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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제주전설 동화> 외돌개와 범섬

<제주전설 동화>

외돌괴와 범섬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때는 고려 말.

  제주도는 원나라의 말을 키우는 목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원나라는 제주도를 고려에게서 빼앗아 <탐라국초토사>라는 관청을 두어 <다루가치>라는 관리가 맡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다루가치와 함께 제주도에 와서 소, 말, 낙타, 나귀, 양 등을 키우는 몽고인들을 <목호(牧胡)>라고 불렀습니다.

  목호들은 제주 사람들에게 행패를 많이 부렸습니다. 제주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함부로 빼앗기도 하고, 애써 가꾼 곡식밭에 소, 말들을 풀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자기네 나라인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행패를 부리는 목호들에 대해 제주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지고, 새로 일어난 명나라에 의해서 원나라가 북쪽 땅으로 쫓겨난 데다, 공민왕이 원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을 쓰면서 충렬왕 때부터 몇 번이나 원나라의 땅이 되었다 고려의 땅이 되었다 하던 제주를 완전히 고려의 땅으로 되찾자 목호들은 갈 곳을 잃게 되었습니다.

  명나라는 자기네의 적인 원나라를 치는데 필요한 말들을 보내 달라고 고려에 요청했습니다. 고려에서는 목호들이 키우는 말을 뽑아 명나라에 보내려고 관리를 제주도로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목호들은 말을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원나라 황제의 명령이 없으면 명나라로 보내는 말은 내어 줄 수가 없다.”

  목호들은 오히려 고려의 관리와 병사 300여 명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고려는 목호들을 토벌하려고 하였으나, 목호들의 세력이 너무 사나운데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기 때문에 토벌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이 반란은 목호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여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끝났습니다.

  다음 해, 명나라에서는 다시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원나라의 남은 세력을 정벌하려고 하니 탐라에서 키우는 좋은 말 2000 필을 보내 달라.’

고 요구하였습니다.

  고려에서는 다시 제주도롤 관리를 보내어 말을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호의 우두머리인 석질리, 필사초고, 독불화, 관음보 등은,

“우리가 어찌 원나라 황제의 명을 받들어 키우는 말을 원나라를 치는데 쓰라고 우리의 원수인 명나라에 보내겠는가?”

하고 겨우 300 필만 보냈습니다.

  드디어 고려 공민왕은 최영 장군에게 목호 토벌을 명령했습니다.

  공민왕 23 년 (1374 년) 8 월, 최영 장군은 양광, 전라, 경상 3도 도통사가 되어 도병마사 염흥방, 3도 원수 이희필, 목인길, 지윤, 조전원수 김유 등을 거느리고 목호 토벌에 나섰습니다.

  전선 314척, 병사 2만 5,605 명을 거느리고 제주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전선 30여 척이 파선되고, 추자도에 머물면서 태풍이 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때 최영 장군은 추자도에 머무는 동안 그 곳 어부들에게 그물 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후 최영 장군은 전함을 몰아 드디어 명월 포구에 상륙하였습니다.

  석질리 등 목호군들은 기병(말 탄 군사) 3000여 명으로 무장하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싸움하기에 좋은, 넓은 평야로 고려군을 유인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영 장군은 목호군들의 꾀를 알고는 유인 작정에 말려들지 않고 추격하여 어름비오름, 붉은오름, 검은오름, 새벨오름, 예래, 홍로 등지에서 전투를 벌여 목호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쫓긴 생쥐 꼴이 된 목호군은 산방산 전투에서 고려 장수 이하생을 전사하게 하는 등 저항을 하여 고려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목호군은 고려군에게 쫓기고 쫓기다가 강정 전투에서 결정적 타격을 받아 석질리, 필사초고, 관음보 등과 겨우 살아 남은 200여 명이 범섬으로 도망쳤습니다.

  목호군은 이제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었습니다.

“이제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서 원나라로 가도록 해 주겠다.”

  최영 장군은 목호군에게 항복할 것을 권헸지만 목호군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대항하려는 듯 아무도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총공격을 하라!”

  최영 장군의 공격 명령에 따라 전함들이 범섬을 포위하고 목호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범섬은 주위가 온통 날카로운 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병사들이 쉽사리 공격하여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위를 붙잡고 기다시피 하여 반쯤 올라가면 섬 위에서는 화살과 돌덩어리들이 머리 위로 날아들어 절벽 아래 바위나, 바다로 떨어져 죽는 병사들이 많았습니다.

