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중 공휴일이 아닌 평일에 시간이 난 건 처음이었다. 모처럼 일도 없고,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마냥 자유로운 이날, 8월 16일.
느지막이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이날의 목표는 제주올레 13코스 걷기.
13코스의 종점인 한경면 저지리 한경면 주민자치센터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13코스의 시점인 용수포구로 향했다. 코스를 다 걷고 나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 편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용수포구를 향해 택시로 가는 동안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눈에 들어오는 나무들마다 점점 누렇게 변한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제주섬을 휩쓸고 간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해수 포말들이 뭍으로 멀리까지 날아와서 나무에 피해를 준 까닭이었다.
용수포구에 도착하여 걸을 차비를 하고 13코스 시점에 섰다.
13코스의 시점은 용수포구에 있는 절부앞 앞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절부암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다 죽은 남편에 대한 절개를 지킨 어느 부인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인데, 그 앞의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되어 있다.
[절부암(節婦岩) / 고씨 부인의 절개를 기리고 있는 바위이다. 조선 후기 이 마을의 어부 강사철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센 풍랑으로 변을 당하였다. 그의 처 고씨는 며칠 동안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 남편을 찾지 못하자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소복을 입고 이곳 나무에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자 홀연히 남편의 시체가 이 바위 밑에 떠올랐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중국 조아(曺玡, 조간의 딸로 조간이 강을 건너다가 급류에 빠져 죽자 70일 동안 아버지를 찾아 헤매었다. 시체를 찾지 못하자 조아도 강물에 몸을 던졌는데 5일 만에 아버지 조간의 시체를 안고 물 위에 떠올랐다 한다.)의 옛 일과 같다고 감탄하였다 한다. 이를 신통히 여긴 당시 판관 신재우는 고씨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는 글귀를 새겨 후대에 기리게 하였다. 또한 관(官)에서는 이들 부부를 합장한 후 그 넋을 위로하고자 이 마을 주민들로 하여금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절부암으로 올라가 보았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난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니 “절부암”이라는 글씨와 그 외의 글씨가 새겨진 큰 바위들을 볼 수 있었다. 열녀 조씨를 기리기 위해 새겨 놓은 글들인 것 같았다.
어느 평평한 바위에는 고누판을 새겨놓은 것도 보였다. 아마도 시원한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이 앉아 고누를 두며 여가를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절부암 앞에는 열녀 고씨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듯한 제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절부암 서쪽편의 계단을 올라가서 용수 마을길을 지나는 올레길을 걸었다.
절부암 뒤편 길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뒤편을 지나가게 되어 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데, 중국 상하이에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된 김대건이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으로 돌아오는 도중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게 되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첫 미사를 드렸다고 하는 곳이다. 그래서 성김대건신부제주표착기념관은 큰 배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당시 김대건 신부가 타고 온 배인 라파엘호의 모습을 상징한 것인 듯했다.
성김대건신부제주표착기념관 뒤편을 지나 용수 마을길을 걷다가 마을 외곽의 들판을 지나고 길은 일주도로 쪽으로 이어지다가 일주도로를 횡단하여 용수 저수지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주도로를 바로 지나서 작은 길로 들어섰는데, 그만 길을 헛갈렸다.
올레길을 알려주는 표식인 파랑색과 주황색 끈이 갈림길의 이쪽과 저쪽에 모두 묶여있는 것이었다. 어느 쪽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아무 쪽으로 가더라도 결국엔 다시 한 곳으로 만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오른쪽 편 길로 들어섰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 여러 코스의 올레길을 걸어오면서 경험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럴 것이다 하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예상대로 두 갈래로 갈라져서 가게 된 길이 용수 저수지 앞에서 합쳐진 것이었다.
아무튼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조금 걸어가자 이건 예배당인지 기도처인지 모를 조그만 교회당이 길가에 있었다.
[순례자의 교회]라고 이름이 붙여진 교회당인데, 너무 작은 교회당이어서 대여섯 사람 쯤 들어가 앉으면 자리가 좁아서 꽉 차 버릴 것 같았다.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바깥으로만 살며시 들여다보고 다시 길을 걸었다.
