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전설 동화>
거짓말 잘하는 변인태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옛날 서귀포를 지키는 군인들 중에 변인태라는 진졸이 있었습니다. 진졸이라고 하면 진을 지키는 군인들 중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요즘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는 졸병 정도였습니다.
변인태는 비록 신분은 낮고 천했지만, 옳지 않은 일을 보면 참지 못하고, 윗사람들의 잘못을 꼬집곤 하였습니다.
그 중에 변인태의 상관이 되는 조방장은 마음씨가 고약하고, 욕심이 많아 변인태에게서 잘못을 꼬집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변인태를 미워하고 늘 괴롭히곤 하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제주 목사가 서귀진을 살펴보러 오게 되었습니다. 제주 목사가 제주섬으로 부임해 오면 꼭 섬 전체를 한 번 돌아보았는데, 서귀진에 오면 경치가 뛰어난 정방폭포를 구경시켜드리는 것이 행사 중의 한 가지였습니다.
그럴 때면 쇠로 만든 방석을 따스하게 불에 쬐어 목사가 앉아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드리곤 했습니다.
쇠방석은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너무 식어도 안 되며, 계절에 따라 따뜻하게 하는 정도가 달라야 하는데 그 때는 마침 변인태가 그 일을 책임 맡고 있었습니다.
목사의 행차가 서귀진에 도착하자 변인태는 화려한 목사의 행차를 구경하느라고 그만 쇠방석 일은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서귀진을 돌아본 후에 정방폭포에 이르렀습니다.
“어서 쇠방석을 대령하여라.”
조방장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야 변인태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속으로 큰일났다고 걱정하면서도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궁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리 쇠방석을 따뜻하게 해놓지 못한 것이 들통나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몰랐습니다. 더구나 평소에 자기를 미워하던 조방장이 이 일을 트집잡아 얼마나 괴롭힐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변인태는 차가운 쇠방석에 손을 슬쩍 대보며 조방장이 들으라는 듯이 ‘엇, 뜨거워.’ 하고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조방장은 변인태의 말에 쇠방석이 뜨거운 줄로만 알고,
“너무 뜨겁게 하지말고 조금 식혀서 가져오너라.”
하고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변인태는 속으로 후- 숨을 쉬며 그제서야 천천히 쇠방석을 따뜻하게 만들어 대령하였습니다.
이렇게 변인태가 슬기롭게 위기를 넘긴 일이 나중에 다른 진졸들의 입을 통하여 알려지자, 그 때부터 변인태는 거짓말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변인태가 지나가면,
“저기 거짓말쟁이가 지나간다.”
하고 놀리곤 하였습니다.
변인태는 부아가 났습니다.
‘혼이 날 뻔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걸 가지고 거짓말쟁이라고 하다니.’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변인태는 조방장의 명령으로 공문을 가지고 성안 (제주목 ; 지금의 제주시) 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어둡기 전에 가야 할텐데…….’
한라산 중턱의 산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어가야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성안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저기 거짓말쟁이 변인태가 지나간다.”
얼마쯤 갔을 때 길가 밭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변인태가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디를 부지런히 가고 있을까?”
“저놈에게 거짓말을 한 번 시켜 볼까?”
일하기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쉬기도 할 겸 잘 됐다 싶어서 일손을 멈추고 변인태를 불렀습니다.
“야, 변인태. 어디를 급히 가는 거냐?”
“아무리 급한 걸음이라도 잠시 쉬었다 가거라.”
변인태는 사람들이 자기를 놀리려고 불러 세운 줄 짐작하고서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일꾼 중에서 고약스럽게 생긴 한 사람이 변인태를 놀리는 투로 말했습니다.
“야, 변인태. 자네 거짓말을 잘 한다고 하던데, 어디 한 번 거짓말을 해보아라.”
변인태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자기를 놀림감 정도로 취급하여 거짓말을 시켜 보려는 사람들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변인태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난 지금 거짓말이고 뭐고 바쁘단 말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그냥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잘하는 거짓말을 놔두었다가 뭣에 써먹을 것이냐? 어디 해 보아라.”
하면서 변인태의 옷을 잡아당겼습니다.
“이 옷 좀 놓으시오. 난 지금 몹시 바쁘단 말이오.”
“바쁘다니, 뭐가 그리 바쁜가?”
