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전설 동화>
기지가 뛰어난 현유학 훈장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조선 시대 말에 정의고을 효돈에 현유학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름보다는 대개 현훈장이라고 불리웠습니다.
현훈장은 어릴 때부터 기지가 남달리 뛰어나서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도 많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부탁해 오면 거절하지 않고 지혜롭게 잘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를 잘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또한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잘 먹곤 하였습니다.
현훈장은 당시의 다른 양반들과는 달리 양반 상놈을 가리지 않고 누구하고나 친하게 지내곤 하였는데, 기생을 그만 두고 술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퇴기하고는 ‘누님’, ‘동생’하며 부를 정도로 특별히 가깝게 지내곤 하였습니다.
다른 양반들은 그런 현훈장에 대해서 양반의 체면을 깎는다고 몹시 못마땅해 했습니다.
“어이구, 양반이나 되는 사람이 상것인 퇴기에게 가서 누님, 누님하고 부르니 이거야 원 혼자서 양반 망신을 다 시키고 있네.”
그러나 현훈장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귀하고 천하고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해 설날이었습니다.
현훈장은 일부러 퇴기 누님을 찾아가서 넙죽하게 세배를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이 늙은 기생은 너무 너무 기분이 우쭐하여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술과 음식들을 잔뜩 차려서 현훈장을 대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를 기생 출신이라고 천대하면서 사람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 현훈장만이 양반이면서도 자기에게 세배를 했으니 기분이 아니 좋을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현훈장이 대접을 잘 받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하여 퇴기 누님의 집에서 나올 때, 마침 잘 아는 김훈장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현훈장. 정월 초하루부터 술에 취해서 퇴기의 집에서 나오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현훈장은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거 김훈장 아니신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게. 우리 퇴기 누님에게 세배를 올렸더니, 이 아우가 착하다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술을 대접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좀 과하게 마셨지.”
현훈장의 말을 들은 김훈장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었습니다.
“예끼, 이 사람. 자네는 양반이면서도 어째서 그깟 천한 퇴기에게 세배를 올리는가? 우리 양반들 체면은 자네가 다 깎고 있구만.”
“김훈장 자네도 말라 삐뚤어진 양반 타령인가? 생각을 고치게. 그리고 난 퇴기 누님에게만 세배를 올린 게 아니네.”
그러자 김훈장은 더욱 놀라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아니, 또 누구에게 세배를 올렸단 말인가?”
“허허허. 왜 그리 놀라는가? 바로 그 집 술항아리에게 세배를 올렸지.”
양반 체면을 깎는다고 화를 내던 김훈장은 그만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현훈장네 집에서 몇몇 친구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보성 김생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 글쎄. 그 못된 김생원이 예촌 양부자 댁에 가서 행패를 부렸다는구만.”
다들 놀라서 이야기한 친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히 이야기 해보게.”
그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전부터 전라도 보성에서 살다가 정의 고을로 이사와서 살고 있는 김생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양반 행세를 너무나 지나치게 하고, 고을 사람들을 못 살게 굴어서 원망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김생원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정의 고을 군수가 김생원의 외조카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예촌 양부자네 소가 그만 김생원네 밭에 들어가서 보리를 조금 훑어먹어 버렸는데, 김생원은 하인들을 시켜 그 소를 붙잡아 자기네 외양간으로 가져다 메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양부자가 하인들을 보내서 사과하고 소를 돌려 달라고 했지만, 오히려 그 하인들을 두드려 패서 내쫓고는 양부자네 집까지 가서 못된 소 임자라고 하며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훈장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 못된 놈 버릇을 내가 단단히 고쳐놓고야 말겠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만류했습니다.
“아, 그러다가 잘못되면 군수에게 붙들려 가서 혼쭐날 거네.”
그러나 현훈장은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차근차근 계획을 짜나갔습니다.
현훈장은 자기와 잘 아는 관원과 사령들 몇을 데리고 ‘공문 동산’에 앉아서 보성 김생원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기다리니 김생원이 부채를 들고 거들먹거리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현훈장은 지체 없이 호령했습니다.
“여봐라, 거기 사령들 있느냐?”
“예, 여기 있습니다.”
미리 짜둔 대로 사령들이 달려와 현훈장 앞에 허리를 구부렸습니다.
“저 놈을 당장 잡아 묶어라.”
현훈장의 호령에 따라서 사령들이 김생원을 꽁꽁 묶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김생원은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깜짝 놀랐지만 조카인 군수의 권세를 믿고 오히려 큰소리 쳤습니다.
“이봐. 내가 누군 줄 알고 나를 묶는가? 내 조카가 바로 이 고을 군수인 줄을 모르는가? 내가 바로 군수의 외삼촌인 보성 김생원이야.”
그러나 그런 소리에 눈 하나 꿈쩍이나 할 현훈장이 아니었습니다.
“군수 외삼촌인지 뭔지 난 알 바 아니오. 지금 제주목에서 통문이 오기를 제주도에 왜배가 들어와서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사람으로 변장하고 올라왔는데, 본 지방 사람이 아닌 사람은 모두 잡아다가 문초를 하라고 하니, 보성 김생원이든 광주 김생원이든 모두 잡아 묶게 되었오. 그러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있으시오.”
보성 김생원은 자기 조카인 군수를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아, 염려 마시오. 김생원이 왜놈이 변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금방 보내 드리지요.”
그러자 김생원은 안달이 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왜놈이 아니라는 것을 밝힐 수 있겠나.”
“통문에 의하면, 왜놈들은 강알(사타구니)에 큰사마귀가 두 개씩 있다고 하니, 검사해 봐서 없으면 보내드릴 테니까 염려 마시오.”
김생원은 그 말에 질겁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훈장은 사령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놈의 아랫도리를 다 벗겨서 사마귀가 있는가 확인해 봐라.”
김생원이 발버둥을 쳤지만 사령들이 달려들어 아랫도리를 모두 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마귀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 그래? 그러나 우리만 봐서는 왜놈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가 없어. 다음에 윗 관청에서 확인하러 오더라도 분명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이 고을의 중인, 방장, 풍헌들을 모두 불러서 확인을 시켜라. 그리고 ‘보성 김생원은 분명히 강알에 사마귀가 없습니다.’라는 문서를 써서 서명한 후에 그 사람을 풀어 주어라.”
드디어 이 고을의 관원들과 양반들이 몰려들어 김생원의 강알을 모두 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문서에 서명시킨 후 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당한 김생원은 창피스러워서 자기 조카인 군수에게 현훈장을 잡아 혼내 주라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정의 고을에서는 더 이상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어서 다른 고을로 이사를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효돈에 살고 있는 어른들은 현훈장이 안 계셨다면 효돈 마을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지금 효돈 초등학교 자리가 현유학 훈장이 살았던 집터라고 하며, 그 직계 후손들은 현재 일본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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