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전설 동화>
왕비의 병을 고친 명의 좌조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구좌읍 종달리에 좌씨 성을 가진 의원이 살고 있었습니다.
집안 살림은 비록 가난했지만 인정이 많아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친절하게 맞아 치료해 주고,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무료로 병을 치료해 주곤 하였습니다. 좌 의원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은 좌 의원의 치료 솜씨와 더불어 정성스러운 마음이 약이 되어 병이 빨리 낫곤 하였기 때문에, 어느덧 제주 섬에서는 병을 가장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어느 날, 제주목 관아에서 이방이 좌 의원을 찾아왔습니다.
“제주 목사께서 좌 의원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아니, 왜 나를…….”
“가 보시면 알게 됩니다만, 귀한 분의 병을 보아야 한다니까 행장을 차리시고 함께 가십시다.”
좌 의원은 의술 도구를 챙겨 행장을 꾸리고 이방을 따라 제주목 관아로 갔습니다.
귀한 분이라고 하기에 목사의 가족 중에 병이 난 사람이 있어서 치료해 달라고 부른 줄 알았던 좌 의원은 목사의 말을 듣고 너무나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 사시는 왕비님이 병환이 나셨는데, 시의도 못 고치고, 전국의 명의라는 명의를 다 불러다가 치료를 해 보았지만 아무도 고치지를 못하고 병세가 더 나빠지고 있어서, 마지막으로 제주의 명의인 좌 의원을 궁중으로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좌 의원은 자신에게 벼락이 떨어진 듯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전국의 명의들도 고치지 못한 왕비님의 병환을 어떻게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자기가 고칠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이야기했으나 목사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좌 의원을 불러 올리라는 어명이 계셨는데 올라가지 않았다가는 좌 의원은 물론 어명을 시행하지 않은 나까지 벌을 받게 되니, 제발 한양으로 올라가게나.”
좌 의원은 할 수 없이 죽을상을 하고 한양으로의 먼 길을 떠났습니다.
처음 보는 한양은 시골에서만 살던 좌 의원에게는 커다란 구경거리였으나, 그런 구경을 할만한 정신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좌 의원은 곧바로 임금님 앞으로 불려 가서 문안을 올렸습니다.
“좌 의원. 먼 길을 오느라고 고생하셨겠구료. 여기까지 온 뜻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니 좌 의원의 의술로 중전이 쾌차하길 바라겠오.”
임금님의 당부의 말을 들은 좌 의원은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몸 둘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불초 소생이 재주 없으나 불러주신 은혜 황공하올 따름입니다. 미력하나마 온 힘을 다하겠나이다.”
임금님 앞을 물러나온 좌 의원은 궁중 의사의 안내로 왕비님이 누워 계신 곳까지 가면서 왕비님의 병 증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비님의 병은 다름 아닌 허벅지에 커다란 종기가 난 것인데, 처음엔 조그마하던 종기가 점점 커지고 또 다른 종기가 생겨서 지금은 다리가 온통 퉁퉁 부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별별 약을 써도 낫지를 않고 전국의 명의들이 와서 여러 가지 처방을 써 봤지만 별 차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왕비님이기 때문에 함부로 아픈 곳을 의원들에게 보일 수도 없는 형편이라 말로만 해야 되므로 더욱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좌 의원은 왕비님께 갔지만 왕비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병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직접 말을 할 수는 없고 내시나 상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곤 했으며, 왕비님의 손목에 실을 묶어서 문틈으로 내보내 주면 그 실을 잡아서 진맥을 하였습니다.
좌 의원은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병세를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치료가 곤란하였습니다.
숙소로 물러 나온 좌 의원은 어떻게 왕비님의 병을 고칠까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전의(궁중 의사)는 이러한 좌 의원의 속마음도 모르고 은근히 물어왔습니다.
“어떻게 중전마마의 병환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이 생각났오?”
“며칠만 말미를 주십시오. 그 동안에 연구하여 약을 조제해 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서도 좌의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방도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진수성찬으로 차려다 주는 음식들도 모래를 씹는 듯 전혀 맛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에 빠진 좌 의원은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오히려 몸이 점점 야위어져 가기만 했습니다.
