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세시풍습 동화>
독광 주냉이
꿈꾸는 아이 한 천 민
오늘은 음력 유월 스므날, 닭 잡아먹는 날입니다. 영득이는 아침부터 신이 났습니다. 그것은 오늘이 닭을 잡아먹는 날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잡아먹는 닭은 영득이와 영호가 지네를 잡아서 판 돈으로 산 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어머니는 이번 유월 스무날에는 검은 닭이라도 한 마리 사다가 몸이 약한 아버지에게 고아 드리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날도 영득이와 영호는 늘 하는 행사처럼 다투었습니다.
“어머니, 형 봅서. 자꾸 나 때렴수게.”
영호의 고자질 때문에 영득이와 영호는 어머니 앞에 꾸중을 들었습니다.
“무사 느네들은 광 주냉이추룩 자꾸 투엄시니.”
“영호가 내 공책에 엥기려 버리난 한 대 쥐어박았수다.”
“형이 나 일기 쓴 거 읽어버리난 경 했수다.”
“넌 요자기 나 모르게 내 일기 안 봤나?”
“또 소리들이 높아졈저. 어이구, 우리 집에 광 주냉이를 한 마리씩 질르왐주. 느네 아방은 저추룩 아팡 드러눕는 날이 많앙 일도 못 곡 난, 나 혼자 먹엉 살젠 애쓰게 일곡 하는디 어멍을 도와줄 생각은 안 곡 다 큰 것들이 다투기만 하민 어떵 할거니.”
영득이와 영호를 꾸짖다가 살림살이 고생에 대한 신세 타령으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게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어머니, 잘못했수다. 다신 동생 안 때리쿠다.”
영득이는 얼른 잘못했다고 이야기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날 밤 일기를 쓰면서 영득이는 낮에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영호와 싸운 일이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무사 느네들은 광 주냉이추룩 자꾸 투엄시니.’
‘어이구, 우리 집에 광 주냉이를 한 마리씩 질르왐주. 느네 아방은 저추룩 아팡 드러눕는 날이 많앙 일도 못 곡 난, 먹엉 살젠 나 혼자 애쓰게 일곡 하는디 어멍을 도와줄 생각은 안 곡 다 큰 것들이 다투기만 하민 어떵 할거니.’
‘그렇다. 나도 이젠 다 큰 6학년인데 동생과 다투기만 해선 안 돼지. 우리 형제를 위해 애쓰시는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지.’
“영호야, 우리 내일부터 학교 갔다왕 주냉이 잡으레 가게.”
“무사? 주냉이 잡아당 뭐 할 거?”
“요새 주냉이 값 하영 주엄댄 난 잡아당 팔앙 유월 스무날 잡아먹는 날이 되민 검은 사당 아버지 삶아 드리게.”
걸핏하면 잘 다투는 형제간이었지만 이런 일엔 오히려 의견이 잘 맞곤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영득이와 영호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지네를 잡으러 나가곤 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재수가 좋아서 쉰 마리도 넘게 잡기도 하고 어떤 날은 둘이서 서너 마리 밖에 못 잡기도 하였습니다.
지네는 산 채로 파는 것보다는 말려서 파는 것이 값을 많이 주기 때문에 집에 오면 꼭꼭 판자에다 못을 박으면서 말리곤 하였습니다.
유월 스무날이 가까워지자 영득이와 영호가 그 때까지 잡아서 말린 지네를 어머니가 읍내에 가서 팔았습니다. 말린 지네가 워낙 많고 시세가 좋아서 오골계 한 마리를 살만큼의 돈이 충분히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돈을 더 붙여서 오골계 한 마리와 붉은 수탉 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닭 잡아먹는 날인 유월 스무날은 소나기가 한 차례 휙 뿌리고 가면서 후텁지근하던 더위를 조금은 시원하게 씻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닭 두 마리를 잡아서 창자를 빼내고는 오골계에는 한 줌의 콥대산이(마늘)와 칠낭(옻나무)을 잘라서 넣어 실로 꿰매었습니다. 또 붉은 수탉에는 콥대산이 한 줌과 쌀 한 줌, 그리고 백토란과 지네를 넣고 꿰맸습니다.
영득이는 어머니가 하는 일을 보며 궁금한 것을 여쭤보았습니다.
“어머니, 무사 이런 것들을 속에다 넣엄수꽈?”
“니네 아방추룩 몸이 약한 사름한티는 검은 에다가 콥대산이를 넣엉 삶아 멕이민 보약이 되엉 몸에 좋아진덴 다. 경하고 칠낭을 같이 넣엉 먹으민 그 칠이 몸에 오르지 안 해영 건강한덴 다. 붉은 에 콥대산이하고 백토란하고 주냉이를 넣엉 삶아 먹으민 몸보신에는 보약보다 더 좋텐 하주.”
“어머니, 경 헌디 무사 나영 영호한티 광 주냉이 닮댄 하멍 삶을 때 주냉이도 같이 넣엄수꽈?”
“응, 그건 은 주냉이만 보민 쪼사먹어블젠만 하고, 주냉이는 괴기가 있는 디를 냄새맡앙 강 독물을 밭아 놓아버리는 것이주마는, 주냉이를 죽영 속에 넣엉 삶아 먹으민 사름의 몸에 보기가 되엉 좋은덴 다.”
영호도 닭과 지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한 모양인지 어머니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어머니, 주냉이가 독물을 밭아 놓아버린 을 사름들이 먹으민 어떵 되어마씀?”
“그냥 모르고 먹으민 그 사름은 즉사하고 말주마는 펄펄 괴는 물에 잘 끓영 먹으민 아무 탈이 어신다.”
영득이와 영호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하면서 어머니는 오골계와 붉은 수탉을 두 솥에 따로따로 넣고 불을 때었습니다.