  섬 위에서 섬 아래 떠 있는 전함들을 향해 불화살을 날리면 전함들은 불이 붙어 침몰하고, 병사들은 바다로 뛰어들곤 했습니다.

  더구나 바람이 세게 불고 파도가 거칠어서 물에 익숙지 못한 병사들은 목호군과 싸우기보다는 배 멀미 때문에 싸울 의욕부터 잃고 있었습니다.

“후퇴하라!”

  더 이상 병사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최영 장군은 작전상 후퇴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려군들은 범섬에서 제일 가까운 법환포구로 물러 나와 진을 쳤습니다.

  그 날 밤, 최영 장군은 막사에 앉아 병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대저 싸움이 오래고 나라가 이로운 일은 아직 없었다. 그러므로 군사를 쓰는 것의 해로움을 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곧 능히 군사를 쓰는 것의 이로움을 다 알지 못한다.」

  장군은 읽고 있던 손자병법을 덮고는 눈을 감았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오기 때문인지 장군의 마음도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천막을 후려치는 빗소리가 후드득거리고 등잔이 깜박거렸습니다.

‘이 싸움은 오래 계속되면 안 돼. 오래 끌면 우리 군사들이 피곤하고 백성들에게도 민폐를 끼치게 돼. 그런데 저 험한 섬에 은거한 목호들을 어찌 한단 말인가?’

  장군은 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명월포에 상륙하여 목호군을 치기 시작한 후로 연전연승하면서 -산방산 전투에서 이하생 장군이 전사하기는 했지만- 이곳까지 목호군을 쫓아왔지만 첫 번째 범섬 공격에서는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장군은 다시 병서를 펼쳤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가면서 목호군을 칠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별로 신통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은 안개가 자욱하고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최영 장군은 부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작전 회의를 열었습니다.

“어제 전투에서는 우리가 큰 참패를 하였오. 우리가 전투에서 진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오?”

  최영 장군의 물음에 부하 장수들이 제각기 대답했습니다.

“범섬이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병사들이 쉽사리 올라갈 수 없는 까닭이옵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공격해 올라가고, 적은 위에서 막기 때문에 공격과 방어의 위치에서 우리가 불리했습니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어 전함들이 섬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접근하더라도 불화살을 쏘아대는 바람에 전함들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 보다는 우리 병사들이 싸울 의욕을 잃고 있는 데에 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육지 싸움은 잘 하는 병사들이지만 심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싸움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최영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 싸움에 패한 바른 원인들이었습니다.

“이 싸움은 오래 끌어서는 안 되오.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좋은 작전이 없겠오?”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별다른 작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조전원수 김유가 입을 열었습니다.

“장군, 지금 이 자리에서 작전을 생각하기보다는 이 근처의 지형을 살펴보면서 그에 따라 알맞은 작전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소. 그러면 여러 장수들은 나를 따라 지형 정찰에 나서도록 하시오.”

  최영 장군과 부하 장수들은 말을 타고 바닷가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서 지형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삼매봉 아래 외돌괴까지 왔을 때 최영 장군의 머리 속은 갑자기 맑아져 확 트이는 듯 했습니다. 어제 밤 손자병법에서 읽었던 한 부분이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움은 거짓으로써 서고, 이로써 움직이고, 나누어 합하는 것으로써 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빠름이 바람과 같고, 그 더딤이 숲과 같고, 침략하는 것이 불과 같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산과 같고, 알기에 어려운 것이 그늘과 같고, 움직이는 것이 뇌진과 같다.」

“이 외돌괴와 안개가 우리 고려군을 돕고 있다. 작전은 구상되었다. 안개 속에서 이루어질 이번 작전의 이름을 ‘장군석과 배연줄 작전’이라 부르겠다.”

“장군석과 배연줄 작전?”

