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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의 글밭/동화

<제주전설 동화> 번개눈 이좌수

<제주전설 동화>

번개눈 이좌수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옛날 대정 고을 무우남밭(중문) 이씨 댁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기는 날 때부터 다른 아기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여든 살에 열 일곱 난 처녀에게 장가들어 낳은 아기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 보다 이 아기는 전혀 눈을 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아기의 눈동자가 둘씩이었기 때문에 눈정기가 아주 빛나서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지 못하므로 일부러 눈을 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나 엄마만 있을 때는 눈을 뜨고 놀았습니다. 엄마만은 아기의 눈정기를 맞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기가 날 때부터 장님이 되었다고 구근거리며 불쌍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눈을 감고 있어도 무엇이든 볼 수 있었습니다.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걷지도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점점 자라면서 이 아이는 학식이 많아지고 힘이 세어서 제주 삼읍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대정 고을 좌수가 되었습니다.

  고을의 일을 마치고 중문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산방산 근처 굿물을 지나 가려는데 굿물 마을 사람들이 이좌수를 불렀습니다.

“좌수님, 잠깐 저희 마을에 들렀다 가십시오. 좌수님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허, 이거 중문까지 가려면 밤이 늦는 걸.”

  그러면서도 이좌수는 굿물 마을 사람들을 따라가서 촌장 집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이좌수에게 절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좌수님, 댁으로 가실 길이 먼데 이렇게 모셔와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좌수님만이 저희들을 도와주실 것 같아서 이렇게 모셔왔습니다.”

“내가 도울 일이 뭐가 있겠소만 어서 말해 보시오.”

“예, 석 달 전부터 여우가 밤마다 우리 마을에 들어와 닭들을 잡아가곤 하여 닭들이 몇 마리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여우는 어찌나 꾀가 많고 날쌘지 아무리 닭장을 굳게 잠가도 필요 없고 덫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냥꾼들이 활을 준비하고 숨어서 기다렸지만 아직 꼬리조차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 여우는 곧잘 사람으로 둔갑하곤 한다고 합니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여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좌수님, 그 여우를 꼭 잡아 주십시오.”

“좋소 내 그 여우를 꼭 잡아 드리리다.”

  그 날 밤, 이좌수는 촌장 집에 머물러서 여우가 나타나길 기다렸습니다. 촌장 집 마당에 닭장을 만들어 마을의 남은 닭들을 모두 모아놓고 불을 끄도록 했습니다.

  이좌수가 문틈으로 가만히 내다보고 있는데 밤이 이슥해지자 촌장집 마당으로 한 여자가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잠을 자던 닭들이 꼬꼬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옳지, 저것이 분명 여우렷다. 사람으로 둔갑했지만 닭들이 여우라는 걸 알고 겁을 내는구나.’

  이좌수는 마당으로 썩 나서며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 여우야. 네 감히 미물인 주제에 사람으로 둔갑하여 마을에 해를 끼치느냐!”

  닭장 문을 열려고 하던 여자가 호통 소리에 이좌수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이좌수의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하였습니다.

  깨갱 !

  여자로 둔갑했던 여우는 이좌수의 눈에서 나온 번갯불을 맞고는 여자의 탈을 벗고 여우가 되어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좌수는 번개눈으로 불리게 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이좌수가 대정 고을 관아로 나갔더니 현감이 얼굴에 가득 근심 어린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사또 나으리 어찌된 일로 근심을 하십니까?”

“아, 이좌수, 어서 오시게.”

  대정 현감은 이좌수에게 근심하는 자초지종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제주섬에는 13 개 목장이 있어서 나라에서 쓸 말들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목장은 상, 하장으로 나누어 한 해는 상장에서, 한 해는 하장에서 방목을 하였습니다. 해마다 방목하지 않는 목장은 그 주위에 사는 백성들에게 농사짓게 하여 땅을 빌려준 세금을 곡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세금으로 내는 곡식이 너무 많은데다가, 관리들의 횡포 때문에 백성들은 늘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금년에는 농사가 잘 안되었는데도 제주 관아의 관리들은 목사를 속여 백성들의 곡식을 긁어낼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방이 목사 앞에 나아가 음흉한 계책을 드러내었습니다.