영득이와 영호는 어머니 곁에 앉아서 어서 닭이 삶아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다 삶아지젠 하민 아직도 멀었수꽈?”
불을 때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영호는 성급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야이도 무신 성질이 이추룩도 급하니. 고싸사 놓았신디 경 재기 삶아지느냐? 이 다 삶아질 때지 어멍이 잡아먹는 날에 대한 재미진 이야기를 해주카?”
“예, 저 해줍서.”
영득이와 영호는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옛날에…….”
닭 삶아지는 냄새와 함께 어머니의 이야기가 구수하게 이어졌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늙은 부모를 극진히 받들어 모시고 사는 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늙은 부모는 여름철이 되어 날이 더워져 가기만 하면 입맛이 없다고 하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몸이 날로 여위어 가기만 하였습니다.
효자는 애가 탔습니다. 효도를 잘 하지 못하여 부모님께서 여위어 가는 줄만 알고 더욱 정성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곤 했지만, 해마다 날씨가 더워져 가기만 하면 입맛을 잃고 여위어 가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늙으신 부모님께서 여름철을 건강하게 잘 보내도록 해 드릴까 하고 궁리하던 효자는, 추운 겨울이 되자 하늬바람이 씽씽 몰아치는 오름 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추위를 맡고 있는 겨울신에게 여름의 더위를 몰아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신마씀, 겨울신마씀. 이 오름 아랫실에 사는 이 사름이 겨울신님한티 빌엄수다. 불효막심한 이 사름이 정성이 모자라서 늙은 아방 어멍을 잘 받들지 못 해영 우리 아방 어멍이 더운 날씨만 돌아와가민 음식을 졸바로 자시지 못 해영 몸이 축나곡 햄수다. 어떵험니까, 겨울신마씀. 이 사름이 이제부터는 더욱 정성을 다 하영 아방 어멍을 모시크매, 부디 겨울신님의 찬름으로 여름 더위를 물리쳐 줍서. 이추룩 두 손 모두왕 빌엄수다.”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보라가 날려 몸을 꽁꽁 얼릴 정도가 되었지만 효자는 여러 날을 오름 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겨울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처럼 하얀 노인이 효자 앞에 나타났습니다. 노인의 손에는 처음 보는 이상한 새 두 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효자야, 느 정성에 감동해영 내가 와시난 이 생이를 받고 내가 는 말을 잘 들으라. 이 생이를 집에 가졍 가그네 잘 질르곡, 알을 낳거들랑 모다두었당 춘분과 청명날 방에 에미생이한티 안기엉 비애기가 나오게 라. 그 비애기들이 자라그네 새벽에 꼬기오- 하고 우는 놈은 그 날 아침에 곧 잡앙 어멍한티 삶아드리곡, 경 울지 아니하는 놈은 아방한티 삶아드리라. 경 민 느네 아방 어멍이 몸보신이 되영 여름 동안 더위를 안 타곡 음식도 잘 먹곡 거여.”
노인은 들고 있던 새를 효자에게 주었습니다.
“고맙수다, 고맙수다. 겨울신님 고맙수다.”
효자는 노인에게 수없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늙은 부모를 위하는 느 정성이 지극하주마는 내가 여름에는 힘을 쓰지 못 해영 더위를 몰아내지 못 난 이 생이를 주엄시매 잘 질르곡, 비애기 하영 까민 동네 사름들한티도 나눠주곡 하라.”
“겨울신님, 고맙수다. 경헌디 이 생이 이름이 무신거우꽈?”
“(닭)이엔 다.”
노인은 그 말을 남기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효자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어 닭을 소중히 가지고 오름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닭장을 지어주어 정성껏 길렀습니다.
암탉은 하루에 하나씩 알을 낳았습니다. 효자는 노인의 말대로 달걀을 모아두었다가 춘분과 청명날 사이에 어미 닭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이윽고 알에서 노오란 병아리가 깨어나고, 유월 스무날쯤 되자 그 병아리들이 어느덧 자라서 새벽마다 꼬끼오- 하고 울었습니다.
효자는 곧 꼬끼오- 하고 우는 수탉을 잡아 삶아서 어머니께 드리고, 그냥 구구구구 하고 우는 암탉을 잡아 삶아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효자의 정성으로 닭고기를 먹은 늙은 부모는 그 해 여름 더위를 거뜬히 이기고 입맛을 잃지 않아 건강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수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닭도 다 삶아졌습니다.
솥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토실토실한 닭고기가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영득이의 입에 달콤한 침이 가득 고였습니다.
“와, 맛 좋으키여.”
영호도 신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먼저 오골계를 건져서 방에 누워 계신 아버지께 갖다 드렸습니다.
“영득이 아부지, 이거 자셩 기신 촐려그네 저 벌떡 일어납서. 이 은 영득이영 영호가 주냉이 잡앙 판 돈으로 사온거난 아들들 정성 봥 하 먹곡 기신 촐려사 됨니다, 양.”
“경주. 저 사름이영 영득이, 영호 정성으로 저 일어나사 되주.”
어머니는 이번에는 지네를 넣어 삶은 붉은 닭은 꺼내었습니다.
“자, 주냉이를 넣엉 삶은 이여. 이 하영 먹엉 광 주냉이추룩 다투지덜 말앙 성제간에 사이좋게 지내곡 하라.”
“알았수다, 어머니.”
영득이와 영호는 똑같이 대답하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를 뜯기 시작했습니다.
닭고기를 한 입 가득 입에 넣은 영득이는 영호를 보았습니다. 영호도 한 입 가득 넣고 영득이를 보았습니다. 광 주냉이 같이 늘 다투던 형제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도 두 아들을 보며 빙그레 웃음 짓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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