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장 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제주도는 물이 귀한 고장입니다. 작은 섬인데다가 한라산이 높기 때문에 큰 강은 없고 작은 내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들은 비가 올 때에만 잠깐 물이 흐르다가 곧 말라버려서 바닥이 드러나곤 합니다,
그런데 몇몇 개의 내들은 땅 속에서부터 물이 솟아 나와 짧은 거리이지만 시원한 물이 끊이지 않고 흐릅니다.
제주시에는 산지천과 외도천이 있고, 서귀포에는 천지연 폭포의 물줄기인 연외천과, 정방천, 강정천, 악근천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정방천으로 흐르는 물의 원천인 지장샘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한라산은 영주산이라 하여 신성시되어 멀리 중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졌으며, 영주산에서 시작되는 모든 시내마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 송(宋)나라의 풍수지리 학자들이 제주도의 풍수지리를 보고는, 제주도는 장차 큰 왕과 장수들이 날 땅이라 하여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중에 호종단(胡宗旦)이라는 풍수사가 황제에게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황제 폐하, 저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 탐라의 풍수지리를 살펴 보건대 탐라에서는 장차 큰 왕과 힘센 장수들이 나와서 우리 중국까지도 위협할 것으로 보이옵니다.”
황제는 호종단의 말을 듣고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장차 탐라에서 큰 왕이 나오면 자기의 자리가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중국마저 위태로울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어찌 하면 되겠오 ? 미리 막을 방법이 없겠오?”
“소인이 탐라로 건너가서 땅의 혈들과 물의 혈들을 모조리 끊어버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무 염려 없을 것이옵니다.”
“좋소. 그대가 가서 탐라의 혈들을 모조리 끊고, 짐의 근심을 없애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호종단은 풍수지도를 가지고 풍수견을 데리고는 제주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한 호종단은 첫 번째로 산방산 남쪽의 용머리라고 하는 <절노리코지>를 칼로 끊어 놓았습니다. 이 절노리코지는 용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하루 1 척씩 형제섬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는데, 호종단의 칼에 의해서 지맥이 잘라져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고 지금처럼 바위 절벽이 잘려진 채로 있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호종단은 발길을 서북쪽으로 돌려 동쪽으로 돌면서 모든 지맥과 물혈을 끊기 시작했습니다.
호종단이 정의고을 홍로(지금의 서귀포시 서홍동)에 이르러 물혈을 찾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홍로에 사는 젊은 농부가 땅 속에서 물이 펑펑 솟아 마을 사람들이 길어다 먹곤 하는 샘 근처의 밭에서 소에게 쟁기를 메우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이러이러 착한 소야,
부지런히 밭을 갈라.
밭을 갈아 씨를 뿌려
풍년 농사 지어보자.
풍년 농사 지어내어
각시 얻어 장가들자.
각시 얻어 장가들어
아들 낳고 딸을 낳아,
오순도순 사는 재미
어디에다 비길소냐.
농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래처럼 부지런히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젊은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농부는 밭갈이를 멈추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숨을 헐떡이며 밭두렁에 서 있었습니다. 농부는 노인에게 다가갔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할아버지.”
“젊은이, 내 청을 꼭 들어주게나. 누가 나를 찾아와서 해치려고 하니 나를 숨겨 주게나.”
농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라 처음 보는 백발 노인의 청을 선선히 들어주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숨겨드리면 되겠습니까?”
“고맙네, 젊은이. 내가 일러준 대로 꼭 해야만 되네.”
노인은 고마워하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젊은이의 행기에 저 샘물을 하나 가득 길어서 젊은이의 소길마 아래에 감추어 주게. 그러고 나면 개가 나타나서 소길마 쪽으로 가서 물 냄새를 맡으려 할걸세. 그러면 막대기로 때려서 쫓아버려야 하네. 그 다음에 중국에서 온 풍수사가 찾아와서 ‘꼬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 어디 있느냐고 하거든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게나. 젊은이 꼭 부탁하네.”