“목사 나으리, 시절은 좋은데 큰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 ”

“목장이 가물어 목초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상장에 있는 말들이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가물었던가? 그러면 어찌 해야 좋을꼬?”

“국마를 죽여서야 어찌 책임을 면하겠습니까? 하장을 헐어 백성들이 농사한데서 얼마 동안 먹도록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로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국마가 죽어간다는 데 어쩔 수 없어서 각 고을에 공문을 띄워서 하장을 헐어 상장의 말들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각 고을에서는 야단이 났습니다. 피둥피둥 살찐 말들을 놓고 굶어 죽는다고 목사를 속여 백성들의 재물을 긁어내려는 관리들의 검은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돈이나 곡식을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여 갖다 바쳐야 했습니다. 죽어 나는 건 그저 백성들뿐이었습니다.

  대정 현감도 이 공문을 받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면 좋겠나? 하장을 헐거나 백성들의 곡식을 모아 나쁜 관리들에게 바치면 백성들이 굶주릴 것이고, 공문대로 행하지 않으면 목사로부터 날벼락이 떨어질 테니.”

  이좌수는 전부터 제주 관아 관리들의 이러한 횡포를 좋지 않게 여기고 있던 터라 이번에 나쁜 관리들을 혼내줄 생각을 하고 현감을 안심시켰습니다.

“이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하장을 헐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뇌물을 바칠 필요도 없습니다.”

  현감은 걱정이 되었지만 워낙 이좌수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심하고 이좌수의 말에 따랐습니다.

  제주 관아 이방은 화가 났습니다. 다른 고을에서는 곡식과 돈이 자기에게 바쳐져 오는데, 대정 고을에서는 전혀 그럴 기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사 나으리, 다른 고을에서는 하장을 헐어 국마를 먹이고 있사오나, 대정 고을에서는 공문대로 시행하지 않아서 굶어 죽어 가는 국마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하옵니다.”

“에잇, 괘씸하다. 내 직접 대정 고을에 가서 현감을 문책하리라.”

  화가 난 목사는 육방 관속을 거느리고 대정 고을에 들어왔습니다.

  관아에 떡 버티고 앉은 목사 앞에 대정 고을 관리들이 쩔쩔 매며 인사를 올렸습니다. 이방을 비롯한 육방관속은 거만한 태도로 버티고 서서 대정 고을 관리들을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좌수는 아무 말도 않고 눈을 감은 채 구석에 가만히 서서 가볍게 절을 하기만 했습니다.

  목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좌수의 태도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저기 서 있는 자는 누군고?”

  아전이 뜨끔하여 이좌수를 소개하였습니다.

“예, 대정 고을 좌수이옵니다.”

“그래? 좌수는 어찌 눈을 감고서 나를 한 번도 바로 보지 않는고?”

  목사의 핀잔에 이좌수는 앞으로 나아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인사를 올렸습니다.

“목사 나으리, 대정 고을 이좌수 문안드립니다. 원로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좌수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우렁우렁 울렸습니다. 목사는 이좌수의 목소리에 놀라 가슴이 철렁 하였습니다.

“그, 그래. 이좌수, 물러가 있게.”

  목사의 말이 갑자기 더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좌수는 다시 구석으로 물러나와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목사는 이번에는 현감을 불러다 앉히고 언짢은 기분으로 말했습니다.

“대정 현감 듣거라. 현감은 어찌하여 하장을 헐어 국마를 먹이라는 명을 시행하지 않는고?”

“예, 그, 그건…….”

  현감이 목사 앞에서 쩔쩔매며 안절부절못하였습니다.

  이 때, 이좌수가 앞으로 썩 나섰습니다.