  부하 장수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최영 장군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작전 지시를 내리겠오. 양광도 상원수 이희필, 그대는 1군을 거느리고 범섬 옆의 작은 섬에 올라 거짓 공격하는 척 하면서 적의 주의를 돌리고 쉬지 못하도록 하시오. 적이 우리의 작전을 눈치채면 안 되오. 그리고 공격이 시작되면 계속 화살을 쏘아서 우리 군사들이 공격해 올라갈 때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라도 상원수 목인길, 그대는 2군을 거느리고 작은 배들을 모두 모아, 범섬 쪽에서 가장 가까운 법환 바닷가 바위에서부터 시작하여 범섬 아래까지 배를 한 줄로 묶어 연결하고, 배 위에 판자를 깔아 뜬다리를 만드시오. 그리고 긴 사다리도 여러 개 만들어 놓도록 하시오. 적이 눈치 채지 않도록 조용히 오늘 중으로 해야 하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경상도 상원수 지윤, 그대는 3군을 거느리고 쇠가죽을 모아 저 외돌괴 바위를 커다란 장군 모습으로 보이도록, 갑옷을 만들어 입히고 투구를 만들어 씌우시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조전원수 김유, 그대는 후군을 거느리고 모든 깃발을 모아서 외돌괴 주변에 가득 꽂아 많은 군사들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최영 장군은 도병마사 염흥방도 불러서 이러이러 하라고 작전 지시를 내렸습니다.

  최영 장군의 명령대로 작전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고려군의 새로운 공격 준비가 뿌연 안개 때문에 목호군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날 중으로 고려군은 공격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음 날 새벽빛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하자 전 날 뿌옇게 끼었던 안개는 이미 걷혀 있었습니다.

“작전을 개시하라!”

  드디어 최영 장군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먼저 염흥방 장군이 거느린 전함들이 범섬 둘레를 빙 둘러싸고 배에 탄 병사들이 소리를 모아 외쳤습니다.

“저기 대장군이 오셨다!”

“너희 몽고 오랑캐들을 치러 대장군이 하늘에서 내려오셨다!”

  전날부터 고려 1군의 거짓 공격 때문에 지금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쉬지도 못 하여 피곤하고 초조해 있던 목호군들은 고려군의 외침을 듣고 내다보았습니다.

  멀리 희미한 새벽빛 속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커다란 거인 장수가 무서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대장군의 뒤로는 많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지 무수히 많은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우린 이제 죽었구나.”

  목호군들은 무서운 대장군의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거인 장수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습니다.

  목호 대장 필사초고와 관음보는 이제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음을 알고 바다로 뛰어들어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두 대장을 잃어버린 목호군들은 더러는 두 대장을 따라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대부분은 싸울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 때다. ‘배연줄 작전’을 시작하라!”

  최영 장군의 명령에 따라 배를 연결하여 뜬다리를 만들어 오던 제 2군은 마지막 배를 연결하여 법환 바닷가에서 범섬에 이르는 다리를 완성하였습니다.

  와- 와-.

  고려군은 법환 바닷가에서부터 육지 위로 달리듯 배다리를 달려서 범섬으로 공격해 올라갔습니다.

“막아라, 막아! 올라오는 적을 떨어뜨려라!”

  마지막 남은 목호의 대장인 석질리가 부하들에게 명령했지만, 벌써 싸울 힘을 잃어버린 목호군들은 고려군의 공격을 더 이상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작은 범섬 위에서 고려의 1군이 목호군을 향하여 계속 화살을 쏘아 대고 있었기 때문에, 목호군들은 배다리를 건너서 사다리를 놓고 섬 위로 올라오는 고려군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와- 와-.

  드디어 고려군의 함성과 함께 최영 장군의 대장기가 범섬 위에서 펄럭거렸습니다.

  끝까지 저항하던 목호 대장 석질리는 처자와 함께 생포되고, 180여 명의 목호군들이 항복하거나 사로잡혔습니다.

  이 싸움으로 인해서 몽고의 세력은 우리나라 땅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최영 장군은 전사한 장수들과 병사들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낸 후 개경으로 개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최영 장군이 외돌괴 바위를 장군 모습으로 꾸며 목호군을 물리쳤다 하여, 외돌괴 바위를 장군석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 지금도 서귀포 서쪽 법환동에는 고려군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막숙이(幕宿)라는 지명이 남아있고, 바닷가에는 범섬까지 배다리를 만들어 연결하기 시작했던 곳인 듯한 배연줄이라는 지명이 있다. 그리고 삼매봉 앞바다에 가면 외돌괴 바위가 우뚝 서서 남쪽 바다를 노려보며 늠름하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