“지금 서귀진에 왜놈들의 배가 여러 척 쳐들어 와서 목안(성안)에 가서 알려야 하겠기에 급히 가고 있는데, 이렇게 붙잡고 한가하게 거짓말이나 시키면 어떡하란 말이오.”
그러자 사람들은 변인태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여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어디, 자세히 얘기해 보게.”
“아, 지금 왜놈들의 배가 수십 척 쳐들어 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하는 바람에 서귀진은 큰 난리가 났오.”
변인태는 이러한 말을 남기고 다시 급하다는 듯이 부지런히 걸어갔습니다.
변인태의 말을 들은 일꾼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왜놈들이 쳐들어 왔다고 하는데 일이고 뭐고 생각할 수가 없어서 모두 다 팽개치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산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삐 걸어가던 변인태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서 껄껄 웃었습니다.
“으하하하, 멍충이 같은 놈들.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니까 거짓말을 했는데 놀라기는 왜 놀라서 달아나나. 모두 다 겁쟁이들뿐이로구나.”
변인태는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달아나는 사람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변인태는 늘 조방장에 대해서 불만이었습니다. 고생은 항상 진졸들이 많이 하는데, 진졸들의 음식에 비하여 조방장의 음식은 늘 진수성찬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조방장은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서 진졸들을 못살게 굴었고, 욕심이 많았습니다.
변인태는 그런 조방장을 골탕 먹일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루는 조방장이 변인태를 불렀습니다.
“변인태 자네가 우리 집에 이걸 좀 갖다 주게.”
조방장이 가리키는 것은 나무로 만든 쟁기였습니다. 그것을 성안에 있는 자기 집까지 갖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변인태는 속으로 못마땅했으나 상관이 시키는 일이라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네, 우리 집 모르지? 성안에서 제일 큰 집이야.”
조방장은 자기네가 잘 산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허풍을 떨었습니다. 그런 후에 실제로 자기 집의 위치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지만, 변인태는 건성으로 들으며 그저 ‘예, 예.’ 하고 대답만 했습니다.
변인태는 무거운 쟁기를 짊어지고 성안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아침 일찍 나서서 부지런히 걸어야 겨우 저녁에 도착하는 성안으로 쟁기를 메고 가기란 무척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메고 가는 쟁기가 새로 만든 것임을 볼 때에 어느 백성으로부터 뇌물로 받은 것이란 짐작이 들어, 옳지 않은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때는 쟁기를 만드는 나무인 소나무와 가시나무를 함부로 베지 말라는 목사의 명령이 내려지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변인태는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성안에 도착한 변인태는 대충 들어서 조방장의 집을 알고는 있었지만, 무조건 사또가 일을 보는 동헌으로 갔습니다. 성안에서 제일 큰 집은 바로 동헌이기 때문입니다.
변인태가 동헌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문 앞에서 수비를 보던 나졸들이 창을 엇갈리면서 가로막았습니다.
“어디를 함부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나는 서귀진 진졸인데, 우리 조방장님이 이걸 집에 가져다 달라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나졸들은 하하하 웃어댔습니다.
“이놈아, 아무리 촌놈이라고 해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느냐? 여기는 너의 조방장네 집이 아니라, 목사께서 일을 보시는 동헌이다.”
“아닙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우리 조방장님 말씀이 성안에서 제일 큰 집이 자기 집이라고 했습니다.”
변인태는 부득부득 우기며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나졸들은 변인태의 말과 행동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목사에게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목사 앞에 꿇어앉은 변인태는 조방장의 심부름으로 성안에서 제일 큰 조방장의 집으로 쟁기를 가져왔노라고 했습니다.
어리숙하게 보이는 변인태의 말을 듣고, 쟁기를 내려다보던 목사는 노발대발 호령했습니다.
“이런 고연 놈의 조방장을 보았나. 서귀진을 지키는 일에는 열심히 하지를 않고, 허가 없이 나무를 베게 하고 백성들의 뇌물을 받아먹다니. 더구나 진을 지켜야 할 진졸을 시켜서 사사로운 심부름을 시켰으니, 이는 국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되겠다.”
목사의 호령에 변인태는 겉으로는 겁을 집어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고소하다는 듯 웃고 있었습니다.
‘자알 되었다. 욕심을 부려서 백성들의 뇌물을 받아먹고 우리 진졸들을 그렇게 못살게 괴롭히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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