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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올레 12코스 걷기

  지난 겨울, 가끔 눈보라가 몰아치고 차가운 바람이 휘돌던 날 올레 11코스를 걷고 나서 몇 달이 지난 7월 쯤에야 12코스를 걷게 되었다.

  그 날은 장마철인데도 비는 내리지 않고 안개가 희뿌옇게 끼어 주변이 침침하고 습기가 몸으로 들어와 끈적거리는 날이었다. 그런 날인데도 난 길을 나섰다. 

 

  12코스 시작점인 무릉2리 좌기동에 있는 제주자연생태문화체험골로 갔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옛 무릉동교였던 폐교로 갔다. 지금은 그때의 폐교가 생태문화체험골로 운영되고 있었다. 생태문화체험골 입구에는 길 위로 아치를 만들어 세워 아치 위로 오이, 수세미, 꽃호박 등의 덩굴식물들을 올려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생태문화체험골을 출발하여 무릉2리 마을길을 지나 농로를 따라 걸었다.

  거의 대부분이 밭으로 이루어진 농로에는 심어놓은 농작물은 별로 보이지 않고, 곡식을 베어내고 아직 다른 작물을 심지 않은 밭들이 대부분이었다. 

 

  농로를 따라 걸으면 무릉2리 평지동으로 올레길이 이어진다. 평지교회 앞에서 길이 꺾이어 신도리 방향의 농로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쯤 가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되고 있는 큰 키위 농장이 길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침 농장 주인이 농장문을 열다가 내가 지나가니까 농장 구경을 하고 가라고 하신다. 제주 사람인 줄은 모르고 육지 어디쯤에서 와서 올레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 보았나 보았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넓은 비닐하우스 안에 키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제법 커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였지만 아직은 속이 익지 않아서 먹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주렁주렁 가득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니 내 가슴 속까지도 농장 주인의 기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신도리 녹남봉으로 이어지던 올레길은 중간에 도원연못(신도생태연못)을 거쳐 가도록 이어져 있었다. 도원연못에는 연못물은 많지 않았지만 연못 안 대부분이 습지를 이루고 있었다, 습지에는 물을 좋아하는 온갖 식물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도원연못을 지나서 곧바로 녹남봉을 향해 길이 이어졌다. 농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녹남봉 입구.

  녹남봉으로 올라갔다. 녹남봉에는 소나무들이 가득 우거져 있고 그 아래 관목들과 잡초들이 가득 덮여 있었다. 녹남봉 정상에는 마을 사람들을 위한 운동기구들이 몇 개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 주변에 잡초들이 잔뜩 우거져 있고 사람들이 사용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 놓기만 하고 사용도 하지 않으면서 방치할 거라면 아까운 예산을 낭비하면서 왜 만들어 놓는지 모르겠다.

  녹남봉은 정상부에 작은 원형 굼부리가 있다. 올레길은 굼부리 바깥쪽을 동쪽으로 빙 돌아서 서쪽으로 간 다음 마을 쪽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녹남봉에서 내려가는 길에 등반로에 가마니 같은 것으로 새롭게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야 깔아 놓아서 아무의 발자국도 없는 것을 내가 처음으로 밟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마을로 거의 내려와서 보니 한참 길에 깔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길에 깔아 놓은 것이 무슨 재질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야자수 잎으로 짠 것이라고 한다. 동남아 국가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하는데, 수명은 약 10년 정도라고 한다. 

 

  녹남봉에서 내려오면 곧바로 만나는 곳은 산경도예였다. 이곳은 전에 신도초등학교였던 곳인데,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를 도예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푸른 잔디 운동장과 옛 학교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교실 앞 가운데에는 아름드리나무(무슨 나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녹나무 같음)가 떡 버티고 서 있었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아직도 우뚝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경도예원을 지나서 신도리 마을을 지나 바닷가 방향을 향해 걸었다. 날씨는 덥고 목이 말랐던 참에 배낭에 가지고 온 물이 있었지만 마늘을 까고 있던 할머니의 배려로 마을 어느 집 수도에서 세수를 하고 물을 마셨더니 갈증이 가시고 한결 시원해졌다.

  농로를 따라 계속 걸어 드디어 바닷가.

  바닷가에 있는 도원횟집에서 또 시원한 물을 마시고 푸른 바다를 보았더니 갈증이 싹 가시고 힘을 내어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도원횟집 앞에서부터 포구가 있는 신도2리 마을 쪽 올레길은 해안도로 아래의 검은 바위 위로 걸어가게 되어 있었다. 검은 바위들은 꿈틀거리며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바다는 허연 거품의 파도를 일으키며 바위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바위와 파도가 만나는 곳에서는 작은 포말들이 일고 있었다. 

