 했으니 언제라도 올 것입니다. 그 차려온 점심이나 놔두고 가십시오. 일꾼들이 오면 먹어야 할 것 아닙니까?”

강부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놈이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로 갖고 가도 쓸모 없는 점심이라 그냥 놔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강부자는 궁금한 생각에 일이 어떻게 되나 몰래 보려고 안골이 잘 보이는 군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바람도 없고 날이 맑은데 자기네 밭이 있는 안골에만 누런 안개가 자욱히 끼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군산에서 내려온 강부자는 저녁 때 다시 안골 밭으로 가보았습니다.

안골에 도착한 강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밭 가운데 떡 버티고 있던 동산이 없어지고 밭들이 평평한 논으로 둔갑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른 자루의 삽과 괭이가 자루만 남은 채 모두 부러져 있고, 차려간 밥과 고기, 술들이 몽땅 먹어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꾼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막산이만 혼자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이놈아, 어찌된 일이냐?”

“일해 주겠다고 하는 일꾼들이 아무도 안 나타나니까 나 혼자 다 해버렸습죠. 그 대신 밥 좀 먹은 거야 뭐 어떻습니까?”

강부자는 기가 막혔습니다. 일꾼 서른 명이서 열흘은 걸려야 일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서 반나절에 다 마쳐버린 것도 그렇고, 서른 사람 분의 점심을 혼자 다 먹어치우는 식성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배고픔을 참아왔는지 놀랄 뿐이었습니다.

‘이놈이 배불리 먹지 못하니 한 번 배불리 먹을 생각으로 나를 속였구나. 속인 것은 괘씸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강부자는 오히려 막산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해 동안 흉년이 계속되었습니다. 부자인 강씨 댁에도 식량이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날 강부자는 여종들을 불러 서른 사람 분의 점심을 차리라고 일렀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점심이 차려지자 강부자는 막산이를 불렀습니다.

“막산아, 오늘은 먹기 싫도록 밥을 먹어 봐라.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느냐?”

강부자의 말에 막산이는 차려놓은 음식을 후딱 먹어치웠습니다. 다시 술까지 여섯 동이 내놓자 그것도 꿀꺽꿀꺽 다 마셔버리고 말았습니다.

막산이가 밥을 다 먹자 강부자는 종 문서를 내놓으며 막산이에게 말했습니다.

“야, 막산아, 그동안 우리 집에서 고생이 많았다. 계속되는 흉년으로 너를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없으니,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너대로 살아 보아라.”

그렇게 하여 종살이에서 풀린 막산이는 강부자 댁을 나왔으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 흉년에 어디 가서 밥을 얻어먹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픈 막산이는 하는 수 없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산에는 나라에서 기르는 말과 소들이 많이 있었는데,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었지만 말과 소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 있었습니다. 막산이는 그거나 잡아먹어 배를 채워 보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산에는 흉년 때문에 많은 도적들이 있었습니다. 도적들은 산에 올라오는 막산이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놈아, 여기가 어딘데 함부로 올라오느냐?”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적들이 막산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산이는 속으로 웃으며 달려드는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서너 놈이 달려들었으나 막산이는 꿈쩍도 안 했습니다. 두어 놈이 더 달려들었으나 막산이는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여나믄 놈이 달려들어 막산이를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 때 막산이는 힘을 끙 쓰며 몸을 한 번 뒤틀었습니다. 막산이에게 달려들었던 놈들이 모두 나자빠졌습니다.

“아, 이거 큰 장사 어른을 몰라뵈었습니다.”

도적 두목이 막산이 앞에 엎드리자 다른 도적들도 모두 꿇어앉았습니다.

막산이는 그래서 도적의 두목이 되었습니다.

도적 두목이 된 막산이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제주와 대정의 중간에 있는 으슥한 곳을 골라 막산이 구석이라 이름 붙이고는 그 곳에 있는 큰 자연 동굴에 거처를 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라에서 기르는 소와 말을 잡아먹기도 하고 부잣집을 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때를 잘못 만나 도적질을 하고는 있지만, 몇 가지 원칙을 정해야겠다. 첫째, 사람의 목숨은 절대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의 목숨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목숨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둘째, 가난한 사람들의 재물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도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산에 올라왔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으면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셋째, 백성들은 굶어 죽고 있는데 오히려 백성들이 애써서 농사지은 곡식까지 먹여가며 피둥피둥 살찌우는 국마와, 이 흉년에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부자들의 재물만을 빼앗되 모두 빼앗지는 말고 더러 남겨 두어야 한다.”

막산이는 이와 같이 도적으로서도 지켜야 할 일을 정해놓고 도적질을 했습니다.

막산이는 이제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도적질하고 있는데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었습니다.

관가에서는 막산이네 도적 무리들이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목장의 말과 소에 대한 피해가 점점 심해지고 재물을 털린 부자들이 매일 찾아와서 도적을 잡아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다 못해 사또는 막산이의 옛날 주인이었던 강부자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방이 강부자를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또께서는 막산이를 잡도록 하면 큰 상을 내린다고 하시네.”

“예, 잘 알았습니다.”

강부자는 막산이 구석으로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도적들이 길을 막고 달려들었습니다.

“이놈들아, 난 너희 대장의 주인이었다. 너희 대장에게 안내해라.”

큰소리치는 강부자 앞에서 달려들던 도적들은 기가 죽어서 막산이에게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막산이는 옛 주인이 왔다는 말에 만나지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종살이 할 때는 구박도 많이 받고 늘 배고픔에 허덕이게 하였으나, 그래도 종 문서를 내주어 자유롭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강부자님,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음, 자네를 사람 만들어 주려고 왔네.”

강부자는 능청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다름아니라 요즘 관가에서는 자네 같은 사람을 구하고 있다네.”

막산이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잘 듣게. 지금 관가에서는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해서 군사를 모집하고 있는데, 자네같이 힘센 사람이라야 한다네. 그래서 내가 자네를 추천했는데, 오랑캐를 무찌르고 공을 세우면 벼슬도 준다고 하네. 어떤가? 이와 같이 계속 도적질을 하면서 살 텐가, 사람 노릇 한 번 해보겠는가?”

강부자는 그럴듯하게 막산이를 속이고 달래었습니다. 막산이는 마음 한 구석에 께름칙한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옛 주인의 의리를 생각하여 강부자의 말을 믿고 따라나섰습니다.

강부자는 순순히 자기를 따라나서는 막산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지만 사또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강부자와 막산이는 제주성에 이르러 사또가 있는 동헌으로 들어섰습니다. 그 순간 많은 포졸들이 창칼을 들고 달려들어 막산이를 포박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막산이는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묶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차, 속았구나.”

막산이는 포승에 묶여서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강부자를 쏘아보았습니다.

“이놈, 내가 죽어도 네놈의 거짓말을 잊지 않겠다.”

강부자는 고개를 돌리고 막산이의 눈총을 외면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막산이는 사형 당하는 몸으로 불우하게 일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백이십 년 전쯤의 일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