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전설 동화>
정방폭포와 서불과차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아주 오랜 옛날 이웃 중국 땅에서는 약 500년 동안 수많은 나라들이 서로 싸우다가는 친해지기도 하고, 몇 개의 나라가 합쳐졌다가는 다시 갈라지기도 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 시대를 ‘춘추전국 시대’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나라들을 모두 하나로 합쳐서 중국 전체를 통일한 나라가 진(秦)나라였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세상을 손아귀에 넣자 황제의 권력으로 못 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근심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 가지는 북쪽 변방에서 오랑캐들이 자주 침범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황제는 나라 안의 젊고 힘이 센 남자들을 모두 동원하여 오랑캐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만리장성을 쌓아서 오랑캐의 침략을 막는 일은 할 수 있었지만 또 한 가지의 다른 근심은 황제의 권력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나이를 먹고, 늙으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여 얻은 부귀영화와 권력을 죽지 않고 영원히 누리고 싶었지만 늙어 가는 나이와 늘어가는 백발은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시황제의 마음을 괴롭혔고, 이러한 마음이 시황제를 폭군이 되게 하여 마음에 맞지 않는 신하나 백성은 모조리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여봐라.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토록 사는 방법을 짐에게 말해주는 사람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큰상을 내리겠노라.”
시황제는 이렇게 여러 신하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아는 신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안다고 하더라도 포악한 황제가 어서 죽기를 바라는 판국인데 그 비밀을 알려줄 신하가 어디 있겠습니까 ?
시황제의 성질은 더욱 사나와졌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가장 신임을 받던 신하가 목이 잘려지기도 했고, 두 밤을 자고 나면 몇 십 명의 목숨이 저 세상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신하들은 하루 하루를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런 신하들 중에 서불(徐市)이라는 꾀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불은 시황제 밑에서 나라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포악한 황제 곁에서 멀리 달아나 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궁리하였습니다.
“이대로 황제의 밑에서 지내다가는 나도 언제 죽게 될지 몰라. 황제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먼 곳으로 달아나야 되겠는데…….”
늘 마음을 졸이면서 멀리 달아날 궁리를 하던 서불에게 어느 날 좋은 꾀가 떠올랐습니다. 서불은 곧 시황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폐하,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알았사옵니다.”
성질이 더 포악해져서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고 술만 마시던 황제의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오, 서불. 어서 말해 보라.”
“예, 소인은 황제 폐하의 은덕을 입고 살아오면서도 은덕을 입은 만큼 충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사옵니다. 그래서 폐하께서 심려하시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고자 애를 써 오던 중, 어젯밤 꿈속에서 신선이 나타나 그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 그 신선이 뭐라고 하던고?”
“바다 건너 동쪽 나라에 삼신산이 있는데, 그 중 탐라 영주산(제주도 한라산)에 사람이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다는 불로초(不老草)가 있다고 하옵니다.”
황제의 귀가 더욱 솔깃해졌습니다.
“불로초라? 그게 탐라 영주산에 있다는 말이렷다? 그러면 누가 가서 그 불로초를 캐어 오겠느냐?”
서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소인이 직접 가서 불로초를 캐어 오겠나이다.”
“오, 과연 그대는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로다. 그대가 불로초를 캐어 온다면 내 다음 자리는 물론이요, 이 나라의 절반은 그대 것이니라.”
“소인은 폐하의 신하로서 도리를 다하고자 할 뿐이지 상을 바라서 하는 일은 아니옵니다. 하오나 불로초를 캐어 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온즉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 명을 뽑아 주시고, 큰배를 여러 척 지어 주시옵소서.”
“동남동녀 오백이라? 그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무엇을 하려는고?”
“예, 영주산은 신성한 산인데다 험하기 이를 데 없고, 더구나 불로초는 산 속 깊이 숨어 자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흠이 없는 동남동녀들의 눈에만 띈다 하오니 많은 동남동녀들이 필요한 줄 아옵니다.”
서불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 애초부터 불로초란 있지도 않았고, 시황제의 곁을 떠나 먼 곳에서 큰 뜻을 펴고자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불로초를 캐어 온다는 말이 거짓말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서불이 말하는 대로 다 해 주었습니다.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남동녀 오백 명을 뽑고, 곤륜산에서 제일 좋은 나무를 베어다가 큰배를 여러 척 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먹고 쓸 식량과 물건들을 준비해서 배에 실어 주었습니다.
서불과 동남동녀들을 실은 배는 황하를 따라 내려와 바다에 다다랐습니다. 서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뱃머리를 동남쪽으로 돌려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서불에게 불로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저 동남동녀를 짝 지워 한라산에 올라 산 경치를 구경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제주 경치를 구경하면서 섬을 돌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서불 일행은 드디어 정방폭포에 다다랐습니다.
“자, 너희들은 이곳에 내려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도록 하여라.”
동남동녀들은 둘씩 짝을 지어서 세 쌍씩, 혹은 다섯 쌍씩 무리를 지어 내렸습니다.
서귀포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때는 아직 서귀포라는 이름이 붙기 전이었습니다.)
동남동녀들은 서귀포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이리 저리 돌아다녔습니다.
바닷가에 우뚝 솟아오른 외돌괴를 구경하기도 하고, 삼매봉에 올라 섶섬, 문섬, 범섬이 바다에 떠 있는 풍경에 감탄하기도 하였으며, 포구로 흘러 들어오는 시내를 따라 올라가 천지연의 경치에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불도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폭포의 모습과 서귀포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 뜻을 품고 시황제의 곁을 탈출하여 온 서불에게는 제주도의 땅은 너무 작았습니다.
서불은 석공을 시켜 정방폭포의 바위벽에 서불과차(徐市過此)란 글귀를 새기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입니다.
그 때는 정방폭포의 절벽이 지금처럼 많이 융기(땅이 지각의 변동에 의해서 바다 면보다 솟아오르는 현상)되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절벽의 상단에 글귀를 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폭포 상단 바위에는 서불이 새긴 글 흔적이 남아 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닳아서 희미해졌기 때문에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새겨져 있다고도 하고, 서불과처(徐市過處)라고 새겨져 있다고도 합니다.
절벽에 글귀를 새긴 서불 일행은 서쪽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 동쪽 일본 땅으로 가서 작은 나라를 이루었다고 전해집니다.
일본의 어느 지방에는 서불이 도착하여 정착한 땅이라고 전해져 오는 곳에 서불의 사당이 있고, 서불의 무덤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불이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이 때부터 이곳의 지명을 서쪽 서(西), 돌아갈 귀(歸), 물가 포(浦) 자를 써서 서귀포(西歸浦)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악한 시황제가 다스리던 진나라는 몇 년 못 가서 한(漢)나라에게 멸망하고, 죽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던 시황제도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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