“예, 할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한 번 신신당부를 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농부는 노인이 일러준 대로 점심 그릇인 행기에 샘물을 가득 길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콸콸 솟아나와 찰찰 넘치던 샘물이 바싹 말라 버리고, 샘이 있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농부는 신기한 생각이 들면서도 심상치 않다고 여겨져서 샘물이 든 행기를 소길마 아래에 감추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에 개가 한 마리 나타나 말라버린 샘가에서 냄새를 맡다가 소길마 쪽으로 다가와서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이놈의 개, 저리 갓!”
농부는 막대기로 개를 힘껏 때렸습니다. 갑자기 막대기에 얻어맞은 개는 깨갱거리며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농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호종단이 두리번거리며 나타났습니다.
“이상하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으니…….”
중얼거리며 샘을 찾던 호종단이 농부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이 근처에 ‘꼬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라는 샘이 있지요?”
농부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나 ‘꼬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그리고 이 근처에는 샘이 없습니다.”
그러자 호종단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풍수지도에 의하면 분명히 이곳인데……. 여보시오, 그러지 말고 제발 알려 주시오.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주기만 한다면 큰 부자가 되도록 해 주겠오.”
농부는 큰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러나 다급하게 부탁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고, 약속한 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굳은 생각에 호종단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샘을 어떻게 가르쳐 준다는 말이오?”
그러자 호종단은 험상궂은 얼굴로 호종단을 위협했습니다.
“만약 샘이 있는데도 없다고 한 것이라면 당신의 목숨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농부는 호종단의 험상궂은 얼굴과 무서운 협박에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백발 노인과 한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있지도 않은데 가르쳐 달라면 날더러 어떡하란 말이오!”
그러자 이번에는 호종단의 표정이 수그러들었습니다. 호종단은 더 이상 농부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근처를 둘러보다가, 자기가 가져온 풍수지도가 잘못된 것이라 여기고는 화가 나서 지도를 찢어버리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백발 노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젊은이는 내 생명의 은인일세. 나는 이 샘을 지키는 물의 신인데, 중국에서 온 호종단이 물혈을 끊어 버리려고 했던 것이라네. 고맙네. 나는 젊은이 덕분에 살아난 것이라네.”
노인은 젊은 농부에게 한없이 고마워 했습니다.
농부는 궁금하던 것을 물어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꼬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저 소길마가 꼬부라진 나무로 만들어졌으니 꼬부랑 나무일세. 그리고 행기물은 행기 속에 담아 놓은 샘물이었지. 자, 이제는 소길마 아래에 감추어 놓았던 행기를 꺼내서 말라버린 샘에 물을 쏟아 부어 주게나.”
젊은 농부가 노인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말랐던 샘에 다시 물이 가득 넘쳐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젊은 농부에게 거듭 거듭 고맙다고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호종단이 풍수지도를 찢어버린 까닭에 제주도 서쪽은 생수가 잘 나오고, 동쪽은 물혈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생수가 잘 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종단이 물혈 뜬 주머니를 가지고 협재 동굴 있는 데 가자, 주머니 끈이 뚝 끊어져 물이 쏟아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 물혈을 급히 주워 담았지만 다 담지 못하여 협재 동굴 속과 근처에는 생수가 나게 나오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또 제주시 산지에 가서 배를 타고 떠나려 할 때에 물혈 뜬 주머니가 빠져 버려서 지금도 산지에는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호종단은 제주도에서 뜬 물혈을 하나도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고 모두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 신의로써 샘을 지킨 농부는 마을 사람들의 공경을 받으며 한평생 잘 살고 자손이 번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그 많은 물은 바로 젊은 농부가 지켜낸 샘에서 솟아 나와 흐르기 시작하는 물인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이 샘을 지혜롭게 감추어졌다고 하여 지장천(智藏泉), 또는 지장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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