 

  신도포구 앞에서 올레길은 꺾이어 마을 쪽으로 이어지고, 곧바로 다시 농로를 따라 수월봉 쪽으로 가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신도2리와 수월봉 아래 고산 한장동까지의 들판은 사방이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있었다. 다른 지역의 들판들은 대부분이 밭인데 비해 이 주변의 들판은 논이 대부분이었다. 시원스레 펼쳐진 논에서 벼가 이삭을 빼곡히 내밀고 여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걸어가고 있는 들판 앞으로 한장동 마을이 보이고, 마을 뒤편으로 수월봉이 야트막하게 앉아 있었다. 수월봉 위에는 고산기상대 건물이 둥근 돔 지붕을 하고 우뚝 서 있었다. 

 

  들판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시내 다리를 건너는데 작은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제주올레12코스(서귀포시와 제주시 경계)]라 쓰인 올레팻말이 다리 난간에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서귀포시 제주올레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서귀포시장”이라고 쓴 팻맛이 붙어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제주섬의 서쪽 끝에서 서귀포시와 제주시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시내 이쪽은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저쪽은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처음 제주섬의 동쪽 끝에 있는 마을인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서 시작하는 올레1코스를 걷기 시작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걸은 올레길이 약 2년 만에 서귀포시의 올레를 모두 완보하여 이제 제주시 쪽의 올레를 걷기 위하여 넘어가게 되었다. 작은 경계선을 넘는 이것도 별 게 아닌 것 같았는데 내게는 작은 의미로 다가왔다.

 

  작은 의미인 경계선을 넘어 제주시 쪽 올레길로 들어서서 한장동 마을로 들어갔다. 꼬불꼬불 이어진 마을길을 따라가다가 마을회관 앞을 지나 수월봉 쪽으로 갔다.

  수월봉은 마을 바로 뒤편에서 올라가도록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수월봉은 비고가 높지 않는 오름이어서 한장동 마을 뒷길에서 정상까지 5, 6분 정도면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고, 그 아래에는 띠풀들이 곱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수월봉 정상부 남편에는 제주지방기상청 고산기상대가 자리하고 있었고, 기상대의 둥근 돔 지붕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정상부 북편에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어서 사람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었다. 정상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자구내 포구 뒤의 당오름과 그 앞의 차귀도, 와도 등이 가까이 다가와 보였다.

 

  수월봉을 내려와 수월봉에서 자구내 포구까지 바닷가로 이어진 엉알길로 내려갔다. 엉알길에서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지층들을 바로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길가 절벽에서는 맑은 물들이 떨어지는 곳들이 많이 있어서 넓게 펼쳐진 바다와 함께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시원스런 느낌과는 별도로 이곳에서 떨어지는 물들은 옛날에는 식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했었는데 이제는 상당히 많이 오염되어서 식수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자구내 포구는 포구 앞에 차귀도가 있어서 경치가 좋고, 관광객들과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노점에서 오징어 등을 파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포구 앞 가게에서 시원한 물을 사서 마른 목을 축이고 포구 뒤의 당오름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12코스 올레길은 당오름을 지나 종점인 용수포구로 향하게 된다. 

 

  오름 아래쪽의 차귀도섬풍경펜션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반로를 따라 당오름으로 올라갔다. 당오름의 중턱에 이르러서는 다시 당오름의 서쪽 능선과 당알오름 사이에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서 나아갔다. 그러다 그 길은 다시 서쪽 능선 위로 올라가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당오름의 서쪽 능선 위로 올라서자 너무나 멋진 풍경들이 나타났다. 파랗고 잔잔한 바다 위에 차귀도와 와도의 풍광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펼쳐졌다. 그 풍광은 능선을 따라 바닷가 길을 따라 용수포구로 가는 동안 당오름 서쪽 바닷가에 면한 절벽의 풍광과 함께 내내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드디어 종점인 용수포구.

  작은 포구에 작은 배들이 다정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포구 앞의 절부암 앞에는 12코스의 종점과 13코스의 시점임을 알리는 표지가 세워져 있었다. 

 

  이번 12코스 올레길 걷기는 날씨가 습하고 더웠기 때문에 갈증이 많이 났다. 무릉 2리를 출발하여 자구내 포구에 도착할 때까지 중간에 음료수를 사 먹거나 간식을 사 먹을 만한 가게가 하나도 없어서 그것으로 인하여 불편한 점이 많았다. 물론 배낭에 가지고 온 물이 있었지만 날씨가 더워서 금세 비어버렸다. 점심을 잘 먹고 출발하기는 했지만 오래 걷다 보니 빨리 허기가 졌다.

  돌아오는 길, 용수포구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무릉2리 자연생태문화체험골로 돌아와 집으로 향했다.