“아, 이 일을 어찌 하면 좋담.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다고 하는데, 나의 의술로는 좋은 약을 만들 수 없으니. 왕비님의 병환을 못 고쳐서 내가 벌을 받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왕비님의 병환이 속히 나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식사를 하며 혼자 중얼거리던 좌 의원은 손에 들고 있는 흰쌀밥 한 덩어리를 무심코 내려다보았습니다. 숟가락에 밥을 뜬 채로 멍하니 있다가 바닥에 떨어진 쌀밥 덩어리를 주워서는 중얼거리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밥 덩어리는 좌 의원의 손안에서 조그맣게 굴려져서 동글동글해져 있었습니다. 마치 환약같이 된 밥 덩어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좌 의원의 머리 속에서 반짝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옳지. 이렇게 한 번 만들어 보자. 될지 안 될지는 하늘에 맡기는 거야.”
좌 의원은 곧 밥 한 덩어리를 크게 떠서 따로 숨겨 놔두고는 상을 물렸습니다. 그리고는 하얀 흙벽에서 흙을 살살 긁어낸 다음 숨겨 놔두었던 쌀밥 덩어리와 하얀 흙가루를 섞은 다음, 조금씩 떼어서 환약처럼 동글동글하도록 손바닥에서 굴렸습니다.
흙쌀밥 덩어리는 정말로 환약 같이 보였습니다. 좌 의원은 하얀 종이에 그 덩어리들을 곱게 싸두었습니다.
다음 날, 임금님께서 직접 좌 의원이 머물고 있는 숙소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래, 중전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연구해서 만들었는고?”
“예, 여기 이렇게 몇 알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약을 써서 병환이 나으실 지 안 나으실 지는 모르오나 정성을 기울여서 만들었나이다.”
좌 의원이 쌀밥과 흰 흙가루를 섞어서 만든 환약을 임금님께 드리자, 임금님은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했습니다.
“오, 그래? 이 약 이름이 대체 무엇인고?”
“예, 초백환이라고 하옵니다.”
“음. 이 약을 어떻게 써야 하는고?”
“예, 종기 난 곳을 종기의 먼발치로부터 종기의 중심 부분까지 골고루 펴서 바른 다음 깨끗한 헝겊으로 환처를 싸매 두시면 나을 것입니다.”
임금님은 내시에게 약을 주면서 여의원을 시켜 좌 의원이 말한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까지 왕비님의 종기는 너무 오래 곪아서 터지기 직전까지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좌 의원이 만든 약을 쓴 결과, 종기 부분에 펴서 바른 약이 굳어지면서 곪은 부분을 살짝 누르며 밀어주어, 마침내 오래 앓았던 종기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왕비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다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임금님과 왕비님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궁중이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임금님은 기쁜 마음으로 좌의원을 불렀습니다.
“그대가 만들어 준 약을 처방대로 써서 중전의 병이 깨끗이 나아 다시금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고! 좌 의원, 고마운지고.”
“황공하옵니다. 이는 모두 전하의 홍복이신줄 아뢰옵니다.”
“그래, 과인이 그대의 소원을 다 이루어 줄 터이니 무슨 소원이든 허물없이 말하라.”
좌 의원은 무척 기뻤습니다. 먼 섬에서 와서 왕비님의 병환을 낫게 해드린 그 기쁨만으로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거듭 소원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소인같이 천한 백성에게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저 살림 걱정 없이 편안히 살면서 부족한 의술이나마 병든 사람을 치료해서 건강을 되찾아 주고자 할 따름입니다.”
“오, 참으로 갸륵하고 고운 마음씨로다.”
임금님은 곧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좌 의원의 고향인 종달리 근처의 땅을 몇 정보 사서 좌 의원의 소유로 하도록 하고, 조정의 의원이라는 뜻으로 ‘조의’라는 칭호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상금을 주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한양으로 올라갈 때와는 달리 기쁜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좌조의는 살림 걱정 없이 편안히 지내며, 여전히 찾아오는 환자들을 따뜻이 치료해주곤 하였습니다.
좌조의는 종달리에 살다가 나중에 한경면 고산리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었는데, 한경면에 살고 있는 좌씨들은 바로 좌조의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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