“목사 나으리, 지금 국마들은 살이 피둥피둥 쪄있는데 하장을 헐어 백성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놓은 곡식을 먹이는 일은 부당하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이좌수의 목소리에 목사는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체면을 유지하여 말했습니다.

“왜 좌수가 앞으로 나서는가? 어서 물러가도록 하라.”

  이좌수는 눈을 번쩍 뜨고 목사를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이 일은 저희 고을 백성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고, 저도 이 고을 백성 중 하나이옵니다. 사또, 가서 보십시오. 국마가 굶어 죽고 있나, 백성이 굶주리고 있나.”

  이좌수의 번쩍 뜬 눈을 본 목사는 간이 콩알만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천둥처럼 울리는 목소리에도 놀랐지만, 그 부릅뜬 눈에서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습니다.

“이좌수, 어, 어서 누, 눈을 감고 이야기하라.”

  이좌수는 눈을 부릅뜬 채로 이번엔 이방을 노려보았습니다.

“이방은 어찌하여 목장을 살펴보지도 않고 말이 굶어 죽는다고 사또께 거짓을 고하는 거요?”

  이방도 이좌수의 눈을 보더니 정신이 아찔하였습니다.

“이좌수, 내, 내가 자, 잘못했오. 다, 다음엔 잘 살펴보리다. 어서 눈을 감으시오.”

  결국 목사는 하장을 헐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한 후에 다른 고을을 순력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는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대정 고을에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목사와 이방을 혼내준 이좌수는 기분이 좋아져서 거나하게 술이 취하여 늦은 밤길을 말을 타고 중문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말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지 뚜벅뚜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굿물 마을 앞까지 왔을 때, 갑자기 말이 놀란 듯이 히힝거리며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 이러, 이놈의 말이 왜 그러느냐?”

  말을 달래며, 앞을 보니 웬 여자가 길 가운데 서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열리까지 가는 길인데 밤은 늦고 갈 길은 멀고 하니 가시는 길에 같이 태워다 주세요.”

“그럽시다. 자, 어서 타시오.”

“고맙습니다.”

  여자는 사뿐히 이좌수의 뒤에 올라탔습니다. 여자가 타자 말이 갈기를 떨며 허둥거리듯 빨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음, 이것은 필시 여우가 여자로 둔갑한 것이렷다. 말은 여우를 알아보고는 이렇게 허둥대는 것이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짐승들끼리는 못 속이는 법이지.’

  이렇게 생각한 이좌수는 늘 가지고 다니던 오랏줄을 꺼내어 여자의 몸을 자기의 등에 떨어지지 않도록 꼭 매었습니다.

“말이 빨리 달리니까 떨어지지 않도록 꼭 묶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말을 더욱 힘껏 몰았습니다.

  열리가 가까워지자 여자는 이제 그만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이좌수는 들은 체도 않고 오랏줄을 더욱 바짝 조이며 계속 말을 달렸습니다.

  여자는 이좌수의 등을 손톱으로 할퀴면서 바둥거렸습니다. 그러나 둔갑한 여우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여자를 내려 줄 리가 없었습니다.

  이좌수네 집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좌수는 집에서 기르는 개들을 불렀습니다.

“황개야, 옥돔개야!”

  두 마리의 커다란 개가 달려 나와 이좌수를 반겼습니다. 이좌수는 오랏줄을 풀고는 여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 순간 여우를 알아본 개들이 달려들어 물어뜯었습니다. 여자로 둔갑했던 여우는 여자의 탈을 벗고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 여우는 전에 닭을 훔치다가 이좌수에게 죽은 여우의 암컷인데, 죽은 수컷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굿물 마을에는 더 이상 여우의 피해를 당하거나,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일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뒤 이좌수는 고을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다가 자기의 죽는 날까지 미리 알고 죽었다고 하는데, 제주에 태어났기 때문에 좌수로만 지냈지, 한양 높은 가문에서 태어났더라면 어영 대장은 한 번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