몇 백 미터를 걸었을 때 눈앞에 다시 이상한 건물이 나타났다.
여기는 참 이상한 건물들도 많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다가가 보았다. 드럼통 같은 모양의 커다란 원통 모양 세 개를 눕혀 놓고, 그 귀에 다시 한 층의 통을 올려놓아 2층을 만들고, 2층 통 옆에는 나무판으로 베란다를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그 통 모양의 건물마다에는 문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2층 베란다에는 [제주모모]라는 작은 이름까지 붙어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보았다. 그 건물 곁에는 주인이 살고 있음직한 다른 집이 있어서 주인을 찾아 보여달래서 보려고 했는데 불러 보아도 주인이 없었다. 그래서 미안한 대로 그냥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것은 작은 방이었다. 원통 모양의 건축물마다 각각 별도의 방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특이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펜션이었던 것이다.
이 방에서 잠을 자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며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주변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 있었고, 이곳에 묵으면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도 있게 펜션 앞에는 고기를 굽는 불판도 놓여 있었다.
제주모모를 지나 몇백 미터를 더 걸어가니 용수저수지다.
용수저수지 앞에 세워 놓은 간세(올레길을 표시해 주는 말 모양의 방향 지시판)에는 용수저수지에 대한 설명을 써 놓은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용수저수지 / 1957년에 제방을 쌓아 조성한 저수지로, 인근 논에 물을 대는 용도로 유용하게 활용돼 왔다. 이곳의 소나무 숲과 갈대, 부들 군락지는 겨울을 지내러 오는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더 유명하다.]
저수지 제방 위로 올라갔다.
넓은 저수지가 눈앞에 확 펼쳐졌다. 제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넓은 저수지였다. 아마도 제주섬의 저수지 중에서는 가장 큰 저수지가 아닌가 싶다. 저수지에는 물결이 잔잔하게 일고 있었고, 군데군데에 초록 풀 무더기들이 저수지 위로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그곳들은 저수지 바닥이 얕은 곳들일 것이다.
낚시꾼 두 명이 한가로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분들의 양해를 얻어 낚시하는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올레길은 저수지 제방 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넓은 저수지를 보며 제방 위를 걷노라니 물 위를 건너온 바람이 습기가 많은 날에 길을 걷는 올레꾼의 땀으로 젖은 이마를 시원하게 간질여주었다.
저수지를 반 바퀴 빙 돌아 다시 농로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농로를 걷기 얼마쯤. 아스팔트길을 만나 횡단하여 다시 시멘트길 농로로 들어섰더니 [특전사 숲길]이라는 간세가 숲속으로 들어가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제주도에 순환 근무하던 제13사단 공수특전여단의 병사들이 제주 올레를 도와 낸 숲길인데, 50명의 특전사 대원들이 이틀간 총 3km, 7개 구간에 걸쳐 사라진 숲길을 복원하고 정비했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특전사 숲길을 걸어가는 동안 숲의 공기와 풀내음, 나무내음이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었다.
특전사 숲길에서 나와 다시 얼마쯤 가서 이어지는 숲길은 [쪼른 숲길]. “쪼른”이라는 말은 제주말로 “짧은”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쪼른 숲길은 짧은 숲길이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길지 않은 짧은 숲길이었다.
이 구간에서는 하나의 숲길이 끝나면 다른 숲길로 이어지곤 하여 숲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특전사 숲길과 쪼른 숲길을 지나니, 이어지는 숲길은 [고목나무 숲길] - [고사리 숲길] - [고망 숲길]. 이렇게 다섯 개의 숲길이 숲길로 들어서고 농로로 나오고 하기를 반복하며 이어졌다.
한동안 숲길을 반복하며 걷기를 한참. 드디어 마을길로 들어섰다.
고망 숲길을 지나서 나타난 마을은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마을이다.
[아홉굿마을]은 의자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을 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소개된 것을 보니 이 마을에는 천 개의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정말 이 마을을 지나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보니 가는 곳마다 가지각색 모양에 이름들도 제각각 예쁘고 멋스러운 이름들을 붙인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아홉굿마을이라는 이름은 “아홉 가지 즐거움이 샘솟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홉은 말 그대로이고, 굿은 영어의 “Good"인데, 우리말과 영어를 결합한 합성 신조어로 마을 이름을 만든 것이다.
도대체 아홉 가지 즐거움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집에 온 후에 알아보았더니,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다.
[아홉굿마을은 아홉개의 샘, 천 개의 의자가 있고 그리고 천 가지의 기쁨이 있다는 마을 입니다.
'굿'은 제주도의 샘의 사투리로 마을 안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샘이 9개가 있고 팽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올레길 13코스를 반쯤 걷다가 잠시 쉴 곳이 간절할 때 나그네의 쉼터가 되어주는 마을로 천 개의 의자들이 재미있는 모양과 글귀들을 보며 피로도 풀고 제주에서 생산된 보리로 만든 음식을 간단히 맛볼 수 있어 올레길 걷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공원 같습니다.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마을은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대장간이 시작된 곳이라고 합니다. 불미업(풀무질을 하는 수공업)의 주재료인 점토를 파낸 아홉 개의 구멍에 물이 고여 샘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마을 인근에는 동쪽의 저지악, 서쪽의 당산봉, 남쪽의 조수악(새신오름), 북쪽에 관포악 등의 크고 작은 오름이 많아 제주도의 해안과는 색다른 제주 숲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라고 하네요.]
<http://blog.daum.net/prettymom201/16153083 - 데이지의 사진여행에서 따옴>
아홉굿마을의 의자들을 감상하며 이 마을을 지나 다시 길을 걸었다.
이제 올레길은 저지오름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다가온(사실은 내가 오름으로 다가가는 것인데…….) 오름은 송아오름.
송아오름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마오름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앞에는 이 주변에서는 가장 큰 저지오름(새오름, 닭모르)이 우뚝 서 있었고, 마오름과 이계오름, 송아오름 등이 저지오름 주변에 작게 앉아 있었다. 가메창은 작아서 웬만해서는 보이지 않고, 이 오름들 외에 아름 없는 작은 언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송아오름 옆을 지나 아스팔트길을 횡단한 다음 오솔길을 따라 마오름 방향으로 이어지는 [뒷동산 아리랑길] 언덕을 올라갔다. 아직 여물지 않은 억새풀과 띠풀들, 작은 나무들 사이로 여름 햇살을 좋아하는 여름꽃들이 들판 여기 저기 피어 있었다.
마오름 쪽으로 가던 올레길은 갑자기 꺾이어 저지오름 쪽으로 향하고, 저지오름 서쪽의 주차장에 이르러서는 오름을 올라가는 코스로 길이 이어졌다.
망자(亡者)들의 안식처인 공동묘지를 지나 저지오름 둘레길로 올라섰다. 저지오름 둘레길은 저지오름 둘레를 한 바퀴 돌도록 만들어 놓은 오름 중턱의 산책로이다. 올레길은 둘레길을 다 돌지 않고 오름 정상을 향해 올라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다시 굼부리 둘레를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오름에 여러 번 올랐었기 때문에 이날은 정상으로 오르는 것을 생략하고 둘레길의 남쪽편을 따라 오름의 동쪽으로 향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만들어진 둘레길의 시원한 공기가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오름의 동쪽편에서 저지리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저청우체국 옆의 골목길을 지나 종점인 저지리 사무소로 향했다.
종점에 도착하여 가게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 먹으니 13코스를 걸으며 흘린 땀이 쑥 들어가는 듯했다.
종점은 또 다른 시점이 되기도 한다. 13코스 종점인 저지리 사무소 앞은 14코스와 14-1코스의 시점이기도 하다. 13코스를 걸었으니 다음에는 여기로 와서 이곳에서 시작되는 두 코스를 걸어야겠다.
종점에 차를 세워두었었기 때문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지오름이 멀어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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